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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일본과 미국, 한국전쟁은 신이 일본에게 내린 선물이다.
09/20/2019 17:14
조회  476   |  추천   2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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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shida signs San Francisco Peace Treaty.jpg

1952년5월, 미국과 일본은 평화조약에 조인했다. 유명한 쌘프란시스코 조약이다. 더이상 공식적으로 일본은 미군점령지역이 아니다. 미군은 쫄아든 대일본제국의 명예로운 손님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이 원한다면 감히 미국을 비난할 수있게 된것외에는 크게 달라진것은 없었다. 일본에게 한국전쟁은 가깝기도하고 멀기도 한 것이었다. 한국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전쟁의 현실적인 패자였던 반면에 일본은 진정한 승자였다. 한국전쟁은 

수천만불의 거금을 일본경제에 퍼 부었다.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이 전쟁터로 오가면서 일본을 들렸다. 그들은 일본사람들이 믿을 수 없을 만큼의 돈을 가지고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민족 중의 하나인 일본 사람들은 그들이 기회만 주어진 다면 거의 모든 것에 돈을 쓴 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나체를 마치 조용하고 신선한 해돚이 구경하듯 처다보는 일본인 들은 곧 나체가 좋은 장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양여자들 크기의 유방을 가진 여자들은 거의 모두 나이트 클럽에서 나체로 걷기 위해서 도시로 나왔다. 어떤 미국인은 길거리에서 담배파는 여자에게 담배를 사면서 여자에게 눈이 팔려 원하는 것과 다른 담배를 집어들기도 했다. 고향에서 감리교인이었던 어떤 군목은 도꾜호텔에서 택시 잡으러 나가는 동안에 무려 14번이나 핌프의 요구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을 지나가는 모든 미군들은 양질의 카나다 위스키 한병에 본국 1/5 가격인 겨우 1불50전, 한잔에 25전에 불과 했다.  한 장교는 "이렇게 싼데 안 취할 수 없지" 라고 즐겁게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다 전쟁 때에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전쟁 터를 오가는 남자들은 설령 십자군이라도 똑 같은 것들을 원했다. 일본사람들이 나라전체를 홍등가로 만든 것을 비난할 수는 없다. 돈을 가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고 돈을 벌었다.  


그러나 큰돈과 일본 경제를 완전히 살려놓은 것은 미군의 대대적인 국방비 지출이었다. 미군 조달 책임 장교들은 일본 산업이 전방에서 필요한 거의 대부분의 물자를 본국에서 생산하여 태평양을 건너 수송하는 것보다 헐씬 저렴한 가격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평소에 평가 했던 것보다 더욱 효율적이고 능률 적이었다. 


수천대의 군용차들이 한국에서 고장나거나 낡게 되면 일본에서 다시 만들었다. 새차로 대치 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했다. 어떤 차들은 세번이나 고쳐서 썼다. 일본사람들은 무기, 도구, 장비 어느 것이나 다 만들어 냈다. 그들은 한국군과 미군이 먹을 수 있는 수백만 톤의 음식을 조달했다. 


이러한 이득은 일본뿐만이 아니고 미국에게도 있었다. 놀만디에서 영국이 없이는 전쟁을 수행 할 수 없었듯이

일본이 없었으면 미국이 한국전쟁을 수행하는 데 큰 곤란을 겪었을 것이다. 


5th Anniversary edition This Kind of War(The Classic Korean War History)  by T. R. Fehrenbach 에서


Image result for 요시다 시게루

1952년 요시다 시게루 일본총리는 "한국전쟁은 신이 일본에게 내린 선물이다. 이제 일본은 살았다."라고 말했다. 43년후 그의 외손자 일본 총무상

 Image result for 아소 다로 아소 다로

 는 "운이 좋게도, 정말 운이 좋게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고 43년이 지난 2005년에 한국전쟁의 덕을 되 씹었다. 한일협정때 일본은 약3억불을 한국에 대일청구권 명목으로 주었다. 미국이 "너희는 한국전쟁에서 특수를 누렸으니 한국을 도와 주라"는 권유(?)에 선심 쓰는 척 하고 극히 일부를 유상, 무상으로 한국에게 준 것이었다. 


일본은 한국전쟁 당시에 미군의 병참기지였고,  미군은 주말과 휴가때 일본에 가서 휴식을 취했다. 일본의 공장들이 군수물자와 무기생산으로 바쁘게 돌아 갔고 많은 일본인들이 직장을 가질수 있었다. 미군들이 쓰는 돈은 도시의 경제를 활발하게 했다. 그러나 전쟁터 였던 한국은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어 갔다. 젊은이 들은 전쟁터로 끌려 갓고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서 일하기는 커녕 피난 다니기에 바빴다. 정말 천당과 지옥의 차이였다. 

일본은 두방의 원자 폭탄을 맞고 미국의 집요한 폭격으로 잿더미가 된 국토와 막대한 전비를 소비하여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국민들로 가득찬 나라였다. 그들은 한국전쟁이라는 신이 내린 특수를 기회 삼아 다시 일어 났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자 일본은 쏘련과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는 데 전략적으로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 미국은 중국에 대적할만한 국력을 가진 일본이 필요 했다. 미국은 일본에게 경제 기술원조를 아끼지 않았다. 


한국은 일본 못지않게 경제적인 태평양전쟁의 피해를 입었다. 직접적인 미군의 폭격이나 공격은 없었으나 일본의 전쟁을 위한 착취는 한국사람들의 생활을 궁핍하게 했다. 해방5년 후에 분단으로 인한 한국전쟁은 전국토를 잿더미로 만들었고 국민들은 살길이 막막 했다. 남한은 일본보다 약10년 가량 늦은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도력으로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볼수있다. 싫거나 좋거나 대일청구권에서 얻은 돈이 그 시작이었다. 크게 도움이 된 것은 월남 특수였다. 일본이 피한방울 안흘리고 한국전쟁의 덕을 본 반면에 남한의 젊은이들이 월남에서 많이 희생되었다. 일본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남한 사람들이 피땀흘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제 거의 일본을 따라 잡았다. 일본은 기회가 거의 소진된 것으로 보이나 한국은 남북교류와 만주-시베리아 경제 특수가 기다리고 있다. 세상은 돌고 도는 법, 운명의 여신이 한국사람에게 미소를 지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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