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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소망은 하나님 나라 ( 누가복음 11:1-4 )
02/10/2018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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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4일


                                                  우리 소망은 하나님 나라

말씀: 누가복음 11:1-4


         이땅에 발을 딛고 살아 가는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요? 겉 모양은 같지만 우리 속 소망이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포브스 잡지에 세계 부자들의 명단이 나옵니다. 465억 달라 빌 게이츠, 워렌 버핏, 이케아 일그바르 캄프라드, 구글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삼성 이건희 등등의 이름과 재산이 나옵니다. 세계 기업들은 부의 축적을 위하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하여 치열하게 경제 전쟁을 벌립니다. 그러나 이런 거대 기업이 얼마나 오래 가며 세계 제일의 부자가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눈깜짝 할 사이에 순위가 바뀌고 아차 하는 순간 거대 기업도 사라져 버립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 없는 것이 무엇이며 우리 성도가 진정 소망 해야 할 바가 무엇일까요?


첫째, 하나님 자녀가 구할 것


        예수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하시고 마치셨습니다. 그때 제자 중 하나가 청하였습니다. “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 기도를 가르쳐 달라 청하였습니다. 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였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이 기도하시고 난 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주기도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기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주 기도문을 사용합니까? 주로 모임을 마칠때 주기도문으로 마치겠습니다 하면 암송하는 것으로 끝입니다. 우리는 주 기도문 내용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때 주기도문 의 정신과 spirit 을 살려서 기도하나요? 거의 주기도문과 상관 없는 기도를 드릴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 기도문은 짧습니다. 그렇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 할 모든 것이 다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바 하나님 자녀가 구할 것이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누구실까요? 예수님이십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이땅에 내려오셨지만 예수님이 누구이십니까?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인정해 주셨습니까? 마태복음 3:17절입니다. “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본체가 하나님이시면서 아들로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먼저, 호칭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제 하나님을 부를때 “ 아버지여 !” 라고 부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들이시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죠. 그런데 아담 타락 후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나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요한복음 14:16,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보혜사 성령을 약속하셧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지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사 복음을 완성하신 후 또 무엇을 약속하셧습니까? 사도행전 1: 5절에 “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 성령세례를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성령이 충만히 임하사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15절에서 말씀하십니다. “ 너희는 다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뿐이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자에게는 ‘양자의 영’을 부어 주십니다. 예수님 때문에 죄인이었던 우리가 죄사함 받고 양자로 하나님께 입양이 된 것입니다. 양자도 아들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은 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다음,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여기 ‘거룩’ 이란 ‘구별되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십니다. 하나님은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으로서 지음 받은 피조물과 구별되십니다. 또 하나님은 ‘죄’와 구별 되신 분이십니다. 이상에서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피조물과 죄로부터 구별되신 하나님을 거룩한 분께 나가 이제 ‘아버지’ 라 부를 수 있게 되었음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모를때 사단의 음성을 듣고 범죄함으로 ‘무서워 하는 종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때 심판의 하나님 앞에 감히 나설 수 조차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 믿고 죄사함 받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되었으니 웬 은혜입니까?  '고아' 와 '자녀'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고아'도 하루 세끼 먹고 살지만 아버지가 없어 아버지 사랑을 받지 못해 고독하고 외로운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살아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영적인 고아요, 하나님 사랑을 받고 느끼지 못해 방황하는 인생인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집에서 사는 자녀는 아버지 집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 돈도 안내고 마치 자기 것인양 마음껏 꺼내 먹지 않습니까? 불신자는 도저히 부를수 조차 없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둔자는 가깝고 친밀하게 다가가 기도하며 아버지 것을 다 유업으로 받고 누릴 수 있으니, 이게 웬 은혜입니까? 


둘째,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 하십니다.


       “ 나라가 임하시오며 ” ‘나라’는 영토 백성 주권이 있어야 하죠? 그런데 신자가 구해야 할 나라는 대한 민국이나 미국처럼 이땅에 있는 세속 나라가 아닙니다. 신자가 구해야 할 나라는 영적인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해야 할 ' 하나님 나라 ‘ 개념이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사 처음 외치신 메시지가 마태복음 4:17 절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서 전파하여 이르시되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 하시더라.  마가복음 1:15절에는 ‘하나님 나라’ 로 나옵니다. 그런데 유대인을 대상으로 쓴 마태복음 4:17절 본문에는 ‘천국’ 으로 나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출애급기 20:7 절에 보면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 유대인들은 십계명 중 3계명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때 늘 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엘로힘 ‘하나님’ 이란 단어가 나오면 아도나이 ‘주님’ 이라 바꾸어 읽었습니다. 성경 필사하는 서기관들이 ‘하나님’이란 단어를 기록할 때 목욕재개 하거나 손을 씻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 저자는 전도서 5:2 절에 “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라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말씀에 기초해서 ‘하나님 나라’도 ‘천국’으로 바꿔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표현이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쳐, 오늘 우리나라 불교에서 말하는 천당 개념과 뒤섞여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표어로 외치게 되었습니다. 이로 예수님께서 원래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 개념을 많이 왜곡 되었던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 저자는 이전 하늘과 이전 땅과 이전 바다가 사라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계시록 21:2절에 “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생긴 후에도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로 부터 하늘에서 내려 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다’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 믿고 천당 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믿을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한다’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이 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느때에 임하나이까?’ 그때 누가복음 17:29b.21절은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 따라서 하나님 나라는 ‘하늘’이라는 특정한 곳에 존재하는 ‘장소적’ 개념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통치’ 개념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입니다.


    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잃어 버렸죠?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말을 듣고 자기 마음대로 먹지 말라 한 선악과를 따 먹은 ‘죄’ 때문 입니다. 따라서 죄 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죄입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욕심대로 행동 하는 것이 죄입니다. 죄문제 해결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죄 지은자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기도하라 하십니다. 전적으로 상대에게 죄와 허물이 있습니다. 내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래도 ‘예수 복음을 전하며 내가 먼저 용서 할 수 있게 기도하라’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내 영혼이 주께 용서를 받고 평안하니까 그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땅에 구세주로 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한 자기 중심적인 ‘죄’ 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라! 그때 비로서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말씀하십니다.

 

    아들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누구보다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따라서 제자들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 했을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가장 주시고 싶어 하시는지?’ 코치해 주신 것입니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구하라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 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이 ‘하나님 나라’ 입니다. 우리 모두 이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받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전통적인 말로 ‘구원’ 이라 부릅니다. 우리 다 예수 믿고 ‘구원’ 얻어 늘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셋째, 하나님 나라는 ‘뜻’이 이루어 지는 나라입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이 이루어지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하나님 나라의 복을 심령에 누릴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6:7,8절에 보면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바울이 터키쪽 비두니아로 가려고 애씁니다. 그러나 성령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애쓰고 노력하는 데 길이 막힙니다. 그리고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 ‘우리를 도우라’ 합니다. 그래서 마게도냐로 건너갑니다. 마게도냐는 그리스 유럽이죠. 하나님께서 한쪽 길을 막으시고 다른 길을 열어 주십니다.


      리빙스턴은 중국에 가서 선교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아프리카로 인도하셧습니다. 윌리암 케리는 남태평양 폴리네시아로 가기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인도로 가게 하셧습니다. 언더우드 아펜셀러는 중국으로 가기 원했지만 성령께서 한국으로 인도하셧습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해야만 하나님의 일이라고 고집 부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 집니다. 내가 원치 않는 일이라도 좋습니다. 문제는 얼마나 충성하고 헌신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기도하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따라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눅10:22b절에 “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 ”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죠? 또 사도행전 10:38절에 “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그가 두루 다니시며 선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 ” 예수님도 성령의 능력을 기름붓듯 부음 받으셔서 귀신들 마귀에 눌린 모든 사람을 고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언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나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령의 능력과 감동으로 그 뜻을 깨닫고, 깨달은 말씀에 순종함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살펴볼때 매 주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요? 10% 정도 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매주일 교회에 출석하여 하나님의 말씀 듣는 우리는 세계 상위 10%에 속하는 ‘구별된 축복’을 받는 자들입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이란 책에 “ 나는 온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용의가 있다. 그러나 나는 거지와 함께 하룻밤을 지낼수는 없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사랑에 대해서 거창하게 말은 잘하지만 실제적으로 사회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행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아닙니까?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들 중 과연 몇 %가 그 말씀을 깨닫고 깨닫는 사람 중 몇 %가 감동 하고 감동한 사람 중 몇 % 가 정말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말씀대로 행동 할까요? 절반도 안될 것입니다. “뜻” 즉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실제로 땅 구체적인 자기 삶 속에서 실천되는 이는 세계 인구 중 몇 % 도 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이 질문에 ‘꼭 천국 사는 것 같아요’ 라고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극 소수입니다. 대부분은 ‘그럭 저럭’ 삽니다. 아니면 ‘ 마지 못해 살아요 ’ 혹은 ‘요즘 사는게 말이 아니에요. 꼭 지옥처럼 삽니다.’ 말 하는 사람도 있지요?  누가 ‘사는게 천국 사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겉보기에 성공한 사람들도 내면을 파 들어가 보면 짜릿한 천국을 맛보는 시간은 잠깐이고 긴 세월 남모르는 ‘인고’의 시간을 거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사는게 지옥 같아요’ 라고 말할까요? 가상화페나 다단계 사기로 수천억대를 뜯긴 사람들 심정이 어떠하겠습니까? ‘사는게 죽을 맛’ 일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가장 ‘지옥 같은 삶’ 을 사는 것은 죄를 짓고 살거나 죄에 연루 된 삶을 살 때입니다. 그때 마귀 사단이 다스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사단 마귀에 시달리며 지옥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그래서 이땅에 마귀 사단을 내어 쫒고 ‘하나님 나라’를 사람들 심령에 건설해 주시려고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병’ 때문에 지옥같은 삶을 살며 고통합니다. 치통만 생겨도 꼼짝도 못하고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누가복음 7:21 절 “ 마침 그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 들을 보게 하신지라” 사람들은 ‘가난’ 때문에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며 신음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3절에서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학생은 학업을 잘 감당할수 있도록 기도하고 열심히 학과를 감당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안하는 것이 불신이고 기도하는 것이 복음 신앙인 것입니다. 그때 고린도 후서 8:9절에 “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무엇보다 사람들은 ‘죄’ 때문에 괴로워 하며 지옥처럼 살아 갑니다. 이사야 53:5절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마가복음 2:17절에 “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필흘려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우리의 병 가난 죄를 몽땅 해결하시고 풀어 해방 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심령에 모든 어둠 슬픔 아픔을 몰아내시고 진정 빛과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천국을 맛보며 살게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누가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까? ‘왕’이신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말씀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고, 주 예수를 모신 내 심령 안에 하나님 나라가 건설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감동하며 순종함으로 늘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고 체험하며 확장해 나가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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