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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 ( 요한복음 1:29-34 )
03/25/2018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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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5일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 ’


말씀: 요한복음 1:29-34


       제정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1세는 반체제 단체를 면밀히 감시했습니다. 그때 ‘페트라셰프스키 서클’ 비밀조직에 가담한 죄목으로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한 회원 모두 잡혀 ‘총살형’ 선고를 받습니다. 1847년 12월 혹독하게 추운날 간수는 10미터 앞 열여섯 명 사수(射手)들 앞에 죄수들을 끌고가 일렬로 세웁니다. 두건이 씌워지고 집행관이 외칩니다. “장전! 조준!” 그때 특사가 가져온 황제 새 명령문이 낭독 됩니다. “ 죄인들 목숨만은 살려주되, 사형 대신 장기간 복역형을 명하노라!”


     이 극적 상황은 다 니콜라이 1세가 꾸민 일이었습니다. ‘죄의 무게’를 확실히 깨닫도록 사형집행 직전 까지 몰고 간 후 형량을 감해준 것입니다. 옴스크로 이송되어 4년간 강제노역에 시달립니다. 그런 파산의 충격 체험에서 작품《죄와 벌》이 탄생한 것입니다.


   ‘죄’ 를 짓고 ‘벌’ 받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똑똑히 이해한 상태에서 작가는 실존인물 라스네르를 모델로 작품을 써내려갔습니다. 가난에 찌든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고리 대금업자 노파를 살해 하고 목격자 여동생 리자베타 마져 죽입니다. 그는 ‘살인’을 돈 버는 ‘수단’으로 치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살인 후 죄도 없는 리자베타를 죽인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이’ 를 죽여 영웅이 되고자 했던 자신과 달리 ‘자신’을 죽여 생계를 유지하는 매춘부 소냐를 본 라스콜리니코프는 자기 잘못을 깨닫고 소냐에게 죄를 고백합니다. 소냐는 자신이 더럽힌 땅에 키스 하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노파를 죽였다’고 알리라 말 합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를 즉각 수용합니다.


    체험을 통해 저자가 작품을 통해 말하려는 게 무엇일까요? ‘죄는 벌이 따른다’ 는 것입니다. 그럼 아담 타락 후 온 인류의 ‘죄 짐’을 우리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이 보여주신 계시대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튿날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증거합니까? 29b절에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세례요한 당시 유대인들도 ‘메시야 대망 사상’ 이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 압제하에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배경하에서 유대인들은 어떤 메시야를 대망했을까요? 로마의 압제하에서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시고 다윗 왕이 다스리던 그 영광스런 나라를 회복 시켜줄 ‘정치적인 메시야’를 대망했습니다. 또 굶주림과 가난에서 민중을 해방 시켜 ‘빵 메시야’ 를 대망했습니다. 3년간 제자 훈련을 받은 열두 제자 조차도 예수님을 통해 어떤 꿈을 꾸고 있었죠? 행1:6 절에 “ 이스라엘의 회복” 을 간절히 꿈꾸며 소망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세례 요한은 사람들이 기대한 메시야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계시’ 해 주신 예수님만 전하였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어떻게 인격적으로 알게 되었습니까? 30,31절 “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 처음에는 몰랐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줄 알았습니까? 32,33절 “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33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줄 알라 하셨기에” 하나님이 ‘성령이 누구에게든지 내려서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 사람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분이시라고’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후 34절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계시하신 대로 이루어 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은 ‘친척 아우’로 알았던 예수님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분’ 이시구나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계시해 주신 대로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 으로 증거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메시야에 대해 계시된 대로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도 다 원하는 바가 있죠? 다른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를 주께 고하고 응답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메시야에 대해서 만큼은 전혀 달라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메시야를 대망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계시대로 예수님을 알고, 성경이 보여주신 메시야로 깨닫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에 계시해 주신 예수님은 어떤 메시야 이십니까?

 

     계시대로 세례 요한이 전한 예수님은

2. 우리 죄짐을 ‘지고 가는 어린양’ 이십니다.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


      먼저, ‘어린양’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유월절 어린양을 떠올렸습니다. 출애급 당시 요셉을 모르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역으로 압제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압제에서 구할자로 모세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러나 강팍한 바로는 이스라엘을 내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강한 오른팔을 드사 10가지 재앙으로 치셨습니다. 마지막 재앙이 장자 재앙 이었죠? 애굽 전역에 전무 후무한 애곡이 들렸습니다. 바로의 장자부터 맷돌뒤 여종의 장자까지 다 죽었습니다. 그때 누구만 살았죠? 하나님은 문 좌우 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면 'pass over' ‘재앙에서 넘어가겠다’ 약속 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약속대로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그때 문설주에 유월절 양을 잡아 피를 바른 집은 심판에서 넘어가고 큰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를 기념하는 절기가 ‘유월절’ 입니다.

 

     다음, 어린양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로서의 양입니다. 제사에 쓰이는 제물로는 소와 양과 염소 등 여러 종류 지만 가장 흔하고 보편적으로 사용된 제물이 어린양이이었습니다. 출애굽기 29장 38절 이하에 이스라엘 온 백성의 죄를 위하여 매일 아침 저녁으로 태어난 지 일년 되는 어린양을 하나님 앞에 희생의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렇게해서 하나님의 긍휼이 온 백성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또 레위기 4장 24절에 속죄제물을 드릴 때, 제물인 어린양의 머리 위에다가 죄인은 손을 얹고 회개기도를 합니다. 즉 사람이 지은 죄를 양에게 전가시키는 것입니다. 회개 기도가 끝나면 양을 잡아서 제단에 불을 지릅니다. 이는 죄인 대신 양이 죽는 의미로써, 예수께서 우리 죄인을 위하여 죽으신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가 나를 위하여 대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어린양이라 할 때 그들은 아사셀 양을 생각하였습니다. 아사셀양은 레위기 16:8-10절에 배경이 나옵니다. “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9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라“  아사셀은 이 말씀을 배경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속죄양을 말합니다. 「아사셀」은 히브리어로 "떠나 보낸다"는 뜻입니다. 즉 이스라엘 온 백성의 죄를 회개하는 대 속죄일에, 미리 준비한「아사셀」염소 머리에 제사장이 손을 얹고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합니다. 그후 이 염소를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로 보냅니다. 그러면 염소는 이스라엘 모든 백성의 불의를 대신 지고 무인지경으로 갔습니다. 이것이「아사셀」입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만 백성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신 예수님의 그림자로 삼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이 감당할 사역이 무엇입니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지고 가셨습니까? 바로 세상 죄입니다. 인류의 ‘죄’짐 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을때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셨다는 사실, 즉 대속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요한이 증거하는 어린양은 유월절 어린양이나, 속죄의 제물이 된 양이나, 모든 백성의 죄를 지고 광야로 보내지는「아사셀」양 까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모형입니다.   


그러면 어린양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죄’는 세상 ‘도덕’ ‘윤리’ ‘철학’ 그 어떤 ‘사상’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인생에서 가장 ‘무거운 짐’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 저 ‘죄와 벌’ 처럼 ‘죄’는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원하는 대로 맘껏 누릴 때는 좋죠? 그러나 죄값을 치루어야 할때 사람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말합니다. ‘내 인생에 이런 세상이 올 줄은 몰랐다’ 그리고 모두 다 통곡합니다. 무거운 죄 값이죠?


    ‘지고 가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아이레오 ( ? α?ρων ) 는 영어로는 현재분사형 ‘taking away’ 로 계속적인 용법입니다. 한번 지고 가다는 말이 아니고 ‘계속’ 지고 가다는 뜻입니다. 내가 죄를 졌으니 죄짐을 내가 져야 합니다. 그 길은 죽고 심판 받는 무거운 ‘사망의 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흘려 계속 ‘세상 죄’를 지고 가십니다. 따라서 그분을 믿고 가는 길은 ‘죄사함’의 은총을 받는 ‘생명의 길’입니다.

롬6: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상응하는 값을 치러야 하죠? 그런데 ‘죄’에 상응하는 ‘댓가’는 ‘생명’ 입니다. ‘생명’이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 레위기 17:11절은 말씀하십니다. “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


    따라서 ‘죄’ 문제 해결을 위해서 반드시 어떤 ‘댓가’가 지불 되어야 할까요? 성경 히브리서 9:22절은 “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 피흘림이 필요합니다. 구약에는 양과 소 같은 짐승을 잡아 속죄했습니다. 그러나 짐승의 피는 제물이 흠이 있고 일시적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까지 그림자입니다. 히브리서 9:12절에 “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무흠한 제물이시며 once for all ‘영원한 속죄’ 를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대속하라고 보낸 무흠한 ‘희생제물’이셨습니다. 내죄를 예수님이 지고 가신 어린양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이십니다. 내대신 죽임 당하신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양’ 이십니다.


     이로 우리가 누리는 축복이 무엇이죠? 이사야 53:5,6절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예수님은 우리 대신 찔리시고, 대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그래서 평화를 주시고 나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엇 때문에 대신 찔리시고 맞으신 것입니까? 예수님은 ‘ 유월절 어린양’ 으로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수치와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죄를 그에게 다 담당 시키셨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가 누리게 된 축복이 무엇입니까? 갈3:13,14 절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 구원이 저절로 이루어 진 것이 아니죠? 하나님의 아들이 ‘자기 피’를 값으로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값비싼 댓가’를 치루사 저주가 떠나고, 아브라함의 복이 임한 것입니다.  엡 2: 16절에 “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자기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로 우리가 나음을 입게 되었습니다. 또 모든 저주에서 속량 받게 되었습니다. 이로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아브라함의 복’ 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내 죄를 지고 가신 어린양 예수님을 믿는 자는 얼마나 큰 은혜 입니까? 


   엘리트 집안에서 태어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모가 서울에서 맞벌이 하느라 그녀는 어릴때 시골 할머니 손에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때 부터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는 병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때 사람을 시험해 보고 이중적으로 대함으로 사람을 심히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은 대학시절 성경공부를 통해 그녀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오래된 의심과 위선 이중적인 죄짐을 몽땅 십자가에서 대신 짊어 지셨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말씀을 영접했을때 예수님은 그녀를 ‘진실한 사람’ 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지금은 미국 LA 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의 죄짐을 대신 짊어 지며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우리 죄 값을 다 치루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앙이 넘어갔고, 죽음의 권세가 넘어 갔으며, 저주와 형벌이 넘어 갔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그 안에서 구원을 받았고,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흘린 피로 이런 놀라운 은혜를 입은 우리 성도들은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받은 바 은혜를 감사하며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어린 소년이 주일날 아침 할아버지 목사님이 인도하는 예배에 참석하려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날 엄청난 폭설이 내렸습니다. 그래서 평소 다니던 교회 예배당으로 갈수 없었습니다. 대신 인근 교회 예배당에 출석했습니다. 마침 그곳 예배당에도 폭설로 인해 담임 목사님이 오시지 못했습니다. 그날 한 성도가 예배를 인도하였습니다. 그는 강단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시오.’ 그 말만 반복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어린 소년을 보며 ‘왜 나무에 달린 예수를 바라보지 않소’ ‘그분은 너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요’ 외쳤습니다. 그 소년은 자기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순간 성령이 강력히 임했습니다. 거듭나 중생을 체험 하였습니다. 그후 그는 주와 복음을 위해 영국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유명한 ‘위대한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 회심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정치적인 메시야’ 가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 이십니다. 또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고 죄 사함의 은총을 주러 오신 영적인 메시야 이십니다. 우리가 추하고 더러운 죄를 회개할 때 내 대신 무거운 죄짐을 지고 가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죄문제를 풀어 주시고 자유함을 주십니다. 우리 가슴 이런 응답과 뜨거운 감동이 넘치시길 바랍니다. 세례 요한의 가슴 속에 그리스도의 영상을 볼 때 느꼈던 그 감격의 증언을 우리 것으로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내 죄 짐을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바라 보시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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