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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의 때 성도들의 기도 ( 사도행전 4:23-31)
09/01/2019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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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5

 

                                                        고난의 때 성도들의 기도

 

말씀 사도행전 4:23-31

 

       우리가 예수를 믿고 구원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그냥 성도로 머물러 있으면 그것으로 끝일까요? 아닙니다. 탄생한 아이는 성장해야죠? 이처럼 성도도 제자로 성장해야 합니다. 더나가 주님의 병사로 자라나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는 주님의 병사답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꾼이 되고자 할 때 어떤 과정을 겪어야 할까요? 시련이 따르고 고난이 따릅니다.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며 제자훈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기치 않은 고난이 닥쳤을때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 고난의 때 교회는 함께 힘을 합해야 합니다.

 

     행 4:3절에 초대교회는 큰 박해가 닥쳐 사도들이 투옥 당했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거지 앉은뱅이를 사도들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고쳐 주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 서기관들 대제사장들이 모였습니다. 7절에 그들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앉은뱅이의 병을 고쳤느냐 추궁했습니다. 시기와 질투가 섞인 질문입니다. 이때 8-10절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살려주신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걷게 했다 답했습니다. 마침 병 나은 사람도 곁에 있었기에 할말이 없었습니다. 결국 예수 이름으로 아무 말 못하게 위협 한 후 내 쫓았습니다.

 

     23절은 어떻게 출발하고 있습니까? “사도들이 놓이매첫 번 위기는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다가 올 더 큰 박해를 위해서, 사도들이 선택한 방법은 성령의 재충만 이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상황을 누구에게 알렸습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붙잡혀 하루 고통을 당한 뒤, 그들이 찾아 간 곳은 믿음의 형제들이었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라는 것을 알게됩니다. 진정한 이해와 사랑과 권면과 위로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모든 삶의 고뇌를 쏟아 놓을 수 있는 곳, 어떤 하소연도 들어주는 사랑이 있는 곳, 진정한 교제가 있고 가식 없는 위로와 격려가 있는 곳, 새 힘을 얻은 수 있는 곳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간 것입니다. 교회는 따뜻한 어머니 품과 같습니다. 가족은 다 말할 수 있고 모든 것이 용서되고 받아 들여지는 곳이죠? 각박한 세상에 살다 돌아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입니다. 누구도 흠 잡지 않습니다. 다 가려 줍니다. 건강한 교회는 바로 이같은 것입니다.

  

    에베소서1:23교회는 그의(주님의) 몸이니교회가 주님의 몸이라면 교회에 안기는 것은 주님의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20절에 예수님은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예수 그리스도)으로 모이는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답답한 일 힘겨운 일 당하면 교회로 달려 오는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교회를 사랑함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잠언 8: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겠고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자신의 아픔을 가식 없이 있는 그대로 다 말할 수 있고, 기도 요청을 할 수 있는 교회 말입니다. 우리 교회가 친절하고 부드럽고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도록 계속 힘써야 하겠습니다. 따뜻한 어머니 품 같고 고향이란 느낌을 갖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거친 성품이 녹아지고 다듬어져 부드러운 형상을 덧입도록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그런 교회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처럼 찾아가 자기 문제를 내 놓고 기도를 부탁할 기도의 동역자들이 반드시 있기를 부탁드립니다. 주의 종들에게 마음껏 기도 제목을 부탁할 수 있는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다 말할 수 없는 기도제목도 있죠? 그런 기도제목도 안심하고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될 때 Power full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도들에게 그들이 고난당한 일, 위협당한 일들을 다 말했습니다. 성도들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 힘을 모았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저력입니다.

 

     24절에 제자들은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기도했습니다.” 온 교회가 모여서 합심해서 소리 높여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성경은 위기의 때 고난의 때 부르짖으라 명하십니다. 왜 부르짖어야 할까요? 세상이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수선하고 어지럽기에 부르짖어야 성도가 세상 소리를 이길 수가 있고 마음이 정돈되고 갈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맹인 거지, 바디메오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기회를 놓칠세라 큰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꾸짖으며 시끄럽다, 조용하라방해 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기죽지 않고 더욱 심히 소리질러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머물러서 불러 오라고 하시고 그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르시는 것이 없으시지만 부르짖을 때 응답하셨습니다. 시편 1161절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라고 했고 히스기야 왕이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사형 선고를 받고 울며 통곡하며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열왕기하 20:5절에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라고 말씀하시며 고쳐 주셨습니다. 시편 55:17절에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하나님은 우리 마음과 중심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목소리도 들으시고 눈물도 보시는 분입니다. 시편 186절에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저가 그 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 귀에 들렸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어려운 일을 만날때 일심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가 교회에서 혼자 일하는 것 보다 온 교인이 함께 협력하여 일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전도서4:9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이라혼자 하면 힘들고 고독하며 능률도 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함께 일하면 즐겁고 기쁘고 보람되며 능률도 오릅니다.

 

     예배 드림 과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18:20절에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서로 자기가 잘났다 하며 남 생각과 의견을 무시하면 나뉘어 지죠? 나뉘어 지는 곳에는 언제나 사탄이 역사합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분열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는 곳에는 늘 하나 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협력하면 어려운 일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협력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은 싸우고 등지는 삶이 아니라 협력하여 일하는 삶입니다. 4:12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하나가 된 삼겹 줄은 그 어떤 세력, , 핍박으로도 결코 끊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2.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어야 합니다.

 

     불씨가 두개, 세개, 열개 이상 모이면 불이 활활 타오르죠? 기도의 불씨도 함께 모아져야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성도는 불타는 장작과 같습니다. 장작이 혼자 있으면 연기만 나다 꺼집니다. 우리는 혼자 연기만 내다 꺼지는 게 아니라 함께 모여 큰 불을 일으켜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무기를 주셨습니다. 7:7-11구하라 그러면 주실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 18:1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라.” 예루살렘 교회는 어려운 일이 닥쳐왔을 때 맨 먼저 기도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일심으로 소리 높여 기도했습니다. 초대교회는 마음을 같이 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능력이 어떠합니까? 한양대 국문과 최래옥 교수는 그의 책에서 이런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제반사를 하나님과 기도로 의논하면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가 신일고교 교사일 때 하나님께 서원기도를 드렸습니다. 성경표지에 교수, 박사, 장로라고 써 부친 후 열심히 기도하면서 전력을 다해 노력할 때 하나님이 도와주심으로 만 36세에 장로 37세에 대학 강단에 서게 되었고, 40세때 박사가 되었다 합니다. 한번은 추수감사절 때 하나님, 지금 헌금이 부족하오니 갑자기 쓸 원고가 들어왔으면 바랍니다.’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후 10분쯤 흘렀을까, 전화가 와서 최교수님댁 이시죠? 어려우시겠지만 급한 원고 부탁합니다. ’라고 하더랍니다. 그 원고는 평소 늘 쓰고 싶던 내용이구 이미 재료가 준비된 상태여서 곧 쓸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은혜로 목표한 만큼 헌금할수 있었다고 간증했습니다.

 

     미국 34대 대통령 아이젠하워는 대통령 취임 후, 백악관에서 밤잠을 못 이루고 설쳤습니다. 감당해야 할 직무는 엄청난 데, 정작 본인은 군 장성 출신으로 너무 부족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날이 밝자마자 친구 국회의원 몇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기도하고 대통령 직무를 시작하고 싶으니 빨리 와 주게.” 몇몇 친구들과 함께 백악관에서 함께 기도 후, 첫 집무를 시작휴전협정 등 큰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국가를 위한 조찬 기도회의 시작입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이 중요하고 힘들수록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닥칠 때, 초대 교회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너무 바빠 기도할 수 없습니까? 너무 바쁘기 때문에 더 기도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시계에 달린 큰 추가 힘들게 왔다갔다 하는 걸 보고 얼마나 힘들까 싶어 시계를 떼어 냈습니다. 그랬더니 그 순간부터 시계 바늘은 서고 시계는 죽어 버렸습니다. 새 날개가 무겁지만 날개 때문에 날아갑니다. 배 돛도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가 가능합니다. 비행기 날개 역시 거추장스럽지만 그 때문에 날아오릅니다. 우리 역시 힘들고 고달파도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영이 살고 힘을 얻고 비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그들의 기도는 적극적이며 전력을 다하는 기도였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Lordship)을 인정함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24b절에 대주재여이 말은 주권을 지닌 통치자여”, “만물의 주인이시여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단순히 자기 최면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갖고 하나님 말씀의 약속을 붙들고 간구하는 것입니다간질병 걸린 아들을 예수께 데리고 온 한 아버지가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그때 예수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9:23)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는 혹 어떤 가능성을 찾아 여기저기 머리를 디밀어 보는 그런 이방인들의 기도와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시편 65:2절에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기도 할 때, 어떤 박해자들까지도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상은 모든 일이 철저히 힘있는 사람들 뜻대로 움직인다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세상에 힘없는 사람들이 한 맺힌 심정으로 하소연하는 거다 혹은 세상에 할 짓 없는 한가한 사람들이 시간 소일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는 능력입니다. “대 주제여!” 한마디 속에 그들의 믿음을 측량할수 있습니다. 살아 계셔서 역사와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린다는 신앙 고백입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역사하신 그 하나님은 오늘도 동일하게 역사하실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과학과 합리가 발달한 오늘날은 신자도 오래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도만으로 안될 것 같으면 인간의 수단 방법을 다 동원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없어도 크게 걱정할 일이 없도록 자기가 만들어 놓으려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는 겁니다. 기적은 단순하게 하나님을 믿는자가 체험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고난의 때입니다. 사상적으로 이념과 진영논리로 갈기갈기 찢어져 있습니다. 조국 후보자는 평소 기회는 균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 라는 미사여구로 가면을 썻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균등하게 외치며 정작 거짓 가짜 자료로 다 해 먹은게 그 아닙니까? 이 구호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뒤엎는 사회주의 전체주의의 주장입니다. “기회는 다양하게 과정은 자유롭게 선택해야지국가가 감독 지시 계획해서 되는게 아닙니다. “결과는 책임있게 선택해야지나라 탓하는 기생충을 만들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제 위선의 가면을 벗겨 버려야 합니다. 투루스 포럼을 중심으로 캠퍼스 지성인들도 방학 중에도 비위 후보 물러가라 시위집회를 벌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정치 경제 외교 군사 교육 총체적 난국입니다. 이때 중심을 잡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사람들은 교회 뿐 입니다

 

   초대 교회 사도들과 성도들의 기도는 적극적이었습니다. 4:29-30절에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 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이들의 기도가 얼마나 적극적이고 담대합니까? 막 시작된 초대 교회에 엄청난 박해가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드린 기도입니다. 그들은 자기앞에 어떤 박해가 올지 다 알고 있었습니다. 그때 꽁무니 빼는 대신 당당하게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담대함과 능력과 권세를 달라 기도합니다. 피할 수 있는 길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박해가 계속 되는 상황에서도 두려움 없이 담대하게 주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사명을 다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한 것이다. 우리가 이 기도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도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 해답입니다.

 

       ♬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기도할 수 있는데 왜 실망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방황하십니까?

          주님앞에 무릎꿇고 간구해 보세요 마음을 정결하게 뜻을 다하여 -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 기도하면서 왜 염려하십니까?

 

     지금 우리는 국가적으로도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또 교회도 조현병 치료 김태후 형제 손가락 수술 김덕열 목사 부인과 정재연 성도가 정신과 육체의 고통으로 아파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캠퍼스 개강을 앞두고 있습니다. 캠퍼스 지성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와 성경 말씀을 배우고 예수 십자가 부활 신앙을 바로 갖게 해달라 부르짖어야 하겠습니다. 지금은 초대교회 처럼 우리도 기도 할 때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면서 마음을 열고 나누며 마음과 힘을 모아 전력을 다해 기도합시다. 그래서 나라도 구하고 캠퍼스도 구하고 우리 영혼도 구하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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