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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이런사람이다.
01/05/20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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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은 이런사람이다.


그다지 선량한 양심을 지니지 못한 사람이 남들에게 선한 사람이라는 칭송을 듣고싶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선 본성을 숨기고 말 그대로 위선적인 삶을 사는 방법이 있다. 역사에 남은 이 분야의 대가는 수양제 양광이다.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을 끝내고 중국을 통일한 수문제는 역대 황제들이 사치에 빠져 나라를 잃은 사례를 수없이 목격했기 때문에 스스로도 사치를 멀리했고 아들들이 검소한 삶을 살기를 바래왔다. 그러나 황태자 양용은 이런 문제의 기대를 저버리고 수많은 처첩을 거느리고 주색잡기에 몰두했다. 차남 양광은 이런 형을 보며 자신에게 반드시 기회가 오리라 생각하고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검소한 삶을 살았다.


아내 외에 첩은 두지 않았으며 무너져가는 흙집에서 농사를 지었다. 문제와 독고황후는 거짓으로 꾸미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여 여러차례 불시에 양광을 찾아가보았지만 그때마다 허름한 의복을 입고 노복들과 함께 손수 농사를 짓거나 아니면 책을 읽는 모습만 보게 되었다. 마침내 수문제는 양광이야말로 진실로 소박한 성품을 지녔고 나라를 물려줄만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고, 그때를 놓치지 않고 양광은 헛소문을 퍼뜨려 황태자 양용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결국 양용은 황태자 직위가 박탈되었고 그 자리는 양광이 물려받게 되었다.


이후로도 양광은 몸조심을 했으나 아버지가 위독해지자 더이상 본색을 숨기지 못하고 아버지의 애첩인 진씨 부인을 겁탈하려 시도했다. 진씨 부인은 수문제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고하였고 대노한 수문제는 양광을 죽이려했다. 16년의 노심초사가 헛수고가 될 위기에 처하자 양광은 군사를 이끌고 궁에 침탈해 아버지의 목을 졸라 죽이고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황제가 된 이후 가장 처음으로 행한 일은 진씨 부인을 첩으로 맞아들이는 것이었다. 그간 억눌러온 본성이 대폭발해 엄청난 사치로 국부를 축냈고 망상증에 사로잡혀 고분고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무리하게 몇 차례 고구려 원정에 나섰다가 실패하고 결국 당고종 이연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이 정도 스케일의 위선자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이 방법이 너무 힘들다면 다른 방법이 있다. 사회적으로 공공의 적을 지목해서 앞장서서 비판하는 방법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의를 부르짖으며 공적을 비판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가 정의로운 사람이라고 단정하게 된다. 머리 좋은 위선자 진중권이 택한 수법이다. 그는 정봉주를 맹공격하며 자신이 정의롭고 페미니즘의 투사인 것처럼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려 하는 중이다.


지난 번 글에서 말했다시피 나는 진중권씨를 안티조선 우리모두 시절에 알게 되었고, 그 후로 이십 여 년간 이 흥미로운 캐릭터의 인물을 관찰하며 평가해왔다. 이제 평가를 내릴 시간이 된 것 같다. 그는 위선자이다. 적어도 99.9% 확신으로 말할 수 있다.


진중권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에 유학했으나 박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하고 귀국하게 되었다. 그가 귀국할 무렵에 대한민국은 안티조선의 열풍이 막 불어오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그 시작은 강준만 교수였다.


'김대중 죽이기'라는 책을 통해 조선일보가 얼마나 악랄하게 기사를 왜곡하며 고 김대중 대통령을 모함했는지 폭로하면서 조선일보의 문제점을 일반인들이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때 조선일보에서 예의 김대중 정권 흔들기 차원으로 당시 대통령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최장집 교수를 이른바 사상검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최교수의 논문 중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었다'라는 한 문장을 두고 "'역사적'이라는 단어에는 '위대한'이라는 의미가 내포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최장집은 김일성을 찬양하고 6.25를 북침이라 주장하고 있다"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며 최장집 교수를 공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에 최선봉을 선 사람이 최장집 교수의 제자인 이한우 기자였고, 강준만 교수가 그런 이한우를 가리켜 '스승의 등에 칼을 꽂았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한우기자가 강준만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에 이른다.


당시 '아웃사이더'라는 비평지를 준비하던 홍세화, 김정란, 노혜경씨와 같은 분들이 이 사건을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규정짓고 '스승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강준만 교수의 의견에 동의한다. 조선일보는 나를 고소하라!'라는 항의를 시작했다.


이무렵 진중권씨가 귀국하면서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의 박정희 우상화 작업을 비판한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을 출판한다.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참으로 통쾌한 조선일보 비판글이었기 때문에 엄청난 호응을 얻었고 그 여파로 진중권씨는 단번에 저 세 사람의 명망가들과 비슷한 위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후에 안티조선 우리모두 사이트가 개설되었을 때 홍세화씨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고 김정란, 노혜경, 진중권씨가 주축이 되었고, 일반인들이 결합하는 형태가 되었다.


안티조선 운동은 순식간에 확산되었고 우리모두는 당시에 가장 핫한 사이트가 되었다. 그런데 이때 뜻밖에도 진중권씨가 강준만교수를 엄청나게 비판하기 시작했다. 오래 전 일이라 왜 비판했는지는 잘 생각 안 나고, 워낙 남 비판 잘하는 사람이라 찾아보기도 귀찮다. 안티조선 운동이 훼손될 것을 우려한 사람들의 중재로 그 건은 그럭저럭 끝났지만 사람들은 꽤 충격을 받았다.


강준만 교수가 설령 잘못한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진중권씨가 그 정도로 독설을 날려야할만큼 큰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만 꽤 많은 사람들에게 진중권은 진영논리에 빠지지 않고 자기 편이라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안티조선이 확대되면서 기존의 운동권들과 시민단체들이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우리모두 사이트는 급속도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너무 마음 아픈 일이라 언급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지금까지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가입하지 않은 이유가 그때 보았던 그들의 어처구니 없는 행태들 때문이라는 것만 밝힌다.


명망가든 일반인이든 할 것 없이 안티조선 우리모두의 쇠퇴가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지만 오직 한 사람 진중권씨의 경우는 달랐다. 느닷없이 중앙대 독어독문학과 겸임교수에 임명이 된 것이다. 진중권씨가 독일에 유학한 것은 사실이지만 전공은 미학이고 박사 학위 취득을 못했다. 게다가 미학 전공이지만 그 중에서도 진중권씨의 분야는 미술 쪽이지 문학 분야가 아니다.


중앙대도 나름 허명은 있는 학교인데 이런 교수 임용은 결코 정상적이지 않다. 당장 독문과 대학원생들의 반발도 엄청나게 컸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러나 이미 진보의 아이콘 정도로 자리잡은 탓인지 일반 대중들의 평가는 우호적인 편이었다.


진중권의 정말 엽기적인 행동은 이 다음에 일어난다. 중앙대 교수 직함을 걸고 동아일보에 고정 칼럼을 개제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안티조선 운동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가 이 행동에 충격을 받고 그를 비판했다.


안티조선 운동 초창기에 조선일보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조중동 보수 언론 전반의 문제점을 고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너무 거창하게 판을 키우면 죽도밥도 안 될 것이니 현재의 역량을 모두 조선일보에 집중하고 나중에 운동이 더 확산되면 그때 조중동 전체로 초점을 맞추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문제점은 뒤로 미루었을 뿐이지 안티조선 운동 참여자들은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동아일보는 삼견일체(三犬一體)의 존재라는 기본 합의를 누구나 하고 있었다. 웃기는게 우리가 부른 조중동이라는 표현이 확산되어 보수언론에서도 보도해야만 할 상황이 발생했는데 그럴 때면 조선일보는 '조중동'이라 보도했고 중앙일보는 '중조동', 동아일보는 '조동중'이라 표현했다. 짠하다 동아일보... 그런데 그런 동아일보에 인터뷰도 아니고 고정칼럼을 개제하다니.


비판의 여론이 거세지자 진중권은 옛 동지였던 김정란 교수를 비열하게 공격했다. 안티조선 초창기 때부터 김대중 정권의 사주를 받아서 하는 운동이 아니냐는 공격들이 많았는데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을 지닌 김정란 시인은 이런 공격을 무척 힘겨워했다. 왜 사람들이 우리의 본심을 몰라줄까 하면서 대단히 괴로워했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쭉 지켜본 진중권이 바로 그 지점을 치고 들어온 것이다.


김정란 시인이 김대중 정부와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 같은 뉘앙스의 글을 올렸고 안 그래도 풍비박산 지경이던 안티조선 우리모두는 이 두 사람의 싸움으로 완전히 숨을 거두게 된다.


그 후에 진중권은 경비행기 운전도 취미삼아 하면서 한가한 나날들을 보냈다. 그러나 위선자의 지존 MB가 등장하며 호시절도 끝나게 되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정부에 비판적인 좌파 성향의 인물들을 쳐내기 시작했는데 이때 진중권의 중앙대 교수 직위도 날아가게 되었다.


자, 이제, 역전의 용사 진중권이 이명박 정부에게 칼을 뽑아들고 싸울 차례가 되었군, 하고 흥미롭게 지켜보았는데 부당한 해고라고 몇 번 말하는 것 외에는 딱히 별다른 투쟁을 벌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도올 김용옥 선생만 하더라도 EBS 중용 강의가 취소된 것에 대해 노구를 이끌고 일인시위를 벌이기까지 했는데(그러고보니 진중권이 도올 선생도 엄청 비판한 적 있었다.), 권투를 배워 누구에게도 겁먹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던 진중권은 별다른 액션이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진중권은 나름대로 사회의 불합리함과 싸우긴 했던 것 같다. 그러나 그 대상은 좀 모호했다. 이명박 정부의 악랄함보다는 그에 맞서는 진보진영의 미숙함에 대해서만 비판하기 시작했다.


천안함 사건이 났을 때, 이명박 정부의 조작 사건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원흉을 찾기보다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일갈을 날리기도 했고, 정봉주 의원과 나꼼수 멤버들이 BBK 사건과 댓글부대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을 때에는 음모론자로 몰아붙이며 공격했다. 이명박 입장에서 봤을 때 진중권은 좀 독특했을 것이다. 뭔가 나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듯한데 결론적으로는 다른 시비를 막아주는 역할이라고나 할까.


내가 진중권을 포함해 진보좌파 쓰레기 삼인방이라 부르는 작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당시에 했던 짓거리가 다 이런 식이었다. 노정태와 허지웅 역시 이명박은 신자유주의자, 그런데 우리나라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도입한 것은 김대중, 시장에게 권력을 넘긴 것은 노무현(이건 날조다. 노무현은 이미 권력은 시장에게 넘어갔다라고 한탄을 했을 뿐이지 권력을 시장에 넘긴 적이 없다. 시장에 넘어간 권력을 정치가 어떻게 되찾아오는지 이명박과 박근혜는 훌륭한 시범을 보여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알면서도 그걸 안 한 죄밖에 없다.), 고로 노무현과 이명박은 같은 부류다. 이러면서 노명박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모든 이명박 비판을 궁극적으로 노무현에게 돌아가게끔 논리를 만들어냈다.


뭔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봤을 때는 이명박 정권과 치열하게 싸우는 듯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놈이 그놈이다' 담론을 전파시키는. 아마도 이 쓰레기들의 행태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고 '천안함 사건에 대해 남한에서 봤을 때는 북한이 사과한 것처럼 보이고 북한에서 봤을 때는 남한에서 사과한 문장처럼 발표 해달라'며 돈가방을 들이밀었던 추태를 벌였을지도 모르겠다.


이 쓰레기들은 꼭 본인들의 쓰레기짓을 '비판'이라고도 안 하고 '앙가쥬망'이라는 단어를 즐겨 쓴다. 참... 사르트르가 이 새끼들 하는 짓거리를 보면 이새끼들 존재가 무가 될 때까지 싸대기를 후려쳤을 것 같다. 이 쓰레기 중에 진중권에 이어 허지웅 역시 그럭저럭 기생오라비처럼 생긴 얼굴을 기반으로 방송에 진출했는데, 노정태는... 역시 대한민국에서는 외모도 경쟁력이야. 여전히 그짓거리 하면서 살아가는 중이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대통령 시대가 되자 갑자기 진중권의 전투력이 되살아났다. 연일 정봉주 의원을 향해 포문을 연다. 어제도 프레시안에 이런 기사를 올렸다.


내가 진중권을 비판하는 이유는 정봉주가 무죄라고 확신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정봉주의 평소 경솔한 행동으로 미루어보아 설령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더라도 상대가 오해하게끔 행동하기 충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팟캐스트 듣다가 그가 날리는 밑도 끝도 없는 아재 개그를 들을 때면 저절로 주먹이 쥐어지곤 한다. 그렇지만 일단 본인이 부정하는 사건에 대해서 무작정 인정하라고 할 수는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법관들만 지켜야할 덕목이 아니다.


진중권은 공부를 많이 했고 논리학도 배운 사람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가 '무죄 증명의 오류'같은 기초적인 논리적 오류를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지금 진중권은 정봉주에게 본인의 무죄를 증명하라고 닥달하고 있다. 매우 부당한 태도이고 지식인이라면 마땅히 범해서는 안 되는 금기를 범하고 있는 중이다.


그가 써먹는 수법은 창조론자들이 진화론을 공격할 때, 그리고 홀로코스트 부정론자들이 쓰는 전형적인 수법이다. 어떤 증거를 내밀면 이건 충분한 증거가 아니야, 중간 과정이 비어. 거기에 핵심이 담겨 있어. 이러면서 증거를 인정하지 않는 수법. 진화론자들이 화석 증거를 내밀면, 중간 단계의 화석이 없다고 인정하지 않고, 중간단계에 해당하는 화석이 발견되면, 그래도 여전히 중간이 비어 있다며 진화의 전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여주기 전까지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수법. 이것은 옳지 않은 수법이라는 것을 알지만 너를 공격하기에는 매우 유용하니 써먹겠다는 자세. 지식인이고 나발이고를 떠나서 인간의 기초적인 양심이 없는 행위이다.


진중권 그 또한 제2의 김문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안우곤

2019년 9월 24일

출처: https://www.facebook.com/gonzclub/posts/2398446250262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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