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ark1122
雲南 박상수(apark1122)
Georgia 블로거

Blog Open 09.01.2010

전체     123413
오늘방문     25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0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친구 새글
등록된 친구가 없습니다.
  달력
 
가보지 않는 인생길 길 어느 길이 옳은가 ?
09/27/2019 09:44
조회  448   |  추천   12   |  스크랩   0
IP 73.xx.xx.175

가보지 않는 인생길 길 어느 길이 옳은가 ?


  인생길은 누구나 가보지 않은 길이다 쌍갈래 길에서 어느 길을 가야할지 한쪽 길은 성공의길 한쪽 길은 실패에 길이다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결정은 참 중요한 것이다. 이 결정 하나가 전 인생을 행복하계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한다. 독자 여러분은 내가 쓴 글을 읽고 독자라면 어떤 길을 가겠는가 생각 해 보면 필자의 긴 인생길에 잘 못 간 길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고 독자의 경우라면 어떤 결정을 할 때 바른길을 선택해서 성공하기 바래며 제발 성공하기를 마음에서 나의 긴 인생길을 여기 적었고 수 많은 고비와 평탄하지 않은 많은 나의 인생길을 들어내고 적었고 독자여러분은 나 인생길의 잘 못 된 점을 알고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한국에서 나는 어려운 가난을 탈피 하는랴 많은 노력을 하였고 가난이라는 멍에를 벗기 위해 도전 정신으로 많은 직업을 가지계 되었다, 그래서 가난이라는 멍예를 버섯고 많치 않은 교육이지만 남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거기에는 교육이 없기 때문에 단 한 시간도 남의 밑에서 종업원 일을 해 본 일이없다. 교육이 없으면 없는 대로 내가할수 있는 일을 찾았다 교육은 평생 써먹는 보물이다 그러나 불행하계도 가난한 집안에 태어나면 어쩔 수 없이 내 노력으로 가난을 뒤 업어야 한다 가난이라는 보물은 쓰기에 따라서 많은 것을 가르쳐 주는 스승이다 쓰기에 따라 보물이 될수 있고 비참한 결과도 될수 있다 가난을 굴복 할려면 위선 정직과 인내와 도전 정산으로 무장하여 내 노력으로 그 고개를 넘어야한다. 가난의 스승은 그 어려운 고비를 넘도록 지혜를 주고 인내를 주고 피눈물과 땀을 요구한다. 승리는 그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고난도 지나고 나면 교육을 요구한다 여러분이 교육받은 지식을 써야 더높은 곳으로 올라갈수있다 교육이 없으면 한계에 부딛친다 그러니 어릴때 교육이 필요 한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거기에 문제가 있다. 나는 한국에서 제일 먼져 생긴 종합소득레를 낸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 양심적이고 어릴 때 못 배운 교육이 나로 하여금 절망의 낭 떨아지로 나 자신의 한 번의 실수가 패망에 길을 가계 되었다. 내기 한 한번의 결정에 잘못으로 평생 고생을 하계 되였다 여러분은 부모님을 잘 뫼서야 한다 그래야 복 을 받는다. 나는 가난해서 아버지대신 15세 어린나이에 아버지 대신 보국대 가서 부산부두에 소곰 하역도 해보고 비행장 clr 구루마도 끌어보고 했지만 아버지 는 농사를 지으셔야 하기때문에 내가 아버지대신 한몫을 할수 있다는 것이 기뻣을 뿌이다 그런 고난도 한번도 싫다 소리를 해본 적이 없다 가난했지만 항상 아버님을 사랑했고 아버님의 인자하심을 항상 존경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심으로 해서 내 인생이 달라졌다 그 이유는 아버님이 조금만 더 오래 살아 계셨더라면 내 가 장남이라 아버님을 두고 머나먼 미국땅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난할 때 내가 일해서 내 가족 안해 아이들 과 같이 한칸방 셋방에 살면서 10살 아래 큰동생 대학공부 시켜 서서 미국 보내고 그다음은 내사업을 하면서 여동생은 대학 시험에 떨어져서 고여 만하고 막내 남동생은 대학 까지시겠다.이런 짓은 독자들이보기에 어덯게 생각 하는가? 옛날에는 오늘날과 달리 형이란 책임이 대단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보짓이다. 내 자신이 공부해야지 동생은 동생이고 나 자신이 공부했으면 평생 공부못해 외국에서 한국말 만 쓰고 54년을 벙어리 흉내 내면서 살지 안았을 것이다 왜 미국을 와 ? 한국에서 한우목장 160.000편 화성 땅33.000평 영등포 구청뒤 땅 189평 장충동 집 세면트 대리점 대한전선 대리점 식당 한식 일식 중국식 등 하면서 내말하고 활개펴고 살았을 것이다.


  내가 서흥전기 를 할때 70년대 초 미국에 동생이 하도 잘산다고 자기들 사는것을 보려 오라는 것이 였다 나는 너무도 동생을 사랑했기에 그 동생의 성공이 내 성공이라 생각하고 공부 시켔다 그래서 미국 보냈느데 그 애가 오라해서 그때는 보통 미국에 갈수가 없던 시절 나는 무역회사를 하던 때라 미국에 갈수 있어 미국 가면서 일본에 들려 오오사카 처남에게 일본의 다이야 공장을 한국으로 유치하고 미국에 갔다 미국 동생이 방가워 함은 말할것도 없이 오랬 만에 만나서 그들의 생활을 보니 동생은 낮에 MCB 화학공장에 나가 일하고 제수는 밤에 병원에 나가서 일 하는 간호원 생활을 하면서 딸 아이를 낮에는 제수가 밤에는 동생이 돌보는 안타까운 형편을 보면서 내가 동생보고 직장생활을 하지 말고 네가 가술을 얼마나 배웠느냐 하니 기술은 많이 배웠다고 하기에 네가 화학공장을 하면 어떠냐고 물어 보았더니 형님 돈이 어듸있음니까? 하고 뒤 물어서 그때 직장생활해서 공장 처려 사업을 한다는 것은 꿈이였다 내가 얼마가 드느냐? 고했더니 얼마가 있으면 시작 해볼수 있다기에 그르면 내가 주마하고 한국회사에 전화를 걸어 얼마를 보내라 했더니 겨우 10/1 정도에 돈이 왔다 동생부부가 실망했다 그래서 내가 한국나와서 붙어주었다. 그때 그 돈이 내가 그 무렵에 내가 매입한 영등포 구청뒤 땅189평 값이 였다.


  그후1975년 1월 아버님이 돌아가셧다. 그때 만약 아버님이 살아 계셨더라면 나는 미국에 오지 안았을 것이다 그후 동생이 미국 오라는 편지가욌다 하늘같이 뫼실터이니 미국 오란다 말타고 골프치고 편안한 여생을 즐기시란다 지금 까지 형님이 수고 하셨으니 이제부터는 제 차례라는 간곡한 편지에 너무깊허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친구들이 믿지 말라는 말에 내 동생은 다르다고 큰 소리쳤다. 그러면서 행복을 꿈꾸며 내가 동생에게 한일이 기쁨 되여 돌아오는 줄 알았다 그때 심중하지 못한 네 결정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동생의 그 성의가 진실이 였겠지만 그가 장가들어 가족이 있다는 것을 생각 못 했다.네 제수는 독일 간호원을 갓다가 미국와서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모르기는 하지만 제수가 나의 재산을 아는지라 공장에 도움이 될까해서 그랬는지는 알길은 없다 그렇나 미국행은 네 일생의 큰 실수였다.


  인생은 누구도 믿지 말아야 한다 내가 한일 때문에 그공을 뒤돌아 받을 생각은 후일 비극을 만든다 어떻한 희생도 그것은 그것으로 끝나고 의지하거나 바라서는 안 된다. 그것을 몰랐다 그 한번의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는 안연을 만들었다. 시어머니와 메누리에 뜻하지 안은 악연도 있지만 제수와 나는 원래 남남이다. 아무리 내 동생이 형에게 잘 할려해도 제수가 딸아 준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노력 하여서 될수 있는 일이 아니다. 특히 어떤 이해관계가 있을 때는 전년 다르다 내가 내 동생에게 베푼 사랑을 그가 알리도 없고 또 안다하여도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을수 없다 그러면 가정에 불란이 난다 어느 쪽이 이기겠는가? 내가 공장을 하라고 준 돈은 그것으로 끝나야 했다 또 나역시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지장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누구에게도 베풀면 그것으로 끝나야 한다 의지하거나 바랜 다면 거기에는 비극이 온다. 내것 먹고 내가 살면 그것으로 족하다. 다만 동생의 성공만이 기쁨으로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사람은 실수를 한다. 받침 없는 깊은 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누구나 희생하지 말아야 한다 희생하고 섭섭함을 맛보고 잘못하면 평생 한으로 살아야 한다 보상은 한으로 받는다 자기가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 동생도 세월 가면 남이 된다 이것이 인생이다 . 계속

이 블로그의 인기글

가보지 않는 인생길 길 어느 길이 옳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