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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이 불편했던 사람들
08/19/201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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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이 불편했던 사람들

 

교황이 한국을 다녀갔다. 소외된 자, 가난한 자, 힘없는 자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려고 애를 썼다. 많은 메시지도 남겼다. 평화를 말하고 정의를 기원했다. 배려와 관용, 용서와 화해에 대한 권유도 빠트리지 않았다. 남과 북의 분단 현실을 두고는 그래도 같은 말을 쓰는 것이 희망이라고 했다.

 

많은 이들이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다. 위로를 받고 희망을 찾았다. 가톨릭 교인만이 아니다. 비종교인들까지도 그를 통해 사랑과 나눔, 섬김과 겸손의 참모습을 발견했다고 입을 모았다. 왜일까. 세상은 왜 그렇게 78세 할아버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열광할까.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첫째, 그의 인간미다. 그에게선 이전 교황과는 다른 '사람 냄새'가 난다. 요즘 종교 지도자들을 떠올리면 상당수가 '별에서 온 그대'다. 신(神)의 대언자라는 명분 하에 마치 스스로가 신인 것처럼 행세한다. 하지만 교황은 달랐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다. 호감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둘째, 일관된 품성이다. 조금만 지위가 높아져도, 조금만 자리가 달라져도 표정 바꾸고 말투가 달라지는 게 보통 사람이다. 하지만 교황은 그러지 않았다. 여전히 소탈하고 서민적이다. 여전히 낮은 데를 쳐다보고 그늘진 곳을 찾아간다. 여태껏 해 왔던 그대로다.

 

해맑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라. 사랑의 마음, 긍휼의 마음, 겸손의 마음이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표정이다. 성직자에겐 높은 식견, 깊은 영성도 중요하다. 하지만 선한 미소만큼 많은 것을 말해주는 것은 없다. 얼굴은 자신이 살아온 내력이고 마음의 거울이다. 링컨도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한다고 했다. 교황은 나에게, 너에게,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얼굴로 이미 가르쳐 주고 있다.

 

셋째, 개혁이다. 개혁이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가톨릭교회는 과오로 점철된 부끄러운 역사를 가졌다. 하지만 남다른 반성도 해왔다. 그럼에도 부족했다. 여전히 바티칸은 복마전이었고 성직자들은 청빈 서원을 하고서도 부와 권력을 좇는 위선을 보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것을 깨트리고 있다. 세계가 촉각을 세우며 지켜보는 이유다.

 

절대자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것만큼 기독교인에게 강조되는 것도 없다. 그러나 말은 무성하지만 '내려놓음'의 모범을 보이는 지도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교황은 그것까지 몸소 보여주고 있다. 진정한 리더에 목말라 하는 한국인들이 더 환호와 갈채를 보내는 이유다.

 

하지만 뜻밖에도 그런 교황이 불편했던 사람도 있었던 것 같다. 드러내놓고 말은 못했지만 진영 논리에 따라 열심히 교황 방한의 득실을 따졌을 보수 정치권이 그랬을 것이다. 개신교 입장에서도 좋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특히 복음주의 개신교인 중 일부는 내놓고 방한반대 집회까지 열었다니 그들의 심기가 오죽 불편했으면 그랬을까. 

 

신학적으로, 종교사회학적으로 나름대로의 이유와 논리가 있을 것이다. 오랜 전쟁까지 불사했던 가톨릭과 개신교간의 복잡 미묘한 과거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아직도 안 풀린 게 있어서 그렇구나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아니었다. 이미 서로를 인정했고 화해와 일치를 논의한 지도 오래다. 아니, 그 모든 것을 떠나 이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의 문제였다. 내 집에 온 손님이다. 그것도 보통 손님인가.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가톨릭의 영향력 확대라는 측면에서만 보는 것은 단견이다. 그는 세상에 무기력했던 종교가 세상을 위해 다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발길 닿는 곳, 그의 눈길 닿는 곳에서 일어나는 많은 변화들이 그것을 말해준다. 더 놀라운 것은 교황의 그런 영향력이 종교적 권위나 정치적 파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대중의 마음에서부터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금 가톨릭 교회의 역사를 바꾸고 있다. 아니 물질 만능, 자본 만능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 있다. 그런 인물을 지근거리에서 만나고 함께 호흡했다는 것은 한국 가톨릭뿐만 아니라 한국인 모두에게도 작지 않은 행운이었다. (2014.8.19)



 
 
방명록 서명 직후 함께 한 주교들과 웃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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