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you
엥이(areyou)
한국 블로거

Blog Open 11.17.2017

전체     2570
오늘방문     1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실존주의 & 디오니소스적인 것.
02/16/2020 19:49
조회  152   |  추천   0   |  스크랩   0
IP 124.xx.xx.83

1. 실존주의
아래 인용은 다음검색에서 실존주의를 쳤을 때 처음 나오는 글에서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하이데거와 사르트르의 주장은 이런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주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은 그 존재 및 행동 양식을 결정하는 본성을 갖지 않으며 이 양식이란 곧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들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내 본성이나 행동양식을 선택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더 직설적으로는 ‘나는 내 선택이다’라고도 할 수 있겠네. 진짜 그런가?
내가 태어날 때 까지 내가 선택할게 있었나? 돌이 될 때 까지는? 그 이후는?
내 생각에 나는 상황에 맞추어 행동했을 뿐이지 내 선택이 나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 것 같지는 않다. 그 보다는 유전적 요소와 주변 상황이 나를 만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하이데거와 야스퍼스에서는 상황이 인간의 선택을 결정한다. 반대로 사르트르에서는 선택이 상황을 결정한다>

재율이와 관련된 수많은 최악의 선택에 있어서 과연 내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인생이란 것이 이미 책에 기록된 내용을 매일매일 넘겨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만큼 내 결정들이 그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엇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사르트르처럼 선택이 상황을 결정한다. 그렇지만 그 선택이 그 이전의 상황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면 선택에 의해 결정된 상황이란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고 말할 수 있을까?

2. 디오니소스
아래 인용은 다음검색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소크라테스적인 것을 검색한 내용 중 일부이다.

< 논리와 이성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소크라테스적인 것이라 불렀던 것인데, 니체는 또한 이런 태도를 ‘이론적 세계관’이라 지칭했고 그에 맞서는 개념으로서 디오니소스로 상징되는 ‘비극적 세계관’을 내세웠다. 비극적 인간이 주어진 삶의 진리 속에서 행복해하는 인간이라면, 진리를 찾아 헤매다 눈이 멀어버린 인간이 이론적 인간의 원형이다>

니체가 소크라테스적인 것 때문에 그리스가 몰락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스를 지탱시켰던 대다수의 사람들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노예,여자,아이,노인등, 이 사람들에 있어서 소크라테스적 혹은 디오니소스적 이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BC 5세기경 아테네 인구의 1/3 이상이 노예였다고 한다. 경제 활동에 종사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진리를 찾아 헤맬까? 차라리 그리스의 몰락은 전염병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설득력이 있다. 지금 시진핑이나 아베의 몰락은 코로나 때문일 것이 확실하니까.
디오니소스적 인간 즉 주어진 삶의 진리 속에서 행복해 하는 인간으로는 누구를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해 봤다. 장자? 카사노바, 사드, 돈키호테, 그리스인 조르바, 도올이 성인에 가깝다고 말한 데르수 우잘라, 나르찌스와 골드문트의 골드문트, 이 중 어느 구구도 주어진 삶 속에서 행복해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행복을 찾아 끊임없이 노력했다고 할 수 있다. 
향연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록이 사실이라면 소크라테스 역시 삶의 진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지 이론적 인간과는 거리가 멀다. 사실 우리모두 그렇지 않은가, 우린 모두 행복을 원한다. 그렇지만 그 행복이 일시적이고 덧없는 것이라면 거기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논리와 이성으로 가치 있는 행복을 찾아다니는 존재가 인간 아닌가.


2020. 2. 17

이 블로그의 인기글

실존주의 & 디오니소스적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