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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왕실에 시집온 이방 여인들
12/17/201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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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왕실에 시집온 이방 여인들

 

#. 조선 26대 임금 고종(1852~1919)은 모두 94녀를 두었지만 넷만 장성해 살았다. 조선 마지막 왕 순종(1874~1926)과 대한제국 황태자 영친왕 이은(1897~1970), 그의 이복형 의친왕 이강(1877~1955), 그리고 만년에 얻은 딸 덕혜옹주(1912~1989)가 그들이다.


1910년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면서 순종은 황제에서 이왕(李王)으로, 영친왕도 황태자에서 이왕세자(李王世子)로 지위가 격하되었다. 조선 왕실은 멸망 직전 조약에 따라 이왕가(李王家)란 이름으로 1947년까지 존속은 됐다. 대신 영친왕과 덕혜옹주는 일본의 내선일체 정책에 따라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해야 했다. 조선의 마지막 황세손으로 불리는 이구(1931~2005)는 그렇게 결혼한 영친왕과 일본인 부인 이방자 여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다. 이구는 미국 유학 후인 1958년 뉴욕에서 미국 여성을 만나 결혼을 했다.


최근 이구의 아내였던 '조선의 마지막 황세자빈' 줄리아 리가 하와이 요양원에서 94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숨을 거두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파란 눈의 외국인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긴 종친회에서는 후사가 없다는 점을 들어 이혼을 종용했고 결국 결혼 24년만인 1982년 두 사람은 이혼했다고 기사는 전한다


줄리아는 이혼 후에도 끊임없이 남편을 그리워했지만 결국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2005년 남편의 장례식에는 일부러 왔었지만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먼발치서 장례식을 지켜보아야 했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읽으며 옛 왕가의 외국인 며느리를 대하는 우리네 정서가 이렇게나 각박하고 아량이 없나 싶어 씁쓸했다.


#. 우리 역사에서 처음 국제결혼을 한 왕은 고구려 2대 임금 유리왕(재위 BC19~AD18)이었다. 그는 첫 왕비가 죽자 치희(雉姬)라는 중국 한나라 여인을 계비로 맞아들였다. 하지만 치희는 또 다른 계비인 하희의 시기질투를 견디다 못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렸다. 이에 낙심한 유리왕이 지었다는 노래가 한국 최초의 서정시가로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황조가다


펄펄나는 저 꾀고리 

암수 서로 정답구나 

외로울 사 이내 몸은 

뉘와 함께 돌아갈꼬

 (翩翩黃鳥 편편황조 /雌雄相依 자웅상의 /念我之獨 염아지독 /誰其與歸 수기여귀).


김해 김씨의 시조인 가야 김수로왕도 왕비가 외국인이었다. 인도 아유타국에서 온 허황옥이 그 주인공인데 둘 사이엔 10명의 아들이 있었고 그중 왕비의 성을 딴 두 명이 김해 허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기록은 전한다


고려 후기 왕들은 아예 강제로 몽골 여인을 왕비로 맞아야 했다. 원나라에 충성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충()자 돌림의 여섯 왕과 31대 공민왕이 그들이다. 그 중 25대 충렬왕 부인은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의 딸로 어찌나 위세가 등등했던지 툭하면 남편에게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지팡이로 때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왕실의 이런 사정을 백성들이 몰랐을 리 없고 이런 것 또한 이민족과의 결혼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킨 한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 외국인 혐오를 뜻하는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낯선 사람을 경계하려는 인간의 본능적 방어기제일 수 있다. 하지만 유달리 '끼리끼리 문화'가 발달한 한국에선 그 정도가 유독 더 심한 것 같다. 조금이라도 외모가 다르거나 습속이 다른 사람은 대놓고 배척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 너무 노골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제노포비아는 역사적으로 보면 잦은 외적의 침략을 받은데 따른 후유증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고려 때 거란과 몽골, 왜구의 참혹한 국토 유린에서부터 조선 시대 임진왜란 병자호란, 그리고 구한말 열강의 각축과 일제 강점기까지 거쳐 오면서 처절하게 겪었던 민족적 수난이 집단기억으로 각인되어 이방인이라면 무조건 배척하거나 경계부터 하게 된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의 외국인 배척은 언어습관이나 낱말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외국 사람이면 그 나라 이름 뒤에 무조건 자를 붙여 부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양코배기, 쪽발이, 짱깨, 때놈(되놈), 흑형, 맥작같은 특정 인종이나 외국인을 비하하는 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쓰인다또 병자호란 후 청나라에 끌려갔다 고향에 돌아온 여인을 지칭하는 환향녀(還鄕女)6.25 전쟁 후 미국인을 상대로 한 특정 직업 여성을 지칭하는 단어가 오랫동안 여성들에 대한 가장 모욕적인 욕으로 사용되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민족 다문화 융합은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우리가 그렇게 강조해 온 '단일민족이라는 환상도 설득력이 없어진 지 오래다. 한국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16년 외국인과의 혼인도 2591건이나 된다. 이는 같은 해 전체 혼인 중 7.3%나 된다


외국인과의 결혼이 이렇게 흔해졌고, 한국에 와서 사는 외국인 숫자도 200만명이 넘어섰는데도 외국인에 대한 삐딱한 시선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아 백인 이외의 대부분 외국인은 민망할 정도로 무시당하고 멸시받고 있다는 뉴스가 그치지 않는다. 이런 보도를 접할 때마다 언제쯤에나 우리 모국이 시대착오적 제노포비아에서 헤어나올 수 있을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럴수록 우리 같은 이방인도 나름 활개 치며 살 수 있게 품어주는 미국의 관대함에 더 감사한 마음이 생긴다. 트럼프 집권 이후 외국 이민자에 대한 시선이 자꾸 더 깐깐해지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2017.12.15.)



 젊은 날의 이구와 줄리아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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