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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유럽 발칸 반도 7개국 여행기-1
05/26/201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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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유럽 발칸 반도 7개국 여행기-1


작성일 2016.04.30 22:55 

작성자

* 발칸 반도 국가는 기나 긴 세월동안 강대국 사이에서 너무나 많은 핍박과

외침으로 나라는 쪼개지고 민족은 이산 가족이 되는 고통을 받아 왔습니다

Prologue: 


 2016 330일부터 410일까지 1012 동안 발칸 7개국(루마니아, 불가리아, 보스니아-헤르고체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노랑풍선 여행사를 통하여 10 (인솔자 포함) team 이루어 여행하였다그동안 H.여행사, L.여행사를 이용하다가 이번에 노랑풍선을 택한 이유는 여행 대상 국가들이 내가 보고싶은 국가들이 포함되었기 때문 이다.(마케도니아는 빠졌지만...) 


발칸반도는 유고슬라비아에 속한 나라들이 핵심이다.



먼저 '발칸반도(Balkan Peninsula)'라고 하면 '유럽의 화약고또는 ' 1 세계 대전의 발생지' 라는 단어가 얼른 떠오를 정도로 분쟁의 소지가 내재된 장소로 인식되어 왔다.


    그곳의 그들은 그토록 싸워야만 했을까?


  어떤 영토를 가진 민족들이, 어떤 종교를 가졌길래 서로 화합하기 힘들었을까?


   배후 세력인 강대국들의 이합집산(移合集散) 어떠했는가? 대한 나의 궁금증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그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기에 이곳의 지정학(地政學) 입지와 역사(歷史)  '상세히' 살펴 보고자 한다.


발칸은 <산맥>이란 뜻의 터키어로서, 발칸반도는 이탈리아와 아드리아 (Adriatic Sea) 사이에 두고 유럽 대륙의 南쪽, 지중해의 東쪽에 위치한 삼각형 모양의 반도로, 오스트리아, 헝가리, 우크라이나를 경계로 하여 南쪽을 의미한다. 발칸반도의 면적은 50 5,000㎢으로 한반도의 2.5배정도인 좁은 넓이로 이탈리아 반도의 대략 2배이며, 동서 길이 1,300km, 남북 길이 1,000km이다. 북쪽에는 도나우 (다뉴브) 하류와 사바 , 동쪽에는 흑해, 남동쪽에는 에게 , 남쪽에는 지중해, 남서쪽 에는 이오니아 , 서쪽에는 아드리아 등이 둘러싸고 있어 자연스럽게 경계가 이루어진다.


또한 발칸반도는 이름대로 대부분 산악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北쪽으로부터 트란실바니아 산맥, 발칸 산맥, 로도피 산맥으로 크게 산맥이 반도 내륙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어, 로마시대부터 자연스러운 경계선이 되었으며, 현재 발칸반도 나라들의 지리적인 기틀이 되었다이와 같은 자연적 조건으로 인하여 발칸반도의 국가 들은 고립적인 경향을 가지게 되었고, 따라서 역사적으로도 후진적인 위치로 남게 되었으며, 가혹한 자연환경으로 인하여 고립된 가운데 독특한 민족적 전통과 문화가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곳이 유럽의 화약고란 별칭을 갖게 되었을까?


발칸반도에 거주하는 민족은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인을 포함하는 슬라브족과 루마 니아인, 터키인, 알바니아인, 그리스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외에도 많은 소수민족이 있다.


종교적으로는 지정학적인 이유로 인해 그리스정교도가 가장 많고, 개신교도, 가톨릭교도, 이슬람 교도도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혼재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이미 갈등의 소지를 품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게다가 발칸반도는 동부 유럽과 중남부 유럽, 중동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 역할을 하는 곳이다. 이러한 지정학적 위치는 그리스, 로마시대로부터 다양한 국가와 민족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고 관계를 맺으며 이어져 왔다. 그런 까닭에 지역의 지배권은 수많은 민족에게 전해지면서 현대에 이르게 것이다. 그렇다면 좁은 지역에 이렇게 많은 인종들과 종교들이 혼재해 있었는가?


기독교를 분류해 본다면


 카톨릭 교회(Cathoric Church):

     로마 카톨릭 교회 또는 천주 교회


 동방 정교회(Greek Church or Orthodox Church)):

      나라마다 분류된다. , 그리스 정교, 러시아 정교, 루마니아 정교, 세르비아 정교...


 기독교 교회(Christian Church):

      신교 또는 그리스도 교회 즉,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루터교, 성공회 등...


 역사적으로 발칸반도는 알렉산더(마케도니아) 대왕이 지배한 적도 있지만, 그리스는 발칸산맥 南쪽 지중해 끼고 발전해 나간데 비해, 東쪽으로 세력을 넓히던 로마에게 발칸반도는 넓은 아시아 대륙으로 가는 징검다리였기에 반드시 지배해야 지역이었기 때문에, 기원전 3세기 이후 발칸반도로 본격적으로 세력을 넓힌 로마는 지금의 알바니아 지역에 살던 일리리아족을 무찌르고 발칸반도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었다.


로마인이 아닌 발칸반도 출신이며 기독교를 공인하고 비잔티움으로 수도를 옮긴 콘스탄티누스 황제(슬로베니아人) 때에 지방은 로마제국 영토의 완벽한 일부로 되었다. 그러나 서기 395 로마제국이 끝내 동서로 갈라지고 오늘의 보스니아지방, 도나우 강을 경계로 東西 로마제국의 영토가 결정되었고, 뒷날 멸망한 西로마 제국은 신성 로마제국의 명목상 지배와 가톨릭교회의 지배를 받게 되지만, 東로마 제국은 계속 허약해져가면서 슬라브족을 위시해 중앙아시아 민족인 훈족(흉노족) 터키(튀르크) 북방 이민족의 대대적인 침략과 이주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들 이민족 7세기 이후 대규모로 이주해 슬라브족은 크게 부류로 나뉘는데, 러시아에 살고 있는 슬라브족을 東슬라브족, 폴란드, 체코, 슬로바키아로 옮겨온 슬라브족을 西슬라브족, 그리고 발칸반도로 이주해 슬라브족을 南슬라브 족으로 분류하며, 南쪽을 슬래브말로 <유고>라고 하기 때문에 후에 지역에 유고슬라비아, <南슬라브족의 >이란 명칭 아래 연방제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


※비잔티움 제국: 로마 제국이라고도 하는데, 중세의  로마 제국을 고대의 로마 제국과 구분하기 위해 붙인 이름으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330 5 11일에 비잔티움(현제의 이스탄불) '로마 노바'( 로마) 개명하고 수도로 삼은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그리스語를 주로 쓰게 로마 제국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알바니아지방에는 고대 로마 때부터 일리리아인들이 살고 있었고, 지금의 루마니아 지방인 다키아에는 로마인들이 눌러앉아 살고 있어서 동방의 훈족에 쫓겨 西쪽으로 南쪽으로 대규모 이주해 슬라브족은 자연스럽게 허약하고 허술한 7세기경의 비잔틴 제국 영토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슬라브계에서 가장 먼저 강력한 왕국을 건설한 것은 불가리아인으로 이들은 터키 유목민계와 슬라브계가 뒤섞인 종족으로, 681 1 불가리아 왕국을 건설하여 300 년간 지속되다가 1018년에 멸망하고, 160년쯤 뒤인 1185 벨리코터르노브를 수도로 2 불가리아 왕국이 건설되었는데 이들의 위세가 대단히 강성하여 모두 불가리아 제국이라 불렀다.


그러나 불가리아 왕국도 세계적인 대제국을 건설한 오스만 튀르크의 공격을 막기에는 너무 약해 결국 1366 터키에 의해 멸망하였다. 불가리아가 무너지자 터키군을 막을 의무는 불가리아 왕국의 西쪽 지역에 있던 세르비아에 있었는데, 세르비아는 허약해진 비잔틴제국의 지배와 불가리 왕국의 간섭에서 벗어나 두샨 (재위 1331~1355) 최고의 번성기를 누리면서 발칸반도의 왕자로 떠올랐으나, 두샨 왕이 죽은 불가리아 왕국을 멸망시킨 터키의 공격이 더욱 치열해져 결국 발칸반도의 운명을 결정짓게 되는 코소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세르비아군대는 최후까지 용감하게 싸웠으나 터키에게 패퇴하여, 발칸반도는 사실상 거의 전체가 400~500 년에 걸친 터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따라서 현재도 코스보는 세르비아인들의 민족적 성지이자 세르비아인의 민족적 자존심이며 '大세르비아주의' 원천이기도 하지만, 뒤에서 살펴보듯 이것이 도리어 아직까지도 지역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슬라브족=러시아, 마자르족=훈족(흉노족,헝가리), 라틴족=이탈리아, 알바니아일리리아인 


오랫동안 터키의 지배를 받는 동안 지방에는 국경도, 역사도 사라져 버리고, 터키의 탄압과 지배, 그리고 생명을 정교의 신앙만이 남아 있었는데, 300년이란 시간동안 기독교도 중에서도 이슬람교로 개종하는 사람이 늘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지역 전체가 개종을 하거나 자신의 종교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을이나 촌락 단위로 개종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여 정교지역에 이슬람 부락, 이슬람 지역에 정교부락 등으로 종교, 부족, 문화 등이 정신없이 뒤엉켜져서 자연히 이웃 마을과 도시 사이에도 충돌이 일어나 뒷날 인종청소라는 비극의 원인이 되었다.


그러던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전쟁이 18세기 유럽에 민족주의의 불을 댕기면서, 오랜 외세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독립하여 자신들의 민족국가 건설에 대한 욕망이 불타오른 발칸지방의 여러 민족들은 언어, 종교, 문화를 내세운 민족주의 운동을 펼쳤는데, 운동을 탄압하여 대제국을 유지하려는 세력과 이를 이용하여 발칸반도에 진출하려는 서유럽과 러시아 세력이 부딪쳐 발칸반도는 점차 전쟁의 구렁텅이로 내몰리게 되었다.


1814년부터 시작된 독립운동으로 1829 독립한 그리스는 다른 발칸반도 민족들에게 엄청난 자극을 주어 지역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떠져 나왔고, 이를 억누르려는 지배자의 탄압도 거세져 발칸반도는 점차 전쟁터로 변해갔다.


당시 발칸반도는 오스트리아와 터키라는 늙은 제국이 나누어 차지하고 있었는데, 러시아는 南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이곳을 마음대로 요리해야 하고, 영국과 프랑스는 동쪽의 중동, 인도, 아시아 로의 진출을 위해 이곳에 영향력을 확대해야만 하였기에, 이를 위해 먼저 발칸반도의 여러 지방을 독립시켜준 다음에 그들을 입맛대로 요리하려고 하였다.


이런 러시아, 영국, 프랑스의 요구를 터키가 거부함으로써 터진 전쟁이 1877~1878년의 러시아-터키 전쟁(크림전쟁)으로, 전쟁에서 러시아가 승리하자 러시아는 터키와 1878 『산스테파노』 조약을 맺어 터키제국이 지배하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루마니아 등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국의 영토 일부를 러시아에 떼어주며, 또한 러시아 함대가 지중해로 나갈 있게 다르다넬스 해협을 개방하기로 하여 발칸반도의 터키제국 영토 대부분이 러시아의 영향아래 들어가는 발칸반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결정적으로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에 러시아는 발칸 여러 지방의 민족주의를 부추겨 <범슬라브주의> 주창하면서 발칸반도의 슬라브계 민족을 단합시켜 자신과 협력하도록 이끌어 나갔다.



오스트리아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세력이 지역을 양분하고 있다.(1830년대)


이러한 발칸반도에서의 러시아 세력 확산은 영국은 물론 오스트리아를 크게 격분시키고 당시 최강대국 영국이 전쟁 위협까지 하면서 '산스테파노' 조약의 무효화를 주장하자, 결국 러시아는 꼬리를 내리고 다시 협상하기로 양보하였는데, 러시아의 발칸 진출을 못마땅해 하던 도이치제국의 비스마르크 수상에 의해 열강 대표가 모인 베를린 회의에서 조약이 폐기되었다.


러시아는 1905 러일전쟁에서 패해 휘청거렸고, 계속 西유럽 열강에 밀리기만 하던 오스만 튀르크(터키)제국에서는 1908 터키 근대화를 요구하는 청년장교들의 모임인 <청년터키당> 의한 혁명이 일어나고, 또한 도이칠란트를 등에 업은 오스트리아제국은 터키와 러시아가 힘이 빠진 것을 이용해 과거 터키 지배지역으로 발칸반도의 영토에 붙어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1908 합병해버렸다.



1812년도의 유럽 국가의 세력 판도


이런 국제적 상황에서 겨우 독립을 얻어낸 발칸국가들이 불안해져 1912 터키의 재침략과 오스트리아제국의 발칸내 세력 확대를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 그리스가 처음으로 발칸동맹을 맺은 , 러시아의 지원을 약속받고 터키와 전쟁을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1 발칸전쟁 이다.


전쟁은 불과 만에 터키의 어이없는 패배로 막을 내리고, 전쟁의 패배로 터키는 이스탄불과 부근인 오늘날의 영토만 남기고 발칸반도의 모든 영토를 잃게 되어, 500 가까운 터키의 발칸지배가 손바닥만 땅덩어리만 남기고 완전히 막을 내렸다.


그러자 바깥으로는 날로 커지는 오스트리아의 간섭과 영토 확장 야망, 영국과 러시아의 지배간섭 욕망이 점차 고조되고, 내부적으로는 마구 뒤엉켜 사는 민족들로 이루어진 태어난 여러 나라들이 강대국들에 의해 대충 그어진 국경문제로 여러 민족들 간의 문화와 자존심이 충돌하기 시작하여, 1913 대불가리아 주의를 내세운 불가리아가 터키가 지배하다 떠난 무주공산인 마케도니아 땅을 차지하려고 세르비아와 그리스를 공격하여 발칸국가끼리의 전쟁인 2 발칸전쟁이 시작되었으나, 불가리아의 팽창 전쟁을 두려워한 루마니아가 터키와 연합하여 불가리아에게 선전포고하자, 불가리아는 사방에서 조여 오는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항복하여 2 발칸전쟁은 만에 막을 내리면서, 불가리아는 영토가 크게 줄고, 승전국이 그리스, 세르비아, 루마니아 등이 다투어 영토를 전리품으 챙기고, 또한 오스트리아와 러시아의 간섭도 점점 심해져 , 발칸반도는 영토분쟁, 민족분쟁, 종교분쟁, 문화 분쟁, 외세간섭 앞도 내다볼 없는 아수라장과 같은 혼란 속으로 빠져 들었다.


 1914 6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페르디난트 부부가 보스니아 사라예보에서 大세르비아 주의자로 보스니아를 세르비아에 합병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 가브릴로 프란치프라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되자, 오스트리아는 이를 발칸지배의 기회로 보고 즉각 세르비아에게 선전 포고를 하였다.


발칸 진출을 노리던 도이치제국도 오스트리아 편을 들어 전쟁을 시작하자, 슬래브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발칸을 노리던 러시아가 세르비아와 연합하여 맞서고, 또한 오스트리아, 도이칠란트의 발칸지배를 경계하던 영국과 프랑스도 참전하자, 불가리아가 도이치제국과 연합하고, 루마니아가 연합국 측에 붙어 참전하는 주변 국가들도 전쟁에 참여하게 되어 1 세계대전 으로 비화되고 말았다.


4년을 끌던 참혹한 전쟁 중에 공산혁명을 겪은 러시아가 떨어져 나갔지만, 미국의 본격적인 참전으로 결국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이에 1 세계대전의 빌미가 세르비아는 승전국으로서 자신들이 중심이 세르비아 민족국가를 세우려 하였지만, 세르비아를 도와 전쟁에서 승리한 연합국들은 세르비아의 독주를 막으려고 하여 서로 이해가 상충되어, 결국 세르비아는 1919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를 통합하여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이 되고, 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 일부지역까지 합쳐져 1929 복잡한 민족과 종교를 아우른 南슬라브족 최초의 국가연합 왕국인 유고슬라비아왕국으로 이름을 바꿔서 나라의 중심이 되었다.


한편 패전국이 불가리아는 영토의 상당 부분을 다시 잃어야 하였으나, 승전국이 루마니아는 도이치제국 편을 들어 싸우다 패전국이 헝가리로부터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영토로 얻게 되었다.


이로써 1 세계대전 이후 발칸은 세르비아가 중심이 되어 탄생한 유고슬라비아 왕국, 루마니아, 불가리아 알바니아의 4 그룹으로 일단 정리되어, 독립을 얻고 西유럽식 민주주의, 자본주의 국가를 건설하였으나 민주주의를 겪어보지 않은 발칸에서 민주주의가 자리 잡기는 어려워 혼란이 가중되어갔다.


여기에 혼란을 부채질한 것이 1 세계 대전 세계를 휩쓴 경제공황 여파로 늘어나는 실업자와 정부의 부정부패와 무능력이 극에 달해 폭력으로라도 이를 극복하겠다는 폭력적인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1930년대 도이칠란트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등에 의해 나치와 파시즘 세력이 창궐하면서 어두운 그림자가 발칸반도에 드리워졌다. 파시즘은 배타적 민족주의인 국수주의를 표방하면서 권위주의, 계급주의를 주장하고, 다른 민족 지배를 정당하게 여기며 반공을 철저히 내세운 정치이념으로 시대의 발칸은 반도 전체가 독재 통치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2 세계대전 이후 소비에트 연방의 주도로 불가리아, 루마니아,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연방 사회주의를 기조로 하는 국가들이 탄생하면서 발칸반도는 평화의 길로 들어서는 하였다.


 1980년대 이후 동구권이 붕괴하면서 유고슬라비아연방이 축소되는 분열되기 시작하여, 1990년대 초반 유고슬라비아, 슬로베니아ㆍ크로아티아ㆍ마케도니아(91 독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92 독립) 등으로 분리 독립하였고, 세르비아계에 의해 인종 청소란 이름 아래 25 명의 인명이 살상된 보스니아 내전(1992~1995), 세르비아 군의 알바니아계 인종 학살로 인해 야기된 코소보 사태(1993~1999) 등을 겪으며. 2006 6 유고슬라비아는 다시 세르비아ㆍ몬테네그로의 2 공화국으로 분리 독립하였다. 그리고 1999 본격적인 내전으로 이어진 코소보 사태 이후 2008 2 알바니아계의 코소보는 세르비아로부터의 분리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에 대해 미국과 서방국가 100 개국으로부터 독립국가 승인을 받았으며, 2008 10 코소보 독립에 대한 세르비아의 요청에 대해 국제사법재판소(ICJ) 2010 코소보의 분리 독립이 국제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린 있으나, 러시아 일부 국가들은 2014 현재까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아직도 발칸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수립되었다고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이와 같은 발칸반도에 대해 발칸 출신인 미국의 역사학자 스토야노비치는 "발칸반도는 최초의 유럽이자 최후의 유럽"이라고 하였는데, 최초의 유럽이라 함은 지역이 고대 그리스, 로마 유럽에서 처음으로 농업이 자리를 잡았고, 처음으로 도시가 건설되었으며 민주정치가 발전하였음을 의미하며, 최후의 유럽이라 함은 18세기 이후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을 겪은 西유럽사회가 현대 유럽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비해 대열에 가장 늦게 합류한 곳이 또한 발칸이라는 의미로, 그의 발칸반도에 대한 표현은 아주 적절한 같다


이번 여행의 course 보면, 카타르(Qatar)항공을 이용하기 때문에 도하(Doha) 거처서 루마니아(Romania) 수도 부카레스트(Bucharest,루마니아어:Bucuresti,부쿠레슈티) 이어 불가리아의 소피아,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보스니아의 사라예보, 모스타르, 메주고리예, 트레비네,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부드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 스플리트, 자다르, 플리트비체, 자그레브슬로베니아의 블레드, 포스토이나를 거쳐 이탈리아의 베네치아(Venezia)에서 다시 도하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


첫날(3/29), 아침에 날씨가 흐렸는데 저녁 무렵에 5mm 비가 오고 있다. 9시의 meeting 맞추어 나오니 우산을 정도는 아니다. 인천공항 M 카운터에 모인 사람은 고작 9...


20명이 안되면 출발을  수도 있다는 공고였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여행사가 비행기 예약을 현찰로 해서  없이 출발시킬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우리 부부, 60 부부, 그리고 천주교 친구인 50 부산 아지매 5, 인솔자 가이드, 10명이다.


30 0 20분에 탑승수속을 끝내고 1 5분에 출발하여 10시간이 소요되어 115(현지 시간 055, 한국이 카타르보다 6시간이 빠르다) 도하에 도착하다.


바깥 날씨는 20도로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Doha 공항은 새로 건축한지 3년째 공항으로 중동지역에서 hurb 공항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0 전에 땅에서 gas 발견되어 벼락부자가 되었다.


이곳에서 파리, 런던, 마드리드, 비엔나, 부카레스트로 가는 노선이 있기 때문에 공항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특히 2022 FIFA월드컵이 카타르 도하에서 개최되기에 infra. 구축에 많은 재정을 투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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