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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외할아버지 박태원이 살던 세상
02/17/2020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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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ntralbibliothek Zurich Das Kapital Marx 1867.jpg

빈부의 차이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초래 할 것이라고 예언 한 사람은 칼 막스(Karl Marx)이다. 

그가 "Das Kapital"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자본주의(Capitalism)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산업혁명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해 졌고 공장의 주인인 기업가 계층이 형성되었다. 공장을 돌릴려면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기업가들은 이익을 극대화 시키기위해서 임금을 최소한으로 줄였다. 돈은 기업가들에게로 집중되었다. 다수의 노동자들은 가난해 졌다. 쏟아져 나오는 공장 생산품을 살 수 있는 돈이 없었다. 생산품의 공급은 많은 데 수요가 없다. 물가는 폭락하고 공장은 적자였다. 공장이 문을 닫게 된다. 노동자는 일자리가 없다. 기업가와 노동자가 모두 망한다. 경제공황이 온다. 자본주의는 끝이다. 


세상이 망하는 것을 그냥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본의 축적과 기업가를 아예 없애고 노동자가 나라를 경영해야 한다는 이론이 발생했다. 바로 공산주의이다. 부를 모두 똑같이 본배하여 공평한 사회를 이룩하자는 이론이었다. 한편에서는 자본주의의 단점을 인정하고 미리 보완하여 잘운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자유세계 국가들 이었다. 약 반세기동안의 두 경제제도의 실험은 후자가 인류에게 더 좋은 제도라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전자는 돈을 벌려는 사람들의 의욕을 상실하게 하여 생산이 위축 되었고 공산주의 이론이외에 다른 사상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재자와 전체주의를 양산했다. 후자는 돈과 재산을 가지려는 인간의 욕심을 마음껏 발휘하게 했다. 사람들은 열심히 일했다. 생산이 증가하고 상업이 발달했다. 일자리가 많아져 사람들이 편하게 잘사는 세상을 만들었다. 자본주의가 망한 것이 아니고 공산주의가 망했다. 이제는 한두 나라를 제외하고는 냉전시대에 볼수 있었던 공산주의 국가는 지구상에 없다.  그러나 이 실험은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망쳐 놓았다. 


봉준호의 외할아버지, 박태원씨는 1909년에 이세상에 나왔다. 아마 그는 자신이 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 오는 지를 몰랐을 것이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던 해이다.  나라의 주인이 조선의 이씨 왕조에서 일본 제국 정부가 된 것이다. 19세기 중엽부터 온 세상이 군주(왕)에서 국민에게 넘어가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군주는 사라졌으나 조선사람이 나라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일본정부가 된 것이다. 그래도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그는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작가가 되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쏘련이 탄생했다. 레닌은 노동자들을 착취했던 러시아 황제를 권좌에서 물러나게 하고 노동자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무튼 왕의 나라가 인민(people)의 나라가 된 것이다. 레닌은 코민테른(국제공산당 조직)을 만들어 세계 공산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1921년에 중국 공산당이 생겼다. 유러시아 대륙 동북쪽에 달랑 붙어 있는 한반도는 거대한 두공산국가 집어 삼킬 것 같은 형세가 된 것이었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경계로 엄청난 붉은 나라가 도사리고 있었다. 


나라를 잃은 한민족은 주권 회복을 위한 독립운동을 할 근거지를 일본이 점령하고 있는 한반도에 두기는 어려웠다.  자연히 이들은 만주, 중국본토 그리고 쏘련에서 독립운동을 했다. 더구나 일본이 중국과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중국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일본이 백군을 원조 할 때 독립군은 볼세비키 적군과 합세하여 활동 했다. 임시정부 초기에 레닌의 원조를 받았다. 이와 같이 독립운동가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세상사람들이 아직 이들의 정체를 모를 때 였다. 


기업가들은 노동자들을 착취하여 많은 이익을 보는 현상이 점점 커지면서 빈부의 차이는 더욱 벌어 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산주의 이론이 그럴 듯 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이에 심취 했다. 1929년 사상 최대의 빈부 차를 기록한지 일년 만에 경제 공황이 온 세상을 휩쓸었다.  공산주의가 말이 되는 세상이었다. 박태원은 공산주의가 빈부차이를 없애고 노동자들을 잘살게 해주는 해결책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1945년 일본이 미국에게 태평양 전쟁에서 졌다. 패전국 일본의 영토였던 한반도는 승전국인 쏘련과 미국이 둘로 갈라서 점령했다.  38선 이남을 점령한 미군정은 건국준비위원회와 상해 임시정부등 민족 독립 수권세력을 전혀 인정 하지 않았다. 지탄의 대상이었던 친일파를 중용했다. 쌀 공급등 경제정책에 실패 했다. 불만에 찬 국민들 사이에 공산주의가 퍼져 나갔다. 반미 시위가 자주 일어 났고 공산주의자들은 이들을 선동 했다. 미군정은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 했다. 남한 전역이 아수라장이었다. 반면에 북조선은 건준 조직인 인민위원회를 앞세워 새 나라를 만들었다. 친일파를 청산 했다. 토지개혁을 했다. 이 과정에서 지주등 부자들이 남한으로 피난 했다. 물론 대부분의 친일 인사들이 부자에 속했을 것이다. 남한에 비해서 신속하게 안정된 국가 건설을 했다. 쏘련은 전격적으로 군사원조를 하여 북한 군대를 완벽하게 조직했다. 박태원은 남한에서 남로당 편의 조직에서 작가활동을 했다. 그 때의 상황을 고려 하면 이해 할 수 있는 처신이다. 


트루만이 미국이 공산주의로 부터 자유진영을 보호하는 경찰노릇을 하겠다고 발표 하면서 남한에서도 공산주의자 색출에 전력을 기울이기 시작 했다. 친일파 세력으로 정권을 잡은 이승만은 반대파에게 빨갱이 덧을 씨워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물론 친일파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작업의 선봉에 나섰다. 친일파에서 반공의 기수로 바뀌어서 애국자가 되었다. 1949년6월5일 보도연맹이 결성되었다. 과거에 공산주의자 였거나 그들에게 협조했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은 이 단체에 가입하여 소정의 교육을 받고 전향하면 면죄 해준다는 것이 설립목적이었다. 박태원은 이 단체에 가입했다. 뼈속 까지 공산주의자 였으면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이 지지하는 남한에서 전향하여 살려고 결심했을 것이다.


일년여 후인 1950년6월25일 북한이 처들어 와서 28일에 서울이 완전히 북한에 점령 당했다. 인민군이 들어오자 많은 서울시민이 붉은 기를 들고 환영했다. 그들은 보도연맹 가입자들을 통치하는 데 기용했다. 박태원은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아마 북조선이 남북통일하여 한 나라가 되리라고 믿었을 것이다.  대전으로 피난간 이승만은 서울애서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인민군에게 협조 했다는 소식을 듣고 보도연맹가입자들을 무조건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 점령 지역에서 처형된 가입자가 약20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한다. 


맥아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9월28일에 서울이 수복되었다. 박태원의 예측은 빗나갓을 것이다. 인민군은 서울을 떠나면서 군인, 경찰, 공무원은 물론 그 어린아이 여자 할 것 없이 모두 사살했다. 박태원은 인민군과 같이 이북으로 갔다.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서였을 까? 아니면 북한이 더 좋은 나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엇을 까? 

그는 남한에 있는 가족들이 보안법에 시달릴 것이라고 생각했을 까? 그의 큰아들이 쓴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을 꼭 읽어 봐야 겠다. 구보는 박태원의 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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