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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자를 깨우러 가자 ( 요한복음 11:17-44절 )
04/01/2018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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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일


                                                  잠든 자를 깨우러 가자

                                 

말씀: 요한복음 11:17-44절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입니다. 썩어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것은 역사상 전무 후무한 사건입니다. “우리 주님이 다시 살리셨다”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습니다. 17절을 보세요.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나사로 병이 심해졌습니다.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가 사람을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빨리 오사 병든 오빠를 고쳐 주세요.’ 그런데 예수님은 이틀이나 더 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하셨을때 나사로는 죽은지 벌써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이 어떠합니까? 눈물이 앞을 가리고 통곡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틀을 더 유하신 것 일까요? 4절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였습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라 생각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저주로 여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어떻게 보셨습니까? 11절에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예수님은 ‘죽음’을 ‘잔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죽음은 깨어날 수 없죠? 그러나 잠은 깨어나죠? 나사로는 분명히 죽었습니다. 19절에 많은 사람이 오라비 일로 위문하러 온 것을 볼때 그의 죽음은 확실한 fact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잔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없다’ ‘잠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잠든 자를 깨우러 가자!’ 말씀하십니다. ‘저주의 죽음’ 조차 예수님은 ‘부활의 은혜’로 바꾸어 놓으셨습니다.


        그때 마르다가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았겠나이다.” ‘일찍 오셨더라면 오빠가 살았을 텐데!!’ 라는 섭섭함과 원망을 토로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어떤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까? 23절에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그러자 마르다가 답합니다. 24절에 ‘마지막날 부활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이 말은 당시 유대인들이 교리로 듣고 배워 알고 있는 공동체적인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사오며” 라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 고백은 마르다의 자기 부활신앙이 아니죠? 배운 교리대로 장차 먼 훗날 부활할 거라는 막연한 신앙이었습니다. 마치 장례식장에서 “언젠가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입니다” 이런 인사들을 많이 나누 잖아요? 마르다는 그 정도로 예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22절에 “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이는 믿음의 말처럼 보이나 실제 인간 이성의 한계를 드러낸 말입니다. 우리가 교회 열심히 다니고 하나님 믿지만, 결정적 순간에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열심 부족이 아니라 믿음이 이성적이기 때문입니다. 마르다 믿음의 문제는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믿음’이라 ‘착각한 것’입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보지 않은 것입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이 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실 수 있다고 확신있게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마르다는 늘 ‘믿는다’는 말 대신 ‘압니다’ 라고 말합니다. ‘안다’는 것은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한 말이죠? 지식과 정보가 기적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이해했다’고 해서 다 ‘이루어 진 것’은 아니죠? 그녀의 믿음의 기초는 ‘이성,합리,지식,정보’ 였습니다. 그래서 멋지게 말 했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나사로 무덤 앞에 섰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명령을 하십니까? 39절 ‘ 돌을 옮겨 놓으라’ 그때 마르다의 반응이 어땟죠? ‘주여 이미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막연한 신앙은 실생활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쐐기를 박습니까? 23절에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 나리라”  25, 2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내가 부활이요 내가 생명 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부활이란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사는 것’ 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죽음은 끝, 저주, 심판이 아니라 부활의 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생명이란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이 ‘영생’이죠? 주님이 곧 ‘영생’이요 생명이십니다. 주님은 부활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기서 죽은자 모두를 살리신 것이 아니라 한 사람 나사로만 살리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십가자에 죽고 난 후 부활할 것을 나사로의 부활을 통해 알려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이것을 네가 믿느냐?’ 질문하십니다. 마르다는 ‘내가 아나이다’ 대답했으나 예수님은 ‘믿느냐’ 도전 하십니다. ‘안다’는 것은 이성의 문제죠? ‘믿는다’는 것은 의지와 결단의 문제입니다. 마르다는 27절에 ‘주여 그러하외다’ 믿음의 관점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주여 그러하외이다’는 ‘아멘’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고백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이 고백만 떼어 놓고 보면 ‘훌륭한 고백’ 입니다. 똑같은 고백을 누가 했죠? 베드로죠? 마태복음 16:16절에 “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여기 요 11:27절 마르다의 고백 “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을 내가 믿나이다” 올바른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를 듣고도 주님은 왜 흡족해 하시지 않으십니까? 마르다는 지금 당장, 주님께서 나사로를 살리실 것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마르다가 못 믿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사로 무덤 앞에 서셨습니다. 39절 “돌을 옮겨 놓으라” 말씀하셨을 때 마르다가 나서면서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그러니 마르다는 입으로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 했지만 마음으로는 예수님께서 현재 오라비를 살릴 것은 전혀 믿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기도를 들으시고 전지 전능하시다 고백하지만 예수님께서 지금 당장 오라비를 살리실 것은 전혀 못 믿었습니다. 그러니 마르다는 입으로는 믿었으나 실제로는 불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떠합니까? 주를 그리스도로 고백하지만 믿음의 현재성이 없다면 실제적인 신앙이 없는거와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천 년전에 오셔서 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많은 병자 고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 믿습니다. 또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 믿습니다. 언젠가 우리 주님 말씀하신대로 다시 오셔서 모든 고통 질병 다 제거하시고 아름다운 천국 이루실 것 믿습니다. 그러나 그 주님이 오늘 지금 우리 속에도 여전히 역사하신다는 현재성에 대해서도 믿는 귀한 성도들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4:12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또 마가복음 16: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감격하는 것은 똑같은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기도하면 다 낫고 모든 고통 아픔 다 사라진다’ 그런 말은 아닙니다. 궁극적인 약속은 그 날 천국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이천 년전에 시작된 이 사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온전하지 않다 할지라도 마귀, 죄, 죽음의 역사, 물리치신 주님의 그 능력이 지금 오늘도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의 한계에 갇혀 예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날마다 놀라운 기적을 기대하며 하나님께서 “NO” 싸인을 주시기 전까지는 포기치 말고 구하며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아는 분이 불루베리 나무를 주어서 옥상에 심었습니다.  솔잎 썩은 것을 주면 블루베리가 잘 열린다고 해서 시골에 잘 아는 분 산에 가서  쓸 솔잎 썩은 거름을 한부대 담았습니다. 차에 싣고 돌리려 하는데 산길이라 공간이 나오지 않아서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전날 비가 많이 와서 차가 진흙탕에 깊숙이 빠져 버렸습니다. 아무리 악셀을 밟아도 더 빠져만 들고 후진을 해도 헛바퀴만 돌았습니다. 앞이 캄캄했습니다. 시골 산길이라 넥카차 부르기도 난망했습니다. 그래서 눈을 감고 기도했습니다. '주님! 제가 부활신앙 없이 근심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주님은 죽은 나사로도 살려내셨는데,  살아 있는 저의 지금 당면 문제, 진흙탕에 빠져 오가도 못하는 차도 꺼내 주실줄 믿습니다. 아멘' 기도후 산길을 조금 나가보니 트랙터 한대가 농로를 고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락했더니 바로 산골길로 달려와 밧줄로 연결하여 쉽게 차가 도로 위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40절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 하였느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그렇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 서서 “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습니다. 그러자 나사로가 수건에 싸인 채로 뚜벅뚜벅 걸어 나왔습니다. 현재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 한마디에 사망권세는 물러갔습니다. 생명이 부활되어 나왔습니다. 요한복음 5: 25-29절에 “ 죽은 자들이 하나님 아들의 음성을 들을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팜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말씀대로 생명의 부활로 부활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부활하되 천국가기 위해서 부활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현재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임하면 지금 이 자리에서도 죽어 썩어져 가는 것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죄로 썩어져 가던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이 새겨질 때 마른 뼈들이 살아납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죽은 심령이 현재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말씀을 들으면 다 살아납니다.


    예수를 믿는다 고백하지만 부활신앙이 살아있지 않으면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문제 앞에 벌벌 떱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다르죠? 예수님은 우리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지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분이 우리 구주 만왕의 왕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을 믿는 자는 주와 함께 살 줄로 믿습니다.

 

    2018년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주님!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의지적으로 믿습니다.’ ‘내 평생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렇게 결단할 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런 고백 위에 나사로가 살아났습니다. 우리 삶에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임종때 D.L 무디는 외쳤습니다. “여러분 내일 아침 조간 신문에 무디가 죽었다는 기사가 나도 믿지 마십시오. 이렇게 무디는 하늘로 올라가지 않습니까!” 임종을 맞아 빌리그래햄 목사는 말합니다. ‘나는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주소만 땅에서 하늘로 바꾼 것입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의 생명의 말씀이 임하면 썩은 것이 살아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서 썩어가는 나사로를 말씀으로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덤 속에서 썩어가는 나사로를 다시 살리십니다. 나사로의 부활사건은 오늘 우리의 부활신앙을 회복시켜주시기 위한 사건입니다. 또 그리스도 부활을 의심 없게 믿게하는 영광스러운 사건입니다.


   우리 부활신앙이 부활될때 우리 가정도 부활 됩니다. 서로 미워하고 싸우던 가정이 감사와 기쁨과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가정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와 성도의 부활신앙이 부활될 때 부패한 이 땅도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화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 부활신앙이 회복되어야 이게 가능합니다. 우리 부활신앙이 부활될 때 날마다 우리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될줄 믿습니다. 이번 4/3.4일 spring bible Academy 도 잠자는 자들을 깨우러 가서 살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축복된 일입니까? 절망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부활신앙은 그리스도의 생명을 오늘 나의삶 속에 체험하는 것입니다.” 삶과 동떨어진 신앙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신앙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으로 부활되어 강도 만난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을 전해주고 ‘잠자는 자를 깨우는’ 부활의 산 증인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974년 서울의 어느 골목에서 였습니다. 부모가 누군지도 모른채 어쩌면 그냥 사그라지고 말 어린 싹이 다행히 구원의 손길로 입양기관에 인도 되었다가네살이 된 해 미국 디트로이트에 사는 엘버트 로이스 뮤어씨 부부에게 입양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그때부터 Kim Muir 로 바뀌었습니다.


44년이 지난 오늘날 전세계 빙상계의 스타 유명한 빙상 여자 코치로 세계 매스컴의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지난 평창 올림픽때 AP 통신은 그녀의 감동적인 삶을 조명, ‘평창의 별’로 세계에 알렸습니다. 그녀는 현재 미국,체코,캐나다 등 내노라 하는 세계 각국의 아이스 하키 국가 대표 주전 선수를 양성한 최고의 조련사가 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다시 버림 받을까 두려워 양부모 침실에 밤늦게 물끄러미 서있던 아이가 이제는 세계의 스타가 되어 만민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부모를 잘 만났고, 가야 할 길을 잘 선택했습니다. 양아버지 앨버트 씨는 아이스 하키 코치였고, 두 양 오빠도 하키 선수였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바뀐 것입니다. 세상적으로도 육의 부모를 잘 만나면 신분과 삶의 자리가 바뀌죠?


   하물며 영의 아버지를 잘 만나면 신분과 삶의 자리가 바뀌는 것입니다. 항상 ‘부활의 새생명’으로 생명 넘치는 삶을 영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필리핀의 복서 매니 파퀴아오 는 예수님을 믿기 전 부터 이미 유명인사였습니다. WBC 플라이급 부터 IBF 슈퍼밴텀급을 석권하였고 차차 체중을 늘려 복싱 역사상 전무후무한 8체급을 석권한 챔피언으로서 대스타가 되어 대전료만 2천만불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높은 성과와 유명세로 연예계에서 영화 TV 등에 출연하며 세계적인 것들을 마음껏 했습니다. 도박과 술등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을 마음껏 즐겼습니다. 필리핀 국민영웅 일뿐 아니라 전 세계에 유명한 참피언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2010년 말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더는 도박이나 술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공허함을 느끼면서 설명할 수 없는 다른 것을 찾고 싶어 졌습니다. 그 당시 그는 아내와 별거의 위기에 있었고, 매일 싸웠습니다. 그의 삶은 항상 문제들로 가득했고,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그는 그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찾았습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엎드렸고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며 죄를 고백했습니다. 주님앞에 너무 많은 죄를 지은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권총으로 자살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살 자격이 없는 것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살하고 싶을때 감사한 것은 주위에 총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요한복음 11장에서 매니 파퀴아오야 ‘목적 없는 삶에서 나오라’ 는 ‘부활의 주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부터 아내와 함께 매일 밤낮 성경을 읽고 묵상했습니다. 이를 통해 그는 한가지를 깨달았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사람을 만족 시킬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만 우리 삶에 계시다면 행복하고 만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 분으로부터 안전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때문입니다. 그는 한국에 와서 많은 성도 앞에서 증거했습니다. ‘만약 우리 삶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그분으로 인하여 ‘매일의 삶’ ‘매 시간’ 변화되는 삶이 되길 축복합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난 행복한 복서 매니 파퀴아오의 간증이었습니다.


   만일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 부활을 거짓으로 만들어 냈다면, 그 중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바뀌었다면 예수 부활은 전부 붕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한 제자 모두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예수 부활을 증거하며 부활의 진실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우리 믿음이 아는 믿음에서 믿는 믿음으로, 성령이 주시는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는 믿음으로 변하기를 축원합니다.


     믿음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으나 다시 살아 나셨다.’ ‘이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다. 나의 메시아다.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입니다. 여기 모인 우리 모든 이런 믿음을 갖고 부활의 주님을 몰라 아직도 세상 죄와 죽음 권세 아래 잠든 자들을 깨우며 믿음의 고백을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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