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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5. 미군 낙동강 포위망 뚫고 북진, 중공군 개입, 청천강전투
06/06/202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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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낙동강 포위망 뚫고 북진, 중공군 개입, 청천강 전투 


9월16일 미군은 대구-김천-대전-수원 라인으로 북상 했다.


어느 위생병이야기


디트로이트 출신의 제임스 마운트 상병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레더만 제너럴 호스피털 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8월20일 한국으로 차출되었다. 샌 프란시스코-호놀룰루-도쿄-사세보를 거쳐 부산에 도착했다. 24사단 아이템 부대에 배속되어 낙동강을 건너 북쪽으로 향했다. 


길가에 한국군이 부상당하여 길가에 쓰러져 있었다. 가까이 가니 악취가 대단 했다. 다리 상처가 썩어서 나는 냄새였다. 그냥 몰핀만 놓아주고 가려니 불쌍했다. 상처를 대강 씻고 붕대를 감아주고 가려고 하는 데, 갑자기 숲, 논, 폭격으로 폐허가 된 잿 더미 속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불구된 늙은이, 아파서 징징 울어대는 아이들과 아녀자들이었다. 


“이게 뭐야, 내가 무슨 적십자에서 온 사람인 줄 아나?” 하고 뇌까렸지만 차마 그냥 갈 수가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치료 해 주었다. 전쟁의 피해자는 서로 총질하는 병사들 뿐만이 아니었다. 시민들은 이 살인극의 중간에 끼어 다치고 있었다. 


마운트 상병에게 네 사람의 카큐샤가 주어 졌다. 말이 안통했지만 손짓 발짓으로 돕게 했다. 낙동강을 건너면서 적의 공격으로 부상자가 발생했다. 뒤에 남아 이들을 치료하며 따라 갔다. 자칫 소속 부대와 분리 되기 도 했다. 다행히 놓치지 않고 북으로 향했다. 


9월28일 인천에 상륙한 해병대가 서울을 수복할 무렵, 낙동강 전선에서 올라간 미군은 대전과 전주를 접수했다. 북한군은 병력의 손실을 줄이고 38이북 방어에 주력하려는 의도였는 지는 몰라도 예상밖으로 저항하지 않고 빠른속도로 후퇴했다. 전라도를 점령했던 인민군은 소백산맥 산악지대로 북상 했다. 


유엔군 38선 이북 진격, 중공군개입



9월27일 트루먼 대통령은 맥아더 장군에게 소련군이나 중공군이 북한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 확실한 경우에 만 38 이북으로 진격하라고 당부했다. 트루먼은 남한이 본래의 38이남 영토만 회복하면 전쟁을 끝낼 계획이었다.  


9월30일 저우언라이(주을래)는 만약 미군이 38선을 넘어 오면 중공군이 북한에 들어 갈 것이라고 경고 했다. 미정부는 위협에 불과하다고 이를 무시했다. 마오(모택통)는 한국전이 일어나기 전에 대만을 공격하려고  20만 대군을 남쪽에 대기 해 놓고 있었다. 그는 이미 이병력을 압록강변에 배치해 놓고 북한에 들어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0월1일, 인민군이 38선 넘어 퇴각하는 것을 남한군이 뒤쫓아 38이북으로 진격했다. 유엔군은 10월7일에 북한 영토로 북진 했다. 워커 장군 지휘하의 미8군은 서쪽으로 진격하여 10월19일에 평양을 함락 했다. 인천에 상륙한 10군단은 동쪽 원산으로 향했다. 양쪽으로 갈라진 미군을 맥아더 장군이 직접 지휘했다. 북한의 험악한 산들은 부대간 간격을 점점 멀리 떼어 놓았다. 통신도 잘 되지 않았다.  동서를 가르는 도로가 없었다. 좁은 도로는 무기와 수송을 어렵게 했다. 고산지대의 날씨는 벌써 쌀쌀 해지고 있었다. 현지의 지형과 기후를 무시한 미숙한 작전이었다. 그들은 죽음의 계곡으로 걸어 들어 가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8군은 아무런 저항 없이 압록강 가까이로 진격 했다. 이소식을 들은 미국정부와 자유진영은 승전기대에 부풀었다. 병사들은 크리스마스를 고향에서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10월25일, 한국군 1사단 병력은 운산에서 수상한 사람을 체포했다. 북경 사투리쓰는 중국 사람이었다. 한국군은 그를 평양의 8군 사령부로 이송했다. 11월 추수 감사절 무렵까지 약100명 가량의 비슷한 사람이 체포 되었다. 한결 같이 자신들은 만주에서 차출되어 북한군에 끼어서 싸우던 중국사람이라고 했다. 미군으로 하여금 중공군이 북한에 들어 오지 않았다고 믿게 하기위한 계략이었다. 


청천강 전투


Second Phase Campaign.jpg

11월24일, 북한의 영토라고 는 평안북도와 함경북도 일부 밖에 남지 않았다. 북조선이 부산 페리미터 만 점령 했으면 적화통일을 할 수 있었던 상황과 대칭되는 전황이었다.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로 통일되기 일보직전이었다. 미군은 추수감사절 음식을 그날 저녁에 잘 먹었다.


그 다음날 11월25일, 맥아더는 총공격 명령을 내렸다. 크리마스 공격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을 지구상에서 없애고 집에 돌아가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장병들에게 약속했다. 


낙동강 영산 전투에 참여했던 프랭크 뮤노즈 대위는 9연대 조지대대를 지휘하여 청천강건너에 있는 적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낙동강을 건너 한참 북쪽에 와있었지만 그는 같은 강을 건너는지 다른강을 건너느 지 잘 몰랐다. 


병사들은 한 두달 동안 거의 전투를 하지 않았다. 인민군의 저항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너무 순조로웠다. 군기가 해이해 졌다. 갈 수록 지형이 험악 해졌다. 행군하기가 힘들어 지자 장비를 하나 씩 둘 씩 버리고 갔다. 철모와 총검을 버렸다. 수류탄과 실탄 마저도 버리는 병사들도 많았다. 참호파는 도구도 버렸다. 가지고 다니던 음식도 일부 버렸다. 산길을 편하게 오르려고 짐이 될만한 것들은 다 버렸다. 


얼마전에 소규모의 중공군이 공격해 왔다가 곧 물러 같기 때문에 뮤노즈 대위는 강건너에 소규모의 중공군이 있다고 믿었다. 뮤노즈는 강 건너에 진을 쳤다. 중공군이 뮤노즈 부대가 있는 지 모르고 지나갔다. 20여명을 사살하고 20명을 포로로 잡았다. 그러나 곧 중공군이 반격해 왔다. 주위에 여기저기 폭탄이 털어지더니 갑자기 요란한 피리소리와 함께 겨울 찬공기를 뚫고 중공군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수 많은 중공군이 몰려 왔다.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듯했다. 청천강가로 후퇴했다. 강물은 약4피트 깊이에 강가에는 살얼음이 얼었고  물살이 세서 몸을 지탱하기가 어려웠다. 부상명을 탱크 위에 태우고 강을 건너와 부대원을 수습하는 중 이었다.


마을 오막사리 집에서 흐느끼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 보니 미군 한명이 있었다. 면도를 안해서 커칠해진 얼굴에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고 있었다.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니?” “몰라요, 몰라요”

“나랑 같이 가자” “대위님, 전 나가기 싫어요” 뮤노즈는 그를 난폭하게 끌어내어 탱크에 실었다. 


발에 총맞은 병사가 아파서 신음하여 걷고 있었다. 뮤노즈는 지나가면서 “잘 견뎌야 돼, 괜찮아 질거야” 라고 했지만 그는 묵묵히 걸어 갈 뿐이었다. 


뮤노즈는 중공군 포로 10여명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들을 오막사리 집에 집어 넣고 떠나려는 데 장교 한 명이 모두 죽여 버리라고  했으나 듣지않고 그대로 후퇴 했다. 군우리에 도착하니 연대장 바베리스 중령이  “프랭크, 만나서 너무나 반갑다. 난 네가 죽은 줄 알았어”라고 하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날저녁은 몹시 추웠다. 48시간동안 사경을 헤매고 싸운 병사들은 얼어붙은 땅바닥에 세상모르고 곯아 떨어 졌다.  


12월 접어들면서 미군과 유엔군은 패색이 짙었다. 뮤노즈대위가 기관총으로 무장한 트럭에 타고 가는 중인 데 앞에 두 손을 든 중공군 10명 가량이 나타 났다. 그들은 무기를 소지 하고 있었다. 한국군 중위가 “믿지 마세요, 저들은 가까이 접근하려고 하고 있어요”라고 외쳤다. 중공군과 뮤노즈는 거의 동시에 발사 했다. 중공군은 모두 사살 되었다. 그러나 트럭 앞에서는 “사격중지,  사격중지, 중국병사들, 항복 하려고 하고 있어” 라고 외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위험한 순간이었다. 


뮤노즈 부대는 퇴로를 차단 했던 중공군을 물리치고 후퇴 할 수 있었다. 


다음은 6. 한 상사의 이야기, 장진호 전투, 흥남 철수. 워커장군 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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