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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는 나의 목자 ( 시편 23:1-6 )
12/28/201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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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9

 

                                                                    여호와는 나의 목자

 

말씀:시편 23:1-6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말이 공명지조(共命之鳥)’ 입니다. ‘분열된 한국 사회를 상징한다는 말입니다. 거짓말과 몰염치로 뻔뻔한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한숨만 나오고 망연자실 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는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은혜 충만이라 고백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2019년 한해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1.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도다

 

      1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니 나는 하나님의 양이라는 고백입니다. 겉 모습과 달리 양의 실제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사야서 53:6절에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제 갈 길로 갔거늘그릇 행하며 제 마음대로 다니는 동물이 양입니다. 아무 뿔도 없는 양이 그릇 행하여 제 갈길로 갈 때 어떻게 험한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보호자가 절대 필요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나는 목자의 보호가 절대 필요한 양이라는 고백입니다. 시인은 혼자서 도저히 살 수 없는 연약한 양이요, 어리석은 양이라 고백합니다.

 

     왜 시인이 이런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여호와는 나의 목자요 나는 그의 양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물질적으로 가진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핸드폰, TV, 컴퓨터, 노트북, 자가용, 신용카드, 전기밥통, 가스레인지---- 왠만한 것들은 다 있습니다. 이전에 비하면 우리가 얼마나 풍요로와졌습니까? 그런데도 왜 사람은 항상 마음에 부족함을 느낍니까? 맨날 짜증을 내고, 투덜거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그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목자로 모시지 않고, 그분의 인도함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자기의 계획과 자기욕심을 앞세우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목자로 고백하는 사람은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요?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다윗이 이렇게 고백하는 것은 여호와를 목자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평생 다윗을 시기하며 악령에 시달리는 피폐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는 그가 여호와를 목자로 모시고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를 목자로 고백하며 살지 않을 때 사울은 왕일지라도, 늘 궁핍한 인생, 비참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반면 다윗은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삼았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고백했습니다. 우리들이 평생 여호와를 나의 목자로 고백하며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길 기도합니다.

 

     2절에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목자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십니다. 대관령 목장에 가보니 양과 소떼들이 푸른 초장을 거닐며 맛있는 풀을 맘껏 먹고 있었습니다. 시시 때때로 목자가 양들을 잔잔한 물가로 인도했습니다. 선한 목자의 인도함을 받는 양들은 이처럼 행복합니다. 우리를 항상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살벌한 전쟁터 같습니다. 구조조정, 청년실업, 백수양산, 연이은 자살소식 등 폭격 맞은 전쟁터에서 사는 것 같습니다. 게다 우리 내면은 탐욕과 시기, 질투, 미움 등으로 시끄럽습니다. 특히 요즘 우리나라가 극도로 혼란 스럽습니다. 혼란의 역사적 배경이무엇입니까? 1945.8.15.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습니다. 일본천황이 무조건 항복했고, 우리나라가 일본으로 부터 해방되었습니다. 그때 주사파 들은 어떻게 주장하는지 아십니까? ‘그냥 우리끼리 잘살게 놔두지 왜 미국이 들어왔느냐? 미국이 식민통치 하려고 들어왔다미군철수 하라 거짓말로 미혹시킵니다. 그 당시 북한의 사주를 받은 남로당 박헌영도 미군철수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fact 가 무엇입니까? 일차 미군이 들어온 것은 아직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45만 일본군 무장을 해제 시키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후 에치슨 라인을 선포하고 미군이 1949630일 한국에서 철수했습니다. 1년뒤 19506.25일 새벽 4시 김일성이 남침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미국 대통령 투르만의 첫마디는 신경 꺼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예비하신 종 빌리 그래햄이 대통령에게 급전을 보냈습니다. “즉시 미군을 다시 한국에 파병하시오. 왜냐하면 한국에는 기독교인이 50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일을 당신이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있을지어다트루만은 UN 안전보장 이사회를 소집해 미군이 유엔군으로 참전 공산화를 막아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군을 두 번째 한국에 불러 들인 것은 사실 북한의 김일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선한 목자가 되사 우리나라를 눈동자처럼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10-17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선을 행하는 자도 없다. 혀는 속임을 일삼고 입은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며 발은 피 흘리기에 빠르므로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으며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느니라오늘날도 사회주의자들이 거짓말로 미군철수를 외치며 미혹합니다. 미군이 나가면 바로 김정은이 쳐들어 오는게 뻔합니다. 그때 당할 파멸과 고생이 어떠하겠습니까? 요즘 한국 사회는 조국 비리, 울산 부산 부정선거, 하명수사, 경제폭망, 청년실업, 각종 자살 등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쟁터같이 피곤한 세상에 사는 우리를 위해서 푸른 풀밭을 예비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밑은 푸른 초장이요 쉴만한 물가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나가면 쉼을 누립니다. 성령의 생수를 마십니다. 주일날 주님 앞에 나오면 말씀의 꼴을 먹이시고 푸른 초장에 누이십니다. 김덕열 목사님이 전기를 LED 로 교체해서 교회가 환하게 되었습니다. 또 김덕열 집사님이 수고해 주셔서 수도가 콸콸 잘 나옵니다. 이렇게 섬김과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인도로 사는 주의 백성들 가운데 자녀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신 것을 목도하게 하십니다. 주께서 바울이는 대기업에 합격시켜 주시고 은혜는 힘든 치과 공부를 마치고 이제 병원에서 실습 하게 도우십니다. 예찬이는 간절히 소원하던 체육을 부전공 할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예승이는 한주 기숙사에서 열심히 공부하게 하시고 예안이는 한해 피아노 반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준이는 과학에 뛰어나게 하시고 예지는 오폐라 은사로 아프리카 공연에 나서고 글로벌 리더로 쓰고 계십니다. 예원이는 효녀입니다. 소원이 뭐니? 물으니 엄마 아빠 오래 사시는 거에요답하였습니다. 예별이는 애교 만점입니다. 미국에서 유학하는 학생들은 고국에서 부모들에게 많은 재정적인 지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민석이랑 지혜네는 한국에서 교사 였다는 메리트를 살리고 미국 대학교에서 TA 로 지원을 받아 자립적으로 박사과정을 밟게 인도해 주셧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은 어떻게 본국의 지원도 없이 자립해서 자녀를 키우며 동시에 공부할수 있는가 의아해 할 정도라고 합니다. 누가 이런 푸른 초장으로 우리를 인도할 수 있겠습니까? 목자 예수님 뿐이십니다. 이 시간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우리 목자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3절에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우리의 목자 예수님은 죽은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를 향해 일어나라 하자 벌떡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소생케 하시는 부활의 주이십니다.

 

     스위스 내과 의사겸 정신 의학자 폴투르니에가 쓴 성서와 의학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말씀으로 처방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시편 23편을 하루에 두 번 아침과 저녁 묵상하라 는 식입니다. 그랬더니 많은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더라는 겁니다. 이책을 보면서 예수님과 선한 목자의 말씀은 진정한 치료제가 되는 구나 하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시편 119:25절에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우리도 다윗처럼 우리 영혼을 소성시키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 때 우리 영혼이 소생됩니다. 목자 되신 예수님은 소성 시킬뿐 아니라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 곧 바른 길로 인도합니다.

 

    4절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우리는 항상 푸른 초장이나 여호와 물댄 동산 같은 평화로운 인생길만 걷고 싶습니다. 그러나 때론 어둡고 깜깜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지나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혹은 질병이나 사고, 실직, 가정불화 등으로 인해서 사망의 골짜기를 다닐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이를 은폐하고자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하였습니다. 이 죄 때문에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녀야 했습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맨발로 야밤도주를 해야 했습니다. 배다른 자식들의 죽고 죽이는 참사를 보는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10년 넘게 사울에게 쫓겨 광야에서 도피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사망의 골짜기를 다니면서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면 사망의 골짜기도 두렵지 않고 편안하고 은혜로운 푸른 초장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로 끌려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렸습니다. 보디발 여사의 모함으로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걷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죄수들과 전옥을 섬겼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습니까? 창세기 39:21-23절에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할 때 절망하지 않습니다. 인자와 총명을 덧입고 형통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목자로 고백하며 살 때 어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인생, 형통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목자이신데 왜 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가도록 내버려 두실까요? 항상 푸른 초장에서 배부르면 비둔해집니다. 에덴의 축복을 잊고 하나님께 감사치 않는 아담과 하와처럼 될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 요셉, 모세, 다윗, 다니엘처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은 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녔습니다. 다니엘이 사자 굴에 있을 때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셔서 사자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풀무불속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들과 함께 하사 머리카락 하나 타지 않게 보호하셨습니다(3:25). 하나님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 함께하십니다. 다윗과 다니엘 때만 함께 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어떤 곳에서도 함께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다

 

    5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기 은 진수성찬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원수 앞에서 큰 상을 차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의지하는 다윗에게 골리앗을 밥상으로 차려 주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밥상을 먹고 이스라엘의 장군이요 왕이 되었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나무에 달아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나무에 하만을 달고 모르드개는 높이셨습니다. 원수 앞에서 상을 베푸신 것입니다. 원수목전에서 상을 받다니 얼마나 통쾌하고 신나는 일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로 도망간 제자들을 찾아갔습니다. 떡과 생선 숯불구이로 큰 상을 차려 주었습니다. 더나가 예수님은 원수 앞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요 이 시대를 먹일 사도다며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사도행전의 위대한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원수 앞에서 받은 큰 상과 기름 부음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은 매주 예배의 큰 상을 차려 주십니다. 그리고 너희는 이 시대 왕 같은 제사장이다며 기름을 발라 주십니다. 원수 앞에서 베푸시는 주님의 큰 상과 기름을 부음을 덧입고 사도행전의 제자들처럼 맡겨준 생명들을 말씀으로 섬기길 기도합니다. 그때 우리 입에선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백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인생이 바로 잔이 넘치는 인생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정연희씨 작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는 작품에 보면 맹의순씨는 신학교를 나와 목사후보생이었는데 6.25때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결핵환자들을 비롯해서 어려운 사람들은 헌신적으로 돕고 섬겼습니다. 그래서 포로수용소에 성자로 불려졌습니다. 그의 무죄가 밝혀지고 석방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수용소에 있는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 잔류를 결단합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병자들을 간호하고 수용소 내에 있는 자들에게 복음을 열심히 전하다가 마침내 27살 나이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가 숨을 거두며 남긴 한마디가 바로 내 잔이 넘치나이다였습니다. 그는 좋은 환경에서 산해 진미로 잘 먹고 잘 살아서 '내 잔이 넘치나이다' 고백한 것이 아닙니다. 환경은 열악하고  젊은 나이에 하나님 나라에 가지만 주님께서 그의 인생을 사용하사 수용소에 양들을 돕게 하신 것을 생각할 때 자신의 인생의 잔이 흘러 넘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 인생은 포로 수용소에 마감하는 실패가 아닌 잔이 넘치는 축복된 인생이요, 영광스러운 인생이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올라 수많은 처첩들을 거느리며, 산해진미의 음식을 먹었습니다.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다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말년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내 잔이 텅 비었다는 고백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나는 것입니까? 그것은 바로 그들의 인생에 있어서 누구를 목자로 모시고 살았는가입니다. 금요 기도회때마다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김길영 목사님은 대신 당직을 서주었는데 그날 손님이 사무실로 찾아와 3건이나 계약이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김덕열 목사님은 올해 예찬이부터 창세기 말씀 공부를 시작했는데 지난주 곽태석 형제님과 7 Step 말씀공부로 한해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내 잔이 넘치나이다”  여호와 하나님을 내 인생의 목자로 모시고 살 때 누구도 다윗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하며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6절은 다윗의 마지막 고백이자 다짐입니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다윗은 보통사람들이 하루만이라도 살았으면 하는 백향목 궁전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백향목 궁전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말하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있는 여호와의 집에 거하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궁전같은 집에 살고 있어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장막생활 보다 즐겁지 않게 느껴집니다. 우리가 영원히 거할 집은 세상 집이 아닙니다. 바로 여호와의 집입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길 소망하며 살 수 있길 기도합니다.

 

결론.

 

     지난 2019년 한 해 우리의 목자가 되사 부족함이 없는 인생을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전쟁터 같이 위험하고 불안한 세상에서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어리석은 양처럼 자주 세상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면 막대기로 건져주시고, 헛된 길로 갈 때 지팡이로 엉덩이를 때려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 하나님을 목자로 고백하며 살길 기도합니다. 2020년에도 원수의 목전에 베푸시는 큰 상을 먹고 승리하는 한해, 내 잔이 넘치나이다 고백하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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