bellsky
돌산(bellsky)
California 블로거

Blog Open 07.16.2008

전체     506031
오늘방문     94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24 명
Blog News Citizen Reporter
  달력
 
김이박씨는 왜 이렇게 많을까
09/17/2016 07:47
조회  2315   |  추천   6   |  스크랩   0
IP 24.xx.xx.19

 


,, 박씨가 전 국민의 반인 나라

                                             -성씨의 고향(2)

 

#.

너만 잘났냐? 나도 잘났다.”

드러내 놓고 말은 안 해도 미국 사는 한인들이라면 누구나 가져 본 생각일 것이다. 비록 아메리칸드림이 사라져 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나 학벌 등과 상관없이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든 남에게 아쉬운 소리 안하고 살 수 있는 곳이 그래도 이곳 미국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태생적 조건이나 신분(?)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성씨와 본관도 그 중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 결과가 흥미롭다.


이에 따르면 2015년 현재 한국의 성씨는 5582. 2000년 조사에선 430개였는데 15년 사이 5000개 이상 늘어난 것이다. 이유는 인구 조사의 정확성이 높아진 탓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귀화한 외국인들이 무더기로 새로운 성을 신고했기 때문이라는 게 통계청의 설명이다.


이중 가장 많은 것이 김씨. 무려 1069만명으로 전체 한국 인구 5107만 명의 21.5%에 이른다. 다음은 이씨14.7%, 박씨8.4%나 된다. 한국인의 거의 반에 육박하는 44.6%가 김이박씨라는 말이다


본관 순으로는 가야 김수로왕의 후손인 김해 김씨가 가장 많고(446만명, 9%) 신라 왕의 성씨였던 밀양 박씨6.2%2, 조선 왕족인 전주이씨5.3%, 역시 신랑 왕 성씨였던 경주 김씨3.6%가 그 다음이다. 말하자면 한국인 중 넷에 한 명은 왕족의 후예인 셈이다. 이렇게 특정 성씨가 전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나라는 베트남 말고는 한국밖에 없는 것 같다(베트남에선 응웬(Nguy?n, )씨가 전체 인구의 40%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김이박씨가 많을까? 그들이 다른 성씨보다 월등히 자손을 많이 두었기 때문일까? 성씨의 기원이나 역사적 배경을 알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원래 한국의 성씨는 신라 왕족인 박, , 김씨 외에 신라 6(六姓)이라 해서 , , , , , 씨 정도가 토착 성씨였다. 백제와 고구려의 성씨도 기록엔 남아 있다. 백제 성씨는 여, , , , , , , 목 등 8개 성씨가 주류를 이뤘고, 고구려 성씨는 해, , , , , , , , , , , 을지 등 10여종이 전한다. 하지만 고구려나 백제 계통의 성씨는 신라 통일과 함께 거의 소멸되었다. 정복과 지배의 고대 사회 성격상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이후 고려가 건국되면서 사성(賜姓)정책이라 해서 태조 왕건이 개국에 힘을 보탠 지방 호족이나 귀순 장수들에게 새로 성을 하사했는데 지금 많은 성씨와 본관이 이때부터 시작됐다.(필자의 성인 벽진이씨도 신라 말 지금의 경북 성주군 일대 벽진 태수(太守)를 지내다 고려 개국에 큰 공을 세운 이총언 장군이 시조다.)


또 여러 경로로 귀화해 온 많은 중국인, 일본인, 북방 여진족에게도 새로운 성을 내렸는데 임진왜란 때 선조 임금으로부터 김해김씨 성을 하사받은 왜장 장수 출신 김충선이 그 예다. 지금 한국에 들어와 있는 귀화 외국인이 200만 명이 넘지만 이미 과거에도 일본이나 북방의 수많은 이민족들이 들어와 살며 우리의 성씨 속에 그들의 피도 함께 녹아들었다는 말이다. (단일민족이란 말은 그래서 모순!)


이렇게 고려 이후 새로운 성이 많이 생겨나긴 했지만 조선 초중기까지만 해도 여전히 성을 가진 사람은 극히 적었다. 당시 조선의 인구 구성을 보면 양반 지배계층이 10%, 역관 의관 향리 등 중인이 10%, 그리고 일반 백성인 양인(良人)30%였고 나머지 50%는 노비였다. 그러니까 15~16세기까지도 이름만 있었지 성까지 가진 사람은 전체 인구의 15%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신분 사회가 고착화되면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과 본관을 가진 양반이 되려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2014년 출간된 고려대 권내현 교수의 노비에서 양반으로, 그 머나먼 여정이란 책은 이런 조선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권 교수는 17세기 후반부터 200년간 경남 산청의 김수봉이라는 노비와 그 후손들이 납속(納贖)과 족보위조를 통해 김해김씨 가문으로 변신해 가는 과정을 추적했다. 납속이란 국가 재정이 어려울 때 나라에 돈을 내고 신분 상승을 허락받는 것을 말한다. 노비가 그렇게 돈을 내고 양인이 되는 것을 면천종량(免賤從良)이라 했다.


권 교수에 따르면 17세기 조선 전체 인구 중 약 40%가 노비였지만 200년 뒤인 19세기 중반이 되면 전 인구의 70% 이상이 양반이 됐다. 수많은 노비들이 이런 식으로 신분세탁을 하면서 성씨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또 도망간 노비들이 신분을 속이기 위해 새 성을 만드는 경우도 비일비재했고 1894년 갑오개혁으로 노비제도가 공식 철폐되면서 고을마다 성이 없던 수십 수백 명의 노비들이 한꺼번에 주인의 성을 따르는 경우도 많았다. 그때 가장 많이 선택된 성이 바로 김,이,박씨였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 모두가 성씨를 갖게 된 마지막 계기는 1909년 실시된 민적법이었다. 일제가 합병 전 향후 수탈정책의 전초 작업으로 전 조선인의 호적을 만들면서 그때까지도 여전히 개똥이, 돌쇠, 먹쇠 등으로 불리던 이들 모두에게 강제로라도 성을 가지게 만든 것이다. 그때도 가장 선호하고 많이 선택했던 성씨가 김이박씨였다고 한다.


#.

미국에 사는 한인들은 한자로 성을 쓸 일도 별로 없고 본관을 따질 일도 거의 없어졌다. 그렇지만 아무리 미국에 살아도 근본도 모른다는 욕은 듣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추석 같은 명절 때 한번 쯤 내 성씨의 뿌리도 찾아보고 훌륭한 조상님들의 행적도 뒤적여 보자는 것도 그래서이다


그렇더라도 내 조상만 잘났네, 우리 집안이 최고네 하는 착각은 말아야겠다. 누가 조금 부족하다고 그렇게 무시할 일도 아니고, 내가 조금 낫다고 그리 우쭐댈 일은 더욱 아니다. 어차피 성씨의 뿌리를 따져 올라가면 나와 너, 우리네 조상님들은 모두가 비슷한 처지였을 테니 말이다

                                                                                     (2016.9.15. / 음력 8월 보름 추석날에)









이 블로그의 인기글

김이박씨는 왜 이렇게 많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