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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율법, 더 나은 의 ( 마태복음 5:17-48 )
04/06/2019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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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7

 

                                                         예수와 율법, 더 나은 의

 

말씀 : 마태복음 5:17-48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이가 자라서 어른으로 성장하지요. 바울은 고전13장에서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말합니다. 아이가 장성하면 떼쓰는 것, 우는 것 버리고 혼자 알아서 처리할 줄 아는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율법을 조목 조목 지키던 구약 시대가 지나고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따라서 이제 예수님을 모신 신약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눈이 구약시대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요?

 

       오늘 말씀은 예수와 율법그리고 더 나은 의에 대해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은 팔복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제자는 어떤 자인가 제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구약에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이제 제자는 율법 곧 구약성경과는 상관이 없는 것일까요?” 본문 마태복음 5:17-48절은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가 어떠하며, 그런 관계가 율법과 제자들 사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합니다. 17-20절은 예수와 율법’ 21-47절은 여섯 가지 대조법을 통한 실례’ 48절은 결론입니다.

 

1. 예수님과 율법의 관계 (17-20)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갖는 고민은 수천년 동안 조상들이 준수해 온 구약 율법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 들여야 하나?’ 였습니다.

 

       안식일날 제자들이 밀 이삭을 짤라 먹었을때 예수님께서는 "다윗은 성전 안에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거룩한 음식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말씀 하시며 제자들을 변호해 주셧습니다. 제자들이 손도 씻지 않고 음식을 먹었을 때 주님께서는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다. 속으로 들어간 것은 다 뒤로 나오느니라.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니라. 악한 마음에서 악한 말이 나오고, 이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말씀 해 주셧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들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내가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예수님이 오심으로 율법과 선지자들에 대해 어떻게 달라지셨는가를 언급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부르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 백성답게 살라말씀 하시면서 광야에서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율법서히브리 말로 토라는 창세기, 출애급기, 레위기,민수기, 신명기 모세 오경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왜 율법을 주셨나요? 율법의 세가지 용도때문입니다.

1 용도는 죄를 억제하는 시민적 용도입니다.

2 용도는 갈라디아서 3:24절에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죄를 깨닫게 하는 초등교사로서의 역할입니다.

3용도는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용도입니다.

 

      율법서에는 하나님께 어떻게 예배 드리며 제사 드리는지, 성전은 무슨 재료로 어떤 구조로 짓는지, 안식일은 어떻게 지키며, 하나님의 이름은 어떻게 부르는지 가르쳐 주십니다. 또 하나님 섬기는 것 뿐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도 가르쳐 주십니다. 몸을 거룩하게 하기 위하여 음식, 청결한 생활을 위하여 손발 씻는 것, 시체 등 부정한 것을 멀리할 것, 문등병 같은 불치 병에 걸렸을 때 해야 할 조치 등 우리 일상 생활에 대한 모든 내용들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 다툼과 분쟁이 생기죠? 사람이 손해를 끼쳤을 때, 어떻게 변상 받아야 하나 하는 내용도 나옵니다. 이처럼 율법의 제 3 용도는 성도가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방향을 제시하는 교훈적 용도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선지자를 불러 기름 부으시고 대신 하나님의 뜻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달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17절에 예수님이 언급하신 율법과 선지자구약성경전체를 통칭하는 유대적 표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구약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성취하러 왔다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성취플레로사이는 동사 말레에서 왔는데 가득히 채우다’, ‘궁극적인 목표를 성취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구약을 성취하셨다는 것은 구약이 목표했던 그 목표를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이 바라본 것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이 바라본 것을 성취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은 율법과 선지자가 지향하는 바 그 궁극적 목표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신 것입니다.

 

     ‘율법주의는 율법 조항 하나하나를 지키는 것이 다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 율법 경시론은 율법은 필요하지 않다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은 17절에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예수님은 율법주의나 율법 폐기론을 다 거부하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오신 분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시 분이십니다.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선언은 율법의 유효성을 확증해 줍니다. 이 확증은 율법의 일점일획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선언하십니다. 그런데 이 확증은 천지가 없어지지 전에는다 이루리라는 말씀에 다 걸립니다. 즉 율법은 모든 것이 이루어지기까지 가장 작은 세부 사항까지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 이루리라는 율법 또는 구약성경이 예언한 메시아적 사건들입니다. ‘메시아적 사건들은 메시아 예수의 인격과 사역들, 탄생과 지상 사역들, 그리고 재림까지 다 포괄합니다. 그런 일들이 다 이루기까지는 결단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아니 합니다예수님 생애가 구약의 성취죠? 구약은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미성취 되었지만, ‘아직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장차 예수님 재림 시완성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는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 오신 후에도 구약은 신약과 동등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구약은 신약에 비해 덜 중요하거나 가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림자와 모형인 율법(구약)은 실체요 원형인 예수님의 등장과 함께 이미 그 소임을 다했기에 그 기능에 있어서 변화가 생겼을 뿐입니다.

 

      즉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예수님이 완전한 대속물이요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제사제도가 필요하지 않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동시에 성소 휘장을 찢으셨고, 성전도 허무셨습니다. 이제 제사제도와 성전과 관계된 세부적인 율법조항들은 예수님 안에서 다 완전하게 성취되었습니다. 또 안식일 희년 같은 절기도 참 안식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통해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안식도 절기를 지켜서 오는게 아니라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참 안식을 주십니다. 유월절도 예수님 안에서 새 의미를 가집니다. 이처럼 이제 구약 모든 율법은 율법의 성취자이신 예수님을 통해 그 의미가 우리에게 간접 적용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구약 계명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19절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이 계명들은 예수님에 의해 성취된 율법을 말합니다. ‘성취된 율법이란 옛 율법이 지향하던 새 율법이고, 예수의 종말론적 사역에 의해 이미 성취된, 그리고 재림시 완성될 때까지 예수 제자들이 지켜야 할 메시아적 율법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에 의해 성취된 율법을 지켜야 합니다. 성취된 율법은 그 범위나 깊이가 구약 율법보다 훨씬 더 넓고 깊습니다.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제자의 의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를 어떻게 대조시킵니까? 제자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낫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하십니다.

 

      신약의 성도는 구약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진 자입니다.  그러려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죠? 그런데 성도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 사람들에게 마져 욕을 얻어 먹습니다. 그에 대한 기사가 뜨면 숱한 악풀이 달리겠죠? 그러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것이 되고말죠?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갖게 될 까요? 우리 행위로는 불가능합니다. 당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가장 존경을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대중들로부터 가장 의로운 삶을 사는 자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보면 안식일을 잘 지키기 위해 234가지 조항을 만들고 지켰고 철저히 십일조 생활을 했으며 구약 성경에서 일 년에 한 번씩 금식하라고 했는데 그들은 무려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금식했습니다. 어떻게 우리가 이들 행위를 따라 갈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제자들의 더 나은 의는 자기 행위에 기초한 의가 아닙니다. ‘예수님과 관계에 기초한 의 입니다. 로마서 3:22-28절에 하나님의 의와 덛입는 의가 나옵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우리 죄값을 치루신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의 (righteosness) 라 부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고 의롭다 칭함을 받는 의를 justification 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의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통치 받기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려면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지 않고서는 도저히 하나님의 통치가 내안에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행위가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통해 이루어지는 더 나은 의를 덧입을 때,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에드워드 피셔는 율법을 1) 행위의 법, 2) 믿음의 법 3) 그리스도의 법으로 설명합니다. 행위의 법은 행위 언약을 지켜야 구원을 얻는 법을 말합니다. 인간이 타락후 행위로 율법을 지킬수 없게 되자 하나님은 창 3:15절에 원시 복음을 주셔서 믿음의 법이 들어왔습니다. 믿음의 법 즉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법인 율법을 즐거이 순종하는 제 3 용도로서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행위의 법인 행위 언약이 깨져서 믿음의 법으로 구원 받게 되지만 여전히 타락한 인간에게 행위 언약의 요구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비록 깨어진 언약이지만 여전히 구속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약을 깬 아담은 비록 순종함을 잃었지만 의무에서 자유로와 지지는 않고 여전히 순종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채무자가 돈이 없다해서 빚 갚을 의무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죠? 그처럼 타락한 인간이 의무를 행할 힘이 없다해서 의무에서 벗어 나지는 않습니다. 결국 믿음의 법이 역사하는 시대에도 인간은 여전히 행위 언약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타락전 행위 언약은 하나님의 율법 안에 있는 아름다움이 드러났지만 타락 후 지킬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갚을 수 없는 의무가 된 것입니다. 모세의 십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법으로 구원 받지만 왜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셨습니까? 먼저, 잃어버린 행위 언약의 아름다움 즉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때 누리는 아름다움을 드러내며, 그 아름다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의 타락한 상황에 대한 절망을 보여 줍니다.

 

      율법이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를 인도할때도 율법은 죄를 깨닫는 기능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누리는 율법이 주는 아름다움을 드러내 주고 그 아름다운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절망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갈망과 절망이 동시에 있어야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해 구원을 이룬 뒤에도 그리스도의 법에 즐거이 순종할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여전히 우리가 져야할 행위 언약의 의무를 그리스도께서 대신 지셨습니다. 이제 율법의 정죄에서 자유로워진 구원 받은 사람들은 그렇게 지키고 싶었던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기에 기쁘고 즐겁게 순종하며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모세의 십계명이 단순히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으로서가 아니라 율법의 아름다우심과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인간의 절망을 동시에 드러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 이후 율법을 지키는 삶의 즐거움이 더 분명히 드러나게 됩니다.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는 그 아름다운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율법은 아름답고 선한 하나님 성품의 반영입니다. 전에는 그렇게 사모하고 갈망했던 그 율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오신후 이제 그 길이 열린 것입니다. 존 파이퍼는 성경이라는 창을 통해 펼쳐진 알프스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70 평생을 성경에 사로잡힌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은 이제 그리스도와의 아름 다운 관계로 말미암아 성도가 더나은 의를 갖게 되는 열망이 이루어 진것입니다.

 

2.  여섯가지 대조법을 통한 실예 (21-47)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보다 더 나은 의를 가질 때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20절에 제자들의 의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 사이는 어떤 대조입니까? 21-47절 여섯 가지 대조법이 나옵니다. 옛 언약에 살인은 심판받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형제에게 라가라 욕만해도 지옥불에 들어간다 하십니다. 옛언약에 간음을 금했는데 예수님은 음욕만 품어도 이미 간음했다 하십니다. 옛언약은 헛맹세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하십니다. 옛언약은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악한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하십니다. 옛언약은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셧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예수님은 이를 통해 조목조목 지키는 율법주의도 배격하고 신약의 성도는 율법이 필요 없다는 율법 폐기론도 배격하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제자들의 의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 보다 질적으로 더 '향상된 의'라 하십니다.

 

3.   온전하라

    

     '더 나은 의하나님의 통치에 근거해서 가능하게 된 행동 입니다. 이 관계는 율법과 선지자에 의해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신 예수님에 의해 가능하게 됩니다. 하지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메시아 되심을 거부했고 예수님의 통치도 거부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의는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의입니다. 그들의 의는 자기 행위를 강조하는 율법주의적인 자기 의였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의는 메시아께서 도래하게 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기준에 훨씬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반면 제자들의 의예수님과의 관계에 의한 의입니다. 곧 더 나은 의는 하나님의 통치의 결과로 인해 이루어지는 의입니다. 는 하나님 나라에 시발점을 두며, 하나님 나라를 그 목표점으로 삼습니다. ‘더 나은 의는 하나님의 통치의 결과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입니다. ‘더 나은 의는 하나님 통치에 기초한 의이며, 그 통치의 결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행동을 수반하는 온전한 의 입니다.

 

결론     십자가를 믿음으로 의로와진 성도는 예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제 하나님의 통치를 받을 때 더 나은 의를 덛입고 온전한 성도의 삶을 살게 됩니다. 신약의 성도는 구약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를 덧입은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율법을 다 성취하신 예수님과 바른 관계성을 맺고 성취된 의를 실천하는 더 나은 의’ '온전한 의' 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가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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