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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南 박상수(apark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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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독자들에게 (# 1 )
08/23/20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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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글을 읽어주는 고마운 독자들에게 (# 1 )


  나의 글을 읽어 주는 고마운 독자들에게 나의 고달팠든 인생살이를 말 하고 왜 글의 밭침이 들였는지 내가 왜 글을 쓰는지 를 알리고 양해를 구 하고 저 한다 그리고 우리 한국사람 모두 건강하고 성공하기를 빈다 필자의 고단하고 파란 만장의 인생 역경은 그야말로 하나의 인생드라마 이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나의인생을 보면 지금의 젊은이들이 조상들이 그 시대에 어떻게 살았고 얼마나 어려웠나를 안다 밥을 굶어 보지안고 산 여러분은 가난이라는 것을 모른다. 참 옛날은 모두가 가난했다 그때는 인사가 아침 잡수셌습니까? 저녁 잡수셌읍니까 ? 가 만나는 사람지금 안녕하십니까? 였다 .


  나의 할아버지가 포수 였고 무명의 애국자 이시다 이름 있는 몆몆 은 역사에 남아 현충일에 우리국민의 감사의 묵념이라도 밭지만 고생을 같이한 동지들은 이름조차 없다 그러나 그분들의 가족 들의 고통은 말할수 없다 누가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다 고마워 하는 사람도 없이 그 고통은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가 똥장군을 지시고 농사를 지었으니 가난할 수 밖에 가난이라는 명예는 대물림해서 계속 된다.우리는 할아버지 덕택으로 나의 아버지형제들은 누구도 글을 모른다. 그런 집안에서 태여난 나는 내 인생이 고단할 수밖에 없다


  나는 무식하다. 내 학벌이 보통학교 6년 공부와 대학원 1년이 전부다. 왜냐 하면 집이 가난해서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은 건너뛰고 내가 회사를 할때 박정희 대통령이 각 기업제 대표와 군의 고급장교들을 고위직이나 또 적재적소에 안치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때 나와 6관군 사령관도 같이 공부했다. 어린 시절 상급학교는 못가고 직업도 없었다. 면사무소 급사나 이발소 견습생이나 하면 우리 나이에 출세한 셈이다 뭐 특별히 할 일이 없어 지계지고 산에 나무나 해서 밥이나 지어먹고 농사일 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한가하지 않았다 아버지 대신 보국대에 가서 사천비행장 공사에 칙구루마 (흙나르는 차) 를 밀면서 강냉이 밥먹고 우막 같은 막사에 볏집 자리에서 잠자고 (고라.칙쇼.) 하고 욕 들어가면서 일하기도 하고 부산부두에 소금 배에 하역도 해보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직업이 없어 가구점에 취직해서 1년 정도 목수일 을 배웟다 그 다음에 문 짜는 공장에 취직해서 문짜는 기술을 배워 이 동리 저 동리로 아버지가 공구함을 져다 주시면 그 집에서 16.살 어린 목수가 열심히 문을 짯다 밤이면 동리어귀 대밭그늘에서 부모님 동생들 보고 싶허 소리 내여 실컨 울었다 그리고 머슴방에서 운클이고 새우잠자고 아침이면 다시 일어나서 열심히 일했다 옷에는 이가 너무 많아 화장실에 가서 못을 벗어 털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이를 모를것이다 그 시대는 밤에 하루가에 식구끼리 둘러앉아 화루 불에 넣고 이가 톡 튀면 모두 웃고 좋아했던 시대다. 품 싻은 우리집에 생활비에 충당 되였다.


  해방후 나는 우리집 에다 목공소를 차리고 사천 비행장 책상 서류함 등 입찰을 해서 기술자 목수를 시켜서 가구를 만들어 납품을 했다. 처음에는 자금이 없어 돈 가진 사람에게 적은 돈을 밀려서 안 쓰고 약속한 날짜에 이자와 같이 같다 갚았다 그다음은 좀 더 많은 돈을 그리고 그다음에는 해서 자금을 만들어 입찰한 물품을 만들어서 납품했다. 나는 가난이 싫다 나는 무슨일이나 남이보거나 말거나 언제나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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