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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드온을 부르신 하나님 ( 사사기 6:1-16 )
03/17/2018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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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8일


                                          기드온을 부르신 하나님


말씀: 사사기 6:1-16


         본문은 하나님께서 압제자의 손에서 고통 당하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기드온을 부르신 사건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부르심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1. 일상의 작은 행복마져 잃어 버린 기드온(1-11)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그렇게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1a 절을 보십시오. “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 했다는 말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라도 어떻게 하셨습니까? 2절에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이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진 것입니다. 나라의 운명이 미디안에게 패하니 기드온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기드온이 숨어서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였습니다. 왜 기드온이 숨어서 밀 타작을 하고 있습니까?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라고 했습니다. 만약 기드온이 밀타작 하고 있는 모습이 공개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이스라엘 자손은 산에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만들어 피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왔습니다. 4절에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였습니다.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였습니다. 미디안이 그들의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 메뚜기떼 같이 많이 쳐들어와 그 땅을 멸하려 했습니다. 그런때 기드온이 밀타작 하는게 드러나면 미디안이 타작한 밀을 몽땅 빼앗아 갈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디안이 두려워 기드온이 몰래 숨어서 포도주 틀에서 밀 타작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기드온 현재 삶’이 어떠하다는 것입니까?  1986년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랑게르한스섬의 오후’ 라는 수필집을 썼습니다. 그 책 내용은 저자 하루키가 ‘ 시골에서 물고기 잡아 요리해 먹고’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을때 ’ 등 별것이 없습니다. 그냥 특별 하지 않은 소소한 행복을 그리며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 내용들 입니다. 그런데 현대인들이 왜 하루키의 수필에 빠져드는 것일까요? 각박하고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지친 오늘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을 느끼며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예능의 대세로 떠오른 ‘삼시세끼 나 효리네 민박, 윤식당’ 등의 공통점은 보고나면 별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산촌이나 어촌에서 물고기 잡아 요리해 먹고 편하게 낮잠을 자는게 전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은 거기에 ‘작지만 확실한 행복’, ‘편안한 일상’이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드온에게 없는 게 무엇이죠? 바로 ‘작지만 확실한 행복’입니다. 지금 기드온은 두려워 포도나무 즙 짜는 틀에 숨어 긴장하며 밀 타작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비참합니까? 바로 ‘조그만 여유’ ‘편안한 일상’ 마져 누리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일상에서 소소한 기쁨마져 미디안에 다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했을까요? 밤이면 밤마다 “ 나는 누구인가? ”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목적과 방향에 대해서 기드온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드온은 숨어 번뇌하며 까만 밤을 하얗게 새우며 고민 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했습니까?

2. 부르짖은 이스라엘(6-10)


   이스라엘은 7년간 일상에서 확실한 행복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내전과 테러로 쑥대밭이 된 시리아처럼 이스라엘은 미디안에게 약탈 당하며 ‘긴장하는 일상’을 살았습니다. 당연히 ‘궁핍함’이 심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자손이 한 것이 무엇입니까? 6b 절 “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 문제를 고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여러분! 별 것이 없으나 일상이 편안하십니까 ? 그것이 행복입니다. 눈을 뜨면 갈 직장이 있고 퇴근하면 돌아갈 집이 있는거.식탁에 둘러 앉아 가족이 맛있는거 먹으며 오손 도손 이야기 나눌수 있는 저녁이 있는 삶! 그것이 엄청난 복입니다. 주일이면 자녀들 손 잡고 교회당에 나가 찬송 기도 예배 드릴수 있는 것도 당연한게 아닙니다. 암에 걸려 수술대 위에 누운자는 주일날도 예배드리기 힘든 것입니다. 엄청난게 아니라 작지만 확실한 행복 소소하지만 편안한 일상도 큰 복입니다.  


   일상이 긴장 되십니까? 부르짖을 때입니다. 개인이나 국가나 도적이 들어오면 편안한 일상을 다 도적 맞는 것입니다.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8절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선지자가 이스라엘에게 어떤 말씀을 전합니까? “ 9.10절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가 거주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하지 말라 하였으나 ”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잊고 지내던 역사 교육을 시키 셨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급을 시켜 주신 ‘은총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이 가나안 원주민을 쫒아 내시고 약속하신 가나안땅을 이스라엘 후손들에게 주셧습니다. 얼마나 은혜입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죠? 10b 절 “ 너희가 내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아모리 사람들의 신을 우상숭배 했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스라엘이 당하고 있는 고통은 하나님 잘못이 아닙니다. 우상숭배와 패역한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 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시련을 당하면 하나님 탓 남 탓 하기를 잘하죠? 그러나 환란의 때 깨달아야 할 바가 무엇입니까? 고난과 시련은 바로 내 죄 때문이며 하나님의 징계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때 징계가 풀리고 다시 은총의 빛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습니까

3. 기드온을 부르신 하나님(11- 16)


    기드온이 7년 동안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서 포도주 틀에 숨어서 밀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어떻게 인사했습니까? “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 하나님께서 소심한 기도온을 향해 “ 큰 용사여! ” 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러면서 14절에 “ 너는 가서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 명 하십니다.  그러자 기드온의 대답이 어떠하였습니까? ‘이 ‘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자기는 미약해서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수 없다고 말한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16절에 “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여 기드온으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시겠다고 약속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부르신 동기는 백성들이 부르짖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도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사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우쳐 주시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촉구 하십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을 어디에서 부르셨죠? 포도주 틀에서 ‘밀 타작 하고 있을때’ 였습니다. 이처럼 소명은 우리가 처한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주어 집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기드온을 향해 ‘큰 용사여’ 라고 부르셨나요? 부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기드온이 묻습니다. ‘왜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시키신 하나님께서 미디안에 넘겨 주신 것입니까? 그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14절에 “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하시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할자 기드온을 사사로 택하사 부르신 것입니다.

 

     여기서 ‘부르심의 은총’ 이 무엇인가 살펴 보고자 합니다. 영어로 큰 용사는 “ Mighty Warrior ' ‘힘센 전사’ 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누가 ‘큰 용사’ 에 해당될까요?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외친 나폴레옹이나 스콧틀란드의 freedom!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운 맬깁슨 감독 작품 ‘브래이브 하트’ 에 나오는 ‘윌리엄 브레이스’ 같은 사람이 해당될 것 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용감하기는 커녕 ‘소심한 청년’ 입니다. 오죽하면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몰래 포도주 틀에서 타작을 하고 있었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15절에 기드온은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 당신은 나를 큰 용사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럴만한 자격이나 배포가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 지파 중에서 제일 작고 우리 집에서도 막내인데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라는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도저히 ‘용사’ 급에 낄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소심한 기드온을 어떻게 ‘용사’도 아니고 ‘큰 용사여’ 라고 부르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가능합니다. 인간적으로 아무리 부족해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큰 용사’가 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상16:7절에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 사람은 ‘외모’를 보죠?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 입니다. 또 부르신 사람에게 당신의 계획과 의지를 부여 하십니다. 그러므로 소심한 기드온을 향하여 “큰 용사여?” 하고 부르신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서’ 그를 통해 ‘역사 하겠노라’ 는 하나님의 선포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무엇이라 말합니까? 고린도전서 1장 26~29절에 “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인간 조건을 보지 않으시고 은총으로 불러 당신의 구속역사에 귀히 쓰십니다. 그래서 신학자 본훼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부르심 그 자체가 은총’ 이다 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소심한 기드온이 하나님께 큰 용사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 부르심의 은총 ’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쓰시고자 하실 때 변명이나 불신의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나는 할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우리의 미약한 ‘힘’ 도 쓰사 구속역사를 섬기게 하십니다. 내가 아닌 하나님으로 부터 출발한 “부르심”을 ‘소명’ 이라 부릅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5절에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라고 고백햇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동시에 각자에게 주신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또 그것을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며 그것을 따라 주어진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 드림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필라델피아에 죤이라는 소년이었습니다. 집이 찢어지게 가난해서 그는 어릴때 벽돌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제일 먼저 11세때 2.75 달러를 주고 빨간 가죽 성경을 샀습니다. 그날 너무 기뻐 밤새워 성경을 창세기부터 사사기까지 읽다 ‘큰 용사여’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비가 조금만 내려도 교회 진입로가 질퍽거려 예배 드리러 가는게 영 불편했습니다. 어느 주일 죤은 7센트 임금을 받아 날마다 벽돌을 한 장씩 자기 공장에서 사서 교회 진입로에 깔기 시작했습니다. 넓고 긴 길이라 혼자 완성하려면 2년이 걸릴 예정이었습니다. 채 1개월이 안되어 죤의 모습을 보고 감동한 교인들이 낡은 교회를 헐고 새로 건축하기로 결의하여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가 전문점을 뉴욕 한 건물 안에 모아 세운 백화점이 큰 성공을 거두게 하셨습니다. 70세때 그의 소유 부동산 값만 200억 달러가 넘었습니다.

 

     어느 날 한 신문기자가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투자한 것 중 가장 성공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제가 11세 때 2.75달러를 주고 산 성경이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그 성경이 오늘의 저를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YMCA 창설자로서 전세계 YMCA 건물을 지어줬고 서울 종로 2가 YMCA 벽돌 건물도 그가 기증한 것입니다.


   그가 50세 때 미국 23대 대통령, 해리슨이 그에게 제의했습니다. “당신의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해 체신부 장관직을 수행해 주시오." 그는 딱 잘라 거절했습니다. “ 저는 주일이면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학교 교사직이 너무 귀중한데 장관직 때문에 아이들을 가르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일입니다." 마침내 그는 주일에 필라델피아 첸바스교회에 출석하여 예배 드리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조건을 달고 장관직을 수락했습니다. 어느 신문기자가 질문했습니다. “ 장관직이 교회학교 교사직 보다 못합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교회학교 교사직은 제가 평생 동안 해야 할 본업이지만 장관직은 한 두 해 하다가 말 부업이지요." 그러나 그는 5년 내내 장관직도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매주 주일학교에서 수많은 어린아이들을 성경으로 교육시켜 훌륭한 그리스도인들을 수없이 배출했던 것입니다. 자기가 땀흘려 번 돈으로 성경을 사서 11살 소년때 잃은 ‘큰 용사여’ 음성을 들은 바로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은 소심하고 평범한 우리를 일상에서 부르십니다. 내가 어리고 연약하고 부족해도쓸모없는 자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나를 “큰 용사여” 라고 부르십니다.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 큰 용사 ’로 씌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영접하고 큰 용사로 씌임받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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