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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전 시속 130㎞로 대륙 누빈 ‘아시아호’는 신칸센 원조
08/14/201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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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의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앞에, 만철의

불편한 진실이 버티고 있다(2)

중앙일보 2019.01.19 15:09

 

[월간중앙] 박보균의 현장속으로 - 역사의 창고만철(남만주 철도)’ 찾아서


80 시속 130 대륙 누빈 아시아호 신칸센 원조


관광객들은 압도당한다. 공간과 실물의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쪽 길이 300m쯤의 실내 전시관을 걸었다. 희귀함은 매력이다. ‘빈티지 자동차전시장과 비슷하면서 다르다. 열차의 완고함, 중량감, 대중성 때문이다. 갑자기 열차가 쉬는듯하다. 나는 열차 열병식 받는 느낌 이다. 구석 쪽으로 갔다. 원색의 기관차 대가 있다. 색감은 강렬하다.


 
하늘색과 녹색이다. 열차의 명판은 アジア 757’ ?(간자체) 751’. ‘아시아 승리(Asia 일본 표기는 아지아 アジア). 아시아는 파시나(たパシナ·파시 7)형이다. 파시는 퍼시픽(pacific) 일본식 영어 줄임, () 나나(일곱). ‘파시 중국 형식이 승리 7’.


아시아는 유선형이다. 짙은 색감의 덮개 덕분이다. 검은색의 투박한 물체는 가려졌다. 산뜻했지만 위압적이다. 지름 2m거대 바퀴 때문이다. ‘아시아 757’ 간단한 안내문은 있다.“1934 일본 가와사키(川崎) 중공업 제조, 길이 25.675m, 속도 130/h, 중량 119.2t, 1981 퇴역.” 파시나 기관차는 객차 일곱 량을 끈다(전체 길이 174m). 승객 정원은 276. ‘승리 751’ 1934 만철의 대련 공장에서 만들었다.


무토는 상기된 표정이다. “최고 시속 130 시절 세계 수준을 능가했다.” 아시아호의 돌파력은 뚜렷했다. 만주에서 유라시아로 가는 길을 단축했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나의 할아버지는 만철의 신쿄(신경)에서 근무했다. 그곳을창춘이라고 부르지 않으셨다. 그것은 아시아호의 자부심때문인 듯했다. 아시아호는 객차에 에어컨을 달았다. 철도서비스의 놀라운 혁신이었다. 객차에서 만주대륙의 벌판이눈에 들어왔다.” 패전 만철의 노하우는 일본 철도로 전수된다. 그것은 신칸센(新幹線) 기술의 바탕이다. 1964 10월신칸센은 세계 최초의 고속철로 등장했다.

















엘리트 싱크탱크 만철조사부

만주국과 만철 경제조사위의 엘리트들은 의기투합했다. 그들은만주 산업개발 5개년 계획 강요(綱要, 골자) 마련했다. 그중에 만주국 산업부 차장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도있다. 기시는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다. 그는 전범재판을 받았다 (불기소). 내각총리를 지냈다
.
5
개년 계획은 거대한 실험이었다. 5개년 계획은 전후 일본 고도성장, 일본 주식회사 원형이다. () 집단 만철 조사부의 유산이다. (『만철-지의 집단 탄생과 소멸』
)
 
박정희는 문경 보통학교 교사였다. 그는 만주로 떠났다.1940 2 만주 신경군관(예과 2)학교에 들어갔다. 우수생도는 일본 육사 본과에 진학했다(19444 졸업
).
 
만주국의 5개년과 한국의 5개년 개발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주제는 박정희의 만주 체험 때문이다. 김종필(JP) 총리는 초기박정희 통치 다자인했다. JP 생전에 이렇게 일축했다. 만주 경험이 대통령의 리더십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산업화는 만주국의 문제의식과는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한다. 대통령은 사농공상(士農工商) 수백 서열을 깨는 것이 경제개발의 핵심 추진력이라고확신했다. 거기에다 우리 국민성의 숨겨진 근면과 자립을 깨우쳐 세상을 새롭게 바꿨다. 5·16 쿠데타라고 하지만 이런 엄청난 국민적 변혁을 이룬 혁명이다. 만주국 운운하는 얘기는박정희 리더십 깎아내리는 의도가 깔렸다
.
 

경성(서울)역은 동북아 철도의 허브, 지금도 수려한 건축미를 잃지 않았다. 사진·박보균 대기자

나는 JP에게 박정희의 만주 회상을 물었다. 대통령한테서 만주에 관한 것을 한마디도 들어본 적이 없다. 만주군관학교 졸업이 굳이 자랑할 것도 아니고 해서 한마디도 했던 같아. 대통령이 만주에 것은 처했던 어려운 환경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일본 식민지 아래서 원하는 것은 되고 한국에는 있을 없고 해서 만주를 선택한 거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것이 아니다. 현상타파 생각에서 만주로 거다.

 


경성역 티룸은 소설가 이상의날개 등장. 사진·중앙포토


만주국은 꺼림칙하다. 배후 조종세력 관동군의 무자비함이 있다. 관동군 731세균부대는 절망이다. 만주에 대한남북한의 기억 차이는 뚜렷하다. 김일성의 만주 항일 게릴라 투쟁은 북한의 건국신화 수준이다. 한국은 오랫동안 잊힌 공간이었다. 해방 분단, 만주의 중국 공산화 과정에서 멀어졌다. 일제의 만주 침략은 한국 강탈과 연결돼 만주국 역사는 부정적으로 대부분 묘사됐다. (『만주 모던』 한석정)

  

  


1931 관동군이 조작한 만주사태의 류타오후 유적 (이상 선양의9·18 역사박물관). 사진·박보균 대기자

 

 




만철의 싱크탱크만철 조사부 생산한 각종 보고서. 사진·박보균 대기자





* 흐린 부분은 금지어 때문에 사진 복사하여 게재하였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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