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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경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04/29/2018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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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9일


                                                       위경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말씀: 시편 107: 10-22


          “도대체 언제쯤이면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실 수 있는 사치가 우리에게도 허용될까요?” 안네 프랑크(Anne Frank)의 <안네의 일기> 1943년 12월 24일자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두만강 넘어 공안을 피해 조선족 마을에 숨어 지내는 탈북자들의 심정도 위와 같을 것입니다.

 

           본문 시편 107편은 위험한 지경에 처한 저자가 ‘어떻게 소망의 항구로 나갈 수 있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 이후 광야 같은 우리 나그네 인생길에 고난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며 그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1. 고통의 원인


    지금 택한 백성은 어떤 형편에 처해 있습니까? 10절에 ‘매임’ 에 처해 있습니다. 바벨론에게 패망 당시 시드기야 왕이 포로로 끌려가 감금 되었습니다. 예례미야 선지자는 옥에 감금 되었습니다. 그때 형편을 시편 기자는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 이라 표현 하고 있습니다. 이시기 이스라엘의 형편은 그야말로 끔찍한 고통 의 연속 이었습니다.

 

     그러면 택함 받은 백성들이 왜 이처럼 고통 가운데 사는 것입니까? 원인이 무엇입니까? 11절을 보십시오.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 성경 역대하 36: 16,17절을 보면 ‘유다 패망 원인’이 나옵니다. “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기 아니하였으며 “ 바벨론 보다 숫자가 적어서도 아니고 신 무기가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택한 백성이 하나님을 떠나 말씀에 ‘불순종’ 하고 ‘멸시’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시인은 그 어리석음 당하는 고통이 어떠하다 하십니까? 18절을 보세요.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 할 정도로 택함을 받은 백성이 ‘사망의 고통’을 자초 한 것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If God does not exist, everything is permitted" 바꾸어 말하면 ‘하나님의 존재’가 ‘귀찮다’는 말입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한, 나는 자유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거절하고 부인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현대인들의 위기요 고민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감금의 고통’에 처하게 하십니까? 12절에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나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 ‘교만’을 꺽고 ‘겸손’한 백성이 되게 하시려 함이었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하나님이 택한 백성도 연단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단 받을때 '이 모든 고난의 원인이 ‘말씀을 멸시한 죄 때문이구나’ 깨닫는다면 고난도 택한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2. 고통에서 풀려 나는 길


      고통에 직면한 백성들이 비로서 하나님께 청한 것이 무엇입니까? 13a절에 “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19a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 부르짖었습니다. 시편 107편에 ‘부르짖었다’는 말씀이 6,13,19절, 세 번이나 나옵니다. 왜 부르짖었을까요? 예례미아 33:3절에 “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 약속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다시 심판의 손을 드신 이에게 자비를 호소한 것입니다.


     여기서 ‘부르짖다’ 는 단순히 소리만 높여 외쳤다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시 34: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시 51: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 하시리이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부르짖다’ 는 말 속에는 우리 ‘상한 심령을 드러내어 기도 하다’는 뜻이 숨어 있습니다. 그때 상한 심령을 치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심령의 상처는 깊은 무의식 세계 속에서 일어나죠? 따라서 부르짖어야만 그 실체가 드러나고 치료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짖음이 깊으면 깊은 마음 속을 치료 받습니다. 부르짖을 때 자신이 미쳐 알지 못했던 은밀한 상처까지 치료 받을 수 있습니다. 사 57:15절에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 시키려 함이라 ” 하나님은 상한 심령으로 드려지는 제사를 기뻐 받으십니다. 상한 심령으로 통회할 때 소성 시켜 주십니다.

 

      택한 백성이 ‘부르짖자’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13b-14절을 보십시오. “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 16절에 “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 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멸시하고 교만이 들어왔을때 스스로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도리어 ‘흑암’과 ‘사망’에 붙들렸습니다. 그 결과 마음은 어두워 지고 일상은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고통 중에 있는 백성을 ‘구원’하셨고 ‘끊으셨고’ 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의 세력에 속박된 모든 결박을 풀어 주셨습니다. ‘해방’ 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판문점 남북 회담때 많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어떤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까? 김정은이 ‘평창 갔다온 사람들이 KTX 는 다 좋다고 하는데, 북쪽은 도로 사정이 나빠서 민망하다’ 고 한말이 저는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왜 남한은 ktx 를 타고 빨리 달리는데 북한은 덜컹 거리는 고물 철도를 타는 것입니까? ‘하나님 없다’ 외면하고, 자기 스스로 잘 사는 사회주의 낙원을 건설하겠다고 3대째 교만을 떨었지만 - 그것이 주체사상의 허구라는 게 - 김정은의 입을 통해 전 세계에 분명히 밝혀진 것입니다.


     모든 고통이 죄에 대한 형벌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어떤 고통은 죄의 댓가이며 잘못 산 삶의 결과입니다. 마음이 어두워 견딜 수 없고 고통 때문에 밤새 잠 못 이룰 때가 있습니까? 그때 겸손히 먼저 나를 돌아 보고 하나님과 관계를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3. 위경에서 고쳐 주시는 하나님(17-22)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십니까? 19b절에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 하나님이 고통에서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평화스러운 나라 캐나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트럭을 몰던 이가 길가로 돌진해 몇 사람이 죽고 다쳤습니다. 죄의 사슬에 감금되어 사탄의 노예가 된 삶에서 우리가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습니까? 내힘으로 안됩니다. 오직 십자가의 구원만이 가능합니다. 진리이신 예수님만이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요한 복음 8:32절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그러면 하나님이 택한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하셨습니까? 20절을 읽겠습니다. “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 ‘건지시는 도다’ 무엇으로 건지십니까? ‘말씀’입니다. “말씀을 보내어” 라는 것은 “말씀으로”, “말씀하심으로”, “말씀으로 오셔서”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 1:1절에 ‘말씀’은 태초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3절에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보내어’ 천지를 ‘창조’ 하셧습니다. 빛도 지으셨고, 사람도 지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체’로 오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4-5에 보면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이유는 우리를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기 위해서 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곁 가까이 육체로 오셨고 사셨고 죽으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멀리 계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매 순간 ‘시간’을 나누시고, ‘고통과 슬픔’을 나누시며, ‘죄’를 대속해 주십니다. 따라서 육체로 오신 예수님과 한 공동체를 이루는 사람은 누구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20절에 ‘고치시고’ 는 '치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죄악의 원인이 되어 사람이 병들면 18절에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를 만큼’ 괴로움이 극심해 집니다. ‘치유의 방법’은 19절에 “부르짖는 것‘ 뿐입니다.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사야 38:3절 “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심히 통곡하니 ”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 주셧습니다. 그의 수한을 십오년 더 연장 시켜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8:17절에 “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 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또 벧전 2:24절에 “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셧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마태복음 8:5-13절에 유대에 파견 나온 ‘로마 장교 백부장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을 찾아와 죽어 가는 자기의 하인을 고쳐 달라 간청했습니다. 주님이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하시며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유는 군인 사회에서 상관이 명령만 내리면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진행 됩니다. 그처럼 자기 하인도 주님이 말씀 한 마디만 보내면 나을 것으로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이 “네 믿은대로 될지어다” 선포 하셨습니다. 그 즉시 그의 하인은 고침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시인의 고백은? ‘말씀을 보내어 고치신다’ 백부장의 고백은? ‘ 말씀만 하셔도 자신의 하인이 낫게 될 줄고 믿는다’ 이들 고백 속에서 공통점으로 발견되는 게 무엇입니까? 말씀에는 치료의 능력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복음서에 주님이 행하신 많은 치료의 사역들이 나옵니다. 때로 주님이 손을 대어 고치신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이 만져 주심으로 고치신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말씀’ 하심으로 고쳐 졌습니다. 주님은 ‘말씀’ 자체이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며, 그 말씀은 고치는 능력을 가지신 능력자 이십니다.

택함 받은 자가 부르짖을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어 나라나 개인이나 고치시고 건지십니다.


     작년 우리나라 형편은 핵실험 탄도 미사일 발사로 '위기의 연속' 이었습니다. 박 전대통령이 최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이 직접 원인이라면, 거짓 선지자 최태민 미혹의 영에 사로 잡혔던 것이 근본원인 이었습니다. 이로 ‘화염과 분노’ ‘핵단추가 내 책상 위에 있다’ ‘로켓맨’ '태평양 상에서 수폭 실험'등 험악한 말이 오갔습니다. 우리는 부르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새벽기도때 수요 목장 모임때 금요 철야때 하나님이 이나라를 불쌍히 여겨 달라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으시고 '더 이상 싸우지 않겠다'는 선언을 세계에서 몰려온 수천명 기자 앞에서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아직 북한 핵포기 까지는 갈길이 멉니다. 그래서 더욱 부르짖어야 할때입니다.  '모든 교회의 부르짖음' 을 들으시고 돌출적인 트럼프와 협상가 문재인 제재에 동참한 시진핑까지 쓰셔서 위경에서 건져 주고 계신 우리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반신반의 하는 아이의 아비에게 주님은 막9: 23절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 그 아이의 아비가 믿음 없음을 회개하고 ‘믿나이다’ 부르짖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에게서 더러운 귀신이 심히 경련을 일으키며 나갔습니다. 주님이 말씀을 보내사 아이 아비의 불신앙과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 하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마니교도 이단에도 빠졌습니다. 또 청년의 때 사생아를 둘만큼 정욕에도 빠졌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소꿉놀이 하던 아이들의 입을 통해 롬 13:11절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때 보다 가까웠음이라 ” 성령께서 말씀을 보내사 깊은 영적 잠을 자고 있던 그를 흔들어 깨우셨습니다. 그때 그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 ‘신의 도성’‘고백록’ 같은 책을 써 놀라운 기독교 변증가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십니다. 울산대 정치 사상사 이정훈 교수는 학생때 출가하여 불교에 수행하며 종자연을 구성하여 기독교 말살 정책에 앞장 섰던 사람이었습니다. 중국 마오쩌뚱은 문화혁명을 일으켜 책을 불태우고 홍위병들을 시켜 스승인 교사를 죽이는 짓을 저질렀습니다. 마오이즘 6.8 혁명이 부르짖은 바는 ‘모든 금기를 금하라’ 였습니다. ‘동성애, 차별금지법 성주류화’ 마오이즘 쓰나미 가 유럽 교회를 쓸어 버렸습니다. 절에 들어가서 기독교 공격 논리를 개발하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팠습니다. 그때 CTS 방송을 보며 한 목사님이 전하는 “주여 죄인입니다.”를 조롱하려는데 ‘어 어 어’ 하다 혀가 마비 되고 쓰러져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죽었다’ 라고 느껴질때 하나님이 요한복음 8:12절 “ 나는 세상의 빛이니 ” 말씀을 보내사 그를 치유하셨습니다. 전에는 자기가 ‘의로운 자’ 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자기가 가장 ‘부패한 죄인’ 이요 ‘흑암에 갇힌 자’ 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회심하고 보니 생명이 있는 세상이 ‘너무 아름답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언어가 회복되고 ‘나의 하나님’‘나의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하고 사울에서 바울로 회심한것 처럼 ‘기독교 변증가’로 변화 되었습니다. ‘못자국난 손으로 제 머리를 만져 주세요. 주님 품에 안겨 예수님 발을 붙잡고 제발 저를 떠나지 마시고 함께 계셔 주세요.’ 기도하는 종이 되었습니다. 회심 후 그는 ‘차별 금지법’ 부결 시키는데 앞장섰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보내사’ 우리를 고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심령을 고치고, 병든 육신과 정신을 고치고, 우리 마음을 고치고, 성품을 고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만나 사람들의 간증이 무엇인가요? 주님을 만나고 난 후 내 인생이 이렇게 변했다. ♬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 지금도 주님은 우리를 고쳐주십니다.


   세상은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했으니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구원, 치유 거듭남’에 관심이 없습니다. 두 번 기회는 없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비록 실수 했지만, 그대로 망하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치료하고 다시 살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이는 약자 뿐 아니라 죄인에 대한 배려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안되지요.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뭡니까? ‘이미 죄를 지었는데’ ‘이미 죄악 가운데 탄생했는데’ ‘죄를 지으면 안된다’는 바리새인의 말로는 죄인을 진정 도와 줄 수 없는 일이죠. 이미 죄를 지은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이냐? 세상에는 대책이 없습니다. 희망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사 말씀으로 고치십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우리 영혼을 치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병든 육신 정신 내면 영혼까지 치료 하십니다. 구원 받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21,22절에 말씀을 보내사 치료하시고 건지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나라를 위경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감사 찬송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을 멸시하는 개인이나 나라는 망하고 고난에 처합니다. 위경에 처했을때 부르짖어 회개하고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치료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말씀을 보내어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우리도 날마다 부르짖으므로 치료함을 받고 건짐을 받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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