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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의 외할아버지 박태원 이야기
02/14/2020 19:22
조회  696   |  추천   1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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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17.7.11일자, 월북작가 박태원 사망기사에서, 안경 낀 본이 박태원, 앞에 이상이)


기생충 영화감독 봉준호의 어머니 박소영씨는 월북작가 박태원의 둘째 딸이다. 박태원은 1950년9월 서울이 수복될 무렵 홀홀 단신 월북했다. 남한에 남아 있던 2남3녀 중 맏딸 박영은과 셋째딸 박선영은 다음해에 이북으로 가서 살았다. 셋째 딸 소영은 봉상균씨와 결혼하여 봉준호를 나았다. 


박태원은 조선이 망하던 해인 1909년에 태어나서 일제강점기, 해방, 6.25를 겪고 북한에서 문인으로 활동하다가 1986년에 사망했다. 양 약방 집 아들이어서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 숙부가 의사, 숙모가 교사일 정도로 개화되고 풍족한 인테리 집안이었다. 그는 경기고등학교 전신 이었던 경성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 대학을 나왔다. 


어렸을 때 부터 책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에 심취했던 그는 작가 활동을 시작 했고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천변풍경"등을 발표하여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는 경성 숙명여고, 경성여자사범 본과를 졸업한 김경애씨와 결혼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여자사범은 전국 최고의 수재가 아니면 입학하기 힘든 학교였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좌우가 대립하는 혼란시기가 닥치자 그의 인생은 돌변했다. 1946년에 조선문학가 동맹에 가입하여 중앙집행 위원으로 남로당계열 문예활동을 했다. 1948년에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1950년 서울이 수복되어 인민군이 철수할 무렵에 단신으로 월북했다. 


6.25사변동안에 종군기자로 활동했다. 리순신장군을 노동신문에 연재하고 리순신전을 발간했다. 갑오농민전쟁(동학란)도 출판했다. 평양문학대학교수로 일하기도 했다. 제일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정인택이 사망한 후에 그의 아내였던 권영희와 결혼했다. 1979년에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1998년 애국열사로 승인되어 신미리 렬사릉에 이장되었다. 


박태원의 큰아들 박일영씨는 2016년에 "소설가 구보씨의 일생"이라는 회고록을 냈다. 12살 때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고 가슴속에 담아온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대단 했을 것이다. 그러나 월북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대한민국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 일영씨는 77세였다. 1948년 여순사건이후에 제정된 보안법은 공산주의자로 확정이 되면 본인은 물론 친척들 까지 불이익을 당 하게 되어 있다. 남한에 남아있는 가족들이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일영씨는 작가가 아니고 서울대 수학과 출신이나 아버지를 닮아 글 재주가 대단 했다고 한다. 일영씨의 조카 봉준호는 이 책의 뒷 표지에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 쓴다는 것, 어릴적 헤어진 아버지에 대해 쓴 다는 것, 전쟁과 분단으로 빼앗겨 버린 아버지에 대해 쓴다는 것, 그것은 무척 아름답고 처절한 글쓰기이다. ... 저자는 마침내 이 한권 책으로 아버지를 다시 만나고야 만다." 라고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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