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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군대에 잡혀간 고구려 유민들은
09/12/2017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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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군대에 잡혀간 고구려 유민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http://cfile202.uf.daum.net/image/2748343C55C8422321E37D


서기 668년 고구려는 당나라의 공격에 의해 멸망했다. 역사책은 그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당나라와 전쟁 중에 연개소문이 죽자, 그의 세 아들 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큰아들 남생은 동생들인 남건과 남산에 의해 권력에서 밀리자 국내성 이북의 땅을 들고 당나라에 투항했다. 연개소문의 아우인 연정토는 남쪽 땅 2개성의 호구를 이끌고 신라에 투항했다. 당나라는 이세적이 지휘하는 대군을 파견하여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이때가 보장왕 27(668) 9 21일이었다. 고구려 역사의 대단원은 이렇게 자멸로 막을 내렸다. 당나라에 멸망할 때 고구려의 규모는 176개 성, 69 7천여 호, 350만 명의 인구였다.


 보장왕과 연개소문의 아들 남산, 남생은 당나라로 잡혀가 그곳에서 형식적인 감투를 쓴다. 마지막까지 저항한 남건이 검주라는 곳으로 귀양을 가면서 고구려 역사는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이후 670 4월 검모잠이 왕의 서자인 안승을 고구려왕으로 세우면서 고구려 부흥운동이 시작되었다. 이에 앞서 669년 안승은 4천여 호를 이끌고 신라에 의탁했다. 그러나 이 부흥운동은 곧 내분이 일어나 안승은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났다. 당나라와 일전을 각오하고 있던 신라는 안승을 고구려왕에 임명하였다가 나중에 보덕국왕으로 임명하여 익산군 금마저 지역에 살게 한다.


 이 사건에 충격을 받은 당나라는 고구려유민들의 반항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 4만여 호의 주민을 양자강 이남지역으로 강제 이주시킨다. 당시 고구려의 총 호수가 69 7천여 호임을 비추어볼 때 이 강제이주민 숫자는 엄청난 것이었다.


 


- 박영규 저. <한권으로 보는 고구려 왕조 실록



 그런데 궁금한 게 있다. 당나라에 의해 강제이주된 고구려 유민들은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의 기록은 고선지1와 같은 영웅이 고구려 출신이라고 기록하고 있지만 그외 기록은 전무한 셈이다.


 오지문화 탐험가이자 저술가인 농학자 김병호2 박사가 펴낸 『우리문화대탐험』에서 저자는 서울을 출발하여 중국,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인도네시아 등 장장 아시아 10만리를 8개월에 걸쳐 탐사한다그는 우리 민족이 북방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한편 남방설의 근거가 될 수 있는 여러 문화들을 접한 생생한 탐험기를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상세한 지도를 덧붙여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그 탐험지에서 저자가 만난 동남아시아(중국 남부지역 포함) 소수민족에서 고구려 유민들을 발견한 내용이 게재되어 있다.


 이 소수민족들은 아카족, 라후족, 리수족 등인데 저자는 아카족은 한반도에 정착하기 전의 우리 조상들 중 일부가 한반도행 대열에서 이탈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고, 라후족과 리수족, 특히 라후족은 당나라에 의해 강제이주된 고구려 유민이라고 판단한다. 그 근거가 무엇인지 요약해 보았다.


1. 아카족


http://cfile225.uf.daum.net/image/2678893E571B0A5D31EF6D


 대부분의 아카족은 미얀마 북부와 라오스 북서부, 태국의 북부 고산지대에 분포하고 있다. 문맹인 소수민족으로는 특이하게 족보를 외우고 있다. 쌍둥이가 태어나면 죽이는 습성 등은 중국 역사서에 발견되는 고구려 관련 기록과 유사하며 결혼식 때 함잡이격인 중방아비 풍습이 유지되고 있다. 볍씨를 보관하는 ‘성주단지’나 개고기 먹는 풍습은 우리와 동일하다. 그들은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저자는 옛날 한민족의 이동시기에 우리민족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로 판단한다.


2. 리수족


http://cfile225.uf.daum.net/image/27498B44571B0A6D06ACF4


 미얀마, 중국, 태국 등의 고산지대에 살고 있다. 리수족은 중국 정부가 공인한 56개의 소수민족 중의 하나이며, 미얀마에서 리수족은 7개의 카친 소수민족 중의 하나로 인구 약 35만이 미얀마의 카친 주와 샨 주에 거주하고 있다. 태국에는 약 5 5천 정도가 살고 있으며, 6개의 산악민족 중의 하나이다.


 이들은 떡을 즐기는 민족으로 우리와 동일한 떡메를 사용하고 있다. 어른에게는 큰절하는 풍습이 있으며 제천의식과 지신밟기 등의 풍습은 한민족과 동일하다. 그들이 자랑하는 ‘와공후’라는 악기는 고조선의 ‘공후인’이라는 악기와 같은 형태와 구조다. 또한 자케라는 악기는 우리의 거문고와 흡사하다. 마을 입구에 솟대가 있으며 그곳에 악기를 매다는 풍습 역시 한민족과 동일하다.


3. 라후족


http://cfile202.uf.daum.net/image/24274F3E571B0A7F27228C


 고산지대에서 사는 라후족은 현재 약 70여만 명이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에 약45, 미얀마에 15, 태국에 10만정도와 라오스에 1, 베트남에 1,500명 정도 거주하고 있다. (위키백과)  이들은 조상이 박에서 태어났다는 ‘난생설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솟대를 마을 입구에 설치하고 있으며 집집마다 얇은 목재를 가로 또는 세로로 엮어서 다락식 창고를 보유하고 있는데 고구려의 부경3[?京]과 꼭 같은 형태이다.


 뿐만 아니라 배추를 절여서 발효시킨 것을 주된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있으며, 아이가 출생했을 때는 빨간 고추를 새끼에 꼬아 문밖에 걸어놓는 금줄(인줄) 풍습까지도 우리와 같다. 씨름을 즐기며 성황당과 같은 장소에서 길흉을 비는 풍습 역시 그러하다.


http://cfile202.uf.daum.net/image/231A9F3F571B0AF10DA626


 지금 우리의 복식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들 나름의 색동옷을 명절에 입으며 디딜방아를 집집마다 보유하고 있다. 고구려 때 존재했던 ‘생황’이라는 나팔형 악기를 보유하고 있고 남자가 장가갈 때는 ‘처가살이’ 필수다. 이는 「후한서 동이전 고구려」편에 나오는 내용과 완전히 일치한다. 사람이 죽었을 때는 염을 하고 상여를 만들며 묻힌 후에도 성묘하고 벌초하는 풍습 역시 우리와 동일하다.  


 이 탐사에서 서울대의 이현복 언어학 교수, 인하대의 김광언 교수, 한양대의 권오성 교수, 가톨릭의대의 한훈, 한승호 기초의학 교수팀이 라후족, 아카족의 언어, 민속, 음악 그리고 체질 인류학적으로 보다 더 자세하게 조사하기 위해 조우했다.


 라후족의 노인이 부르는 노래는 다음과 같다.


조실부모하고


형제들은 전쟁에 나가 죽고


자식들은 굶어죽고


나 혼자 중국땅으로 끌려와


어여, 어여,


어찌를 할거나

 


 중앙대 음대 전진평 교수가 분석한 결과 위의 ‘라후 - 셀레’라는 노래는 강원도 정선아리랑 가락으로 판명이 됐다가톨릭 의대팀의 분석에 의하면 라후족의 유전자는 한국인의 유전자와 99.9% 이상 일치한다고 한다언어적인 면에서의 유사함은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