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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패망 현장 목격자의 악몽"과 한국의 현실
07/21/2017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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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패망 현장 목격자의 악몽"

 

월남의 패망과 조국의 현실과 내일


조국의 내일을 위해 6.25 그 날과 월남의 패망을지 말자(운영자 주)


이대용 장군 모습


*조국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좌파 공산화되면 예수님을 배반하지 않는 목사를 비롯하여 변질되지 않은 민주주의 신봉 모든 성직자, 장로, 장관, 장군, 경관, 6.25 참전, 월남 참전 국가 유공자, 보수 정치가, 좌파 공산주의 절대 반대 자유 민주주의 수호자, 기업가들은 모두 죽을 각오해야 합니다. 월남 패망후 월남 정치가, 공무원, 군인, 경찰, 목사, 승려, 기업가, 민간인이 얼마나 죽었는지 상상이나 해 보았는지? 전 세계로 흩어진 보트 피풀(Boat People)이 얼마나 되고, 조국 땅 월남을 등지고 국경을 넘어 피난간 난민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우리들 생각으로는 상상을 초월한다. 러시아의 레닌. 스탈린, 중국의 모택동이 공산화한 이후 반대파들을 얼마나 숙청하고 죽였는지 아는가? 그리고 일제 36년 군국주의 치하와 북한이 공산화 되어 숙청하고 감금하고 총살한 숫자는 우리의 상상을 더 초월한다. 미국에서 아시아에 최초로 기독교(특히 침례교) 선교사를 보낸 미얀마는 1962년 군사 구데타 이후 지금까지 55년간 불교도 사회주의(공산주의) 국가가 기독교를 얼마나 탄압하고 핍박하고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현실을 아는가?  또 중동 지역에서는 IS(이슬람국가)가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지난 날들과 오늘 날을 직시하고 우리는 죽을 각오를 하고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사상은 피보다 진하다고 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는 사상보다 몇 천, 몇 만, 몇 억 갑절보다 진하다. 먼저 참된 그리스도인들 부터 죽으면 죽으리라는 필사의 각오를 가지고 기도하면서 두려워 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조국 대한민국은 반드시 패망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100% 신뢰하는 절대 절명의 믿음이 없으면 마귀의 총 칼 앞에는 모두가 두손 들고 항복한다 (편집자 주).


아래 이 글을 쓴 전 이대용 회장(전직 육군장성)은 월남 패망 당시 주월 한국대사관 경제담당 공사(현역 육군 특별무관-장군) 로서 월남 패망 과정을 지켜보았고, 월남 패망 후 월맹군에 체포돼 5년간 억류 생활을 한 경력이 있는 사실적인 생생한 증언 내용이다.


다음은 회장의 생생한 증언을 정리한 것을 살펴보자.


전쟁에 지친 미국이 월맹과 휴전을 위한 비밀협상에 돌입한것은 1968.5.10 그 무렵 미국은 연간 495$~508$ 를 퍼부었고 미군 병력도 536천명을 보낼만큼 전쟁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다.


미국과 월맹이 파리에서 비밀평화회담 을 진행중인 사실이 알려지면서,월남 내부에서는 국론이 두 갈래로 갈렸다.


여당은 강력한 반공정책을 주장하며 평화회담 참여거부를 주장한 반면, 야당은 앞다퉈 포용정책을 들고 나와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회담 참여를 지지했다.


월남 정부는 어쩔 수 없이 회담 테이블 에 나가야 했고, 1973.1. 27 프랑스 파리에서의 5년여 협상 끝에 베트남전 을 종식하는 휴전 회담이 열렸으며 키신저는 이 휴전의 담보를 위해 월맹 에 40$의 원조로 월맹의 경제 재건을 돕기로 하고 교전 당사국인 미국 월남 월맹 베트콩( 임시혁명정부) 등이 서명했다.


국무장관이었던 키신저는 보다 확실한 휴전을 담보하기 위해 휴전 감시 위원단인, 캐나다· 이란· 헝가리· 폴란드 4개국을 서명에 참여시켜 4 개국 250명으로 구성된 휴전감시 위원단이 하노이와 사이공, 그리고 휴전선을 감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월남과도 방위조약을 체결, 미군은 철수하지만 월맹이나 베트콩이 휴전협정을 파기하면, 즉각 해공군 력이 개입하여 북폭을 재개하고 월남 지상군을 지원키로 굳게 약속했다.


키신저는 주월미군이 철수하더라도 휴전체제가 최소한 10년은 갈 것이라 고 낙관적으로 생각했다.


? 이 생각은 착각이었다.


이는 지금도 북한이 견지하고 있는 대남전략과 단 한 치의 차이도 없다.


휴전협정 이전부터 공산당 프락치들이 월남 곳곳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웬후토가 1962. 1 창당한 인민혁명당 에서 침투시킨 조직원들이었다. 그래서, 월남 패망 당시 월남에는 공산당원 9, 500명과, 인민혁명당원 4만명, 즉 전체인구의 0.5% 정도가 월남 사회의 저층(底層)에서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1969. 6. 6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이 베트남 임시혁명정부로 개편될 당시 월남정부 각 부처와 월남군 총사령부에서 이루어지는 극비 회의내용이 단 하루후면 상세하게 보고될 정도로 티우정권의 핵심에 공산 프락치가 침투해 있었다고 한다.


1967 대선(大選)에서 차점으로 낙선 한 쭝딘쥬와, 당시 모범적인 도지사로 평판이 자자했던 녹따오를 위시한 많은 정치인· 관료들이 모두 공산 프락치였음이 알려진 것은 월남 패망 후의 일이었다.


반면 월남에선 군사쿠데타가 벌어질 때마다 대공(對共)전문가들이 쫓겨 나는 바람에, 월남 대공기관과 정보 기관은 형해(形骸)만 남아 버렸다.


한 나라를 망하도록 하는 가장 손 쉬운 방법은 무엇보다도 그 나라의 정보기관 부터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정보기관과 대공기관 이 정권의 부침(浮沈)에 따라 평지풍파 를 겪으면서, 결국에는 간첩하나 못 잡는 이빨 빠진 고양이로 전락한 것을 나는 너무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월남 패망 당시, 외적(外敵)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으로 인해 무너지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기 때문이다.


당시 월남 정규군은 58만명 이었는데, 이 중 10만명이 뇌물을 주고 장기휴가를 받아 대학에 다니거나 취업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름만 있고 실체는 없는 군인들을 가리켜 "유령 군인", "꽃 군인" 이라 불렀다.


문제는 지도층의 부패였다. 그리고 공산당을 모르는 불쌍한 백성들이었다.


티우 대통령 사위가 군에 입대했는데, 그는 이름만 군적(軍籍)에 둔 채 외국 유학을 갔고 다른 고관들도 그랬다.


일선의 군인들은저따위 썩은 정권과 나라를 위해 내가 목숨을 바쳐야 하는가?하며 전의(戰意)를 상실했다.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가 퍼져나가자 공산군에 대한 경계심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이것이 월등히 높은 경제력과 막강한 화력을 가졌던 월남군대가, 식량부족으로 고민하던 월맹군에게 허수아비 처럼 붕괴한 가장 큰원인이다.


? 시민·종교단체를 좌익이 장악 이 무렵 월남에서는 천주교의 짠후탄 신부, 불교계의 뚝드리꽝 스님 등이 모여서 "구국평화 회복 및 반부패 운동 세력"이라는 단체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었다.


이 산하에 사이공대학 총학생회, 시민 단체들이 연합하여 일종의 시민연대를 구성하고, 반부패 운동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이 순수한 반부패 운동 조직에 공산당 프락치들이 대거 침투하여, 거대한 반정부, 반체제 세력으로 변질시켜버렸다는 점이다.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미군과 한국군 이 철수하자, 사이공에는 100여 개 의 애국단체, 통일 운동단체들이 수십개의 언론사를 양산하여 월남의 좌경화 공작에 앞장섰다. 목사, 승려, 학생 그리고 좌익인사들 이 한데 뒤섞여 반전운동, 인도주의 운동, 순화운동 등 상상할 수 있는 그 모든 운동단체들을 총동원하여 정권 타도를 외치고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1975년의 월남은 이들 100여 좌익 단체의 선전전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것이다.


? 오늘날 어떤 정당에서 공천을 못 받았다 해서 뛰쳐나가 자신이 몸담았던 당의 지도자를 공격하는 모습은 25년전 내가 월남에서 체험했던 정쟁과 어찌 그리도 닮은꼴인가?.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 했던 우익 인사들은 다음 날이면 시체로 발견됐다.


? 오늘날 우리나라의 언론과 지식인 들이 국가 안보와 반공, 국가 정통성 수호를 외치지만, 말과 글과 구호로 무장한 좌파 인사들이 무차별 공세를 펼침으로써" 말없는 다수"들이 침묵 하는 상황도 25년전 월남과 다름이 없다.


3.26 다낭이 함락됐고,18개 사단이 사이공을 향해 무인지경을 달리듯 파죽지세로 남하했지만 "유령 군인" 들은 가족과 함께 배와 비행기로 월남 을 탈출하고 있었다. 그런데 남침 후 한 달이 지난 이때까지 도 미국은 대월 방위공약을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4.29 월맹 공산군 14개 사단이 패잔병 들만 남아있던 사이공을 포위했고 4.30 정오, 월맹 공산군 제2군단은 월남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위치한 독립궁 을 점령했다.


월남 대통령 정반민은 포로 가 됐고, 이로써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월맹을 압도한다고 자랑하던 월남은 너무도 허무하게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패망한 월남사이공 함락 후 월남의 군인·경찰은 무장 해제되고 수용소에 보내졌고 공무원과 지도층 인사, 언론인, 정치인들도 모두 체포돼 "인간개조 학습소"에 수감됐다.


하층(下層)의 월남 국민들은 소형 선박을 이용해 목숨건 탈출에 나섰다.


보트 피플의 숫자는 약 106만명중 살아서 해외로 이주한 사람이 95만 명으로 집계됐다.


나는 이 참혹한 패망의 역사를 그 현장 에서 지켜보면서, 강대국과 맺은 방위 공약이나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정은 절대 신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뼈 저리게 체험했다.


티우 대통령이 미국에게 구원을 호소 했지만...


무질서와 공산 프락치들로 인한 국론분열에 빠진 월남에 고개를 가로 저었던 미국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었다. 체제가 안정되었다거나 경제력이 우수하단 말은 나라에 충성하는 국민 의식과 군사력 뒷받침이 없으면 헛것 이기 때문이다.


파리 휴전협정 체결 과정에서 외국 언론은 키신저가 노벨평화상 받기 위해 휴전협정을 너무 서두르고 있다며 지적했지만 이런 충고를 무시한 키신저가 수상한 노벨평화상은 결국 자유월남의 시체 위에서 얻은 비극의 노벨상이 되고 말았다.


미국이 영국과 프랑스, 중공과 소련까지 동원해가며 맺었던 "방위조약"은 단순한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다.


그들은 월남의 패망과 아비규환에 빠진 월남 국민의 절규에 대해 침묵으로써 대답했다.


오늘날 우리 조국 대한민국의 좌파 공산주의(일명 진보 민주주의) 대통령과 정치 지도자들에게 속지 말아야한다. 미국 트럼프 정부 지도자들은 두번 다시 좌파 공산주의 지도자와 정치가들에게 속지 않을 것이다.(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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