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분위기가 한창이던 2019년 12월, 예기치 않은 재난이 찾아왔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은 불과 석달 사이에 전세계로 퍼져 걷잡을 수 없는 유행병의 수렁에 빠뜨렸다.

이같은 재난 상황 속에 세계적인 문호 알베르 카뮈가 70여 년 전 출간한 장편소설 ‘페스트’가 최근 재조명 되고 있다. 14세기 유럽에서 창궐해 전 유럽 인구의 1/3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흑사병을 모티브로 하는 이 소설은 전염병의 창궐 과정과 사람들의 대응, 공포 속에 왜곡되는 인간 심리의 사실적인 묘사가 오늘의 재난 상황과 무섭도록 일치하여 놀라움을 준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 김화영 옮김 / 민음사

쥐들의 떼죽음, 공포의 시작 

194X년, 알제리의 평범하고 조용한 해안 도시 오랑에서 죽은 쥐들이 발견된다. 이후 계속해서 더 많은 숫자의 쥐들이 떼를 지어 거리로 나와 사람들의 눈앞에서 죽는다. 이 기이한 현상에 사람들이 불안해지기 시작할 때, 하루 동안 통계된 죽은 쥐들의 숫자가 8000마리에 달한 후 그 숫자가 급격히 감소한다. 비로소 사람들이 안심하던 바로 그날부터 사람들이 의문의 병에 걸려 죽기 시작한다.

재난이 비현실적인 사람들, ‘휴머니스트’

재난은 처음 누구에게나 낯설고 비현실적이다. 재난이 ‘나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인식하기까지 다소 시간이 걸린다. ‘우리’에게 벌어진 일이라고 알기까지는 더욱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사태가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면, 분명한 것은 망설일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다.

<페스트>의 오랑시 당국은 초반에 사람들에게 발생한 기이한 질병이 전염병이라는 것을 부정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숨질 때까지 감추기에 급급하다. 도시의 평화와 질서가 깨지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위기의식도 당국과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병에 걸려 죽지만, 사망자가 나는 아닌 것이다. 소설 속에서 카뮈는 이렇게 부주의하고 비현실적인 사람들을 ‘휴머니스트’ 로 정의하며 비판한다. 재앙의 존재를 믿지 않는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는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우리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부분이다.

“재앙이란 인간의 척도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재앙이 비현실적인 것이고 지나가는 악몽에 불과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재앙이 항상 지나가 버리는 것은 아니다. 악몽에서 악몽을 거듭하는 가운데 지나가 버리는 쪽은 사람들, 그것도 첫째로 휴머니스트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비책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페스트>에서

카뮈가 말하는 재난 속 ‘인간다움’

코로나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 것은 개인의 안전만 생각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속한 공동체와 이웃의 안전에 책임지는 태도를 의미한다. 내 몸이 건강할 때 이웃이 건강할 수 있고, 이웃이 건강할 때 내 안전도 보장되기 때문이다. 이는 신체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진정 ‘이웃을 위하는 마음’으로 확장된다.

소설 속에서 페스트는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장치다. 소설 속 인물 ‘타루’는 오랑시 보건위생과의 인력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일부 사람들과 함께 자원 보건대를 구성해 의료진을 도우며 전염병과 싸운다. 그렇지만 카뮈는 이런 행위에 과장되게 칭찬하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오히려 ‘인간다움’의 도리를 더 강조한다.

타루가 하는 말을 보라. “아마 나는 영웅주의라든가 성자 같은 것에는 취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그저 인간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에서 각자가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성찰하게 하는 문장이다.

“사람은 제각기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피해를 입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늘 스스로를 살펴야지 자칫 방심하다가는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병독을 옮겨 주고 맙니다. 자연스러운 것, 그것은 병균입니다. 그 외의 것들, 즉 건강, 청렴, 순결성 등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될 의지의 소산입니다.”  <페스트>에서

 

코로나19 싸움의 핵심 무기는 ‘성실성’

카뮈는 전염병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무관심할 수 없는 필연적인 싸움이다. 이 싸움의 유일한 방법으로 카뮈는 ‘성실성’을 제시한다. 각자 맡은 방법대로 전염병에 대항하되,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끝까지 싸우라고 격려한다. 개인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싸움이 될 것임을 되새겨준다.

코로나바이러스도 끝나는 시점이 온다. 과거에도 수많은 페스트가 있어왔다. 그러나 우리는 장기전에 대비해야 한다. 장기전을 위해서는 자기 존재에 대한 확신과 성실의 마음을 잘 붙잡아야 할 것이다.

“저 매일매일의 노동, 바로 거기에 확신이 담겨 있는 것이었다. 그 나머지는 무의미한 실오라기와 동작에 얽매여 있을 뿐이었다. 거기서 멎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일이었다.”  <페스트>에서

알베르 카뮈

‘부조리의 철학’으로 잘 알려진 작가 알베르 카뮈.

마흔일곱 살의 짧은 인생 동안 대표작 <이방인>, <페스트>를 포함한 다섯 편의 소설과 <칼리굴라>와 <오해> 포함 네 편의 희곡, 세 편의 문학에세이, <시지프 신화>를 포함한 두 편의 철학에세이, 한 권의 단편소설집 등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글 구성 / 강수연 (콘텐트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