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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 창세기 45:1-15 )
01/20/201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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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1일


                                                                  관계


말씀: 창세기 45:1-15


        요즘 사회 트랜드가 혼자 밥먹고 영화보고 여행다니는 '혼자족'이 늘고 있습니다. 또 이를 위한 마케팅도 늘어 혼밥 혼술 '혼족 전성시대' 라고 부릅니다. 편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혼자 사는 생활 환경은 필연적으로 ‘외로움’을 동반하게 마련입니다. 한국 자살율은 10만명당 28.7명으로 OECD 단연 1위입니다. 미국 저명 심리학자 에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 5단계’ 를 주장햇습니다. 기본적인 '생리적인 욕구'에서부터 '안전', '귀속' 과 '사랑', '자기 존중', 그리고 궁극적인 '자기 실현' 에 이르기 까지 충족되어야 할 욕구에 위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은 '소속감'에 대한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생존할수 없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트레이시 크라우지 체육및 시민 사회장관을 ‘외로움’문제를 담당할 장관으로 세웠다는 뉴스가 눈길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관련전략을 마련하고 폭넓은 연구와 통계화 작업을 주도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는 사회단체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연결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죠?

 

    요셉하면 주로 ‘고난’을 떠올리죠? 그러나 저는 본문을 중심으로 ‘관계’라는 관점으로 요셉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성경에 가장 중요한 주제도 바로 ‘관계’ 입니다. 위로 하나님과 나와 관계, 옆으로 민족과 민족 작게는 직장, 교회, 가정, 부부 사이에서도 너와 나의 ‘관계’가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장 중요한 관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이고, 다음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입니다. 모든 관계에는 ‘갈등’이 존재하고, 그 해답은 ‘용서’와 ‘화해’가 뒤따라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으려면 ‘ 관계를 어떻게 맺어야 하나?’ 살펴 보며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큰 소리로 우는 요셉


    2절에 보면 ‘요셉이 큰소리로 우니’ 라고 나옵니다. 지금 우는 자가 갓난 아이가 아닙니다. 어른입니다. 그것도 애굽 총리입니다. 그런 요셉이 ‘왜 큰 소리로 우는 것’ 일까요?


    창세기 37:3절에 17세 소년 요셉이 나옵니다. 야곱이 노년에 얻은 자식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들 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를 위하여 특별히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요셉이 그때 꿈을 꾸었습니다. ‘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형들이 그의 꿈과 말로 그를 더욱 미워했습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었습니다.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아비 야곱의 special love 와 요셉이 꾼 꿈을 인하여 배다른 형들이 요셉을 더욱 미워하고 시기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인하여 요셉은 꿈을 간직한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반면 형들은 미움과 시기를 품고 살게 되었습니다. 어릴때 마음에 ‘무엇을 품고 사느냐?’ 에 따라 전 인생이 어떻게 달라지는 것일까요?

잠언 29:18a절에 “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 “ where there is no Vision, the people cast off restaint,” 로 나옵니다. 묵시 가 없으면 망한다는 뜻입니다. 여기 ‘묵시’는 NIV 성경에는 ‘revelation’ 으로 나옵니다. 즉 개꿈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계시’로 말미암은 ‘꿈’ 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계시로 주신 꿈은 ‘지도자’가 되는 비젼이 었습니다.


   하나님은 청년 요셉에게 ‘꿈’을 주셨는데 ‘현실’은 어떠하였습니까? 도단에서 양떼를 치던 형들을 요셉이 찾아가자 형들이 말합니다. 창37:19,20절에서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 지라’ 그때 유다가 구덩이에 던진 요셉을 죽이지는 말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자 제안합니다. 마침내 은 20에 팔아버렷습니다. 그리고 숫염소를 죽여 채색옷에 적시고 아버지에게 증거로 보였습니다. 이를 볼때 형들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채색옷과 요셉의 꿈 때문에 미움과 시기가 가득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게 죄인지 몰랐습니다. 잠언 14:30절에 “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 하였습니다. 결국 미움과 시기를 품고 살 때 어떻게 되나요? 요한일서 3:15절에 “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바라 ” 미움과 시기는 증오를 낳고 결국 사람을 죽이게 만듭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창39장에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팔렸고, 보디발 아내의 모함으로 옥에 갇히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 것이 계기가 되어 바로의 꿈까지 해석해 주었습니다. ‘7년 풍년이 올때 곡물을 거두어 들이고 7년 흉년을 대비하라’ 그 명철함에 반하여 바로는 요셉을 애굽의 총리에 발탁합니다. 온 지면에 기근이 있으므로 야곱도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아들들을 보냅니다. 곡식을 구하러 온 형들을 알아본 요셉이 형들 자루에 양식과 은잔을 넣어 보냅니다. 그런뒤 청지기를 뒤따라 보내 붙잡아 오게 합니다. 자루를 풀어 보니 은잔이 베냐민 자루에서 발견됩니다.

 

      베냐민을 도적으로 몰았을때 형 유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창세기 44:32-34절에 “주의 종이 내 아버지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짐을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그 아이는 그의 형제들과 함께 올려 보내소서 그 아이가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내가 어찌 내 아버지에게로 올라갈 수 있으리이까 두렵건대 재해가 내 아버지에게 미침을 보리이다 ” 전에는 아비에게 거짓말 하고 동생을 미디안 상인에 팔아넘겼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짐승에 찢겨 죽었다’ 아비에게 거짓말 하던 유다가 아비 슬픔과 아픔을 걱정합니다. 또 요셉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판 유다가 요셉의 친동생 베냐민 대신 감옥에 갇히겠다 말하였습니다. 유다는 아비와 형제들에 대한 자세에서 분명히 돌이켜 회개한 것입니다.


    형들의 회개하는  말을 듣자 요셉은 창 45:1절에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 가라하고 그 형제들에게 자기를 알렸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얼마나 크게 울던지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까지 들렸습니다.


    요셉은 ‘곡식자루’와 ‘은잔’을 도구로 기막힌 명 연기를 한 것입니다. 형들은 함정 수사에 걸렸습니다. 형들 죄가 다 드러났습니다. 은잔이란 명백한 증거도 있습니다. 형들은 자기 죄를 진술했고 돌이켰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형들이 회개하도록 도운 것입니다


    전에는 형들 죄가 마음 속에 은폐 되어 있습니다. 형들은 배다른 요셉을 미워했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다 욕심 때문에 미디안 상인에게 돈받고 팔았습니다. 채색 옷에 짐승피를 뭍혀 아비 야곱에게 증거로 보이며 ‘악한 짐승이 찢었다’ 거짓말 했습니다. 그때 형들은 아버지가 현장을 보지 못했으니 완전범죄가 될 줄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겠지요?” 노래합니다. 그러나 죄는 시간이 흐른다 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베냐민 자루에서 발견된 은잔에서 죄가 또렷이 살아났습니다. 형들은 죄의식과 죄책감에 떨엇습니다. 죄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됩니까?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외치셧습니다.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과 관계가 막혀 요셉 형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죄 때문이죠? 그럼 죄 문제는 어떻게 해결됩니까? 요한 일서 1:8-10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나님 앞에 인정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또 히9:22절 “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느니라 ”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피로 추한 죄를 씻음 받았다 믿어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켜 주려고 연극을 한 것입니다. 형들이 회개했습니다. 이런 해산의 수고로 하나님과 형들과 관계가 확 뚫렸습니다. 마침내 형들도 천국에 기업을 얻게 된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 된 것을 보고 요셉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2. 나를 이리로 보낸이는 하나님이시라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자기를 드러냅니다. 4b절 “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 이말을 들고 요셉을 알아보았을때 형들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아이쿠 이제 곡소리 나겠구나 ’ 왜냐하면 ‘자기들이 구덩이에 집어 넣고 죽이려다 미디안 상인에게 판 요셉이라니!’ ‘그가 애굽 총리가 되어 자기들 앞에 서 있다니!’ 보통 상식이라면 ‘복수 혈전’ 이란 단어가 떠오르겠죠? ‘ 이젠 꼼짝없이 죽었구나 ’

그러나  형들에게 요셉이 한 말이 무엇입니까? 5,6절에 “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밭갈이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요셉은 자기를 판 형들에게 복수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형들을 위로하며 안심시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이 애굽땅에 인도하신 분은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기근에서 생명을 구원하시려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말합니다.


     요셉은 어떻게 한과 화를 풀 수 있었을까요? 7,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셧나이다 ” 형들은 왜 동생 요셉을 미워하고 시기했습니까? 요셉 때문에 아버지 사랑을 빼앗겼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채색옷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에 빠졌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 때문에 자기가 불행하다 여겼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요셉만 없애면 자기는 ‘유쾌 통쾌 상쾌’ 해 질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왜 요셉은 형들을 용서합니까? 자기 인생을 좌지 우지 하는 이는 눈에 보이는 형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인도하시는 분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배후에서 역사 하셨다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이 형들 때문에 좌지 우지 되지 않는다 믿었습니다. 자기 인생이 구덩이에 빠지던,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리던, 보디발의 아내에게 모함을 당하던, 감옥에 갇히던, 눈에 보이는 사람이 자기 인생을 좌지우지 하지 않는다. 자기 인생을 주장 하시는 분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믿고 확신했습니다. 나를 애굽에 보낸 자도 형들이 아니다. ‘17세 청년때 꿈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그 꿈대로 자기를 인도하사 애굽으로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총리로 높이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형들과 아비 생명을 살리시려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시다’ 증거한 것입니다.


    자기를 보던 자기 눈을 감고 형들도 하나님의 주권 편에서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를 보도록 도운 것입니다. 형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형들 때문에 한 많은 세월을 보냈던 요셉이 쿨하게 형들을 용서합니다.


   이를 볼때 사람과 사람사이에 진정한 관계 회복은 어떻게 이루어 지는 것일까요? 듣기 좋은 말을 한다고 해서 혹 주고 받는 거래가 잘되어 관계가 회복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회복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먼저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때 자연스럽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한이 풀립니다. 화도 녹아 내립니다. 미움 시기 두려움도 사라집니다. 그때 비로서 피차 사람사이 관계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3. 속히 모시고 내려 오소서


    형들과 화해한 요셉은 아버지 문제를 어떻게 돕고 있습니까? 10, 11절에 “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머물며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지 다섯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 13절에 “ 당신들은 내가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와 당신들의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아뢰고 속히 모시고 내려 오소서 ” 형들이 지금 요셉이 애굽에서 누리는 영화를 아비 야곱에게 다 말하고 아버지를 애굽으로 모셔오려면 형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형들이 아버지에게 가서 자초지공 ‘거짓말 한것’ 다 이실직고 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또 아버지께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 그때 아버지 야곱과 형들과 관계도 정상적인 부자 관계로 회복 되는 것입니다.


  이를 볼때 하나님이 요셉에게 이루어 주시고자 하는 꿈이 무엇일까요? 기복주의자들은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이야 말로 그의 꿈이 이루어 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 잘 믿으면 높은 자리 출세하고 공부 잘해서 수석하고 돈 많이 벌어서 출세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게 만사형통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과연 애굽의 총리가 진정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꿈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면 복음 증거하다 돌에 맞아 죽은 스테반은 실패한 인생일까요? 아닙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은 예수님을 보고 찬란히 빛난 그의 영혼이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명절날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네 꿈이 뭐니?' 아이들이 '대통령. 장군, 의사..'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앉으면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전혀 묻지도 않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그 자리에 올랐으나, 대부분 끝이 아름답지 못했습니다. 자리나 지위나 소유는 하나님이 주신 꿈을 이루는 과정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계시로 주신 꿈 ‘형들의 단이 내게 절하더이다’ 라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지도자’가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먼저 꿈을 주시고, 후에 합당한 연단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는 요셉이 총리 자리에 앉았을때 교만하지 않고 겸손이 그 자리에 합당한 일을 해내는 연단된 지도자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즉 형들의 생명을 살리고, 자기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도록 돕는 내면성이 있는 지도자 인생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창49장에 보면 요셉의 도움을 통해 형들이 어디까지 성장했습니까? 아비 야곱의 축복을 받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이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요셉은 묵묵히 해산의 수고를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는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 ‘보혜사 성령의 그림자’ 라 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17세 소년 요셉에 꿈을 주시고, 그 꿈을 이루어 주신 것입니다.

    

    그 후 14,15절에 보면 “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요셉이 또 형들과 입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서야 요셉과 말하니라” 그간 요셉이 말도 못하고 얼마나 외로웠을까요? 그러나 뒤틀렸던 모든 관계가 정상으로 회복되고 형제간 화해하자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거나 관공서에서 일을 보려면 꽌시가 중요합니다. 꽌시가 나쁘면 될일도 안되고 꽌시가 좋으면 안될일도 다 된다고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없는 세상에서 맺어지는 꽌시는 상대적이어서 롯데 철수처럼 잘 맺어 진 것 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일시적으로 와르르 무너져 버립니다.


    근본적으로 ‘관계’ 가 뒤틀어지는 것은 죄 때문 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관계 회복은 먼저, 하나님 앞에 죄를 죄로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후 십자가에서 내대신 흘리신 하나님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믿고 죄사함 받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맺어지고 하나님 나라 기업에 들어갑니다. 또 그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뒤틀린 관계도 정상으로 회복됩니다. 그때 뜨거운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태신자들을 많이 허락해 주셧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한 영혼을 품고 섬기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죄 때문에 뒤틀어진 하나님과 관계, 사람과 사이 관계를 회복하도록 돕는 해산의 수고를 감당하는자 되길 축원합니다. 그래서 요셉처럼 천국에 들어갈 소망을 인하여 함께 붙들고 참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행복한 신앙생활 을 맛보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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