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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南 박상수(apark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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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본 정신대. 증용. 보국대.
08/27/201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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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본  정신대.  증용.   보국대.(#2 )


  나라 없는 서름은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만이 안다. 중일 전쟁부터 공출이 생겻고 그때부터 물자가 귀해지고 신이 없어 와라지 (왜놈 집신) 을 삼아서 학교에 신고 다녔다. 석탄이 없어 아이들이 산에 가서 솔방울을 따다 교실 안 난로를 파 엇다. 그 당시에 친일파는 면서기였다 집집마다 농사지어 놓으면 그들이 논에 와서 제일 잘된곳 을 골라서 한평의 벼를 베어서 되로 되어서 그것을 논 평수를 곱해서 공출고지서를 내어 보내고 북데기 까지 다 털어야 겨우 그 양이 되어 가마니에 넣어 가져가면 삿대로 찍어서 등급을 매기고 거기 해당하는 돈을 밭는다. 그리고 다 털어가고 나서 다시 집에 와서 온 집안에 곡식이 있나하고 심지어 농짝까지 뒤진다. 그렇게 왜놈이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고 그렇게 과잉충성을 한 놈들 덕택에 농사지은 사람은 식량이 없어 산으로 가서는 칡뿌리며 도토리를 따고 들에 가서는 나물을 캐여 연명을 하였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이 승승장구 이겨서 일본군이 동남아로 진격할 때 정신대라 해서 (여자공출) 이 시작 되엇다 면 서기가 장부를 들고 다니면서 쳐녀 있는 집을 찾았다. 그때 모ㅡ든 딸 가진 사람은 큰 걱정이 되어 장가못간 총각을 찾아서 야단이고 마지막에 총각이 없으니 병신 총각이 귀하신 몸이 되여 딸가진 집에서 경쟁적으로 찾아 딸을 시집보냈다 그때 또 증용 (죠오ㅡ요)라 해서 군대갈 나이지난 사람을 탄광 공장 그들이 필요한 곳에 증용이라는 이름으로 필요한 곳에 용역에 사용 되었다.그리고 또 보국대(호오코쿠 다이) 라해서 가까운 비행장 건설이나 항구에 화물 하역이나에 사용 되었다 나도 15세 소년 때 비행장 건설장에서 아버지 대신 칙 구루마 를 끌어보았고 부산 부두에서 소금 배에서 소금도 파 올려보았다. 그것이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역사다. 정신대가 강제가 아니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그때 누구나 다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시대 병신총각이 씨가 말랐다. 그때 가난에 못 이겨서 딸을 판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학교 학생들 에게도 정신대로 가라고 선생이 권유하기도 했다 나는 내 고종 누이동생이 여중에 다닐 때라 들어서 안다. 전쟁이 끝난 후 고국에 못 돌아오고 그냥 외국에서 사는 사람을 나는 안다. 캄보디아 에도 한사람 있었다. 나라 없는 설음은 그런 것이고 전쟁이 나면 여자들은 수난을 당한다. 그것이 어느 시대도 다 있었다. 그리고 우리 의 놋 그릇 밥주발도 요강 수져 세숫대야도 다 가져갔다 거기에다 성 까지 바꾸어서 나는 (아라카와) 로 개명했다 말은 국어 상용이라 해서 일본 말만 하계 했다.


8.15 해방

  해방이 되니 왜놈 죽인다고 낮 아며 광이를 들고 만세 만세 부르면서 왜놈 찾아다니고. 해방이 되니 전부가 무법천지가 되었다 어디서 나왔는지 시장 에 쌀이며 곡식이 쌰이고 그 귀한 고무신 운동화 옥양목 없는 것이 없이 시장에 나오고 창고를 부수고 힘 센 사람은 쌀 두가마를 지고 약한 사람은 한가마를 지고 가고 사천 비행장에 앉아있는 비행기를 도끼로 부수어서 짊어지고 (냄비 기타 부엌용 )으로 만들었음 그래도 일본 군인은 보고도 아무 말 없고 방공호를 부수어서 거기 기둥이며 여러 가지 목재를 짊어지고 가고 완장 찬 치안대가 설치고 논 준다 밭 준다 지주는 농민에 피 빨았다 공산당이다 남노당 이다 대동 청년단이다 우익이다 좌익이다 하면서 서로 반목하고 신탁이다 반탁이다 연일 데모가 나고 누구 말이 옳은지 정신을 못 차리고 모두 공짜로 준다니 공산당이 좋은 줄 알고 공산당에 가입했다. 거기에다 머슴들이 완장차고 설치고 그러던 차에 미군이 들어오고 질서가 잡히고 공산당원들은 삐라를 붙이고 아지트 에 모이라하고 공산당 선전에 여염이 없었다.


  사람의 운명은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운명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한 사람을 잘못 만나 하마터면 천당에 갈 뻔 했다 한 동리 유 씨라는 젊은이가 나보고 공산당 서적을 주면서 읽어보라고 했다. 그래서 그 책 을 읽어보니 공산주의 사회야 말로 지상천국 이였다 그리고 아지트에 모여라 삐라를 붙쳐라 하지만 나느 내 생활은 목수일 해서 부모님을 도우는 것이 바뿐데 그럴 시간은 없었다 그러나 옵실 에 지주 집에 반동분자 처단하려 간다고 밤에 가잔다. 나는 원래 간이 작고 남의 보리나 밀 한번도 꾸어 먹어본 일이 없는 쳐지라 저이들이 죽창 들고 가는데 같이 가잔다고 갈수 없어 조금 가다 뒤돌아왔다. 나는 할머니에게 항상 술 먹지 마라 노름하지 말라 정직하계 살라고 늘 말씀 하셔서 절대로 양심 없는 일을 안하는 사람인지라 그것으로 나는 내 평생 술은 입에도 안대고 노름이나 화투도 치지 않았다 다만 담배는 삼척 화력 발전소 공사를 도급 맡아서 할때 교제용으로 피웠다가 끊었다. 나는 집이 가난해서 일을 해서 아버지를 도와야 했기 때문에 일하기도 바뿐데 그런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 동리저 동리로 일 찾아 이동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공산당 맞 도 못보고 그 일로 인해 공산당에 부역한자로 몰려 보도연맹에 가입하면 용서해 준다고 꼬시는 바람에 한일도 없이 생각 없이 보도연맹에 가입했다 그일 로 생명을 잃을 뻔했다 6.25가 터지고 얼마 후에 멋모르고 보도연맹 에 가입한사람들은 면 다위로 한날 한시에 모두 재판 없이 불콩 잡수시고 천당갔다 .내 친구 머리 좋아 6년 내내 급장을 하던 옥 민식 도 사범학교 다니다가 천당 갔다. 나는 장전 장 안식 씨 새집에 문을 짜려 가고 집에 없었다. 일을 하고 있는데 아버님이 지서에서 보도연맹 원 을 전부 소집 한다고 나보고 오라한다고 찾아오셨다 그때 장 안식 씨가 가면 안 된다고 못 가계 말렸다. 그분은 사천 면 의회 회장이라 알고 있었던 것 같아 내가 목수 일을 하지 않았으면 생명을 잃었으리라 생각한다. 한사람의 잘 못 새긴 사람으로 생명을 잃을 뻔 했다가 한 사람을 잘 만나 생명을 구 할 수 있는 운명 을 나는 겪었다 사람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에서 인생이 결정된다. 나는 후일 생명의 은인 그분을 아버지 라고 불렀다.


  그리고 며칠 후 북한군이 물밀듯 밀고 내려왔다. 우리 외삼촌은 그 당시 사천군수 엿다. 외가집 이 걱정되어 찾아갔더니 그때 벌써 하동까지 북한군이 내려와서 포 소리가 궝 궝 하고 들렸다 외삼촌은 내무과장이하 군 청 직원을 전부 군용 트럭에 실고 부산으로 피난 갈려고 준비중이여서 나를 보고 외숙모와 동생들을 맡아달라는 것이었다. 외가 잡은 군수 관사에 살았고 우리는 저녁 솟에 지어놓은 저녁밥도 먹지 못하고 시골 우리 집으로 간단한 보자기만 가지고 밤길을 재촉했다. 그때 내무과장 가족은 갈 때 가 없어 우왕좌왕 하다가 우리 집에 같이 간다고 따라오다가 중도에서 다른 대로 간다고 혜여 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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