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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에 대나무숲을 허하라
12/23/20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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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검찰 내부망에 익명게시판(익게)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직전인 10월22일, “수뇌부만 개혁방안을 고심하지 말고 고민을 나누어 달라. 우리의 내일은 함께 만들어야 하지 않느냐. 후배들도 주저 말고 생각을 말해 달라. 마음과 뜻을 모아야 한다”라는 글을 올렸는데, 대검에서 제 건의를 받아들여 한 달 기한으로 익게 개설을 결정했다더군요.


글은커녕 댓글조차 많지 않아 고요한 검찰 내부망에 익게가 열리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신세계가 펼쳐졌습니다. 화산이 폭발하듯 쏟아지는 불만과 분노, 격정적인 비판과 반론은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알지 못했던 내부 부조리와 불신, 갈등을 깨달아가는 과정은 고통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익게 개설을 후회한 대검은 익게 연장을 희망하는 내부 여론에도 불구하고 12월5일 자정을 기해 예정대로 폐쇄하겠다고 공지하더군요.


익명 뒤에 숨어 “정치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 총선 불출마 선언해 보라”는 식의 어이없는 공격들로 익게의 폐해를 직접 겪은 피해자이지만, 순기능이 훨씬 더 크다는 생각에 총장 직무대행이었던 김진태 대검 차장에게 급히 메일을 썼습니다. “아직 구성원들에게는 실명으로 말해도 불이익을 입지 않는다는 신뢰가 없다. 신뢰가 생길 때까지만이라도 존치시켜 달라”고 건의하고, 대검 차장실에 쳐들어가 사정도 했지요. 그러나 결국 익게는 닫히고, 익게를 달구었던 구성원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으로 되돌아가 다시 침묵했습니다.


저는 도시락 폭탄을 던지는 독립투사의 심정으로 건의글을 지속적으로 올리며 여기저기 불려 다녔고, 저와 의견을 같이하는 글을 거듭 올리던 동료는 검찰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검사 적격심사로 쫓겨났습니다. 응원 댓글을 달던 동료들도 상사들에게 불려갔고, 제가 근무하던 창원지검과 법무부 검찰국에 제 글 모니터링 담당도 있었다는 말을 뒤늦게 전해 듣기도 했으니 검찰의 내부 언로 탄압은 2010년대 대한민국에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식 이하의 상황이었지요.


2014년 7월, 동료가 글을 올렸다가 삭제하자, 대검 정책기획과장 명의로 “언행에 유의하라”는 취지의 업무연락이 전국에 돌았고, 제가 근무하던 창원지검 등지에서는 부회의와 단체쪽지로 내부망에 글 올리지 말라는 지시가 전파되었습니다. 


당장 항의하고 싶었지만, 월말에 글 쓰면 바쁜 월말에 일 안하고 글이나 쓴다는 트집이 예상되어 월말이 끝난 8월1일,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위한 제언(단성소를 그리며)’이란 글을 내부망에 올렸습니다. 남명 조식 선생님이 단성소로 명종을 질타했던 조선 초기만도 못한 검찰의 언로를 개탄하며 대검을 비판했지요.


제 글에 늘 묵묵부답하던 대검 정책기획과는 “언행에 유의하라고 한 것일 뿐 내부망에 글 쓰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다”라고 이례적으로 해명했습니다. 제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가 글 게시 이외에 다른 사유가 있느냐고 댓글로 물어보고 싶었지만, 결국 물어보지 않았지요. 못 들은 체할 거니까.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메일을 보냈었습니다. “익게를 재개설하고, 수사관회의를 정례화시키는 등 언로를 열어 달라”고 건의 드렸지만, 회신은 없었습니다. 2017년 9월19일, 검찰개혁 토론방이 새로 개설되었는데, 저는 첫 글로 익게 재개설을 건의하였고, 2018년 3월11일에도 다시 건의 드렸지요. 대검에서 토론방에 올라온 각종 건의글에 친절히 답변글을 달면서도 그런 민감한 건의엔 또 못 본 체하더군요. 재개설하면 어떻게 되는지 뼈아프게 겪었던 수뇌부에서 결코 허락할 리 만무합니다.


2019년 11월25일,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익게 개설을 검찰에 권고했습니다. 공수처 도입 등 검찰개혁 거대담론들에 비하면 사소해 보일 수 있으나 검찰 내부 민주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을 콕 찍어 권고하니 얼마나 기쁘던지요. 검찰 언로를 틀어막고 쓴소리한 사람들을 탄압했던 그때 그 사람들이 검찰 수뇌부에서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검찰권이 오남용되는 상황에서도 일사불란한 조직문화를 비판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수뇌부 방침과 다른 목소리가 일벌백계로 응징된 세월이 오래라, 조직문화가 쉬이 바뀌지 않지요.


그러나 얼음 밑으로 결국 봄이 오듯, 검찰 구성원들의 말문이 트이면 생각이 살아나고, 생각이 살아나면, 행동이 따르지 않겠습니까.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말하면 목을 베어버렸던 엄혹한 검찰을 바꾸고자 한다면, 내부 구성원들이 힘겹게 용기 내지 않더라도 쓴소리를 할 수 있는 대나무숲을 검찰에도 만들어 주십시오. 


검찰의 민주화는 언로가 열림으로써 비로소 시작될 것이고, 검찰이 민주화되면, 검찰의 주인이 검찰 수뇌부에서 국민으로 결국 바뀌게 될 것입니다.



[정동칼럼]  임은정 울산지방검찰청 부장검사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99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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