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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후 조선인은 어떤 취급을 받았나?
05/21/2020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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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후 75년인 지금

일본에 대한 반일감정은 식을줄 모른다.

 

그런데 반일감정이란게

대부분 좌아빨들의

터무니 없는 선동에 의해서 이루어 것이지

국민들 스스로가 일본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다음에

스스로 자가 발생된 반일감정은 아니란 점이다.

 

여기서 역사적 고증을 들추어 가며

이야기를 할수는 없지만

그래도 구렁이 담넘어 가는 식의 상식이라도

있어야 일본 식민지 시대를 조금은

이해할수가 있을 것이다.

 

1910 8 29 한일 합방 조약은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사이에서 이루어 졌다.

 

이전 1905년도 11월에 이완용을 포함한

을사오적이라고 일컷는 5사람이 고종의 묵인하에

을사조약에 서명을 했는데

당시 조선의 총괄 통치 책임자로 있었던

이또 히로부미가 고종과 내신들을 회유 협박하고

얻어낸 강제 조약이었다.

 

곁다리로 한가지 알아둬야 할것은 바로

이또 히로부미의 마지막 운명에 대해서다.

 

이또 히로부미(이등박문 - 伊藤博文)

러시아 재무장관 과의 회담차

하얼빈으로 간게 19091026 9시경인데

열차 안에서 회담을 마치고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기

위해 하얼빈 역 플랫폼에 하차를 했다.

 

러시아 군대의 사열을 받은후

열차로 돌아 가던중에

7발의 실탄을 장전한 반 자동권총 M1900을 소지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안중근이

이또에게 3발을 명중 시켰고

나머지 4발중 3발은 옆에서 수행하고 있었던 비서관과

일본 총영사에게 맞혔다.

안중근은 그야말로 명사수 였다.

 

급히 병원으로 이송된 이또는 과다출혈로 11시쯤

목숨을 거두었고,

안중근은 그자리에서 러시아 공안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 되었다.

 

이후 안중근은 일본제국으로 넘겨져서

1910326일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 되었다.

(위키백과에서 요점만 인용함.)

 

한일합방 되기 7개월 전의 일이다.

 

이또가 죽기 전에 자기를 저격한 사람이

조선인이란걸 알고 바보같은 자식이라고

했다는 소문이 있다.

 

이또 말대로 안중근은 바보같은 자식이었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이또 저격으로 인해 오히려

한일합방은 급물쌀을 탄듯이 그해 1029일에

조약이 체결 됬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후

조선인들의 삶은 어땠을까?

 

일본은 조선을 식민지화 한 후에

많은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이주를 했다.


일본은 조선을

지금의 미국령인 괌(Guam) 이나

푸에토리코(Puerto Rico) 처럼 만들기 위한

작전을 폈다.

 

즉 조선을 일본의 한 주()처럼 만들려고

했단 말씀.

 

당시 조선인들은 무식해 빠져서

85% 이상이 문맹자 였고

조선인이라는 민족의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도 그럴것이

왕조시대를 살아온 일부 양반계급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천민들과 노비들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조선인들의 양반상놈의 계급사회를

완전히 깨부수고

조선인을 일본인으로 만들기 위한 근대화 교육을 실시했다.

 

결코 조선인을 조선땅에서 몰아내고

일본인들의 천국으로 만들려고 했던게 아니었다는 말씀이다.

 

조선땅에 이주해온 근대화 교육을 받은 일본인과

문맹자 천지였던 조선인의 차별은 당연했다.

 

따라서

어디를 가나 조선인은 2등 국민 취급을 당했다.

모든 법령과 사회적인 규칙등은 일본것을 그대로

들여와서 조선인의 일본화 교육에 사용 되었다.

 

조선인은 이에 항거하기는 커녕

일본의 지시에 순수히 응했다.

 

그래도 글깨나 안다는 극 소수의 양반들이

일본의 식민지화에 반발해서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을 하기도 했지만

이는 숫자적으로 볼때 조족지혈이었다.


1919년도에 일어난 31 독립운동 이란것도 

작년 10월달에 목사 전광훈의 지휘하에

광화문에서 서울역까지 수십만의 태극기 부대들이

모여서 시위를 벌렸지만

문재인 정부는 눈도 깜짝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는 흐지부지 된것과 유사하리 만큼

실속이 없었던 운동이었다. 


그러한 와중에 일본은

현대식 건물을 세우고, 학교와 병원을 지었다.

농토를 개량해서 수확량을 늘이는 정책도

함께 폈다.

 

호적이 없었던 조선인에게 일본 호적을

만들어 주었는데 이게 바로 소위 창시개명의

시작이었다.

 

학교에서 일본어로 교육은 되었지만

조선어 말살 정책을 쓴건 아니었기 때문에

조선인 끼리의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렇다고

모든 조선인이 일본교육을 받은건 아니었다.

지원자만 받았다.  강제 교육은 아니었다.


(당시 일본학교에 들어가서 교육을 받은 조선인은

약 30% 정도였다고 함)

 

지금 나이 6070세대 부모들은

대부분 일제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 이지만

일본어를 전혀 못하는 사람도 많고

한글도 까막눈인 경우가 많다.

 

내 아버지는 일본교육을 받아서 한국말 보다

일본어가 더 유창했지만

내 어머니는 일본어를 전혀 할줄 몰랐다.

 

이것만 봐도

강제교육은 아니었다는 증거가 된다.

 

그래도

좀 머리가 깨어나 있었다는 조선인들은

일본교육을 열심히 받아서 출세하는게

꿈이었다.

이등 국민 취급을 받는게 무엇보다 싫었던 거다.

 

좀 더 낳은 생활을 꿈꾸며 많은 남자들이

일본으로 노역생활을 하러 들어 가기도 했다.

 

무엇보다 존심 상하는 것은

조선인에게 참정권이 없었다는 거다.

 

그래서 수십대의 경쟁율을 뚫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서 일본군대에

입대했다.

 

일본 공무원과 군대 입대는 조선인에게는

더 없는 출세의 길이었지만

크나큰 높은 벽이었던 셈이다.

조선인이란 차별 때문이 아니라,

일본 정부에서 원하는 자격 기준에 미달되었기 때문.

 

그러한 높은벽을 넘어 서야만

조선인이 참정권을 얻을수 있고

월급도 일본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깨어난 조선인들은 참정권을 얻기위해

일본정부에 수많은 청원을 했는데 잘 받아 드려지지가 않았다.

 

이는 지금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고등고시 패스를 해야만 판검사가 될수 있고

대기업 시험에 수백대의 경쟁율을 뚫고 합격을 해야만

신입사원에 채용되는것과 하등의 다를것이 없었다.

 

일본교육도 마다하고

그냥 집에서 농사나 짓고 있었던 조선인들은

일본식민지에 대한 실감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이는 마치

박정희 쿠테타후 개발독재를 쓰면서도

일반 서민들은 독재에 대한 실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던 것과 마찬가지다.


반일 하는 일부 국민들이 알고 있는것 처럼

일본이 총칼로 위협하면서 조선인을 공포로 몰아넣는

정치를 했다는건 사실과는 아주 다른 거짓말임에 불과하다.

 

한일합방후 일본은 대륙으로의 진출을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대표적인게 바로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필두로 태평양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이판에 조선도 함께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고

지금 문제가 되고있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가

이때부터 터진것이다.

 

한일관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편에 계속 하겠다.


위 글의 내용중 일부는 사실과 상반되는 면도 있을줄

알지만, 그냥 포괄적으로 쓴것이니 이해하기 바란다.



현마


태평양 전쟁때 일본이 중국 난징을 점령하고 나서

대 학살이 진행 되었는데, 그때 일본군이 학살한

중국인이 6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만약에 일본 식민지 시절에

일본군이 서울이나 대구에서 60만명을 학살 했다면

지금 한국은 어떤 자세로 일본을 대할까?


난징 대 학살이 진행된 배경에는

일본과 중국이 무력 충돌을 했기 때문이고

조선이 일본 식민지가 될때는

무력충돌이 없었기 때문에 학살이 자행되지 않았을 거라고

추론 할수 있다. 


난징 대 학살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지금 한국처럼 끝도없는 반일 캠페인을

벌리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뭘까? 궁금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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