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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체류 글] 몽골 캠퍼스, 한자 번역 강의 마무리 단계로(2017. 12. 01)
12/01/2017 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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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체류 글] 몽골 캠퍼스, 한자 번역 강의 마무리 단계로(2017. 12. 01)


12월이 시작됐습니다. 12월 1일 금요일, 오전에 ‘한자 번역 과목’ 강의가 있어. 강의실에 들어서자 마자, 저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이란 낱말을 칠판에 썼습니다. 왜냐. 연말이면 한국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4자성어이기 때문에 꼭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제자 베. 아니르마 양(B. Anirmaa)이, 놀란 토끼 눈을 뜨더니, 한국어로 또박또박 “교수님, 저희들 학기말 시험 잘 보라고, 오늘 저희들에게, 그 동안 가르쳐 주신 한자 정리해 주신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합니다.

저는 그저 배시시 웃었습니다. 아니르마 양의 이 발언이 “무슨 의미인가?” 하면, “우리가 모르는 한자를 왜 또 쓰셔서 우리를 더욱 어렵게 만드십니까?” 라는 말을 돌려서 말한 겁니다.

 


하여, 저는 즉각, 아니르마 양을 칠판 앞으로 불러 세워 '송구영신'이라는 한자 4자성어를 쓰게 하였습니다. 예전에는 한자로 그림을 그리는 듯 하더니, 이젠 제법 한자가 글씨 티가 나더군요. 그야말로, 감개무량, 아니지, 순 우리말로 쓰자면, 흐뭇했습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한국학과 4학년 수석 실력을 갖춘 과묵한 아니르마 양이 이렇게 나올 정도면, 다른 학생들이 느끼는 스트레스 강도는 상상 이상으로 극심했을 터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한자 강의에서는 오로지 저 한 사람만이 북 치고 장구 치는 절대 지존이기 때문이지요. 왜냐. 몽골 국민들이 일상에서 접하는 문자 매체가, 한자는커녕, 오로지 러시아 키릴 문자로 쓰인 몽골어 신문 기사나, 책자가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몽골 현지에서는 우리나라처럼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 위에 앉혀 놓고 한자를 가르친다거나, 모르는 한자를 아버지나 유식한 형한테 물어 본다거나 하는 상황이 전혀 안 돼 있습니다. 물론, 중국 영토 내에 존재하는 몽골 민족 구성원들로서는 전혀 다른 환경이겠지만서도요.

상황이 이러하므로, 애제자들이 오로지 저 하나 바라보고 한자를 배우는 판이고, 더욱이 우리나라 한글학회와 국립국어원이 한자어조차 고유어로 바꿔 쓰자고 독려에 나선 마당인데, 한글학회와 국립국어원 방침을 요지부동 굳건히 고수하고 있는 저라고 신나는 마음이겠습니까? 하지만, 한국학과 한자 강의가 대학 교과 과정에 엄연히 들어가 있고, 이 강의가 제게 배당된 이상 저로서는 절대로 어영부영(=뚜렷하거나 적극적인 의지가 없이 되는대로 행동하는 모양)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여, 저는 첫강의 시간에 아예 벼락을 쳤습니다. “너네 조상 몽골 제국 사람들이 중국어로 역사책을 썼는데, 너희들이 원나라 후예라면서 한자를 몰라서야 되겠느냐? 예컨대, ‘東西南北'(동서남북)이라고 쓰면, 한국 사람들은 물론이고, 북한 사람들-중국 사람들-일본 사람들은 대다수가 무슨 뜻인지를 이해한다. 물론, 중국에서는 둥시난베이(Dongxinanbei), 일본에서는 도자이난보쿠(とうざいなんぼく)로 읽긴 하나, 그건 차후 문제다! 같은 동북 아시아 국가 국민들인데, 너희들만 몰라서 뒤처져서야 되겠느냐? 앙?”

 


일단 그렇게 휘어 잡아 놓고, 두 번째 강의 때부터는 격려하고 극찬해 주었습니다. “그렇지, 그렇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위에서 아래로! 그렇지! 순서대로! 그런데, 야야야! 삼수변은 맨 나중에 쓰는 거야!” 하지만, 몽골에서 쓰이는 키릴 문자 35개의 자모만 익히면 누구든지  쓰고 읽을 수 있는 몽골어와는 달리,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늘 새롭게 접근해야 하는 이 한자는, 몽골 애제자들서는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보였을 겁니다.

 


그렇게 한 학기 동안 이끌어 온 한자 강의가 이제 마무리 단계에 접어 듭니다. 이 애제자들은 어느 순간 분명히 알 게 될 겁니다. "알면(즈지=知則=지즉)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웨이전아이=爲眞愛=위진애), 사랑하게 되면(아이지=愛則=애즉) 진정으로 보게 된다(웨이전칸=爲眞看=위진간)!"라는 문장의 참뜻을 말입니다.

 


아무쪼록, 몽골 애제자들이 한 학기 동안이나마 갈고 닦은 실력으로, 한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인접국 중국이나 바다 건너 일본을 방문하는 경우에, 조금이라도 편하게 적응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바야흐로, 2017년의 끝, 12월이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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