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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전우용이 말하는 유서(遺書)
12/04/20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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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역사를 다룬 프랑스 역사가 필립 아리에스는 자살이 인간의 지성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에 있다고 했습니다. 죽은 사람의 말을 들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죽음을 선택한 동기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유서’를 분석하는 것뿐인데, 유서를 남기고 자살하는 사람이 적은데다가 그 유서조차 온전한 ‘진실’을 담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수많은 유서를 분석했던 그의 견해입니다.


유서를 쓰는 순간의 그가 ‘본래의 그’였는지, 아니면 ‘일시적 충동에 사로잡힌 그’였는지를 제대로 판단할 방도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가 유서에 쓴 내용을 다 믿지는 못하더라도, 유서의 ‘수신인’이 그의 죽음과 직접 관련된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유서는 자기의 죽음으로 인해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사람들 ? 가족과 가까운 친지 ? 에게 남기는 것이 보통입니다. 간혹 자기 죽음이 ‘집단 각성’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불특정 다수에게 쓰는 유서도 있습니다. 을사늑약 직후 민영환의 유서나 독재정권 시절 민주 열사들의 유서가 이에 해당합니다.


그 외에 ‘남’에게 쓰는 유서는 그 남이 적어도 자기 죽음과 ‘직접 관련’ 된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습니다. 몇 해 전 고 성완종씨가 남긴 메모가 이 경우에 해당할 겁니다.


자살한 검찰 수사관이 윤석렬 총장에게 따로 유서를 남겼답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은 “윤석열 총장께 면목이 없지만, 우리 가족에 대한 배려를 바랍니다.”와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 주십시오.” 뿐인데, 자기 사후 처리 문제까지 부탁한 걸로 봐서는 그가 목숨을 끊음으로써 대신하고자 했던 '말'은 윤석렬 총장에게 한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겁니다.


을사늑약 나던 해 연말에는 많은 채무자가 채권자 집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해를 넘긴 빚을 '묵은 빚'이라고 하는데, 묵은 빚은 탕감해 주는 게 당시 관행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묵은 빚을 만들어서는 안 됐습니다. 묵은 빚을 남기면 새 빚을 얻을 수 없는 것도 관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직업을 세습하던 시대에 장사꾼이 새 빚을 얻지 못하면, 본인이 망할 뿐 아니라 자식들 앞길까지 망쳤습니다. 그래서 채무자들은 자기 목숨을 끊음으로써 '채권자의 양심'에 호소하여 남은 가족의 앞날을 부탁했습니다. 죽기로 작정한 사람이 ‘가족’을 부탁하는 상대는, 자기가 죽은 뒤에도 자기 가족을 괴롭히거나 그 운명을 좌우할 사람이라고 보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자살한 검찰 수사관이 왜 ‘극단적 선택’을 했는지 정확히 알 도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에 윤석렬 총장이 ‘직접’ 관련된다는 점은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가 죽음으로써 호소한 대상은 '윤석렬의 양심'이었을 겁니다.


그런데도 검찰은 당사자가 ‘윤석렬 총장에게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겼다고 사실을 왜곡해서 언론에 알렸고, 언론들은 이 주장을 그대로 보도하면서 이 ‘선택’의 ‘배후사정’이 다른 데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 사건의 ‘진실’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윤석렬의 양심’일 겁니다.


원문보기 우용 페이스북


자살,유서,검찰 수사관,극단적 선택,윤석열의 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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