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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南 박상수(apark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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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취하 3개월 (3)
09/01/2019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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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 취하 3개월 (3)


  내가 사천 외가집 이 군굼 하여 찾아갔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 더니 그때 외가에서는 난리가 났다. 외삼촌 이 군수라 군수 관사 에서는 피난 보따리를 쌓고 외삼촌은 군청 마당에 군용 추럭에 군청 직원을 태우고 피난갈 준비가 한창이 였다 가까운 하동에서 인민군과 아군의 전투의 포 소리가 요란하고 나를 본 외삼촌이 외숙모와 동생들 삼남매를 우리 집에 피난을 부탁하고 군청직원을 태우고 부산 방면으로 떠낫다.


  그래서 우리는 숱에 해 놓은 밥도 못 먹고 저녁노을이 짙어 올때 서둘러 우리 집으로 출발 하려는데 내무과장 가족이 갈 곳이 없어 난감해 해서 우리 집으로 같이 가기로 하고 같이 길을 서둘러 떠났다. 그러나 중도에서 내무과장 가족은 다른 곳으로 가고 우리들은 거름을 재촉해 우리 집으로 왔다. 내가 보도연맹 한 덕에 동리사람들은 나의 외가집 가족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집은 진주 당숙 가족도 피난을 와서 복작거렸다. 그러던 중 같은 동리에 아버지 고종사촌 아져씨가 교육도 있고 동리에 유지로서 우익이 였다 그런데 동리 회관에 잡아다 놓고 나보고 몽둥이를 주면서 때리라는 것이다 세상에 자기아저씨를 몽둥이를 따리라 하니 나는 기가 막혔다. 공산주의가 이런 것인가?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못 한다고 거절했다 때리라는 사람이 친구들이라 겨우 위기를 넘겠다. 특히 놀라운 것은 정치보위부가 곡물 현물세라고 우리 밭에 옥수수 낱알을 센다는 말을 들은 나는 왜정때 공출로 배곱은 시대를 살아온 나로서는 공산주의 의 실상을 보고 사람 이 살수없는 세상 이라고 느꼈다 더구나 젊은이 들에게 지원병으로 가라고 요구해서 내 6촌 형과 우리동리 내 친구는 그때가서 아직도 소식 조차 없다.


  하루는 미군 비행기가 와서 우리 동리에 농사일하던 나의친구를 인민군으로 오인하여 기관총을 쌓고 우리 집에는 외숙모가 겁에 질려 이불을 쓰고 있다가 머리에 총을 맞아 피를 흟이며 뛰쳐 나왔다 급한김에 된장을 한주먹을 발랐다. 딴 방법이 없었다 내 친구는 죽었다 그러나 다행이 외숙모님은 총탄이 스쳐가서 큰 상쳐는 아니어서 다행이 였다. 외숙모님은 우리집에 있으시기를 격정 하시여 나는 나의 처가 대실로 거쳐를 옮겼다 그곳은 100호 정도 사는데 90호가 처갓집 김씨 이고 10호 정도가 타성이고 산골 동리라 피난처로서는 적지였다. 나의 처가는 아무도 인민 위원회 위원장이나 치안대장을 할 사람이없어 동리어른이 아무개 자네가 인민위원장 하게 아무개 너는 치안대장 하계하여 감투를 쓴 사람이 수복후 경찰에 가서 죽지 않을 만큼에 매 타작을 했다. 그런 시대라 내가 외숙모를 처갓집에 피난을 해도 아무일 없이 넘아갈수 있었다. 처갓집에 서는 나의 외숙모님을 극진히 대 하였다. 그곳에서는 되지도 잡고 소도 잡아먹고 했다. 한번은 내가 되지를 코등을 몽둥이로 내리치니 설맞은 되지가 눈에 불로케고 나에게 덤벼드는 바람에 혼이 났다


  인민군이 패배해서 철수할 때 소 구루마에 식량이며 부식(야채 호박등)을 싫고 밤길을 가면서 나보고 같이 가자고 유혹했다. 그때 벌써 유앤군 은 전차며 자동차를 타고 오는데 낙오된 인민군 병사들은 총을 메고 허기진 얼굴에 공포에 눈에는 살려달라는 애원의 눈초리는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그 패잔병의 나이가 17.8세에 앳띈 얼굴은 그가 가는 뒷거름이 애쳐로와 지금도 잊을수 없다 노무자는 인민군 부상병을 밤에 풀밭에 두고 소리치는 부상자에 고함을 뒤로 하고 도망을 치기도 했다. 전쟁은 비극이다. 나는 외숙모가 고기값을 돈이없어 외삼촌이 준돈 1.000원 짜리 아직 통용 되지도 안은지페를 주었다가 (처음 나온 천원짜리 지페) 들통이나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어떤 일이 이셨을지 모른다 우리는 유엔군 북진덕에 곧 사천 군수관사로 뒤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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