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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대한제국)이 망한 직접적인 원인.
05/21/2020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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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72.xx.xx.192

근대사에 무지(無知)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고종이 조선왕조의 마지막 임금이란것 쯤은 안다.


그럼 고종은 왜 대한제국을 망쳐놨나?


일부 개 조또 모르는 학자들은 

고종을 개명군주로 둔갑 시켜서

그가 개혁을 열심히 추진 하려고 했으나

일본의 방해로 좌절 되었다 라고 논문을 써서

사실을 왜곡 호도하고 있는데 이야말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다.


대한제국(조선)이 망한 직접적인 원인은

대원군 - 민비 - 고종 요 세년놈의 알력과

임금이라고 하는 고종은 지금의 문재인 처럼

상황판단을 제대로 못하고 멍청이 등신짓만 하다가

결국은 나라를 일본에게 빼았긴 것이다. 


대원군의 아들이 고종이고

고종의 마눌이 민비 (명성황후)다. 

즉, 민비는 대원군의 며느리란 말이다. 


명성황후를 민비(閔妃) 라고 하는 이유는

그 여자의 성(姓)씨가 민(여흥민氏) 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것까지 말해 줘야 알아듣나 ? 


고종이 임금이 된후

국사(國事)는 민비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다.

고종은 허깨비였고, 

민비의 시아버지인 대원군과는

사사건건 마찰이 있었다. 


특히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약소국가가

줄이라도 잘 서야 하는데

민비는 거꾸로 당시 패권 국가인 영국이 아니라

비 주류세력인 러시아와 동맹을 맺고 1차 수교(밀약)를 하고

다시 2차 수교 하다가 청(중국)으로 부터 고종이

폐위를 당할뻔 한 일도 있었다. 

(상세한 내용은 생략한다)


요즘 문재인이 반미와 친중을 하고 있는 모습과 

어찌 그리 닮았는지 모르겠다.


1880 년대에 청일(지금의 중국과 일본)전쟁이 끝난후

러시아가 한반도 쪽으로 남진(南進)을 계속하자

영국을 대신하여 일본이 러시아와 대립하는 구조가 되었다. 


당시 일본이 러시아의 요구로 점령하고 있었던 요동반도를

반환하는걸 보고 민비와 고종은 다시 러시아 쪽으로 붙으며

일본을 내 쳤다. 


그때의 조선반도는 일본 중국(청) 러시아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홍어좆이 되어 있을때다.


화가 난 일본은 대원군을 꼬득여

민비를 견제 하려고 했는데, 이때 쇄국정책을 폈던

대원군과 러시아 편이었던 며느리 민비의 알력이 

가장 심했다고 볼수있고,

민비는 러시아를 끌여들여서 청(중국)의 압제에서 벗어 나려고 했다. 


이렇게 설명을 해줘도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나? 


한반도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일본과 러시아가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는데

일본은 러시아의 연결 고리인 민비가 눈에 가시였다. 

그래서 칼잡이 낭인들을 궁중으로 보내서 민비를 살해했다. 


일본이 민비 시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겁에 질린 고종은

1896년도 2월 11일 새벽에 궁녀 복장으로 위장을 하고

러시아 군인들의 호위를 받아 서울 정동에 있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 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는 친일 편에 서 있었던 각료들을 처단하라고 

엄명을 내렸고, 총리대신 김홍집을 비롯한 수명이 처단되었다.

나머지는 일본으로 탈출해서 망명함.


이후 러시아는 만주를 침투하자는 세력에 밀려

한반도 점령의 욕심을 버리다 싶이 했고

일본에게 조선 반도를 반반씩 갈라먹자라고 제의를 했는데

이때 일본이 러시아의 요구를 받아 드렸다면

한반도는 1900년도에 남북이 갈라져서 러시아와 일본의

보호령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청일(중국과 일본) 전쟁이 끝날 1895 년 부터

러일(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이 시작될 1904년 사이 10년동안

조선은 그야말로 국가 개혁을 통해서 근대화의 길을 모색할수 

있었는데도,

중국,일본, 미국, 러시아의 외세를 끌여들여서 독립을 시도 

하려고 10년동안 우왕좌왕 허송세월을 보낸것이다.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하자 일본은 자연 스럽게

빌빌이 배삼룡 같았던 조선(대한제국) 을 무력이 아닌 엄포 만으로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집어 삼키면서 자신들의 보호국으로

만들수가 있었고

대륙진출 야망속에 태평양 전쟁을 이르키면서

한반도를 교두보로 이용할수가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대한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것은

전적으로 민비의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빌빌이 고종의 책임이라고 할수있다.


요즘도 고종처럼 엄처시하에서 빌빌하는 남정네들이

한둘이 아니다. 

대한민국이 여인천하가 된것도

고종같은 비잉신 남정네들 때문이다. 


고종은 러일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를 하자

일본 공사에게 '조선 왕실을 보호해 달라' 라고 요구를 했고,

1894년 청일 전쟁의 감운이 돌자 미국 영사관에 보호 요청을 했고

민비 시해 이후에는 러시아 공사관으로 탈출을 했고,

러일 전쟁의 기운이 돌때는 영국 영사관에 왕실 보호 요청을 했다.


이게 소위 왕이라는 작자의 행태다.


일본수상 이또 히로부미는

'조선의 독립은 현실성이 없으며, 주변의 강력한 국가에 병합 하든가

보호 아래 두어야 할것' 이라고 말했다.


안중근은 이또 히로부미를 할빈 역에서 암살 하므로서

오히려 한일 합방의 시기를 앞당긴 결과만 낳았지

안중근으로 인해서 조선의 독립에 보탬이 된건 하나도 없다. 


요컨데 고종은 개몽군주가 아닌 망국의 암주 라고 해야 옳다.


러시아와 일본의 전쟁에서 만약에 러시아가 승리를 했다면

한반도 조선은 러시아에게 먹혔을 것이고

지금 쯤 대한민국은 북한처럼 공산국가가 되어

자유를 속박당하고

인권을 유린 당하며

초근목피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고종이 개몽군주라고 ????

일본의 조선 침략(?)이 없었다면 

조선은 더욱 근대화 발전의 길을 걸었을 것이라고 ????


박정희의 군사 쿠테타가 없었다면

장면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의해서

나라는 더욱 발전했을거라고 홍어좆까는 소리를 하는것과

똑 같다.


좀 똑바로 냉정한 가슴으로

조선말기의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고

일본의 식민지가 된 경위를 정확히 판단 했으면 좋겠다.


위의 글을 읽어 보고도

내가 무슨말을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메바 대가리를 가진 자라고 할수밖에 없다.


내 말이 틀렸나 ?



현마


첨언 : 좌아빨들이 만든 영화 '명성황후 민비' 라는 영화에도

위와같은 사실을 하나도 제대로 반영하지 않고 있다.

조선조를 미화 하기에만 바쁜것이다. 

이러니 국민들이 조선조에 대해서 뭘 제대로 알기나 하겠나 말이다. 

------------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그러나 당시 상황을 이해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한다.


예를들면, 1961년도 5월 16일 박정희가 군사 쿠테타를 이르켰는데

이걸 두고 '민주헌정 질서파괴' 를 했다고 좌아빨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있다.


'민주헌정 질서 파괴' 란건 지금의 잣대로 쿠테타를 보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자유민주국가' 를 건설 했지만, 이게 어디 하루 아침에 자유민주가

이루어 지는가 ? 


쿠테타 당시만 해도 민주가 뭔지 헌정질서가 뭔지 국민들은 감도 잡지

못하고 있을때 였다. 또 자유민주 라는것도 배부를때 하는 소리지

배가 고픈데 자유 부터 찾는 사람은 없다. 


아프리카 식인종 집단에 가서 '민주주의' 외치면 먹혀 들어가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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