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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따라 줄어드는 내 기억력
09/06/2016 15:30
조회  4026   |  추천   106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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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당한 일이다.

Gas station에서 기름을 넣을려는데 카드의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생일. 집주소. 전화번호, 심지어는 아버지 기일, 어머니의 생일을 입력해도 틀리다며

다시 입력을 하란다.

 

 펌프에서 차를 빼 주차장에 파킹을 하고 머릴 쥐어짜며 생각을 해도 비밀번호가 떠오르질 않는다.

마눌에게 전화를 해 물어도 자기 것과 다르다면서 내 비밀번호는 모른다나?

 

 한개의 크레딧카드를 여러곳에 사용하면 어디에서 사용했는지 기억하기 힘들고,

청구서와 영수증 확인이 어렵다며, 카드를 구분해서 쓰는게 명세서와 영수증을

대조해보기 쉽다는 마눌님의 말씀에 따르다 보니 비밀번호를 잊어버렸나 보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 갈수록 심플하게 살아야 하는데

마눌님이 내 머릿속을 수세미로 만들어버린게다.  

 

 이제 내 나이 겨우 환갑을 지났을뿐인데 기억력은 날이 갈 수록 떨어져 간다.

어느 날은 차고에 뭘 가질러 갔는데 도대체 뭘 가지러왔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맥주 한캔 꺼내들고 뒷마당의 테이블에 앉아 멋적게 하늘을 쳐다보며 홀짝거리다 보면

다시 생각이 나기도 한다.

 

 어린시절엔 교과서를 줄줄이 외웠고, 영화속에서 배우들이 읊조리는 대사를 기억해

친구들을 앉혀놓고 재방송도 해줬으며, 동화책을 읽은 후엔 친구들에게 책의 줄거리를

들려주곤 했는데 무심한 세월앞에서 이렇게 망가져버리다니... ㅠ


엊그제 있었던 일이다.

40여 년 만에 소식을 접한 친구와 영상통화를 할려고 Skype에 접속을 할려는데

비밀번호가 생각나질 않는다.


 심지어는 비밀번호를 분실했을때 대답하는 답변조차도 기억에서 사라지고 없다.

어디엔가 적어놓은것 같은데 적어놓은 수첩은 또 어디에 뒀는지 찾을 수 없고...


 써거질 세월은 육체만 병들게 하는게 아니고 정신마저 컴컴한 어둠속으로 밀어 넣는다.

 

 옛날 어르신들이 두고 쓰시던 말씀중에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는 말씀이 있다.

그땐 그 말이 같잖고 우습게 들렸는데 요즘은 내가 절실하게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아~  무서운 세월의 힘이여!


 나는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가끔 친구들 이름과 조카들의 이름을 더듬어 보곤 하는데

어느 때는 머리를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는 이름이 있다.


 눈앞에 얼굴은 그려지고 함께 했던 시간은 기억이 나는데도 이름은 생각이 나질 않는다.

집에가서 마눌에게 물어봐야지 해놓고 정작 집에와선 뭘 물어본다고 했는데 그게 뭐였드라?

 

 언젠가 한번은 통화를 끝낸 후 메모를 하기 위해 차 뒷범퍼에 전화기를 올려놓은걸 잊어버리고

냅다 돌아다니다가 S다방에서 누군가와 통화를 할려는데 전화기가 없어 당황했던 적도 있다.


온 차안을 헤집고 뒤집으면서 전화기를 뒷 범퍼에 올려놓은걸 기억해 내지 못하는,

날이 갈 수록 줄어드는 내 기억력. 

이러다가 이른 나이에 치매가 오는건 아닌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난 마눌과 아이들에게 유언아닌 유언을 남겨놓았다.

내가 어떤 사고를 당해 정상적인 상태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혼자서 대,소변을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될거라면 절대로 생명을 연장시키는

장치를 하지 말것과 혹시, 내가 치매에 걸렸을 경우 곁에 두고 고생하지 말고 미련없이

요양원으로 보내라고...

 

 그리고, 내가 죽었을땐 화장을 하여 세상에 다녀간 흔적을 남겨놓지 말고,

오래전에 사놓은 우리 부부의 묏자리가 아깝다는 생각이들면 화장을 한 내 뼛가루를 묻어놓으라고.

 

 우리 아버지께서 생전에 하셨던 말씀이 있다.

걸어다닐 수 있는 힘만 있어도 자식들에게 부담주지 않는 노년을 보내시겠노라고.   

 

 아버님은 말씀하신대로 자식들에게 아무런 부담을 주지 않고 사시다가

어느 추운 겨울날 뇌출혈로 쓰러지셨고, 2년 반가량의 투병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셨지만,

아주 오래전 당신께서 사후(死後)에 들어가실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던 분이다.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시고도 찾아간 나를 알아보시며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시던 아버지의 기억력.


 금년에 97세이신 어머님도 통화를 할때면 미국에 사는 손주들의 이름을 정확하게 말씀하시며

건강과 안부를 챙겨주는 기억력이 좋으신 분이다.


 헌데, 여름날 소나기처럼 오락가락하는 내 기억력은?

내가 부모님의 좋은 기억력을 물려 받았다면 이렇게 정신줄이 오락가락 할리가 없을텐데...


 무자비하게 다가오는 세월의 힘을 이겨낼 수 없고, 망가져 가는 내 기억력을

다시 회복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내 생의 한켠을 장식해줬던 사람들만은 결코

잊고 싶지않은 작은 바램을 갖고 있다.


지만, 알고있다. 이처럼 현실성 없는 바램 또한 세월을 부정하고픈 억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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