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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국회의원, 정신대와 위안부, 성매매? 성노예?
05/26/2020 21:16
조회  299   |  추천   2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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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위안부 할머니는 윤미향 정의기억연대대표이며 국회의원 당선자가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기부한 돈을 자신의 생활비와 재산 불리기에 썼다고 폭로 했다. 언론에서는 이용수 할머니를 결백한 고발자 처럼 추겨 세우고 있으나, 이용수 할머니에 대한 풍문도 그렇게 썩 좋은 것은 아니다. 그가 가짜 위안부라는 포스팅이 인터넷에 여기저기 눈 에 띈다. 


이용수는 분명히 평범한 할머니는 아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정의기억연대로 바뀐 후, 이용수는  윤미향의 파트너로서 위안부문제를 국제화하는 데 노력했다. 그는 미국 의회에서 위안부 문제를 토로 했고 트럼프 만찬에 초대 받기도 했다. 문재인대통령이 각별이 보살펴 주었다.   이용수는 2012년 총선에 새누리당 비례 대표에 신청 했으나 누락 되자 통합 민주당에 신청 했다. 그러나 탈락 되었다. 그는 민주 통합당 상임고문겸 당무위원이었다. 현재는 더불어 민주당 고문겸 당부위원이다. 이용수는 윤미향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윤미향의 비리를 폭로 했다. 그의 첮마디는 "우리를 버리고 혼자 갔다" 였다. 


이용수는 정신대와 위안부는 전혀 다른 문제인 데 정신대 문제 해결과 혼동되어 위안부 문제 해결이 제대로 진척 되지 않았다고 주장 했다. 그러면 정신대와 위안부는 어떻게 달랐을까?


정신대와 위안부


일본은 진주만 폭격이후 미국과 싸우는 태평양전쟁을 시작했다. 당시의 일본 영토는 한국, 중국, 동남아, 필립핀, 인도네시아, 태평양의 섬들 등등 그야말로 대 제국이었다. 그러나 점점 전쟁물자 부족과 인력 부족에 시달렸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을 일본사람으로 만들려는 정책을 쓰기 시작 했다.  황국시민으로 우대 하겠다는 것이었다. 창씨개명, 조선인 징병(황국군대가 되는 기회), 신사참배, 징용 등등이 실시 되었다. 


1944년8월23일 여자정신대근무령이 발표되었다. 해방되기 약 일년 전이다. 25세 미만의 여자를 모집하여 공장에서 일하게 하기위해서 정신대를 조직할 목적이었다. 정신대에 들어가면 1년간 근무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12세에서 40세 까지의 여성들을 반강제로 끌고 갔다. 정확한 숫자는 알수 없으나 약20만명으로 추산 된다고 한다. 이중 5만 내지 7만명이 위안부로 차출 되었다. 이들은 중국, 동남아, 일본 등지의 일본 주둔지의 위안소에 배치되어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군에게 성을 제공하는 위안소는 정신대근무령이 내려지기 훨씬 전 부터 진행되었다. 1930년 만주사변 이후로 조선여성들이 위안부로 차출 되기 시작 했다고 한다. 1932 상하이 사변, 1937년 중일전쟁을 거치면서 위안부 차출이 본격화 했다. 


성매매? 성노예?


위안부를 다른일을 시킨다고 거짓말을 해서 모집했는 지, 아니면 성매매 할 여성들을 계약 형식으로 모집하여 군부대 주변의 공창에 넘기는 방식이었는 지 분명하지 않다. 태평양전쟁 이전에는 후자의 형식으로 자발적인 참여가 많았고 전쟁이 심해지고 점령지역이 확대 되면서 전자의 방법이나 강제 동원으로 바뀌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모집된 위안부에게는 백원이상의 착수금과 계약 액수가 기백원에 달 했다고 한다. 월급은 300원이상-3천원 이하였다고 한다. 계약직 위안부의 근무 기간은 6개월에서 1년 이었다고 한다(위키피디아).

반일종족주의자와 그들의 지지자들이 위안부가 아니고 창녀였다고 주장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제로 끌려가서 군부대 위안소에 뱨치 되었던 여성도 있고 공창에서 돈을 받고 성을 제공했던 여성들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여자들만 끌려 간 것은 아니었다.


1942년 일본 육군성 자료에 의하면 장교 이하 군인에게 서비스하는 위안소는 약 400개 있었다고 한다. 

위안부의 대부분은 중국, 조선, 일본 여성 들이었다고 한다. 물론 점령지 현지 여성들도 많이 동원 되었다.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려우나 최고  41만명으로 추산 된다. 약25%가 살아 남았다고 한다. 중국여성이 제일 많았다고 한다.


이용수 할머니 증언의 진화


이용수 할머니의 증언은 해가 갈 수록 반자의적인 거짓말 모집에서 강제적인 동원으로 변해 왔다(나무위키). 이용수 할머니가 위안부 였다는 증거가 본인의 진술 밖에 없었다면 진술의 진화는 본인이 위안부였다는 진술이 신용이 떨어지는 정황을 만들어 주고 있다.  우선 윤미향이 각본을 만들어 주어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하는 수 밖에 없다. 


윤미향 남편 김삼석


김삼석은 수원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그 근처 대학에 비리가 있다고 하여 보도한다고 위협하여 돈을 받아간 협의로 일심에서 징역 일년을 선고 받고 항소 중이다. 그는 남매 간첩사건으로 4년 선고 받았다가 2년으로 감형되어 옥살이를 한 경력이있다. 문제는 정의연대의 사업중에 남북교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위기


진보진영의 핵심은 반일에 있다. 보수의 약점인 친일파를 집요하게 공략하는 중요한 무기이다. 위안부 문제는 

반일 무드를 조성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이다. 그 무기가 크게 고장 난 셈이다. 이용수-윤미향 스캔들은 진보진영을 뿌리채 흔들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문제의 본질인 위안부문제 해결보다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 급급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단체들에 대한 정부의 부실한 관리도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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