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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병에 걸린 기독교인들
08/27/2017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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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놀이'와 '예배 장사'


예수를 믿는다는 건 고작 '교회 놀이'에 몰두하라는 게 아니다.

나는 어떤 목회자들이 왜 만날 교회와 예배만 노래하는지 그 속내가 진정 의심스럽다.

도대체 하나님은 오직 교회당 안에만 계시거나 또는 예배 중에만 임재하신다는 말인가.


교회주의의 허구


최근 어느 대형 교회 담임목사의 설교를 들었다.

여러 잡다한 말을 많이 했지만 그 결론은 단순했다.

하나님의 은혜를 듬뿍 받으려면 교회에 더 열심히 나오라고 한다.

주일예배만 딸랑 한 시간 채우고 가지 말란다. 

그는 수요예배와 금요예배와 새벽예배까지 꾸준히 참석하면 아주 큰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고 장담했다.


일부 목회자들은 평생 직장 생활을 제대로 안 해봐서 그런지 생계로 인한 교인들의 아픔과

고통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평일 내내 직장이나 생업으로 시달리다가 그나마 주말에야 조금 쉬는 게 가능한데

교회는 저녁 예배나 새벽 집회까지 더 나오라고 난리다.


그냥 먹고 사는 것만도 힘들어 쓰러질 지경인데 교회마저 피곤한 삶을 더욱 쥐어짠다.

그러다 이에 순종하지 않으면 믿음이 시원찮은 사람으로 간주한다.

그러니 형제나 친구나 친인척이나 이웃까지 제대로 돌볼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주변의 소문을 들어보니 그 목사는 기득권의 단맛을 상당히 즐기고 있는 듯 했다.

물론 평소에 십일조를 엄청 강조해서 고액 연봉에 아주 잘 먹고 잘산다.

게다가 교인들에게 설교하는 말투도 다분히 권위적이고 버릇이 없다.

신자로서 겸손한 구석이라곤 눈 씻고 찾아도 보기 힘들다.


이런 시대착오적 설교자 때문에 다른 신실한 목회자들까지

덤으로 매도 당하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아무튼 나도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게 무조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정작 문제는 그동안 한국교회에 예배가 부족해서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생각하는지 먼저 묻고 싶다.

아마 전세계에서 가장 예배와 집회가 많은 교회가 한국교회일 거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거의 이단 수준이다.


한국교회보다 더 집회가 많고 극성스런 교회는 이단이나 사교 집단 외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요즘 온갖 부정과 비리를 주도하거나 동조하며

교회를 가장 크게 망친 자들이 누군지 한번 따져보자.


수십 년이나 시계추처럼 교회를 왕복하며 예배와 집회를 가장 많이 참석한 목사와

장로들이 그 주범이 아닌가.


과연 그들이 예배와 설교가 부족해서 그처럼 추잡하게 살고 있을까.


성전을 더럽힌 제사장들


예수님 당시에도 성전을 가장 더럽힌 자들은 오히려 성전에서 주야장천 살다시피 하던 제사장들이었다. 그런 종교 지도자들이 성전 마당을 장사판으로 만들었고 가난한 과부의 가산까지도 삼켰다.


교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교회 놀이를 신앙 생활로 착각해선 안 된다.

소금은 세상에 흩어져야 비로소 제 기능을 다 하는 것이다.

소금이 예배당 속에서만 북적거리면 소금 기둥이나 소금 창고가 될 뿐이다.


교회가 번창해서 돈과 세력과 건물과 창고를 높히 쌓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라는 생각은

단지 삯꾼들의 달콤한 기만이다.


삯꾼은 언제나 우리에게 광명의 천사로 다가온다.

그들은 누구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척 위장한다.

그 위선이 얼마나 깊숙히 습관화하고 생활화했는지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속을 정도다.

그래서 자신들이 정말 대단한 특권과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특별한 종이라고 수시로 착각한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교인이 아니라 교인의 돈이다.

목사니 장로니 그리고 교수니 하는 직함은 그냥 허울 좋은 사업용 간판이다.


나는 많은 목사들이 예배를 찬미하며 뜨겁게 강조할 때마다 걱정이 앞설 때가 많다.

오늘날 예배의 정의와 절차와 내용을 누구 마음대로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배는 근본적으로 제사가 아니다. 그건 '의식'이라기보다는 '경배'라는 의미에 핵심이 있다.


사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매주 '예배 의식'을 행하셨다는 기록은 단 한 줄도 없다.

요즘처럼 예배가 그토록 중요했다면 왜 성경은 그것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을까.


랍비 예수는 다만 안식일에 회당에서 읽고 가르치셨을 뿐이다.

그건 제사적 의식이 아니라 그냥 일상의 생활이었다.

때로는 청중에게 질문도 하시고 답변도 하셨다.

나중에 사도들도 여러 회당에서 같은 방법으로 가르쳤다.


본래 회당은 발언자와 청중이 양방향으로 자유롭게 토론하고 상호 교류하던 공간이었다.

물론 그래도 그걸 굳이 예배 의식이라고 주장한다면 나도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공예배와는 크게 달랐다는 점을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유대 랍비들이 회당에서 성경을 배우고 가르친 것 역시 예배 의식이라기보다는

공부나 교육이나 생활이었다.


개인의 집에서 가르치기에는 협소하고 불편하니 회당을 세우고 모인 것이다.

회당은 제사 의식을 행하던 성전이 아니다. 그곳은 모임과 배움과 소통의 장소였다.


그런 면에서 일방적으로 목사만 말하는 주입식 설교 중심의 개신교 예배는

중세의 사제 중심 미사보다도 더 큰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회중이 관객이 된 다분히 기형적인 예배다.





교회주의로 무장한 삯꾼들


그러나 사실 신자에게는 더 중요한 예배가 있다.

성도가 있는 곳이 성전이고 그 성도의 삶이 예배다.


기도하고, 회개하고, 찬양하고, 감사하고, 나누고, 봉사하고,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삶이야말로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다.


성경은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고 말한다.


따라서 교회에서의 공예배와 봉사 역시 단지 그런 '예배적 삶'의 극히 일부분임을 알아야 한다.


예배학을 연구한 신학자 깁스(Gibbs)는 예배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감사한 마음이

넘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영혼이 쉼을 누리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구태여 그런 정의가 아니더라도 예배는 근본적으로 삶 속에 있는 것이지 결코 중세 교회의

미사처럼 예식이나 형식 속에만 제한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약 성경 어디에도 예수와 사도들은 오늘날 우리가 열심히 드리는 의식으로서의

예배 행위를 강조한 경우는 보기 힘들다.


만일 그런 명령이 있었다면 아마 삯꾼들은 그런 예배 의식을 더욱 심화하고 종교화하여

두고두고 뼛속까지 우려먹었을 거다.

허나 사도들의 교회는 단지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며 주일에 모였을 뿐이다.


아울러 초대교회에서는 집회에 매주 참석 못 했다고 마치 무슨 큰 죄라도 지은 양

함부로 교인을 정죄하는 그런 맹신적 행태도 없었다.


적어도 그들은 '주일 성수'를 율법화하여 가르치지는 않았다.

특히 초기 200년 동안의 박해 시대엔 무슨 수로 매주 집회가 항상 가능했겠는가.


미국의 아미쉬공동체는 과거 종교개혁 당시 혹독한 박해를 받아 피하던 시대적 관습에 따라

지금도 2주마다 예배를 드리고 있다.


나는 지금 공예배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마치 예배 시간에만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것처럼 호들갑떨지는 마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결코 예배당 속에 갇힌 분이 아니다.

예배로 사람을 유혹하고, 예배로 사람을 가두고, 예배로 사람을 오도하고,

그리고 예배로 장사하는 자들은 예외 없이 모두 삯꾼이다.


그들은 항상 예배라는 좋은 이미지로 영업을 하고 설교라는 이름의 개인기로 사람을 기만한다.

하지만 그런 꼼수들은 본래 이단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다.

지금은 '교회 놀이'와 '예배 장사'를 신중히 구별하고 척결해야 할 때다.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것은 매우 귀한 일이다.

그러나 가정을 사랑한다고 해서 집만 지키면 그건 백수다.


군인의 근무지는 배우고 익히는 훈련소가 아니라 최전선이다.

아무리 훈련소가 좋더라도 수십 년이 지나도록 오로지 훈련만 받겠다는 병사는 없다.

마찬가지로 십자가 군병의 최종 사역지는 예배당 속이 아니라 세상 속이라는 사실을

언제나 잊어선 안 된다.


"사람이 만들어 낸 모든 예배 형식을 성령이 속된 것으로 거절한다고 해도 조금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 장 칼뱅(Jean Calvin), 기독교강요(Christianae Religionis Institutio).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출처: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8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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