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abridgeus
뽈래기(asiabridgeus)
기타 블로거

Blog Open 08.17.2015

전체     286452
오늘방문     196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카테고리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흑사병 창궐했던 중세 유럽, 코로나 바이러스-19 사태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
05/25/2020 16:39
조회  302   |  추천   2   |  스크랩   0
IP 76.xx.xx.232


흑사병 창궐했던 중세 유럽, 지금 우리는…


집에서 볼만한 영화…제7의 봉인 (The 7th Seal)
거장 베르히만 감독 대표작
극한 공포속 인간실존 다뤄


'제7의 봉인'은 인류사에 최대의 피해를 남겼던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의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다.






영화 이야기 - 제 7의 봉인 Det sjunde inseglet / The Seventh Seal (1957) 일부

Mar 10, 2020
8.51K subscribers
SUBSCRIBE
Written and directed by Ingmar Bergman (잉마르 베리만) Starring Max von Sydow (막스 폰 시도우), Bengt Ekerot (벤그트 에게로트), Gunnar Bjornstrand (군나르 비욘스트란드) & Bibi Andersson

페스트가 창궐한 14세기 유럽, 기사 안토니오스 블로크(막스 폰 시도우)는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다가 10년만에 고국 스웨덴으로 돌아왔으나 페스트가 온 나라를 휩쓸어 고국은 황폐해져 있다. 그의 종자 옌스(군나르 비욘스트란드)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블로크는 죽음의 사자의 방문을 받는다. 블로크 기사는 자신의 죽음을 우선 피하기 위해 죽음을 담보로 한 체스 게임을 제안하고 사자는 그에 동의한다. 블로크는 체스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에 신의 존재와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러던 중 블로크는 광대 부부와 그들의 아기를 만나 충만한 평화를 느끼게 되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동행을 자처하지만 블로크와 마찬가지로 신을 보는 심미안이 있는 광대는 블로크가 죽음의 사자와 체스를 두는 것을 목격하고 블로크 기사 일행에서 몰래 떠난다. 블로크는 자신의 시종 옌스와 시종 옌스가 살해직전 구조해준 여인과 드디어 자신의 성에 도착하는데...

자신 앞에 불쑥 나타난 죽음의 사자에 기사 블로크가 체스 게임을 제안한 것은 죽음을 미루어 신(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대답을 얻을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블로크가 목격한 것은 흑사병, 고행의 행렬, 마녀 사냥과 같은 끔찍한 지옥이었고 신은 보이지 않은 곳에 숨어 여전히 침묵하고만 있었다. 잉마르 베리만 자신이 종교적 믿음에 대해 혼돈스러운 상태에서 만들었다는 이 영화는 기독교(당시 로마 카톨릭-천주교) 적인 신(하나님)에 대한 감독의 회의적인 시각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영화는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인 70년대 초에 여성동아(?)에서 별책부록으로 나온 영화평론가 정영일님이 쓴 세계의 영화 100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에는 무성영화인 나폴레옹, 무도회의 수첩, 나의 청춘 마리안느, 루이 말 감독의 연인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황혼(영화의 원 제목이 캐리임은 나중에 알았다 - 드라이저의 처녀작인 씨스터 캐리를 영화로 만듬)등 100 편이 소개되어 있었다.

특히 제 7의 봉인은 베리만이 감독한 최고의 영화라고 극찬을 했던 작품이어서 꼭 보고 싶었는데 15년전 쯤 디비디가 출시되면서 볼 수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무심코 지나쳤던 광대 부부에 관한 장면은 어쩌면 이 영화의 또다른 핵심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난하지만 순수한 열정으로 사랑하는 아내와 평범하게 살아가는 광대는 우연한 기회에 마리아의 환상을 잠시 보는데 그는 축복을 받아서인가 죽음의 문턱에서 피해 간다.

또하나 기사의 시종인 옌스가 구해준 여인은 마지막 장면에서 오히려 죽음의 사자를 기다리고 반기는 듯한 묘한 표정에서 죽음에 이르는 길은 자신의 선행과는 관계없는 신의 뜻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어쨋든 이 영화를 포스팅하기 위해 여러번 영상을 요약해 재편집하면서 처음 보았을 때 보지 못한 여러 의미있는 장면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이 영화를 보지 못한 올드 무비 매니어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배경음악은 Handel 의 Violin Sonata No.4 1 악장 (3번 반복면주) 입니다. 아주 오래전 딸아이의 바이올린 래슨 선생님이 이 곡은 신에게 간구하는 마음을 담아 연주하라고 했던 기억이 떠올라 이 곡을 배경으로 편집해 올렸습니다.
(참조, (  ) 안은 편집자 삽입함. 주)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페스트)은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이었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공포 그 자체였다. 전염병은 어느 시대에서든 모든 걸 남의 탓으로 돌리는 극혐주의를 불러온다. 다 같이 극복해야 할 위기상황을 자기 이익 추구의 방편으로 삼는다.

가톨릭이 정신세계를 지배했던 중세의 유럽 대륙은, 흑사병을 인간의 죄에 대한 신(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다. 십자가를 들고 알몸이 되어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는 등의 극단적 회개 방식이 성행하면서 유럽 대륙은 무분별한 광기와 혐오로 가득 찼다.

'제7의 봉인'은 인류사에 최대의 피해를 남겼던 흑사병이 창궐했던 중세의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영화다. '외침과 속삭임'(Cries and Whispers, 1972), 산딸기(wild Strawberries, 1957), '페르소나'(Persona, 1966) 등의 철학적 영화를 만든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르히만(Ingmar Bergman)의 출세작이기도 하다.

베르히만 감독은 "하나님의 어린 양이 일곱 번째 봉인을 열자 천상의 침묵이 있었노라"는 요한계시록 8장 1절 구절을 모티브로, 중세의 설화 안에서 삶과 죽음, 신과 인간, 그리고 그사이에 존재하는 악마를 형이상학적 관점으로 파헤쳤다.

영화 시작부터 '최후의 심판'이 다가오고 있음을 암시한다. 죽음에 대한 집단적 공포가 무분별한 광기로 돌변하면서 '최후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영화의 분위기를 뒤덮는다.

십자군 전쟁 후 흑사병으로 초토화된 지역을 지나 스웨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사 안토니우스 블로크(막스 폰 시도우). 그의 귀환 길은 온통 죽음의 냄새, 죽음의 빛으로 가득 차 있다. 기사는 이러한 인간의 참상을 목격하면서 신의 존재에 깊은 회의를 품는다. 그때 사신(死神)이 그의 앞에 나타나 무시무시한 저주의 예언을 퍼붓는다. 기사는 죽음을 담보로 사신에게 체스 게임을 제안한다. 재앙을 이기기 위해 십자가를 앞세웠던 중세 유럽인들의 모습은 바로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영화는 신에 대한 회의와 함께, 인간에게 구원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현실과 초현실이 뒤엉켜 있는 이 작품을 통해 베르히만 감독은 사랑, 두려움, 형벌에 관한 성경적 해석들을 사유하며 광대 가족에게서 보는 가족에 대한 사랑,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내의 사랑에서 그 답을 찾는다. 인류 역사에 '흑사병'과 같은 바이러스는 늘 존재해왔다. 그러나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건 혐오다. 재앙을 만나면 다른 곳에서 희생양을 찾는 우리의 본성 때문일까, 인간 실존의 부조리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우리는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유발된 타민족, 타인종에 대한 비이성적 혐오와 다양한 형태의 차별행위들을 이미 목격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몰고 온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는 최대의 병기는 친절, 배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베풀고 나누며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지금 인류가 겪고 있는 위기가 한 걸음 더 '인간다운 인간'으로 진화해 가는 과정이길, 그리고 귀한 가르침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결단)의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참조, (  )속은 편집자 추가 사입함. 주)


이 블로그의 인기글

흑사병 창궐했던 중세 유럽, 코로나 바이러스-19 사태를 맞이한 지금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