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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 있는 사람은 ” ( 시편 1:1-6 )
01/08/2018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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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7일


                                                      “ 복 있는 사람은 ”


말씀: 시편 1:1-6


         시편의 히브리어 제목은 “텔헬림” 찬양입니다. 그런데 내용에 따라 시편에는 찬양, 노래, 비탄 등 다양하며 분류에 따라 간구(3,44편), 여호와 왕권(47) 예루살렘(48) 교훈적 지혜(1,37,119)로 나뉘며 주제에 따라 창조 (8,19), 출애급 (78), 저주 (7), 회개 (6), 순례자 ( 120 ) 메시야 예언시( 2,6,16,22,40,45,72,110,118편)로 구분됩니다. 표제상 다윗의 시 73편, 솔로몬의 시 2편, 아삽의 시 12편, 고라 자손의 시 12편 입니다. 주 저자가 다윗입니다. 신약 (마22:43,44 행2:25-28 23:35 롬4:6-8 11:9.10 절) 이 시편을 ‘다윗의 시’ 라 인정합니다. 시편의 주저자 다윗은 시인이며 음악가였습니다(삼상16:23, 삼하 1:19-27, 암6:5). 모든 시편은 개인들의 신앙체험과 신앙고백을 표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시편을 우리 영혼의 해부학이라" ?루터?는 "시편을 성경의 축소판이라" 했습니다. 신약성경 중 구약을 인용한 성경 귀절이 283번인데, 그중 시편 인용이 116번입니다. 또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1000년 전 쓰여 진 시편에 메시야에 대한 말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중요한 시편은 성도의 신앙을 높여 주며 생명과 능력과 은혜를 충만하게 하는 우리 영혼의 책입니다.

 

    시편 1편은 시150편 전체의 ?서시?(prologue)입니다. 처음과 마지막에 ‘행복’과 ‘멸망’이 나오는 것을 볼때 시편 1편은 인생의 근본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죠? 어떻게 평안 만족 기쁨을 얻을 수 있을까 고민하죠? 시편 1편은 ‘행복론’ 입니다. 시편이 말하는 ‘진정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Ⅰ. 행복의 조건(1-3)


    히브리어에 ‘복’은 두 가지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내려 주시는 복은 ‘바라크’ 입니다. 본문에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아솨르’입니다.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은 ‘마카리오스’로 나오는데 이 복은 하나님 나라에 참여를 통해 오는 ‘특이한 즐거움’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아솨르’의 복은 예수 그리스도 구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신 (롬 4:5,8,) 롬3:27절에 ‘오직 믿음의 법으로’ 의인되고 자녀된 ‘바라크’의 복을 받은 사람만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시편1편은 신자만 받을 수 있는 복입니다.

정말 행복한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소극적으로 피해야 할 것


         1a 절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 여기 ‘악인’ 헬라어 ‘라사’는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자’를 말합니다. 본문에서 악인들은 하나님의 율법 앞에서 죄인으로 입증된 자를 말합니다. 악인은 악한 목적으로 사람을 유인하거나, 감언이설(甘言利說)로 사람을 속여 죄에 빠지게 만듭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형통도 부러워 하지 않습니다.


       또 1b 절 “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여기 죄인 ‘하타임’은 ‘표적을 빗나가다’는 ‘하타’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의 율법에서 빗나간 자를 의미합니다. “서지 아니하며”는 “머물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미국 PCUSA 장로교단은 동성애 지지와 종교통합을 주장할 만큼 타락했습니다. 더 이상 여기 머물수 없었던 미국 뉴저지 필그림 교회는 PCUSA 교단 탈퇴에 따른 교회 건물을 포기하고, 지난 주부터 영하 15도 혹한 가운데 중학교 건물을 빌려 광야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죄인이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 받은 성도이며 심령이 새로워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죄 짓는 죄인과 어울려 살지 않습니다. 왜 의인이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습니까? 로마서 2:9절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란’과 ‘곤고’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1c 절 “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 여기 ?오만? ‘레침’ 은 조롱하다 뜻의 ‘루츠’에서 파생된 명사형으로 ‘조롱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오만한 자의 특징은 하나님과 복음 교회는 자신과 상관없다 생각하여 모욕적인 언행으로 조롱 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벧엘의 아이들이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대머리여 올라가라' 함부로 조롱하다 저주 받아 곰에게 42명이 물려 죽었습니다.(왕하 2:23-24 ) 잠언 16:18절에 “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 이런 것들은 행복하기 위하여 소극적으로 하나님의 사람이 피해야 할 것들입니다.


        반면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2절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도다 ” 시편 기자는 묻고 답합니다. " 행복해지고 싶습니까? 악인의 길에서 떠나세요. 행복해 지고 싶습니까? 당신의 영혼을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세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입니다.  여기 ?묵상(?想)?히브리어 ‘하다’는 ‘ 속삭이다’ ‘깊이 생각하다’ 는 뜻입니다. 따라서 묵상하다 란 하나님과 속삭이며 말씀의 지도를 받고 준수하는 것입니다. 또 ?묵상(?想)?하다는 것은 감미로운 말씀을 깊이 생각하되 되새김질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한다는 말은 ‘주의 말씀을 입에 달고 산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읽고 암송하고 되네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모세가 죽은 후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안에 기록된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1:8)” 하신 것입니다. 성도의 즐거움은 모든 성경을 즐거워 하며 열렬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복된 성도는 인생을 살면서 어떤 때든 말씀의 뜻을 음미하며 그 뜻대로 사는 자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말씀대로 살아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런 자세로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보면 극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복음으로 살았던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들을수 있습니다. 그래도 그들의 신앙은 소아시아 전역에 소문날 정도로 훌륭했습니다. 그 이유를 데살로니가 1: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니까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사랑하고 좋아하고 즐거워 하는 자입니다. 그것도 일시적 즐거움이 아니라 항상 지속되는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몰두하며 사모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왜 날마다 말씀을 사랑할까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양식이기 때문 입니다. 시편 119:103절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 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말씀이 달고 맛 있기 때문입니다. 왜 말씀이 달고 맛있는 것일까요? 시편 119:98-100절에 “ 주의 계명들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들이 나를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들을 늘 읇조리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나으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나으니이다 ” 말씀 속에 모든 인생의 길이 있고 모든 문제의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는 밥 먹고 힘내듯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영적 힘을 얻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편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속내를 글로 적어 보냅니다. 따라서 편지를 받는 사람은 편지를 읽을때 편지 보낸 사람의 뜻과 마음을 알고 기뻐합니다. 결혼 후 저는 수원 개척자로 파송받아 사명을 감당했고 아내는 청주에서 교사로 평신도 근무를 하며 재정 실무를 감당했습니다. 한 주간 홀로 떨어져 사역하다 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설레던지요? 디모데 후서 3:16,17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사람이 썻지만 성령의 감동을 받은자를 빌어 하나님이 자신의 속내를 우리에게 친히 써 보낸 사랑의 러브레터입니다. 편지를 통해 사랑하는 이의 속내를 알게 되죠? 이처럼 주님의 편지를 읽을때 비로서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마음을 알게 됩니다. 편지를 통하여 관계가 맺어지듯 말씀은 우리와 하나님을 연결하는 사랑의 끈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디모데 후서 2:15절에서 “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 디모데 전서 4:13절에서 “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 말하며 말씀 읽기를 사랑하고 분별력을 기르고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가르치라 권한 것입니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때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영적으로 성장하는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어느 정도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까요? 3절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일이 다 형통 하리로다 ”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삶속에서 열매를 맺고, 그 행사가 다 형통하게 됩니다. 가난에 대한 깊은 운명주의로 모든 사람을 미워하던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려대학교에 들어가 세상 모든 사람을 죽일 원자폭탄 제조를 전공 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은혜로 성경공부를 통해 예수님을 선한 목자로 만났습니다. 그는 십자가 보혈로 미움의 죄를 씻음 받고 복음을 들고 세상에서 사람 수가 가장 많은 인도 땅에 나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불가촉 천민들을 품고 사랑해서 수백명의 인도 영혼을 구원하는데 씌임받았습니다. 그가 윌리암킴 선교사입니다. 또 브라만 계층을 전도하여 변화된 ‘쁘라카쉬’ 가 인도 지성인 복음화의 목자가 되어 뉴델리에서 대학생 천명을 일대일 성경 공부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발생지, 지금은 흰두교 본산, 수많은 우상숭배의 나라 인도에서 회심한 대학생 1000명이 하나님께 나와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다는 것은 기적 그 자체입니다.


    렘 17:7-8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하나님 말씀에 뿌리를 내린 성도는 철을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고 형통하게 됩니다. 우리 영적 뿌리가 생명의 강 곁에 내리게 될 때 생명력이 있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사람들은 원하는 바를 소유할 때 행복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살아보면 실제는 딴판입니다. 슈피겔 지가 발표한 ‘세계 행복지수’를 보면 1위가 뱅글라데시이고 선진국은 한참 뒤로 쳐집니다. 이는 행복은 달라 순, 성적 순이 아니란 말입니다. 물질이나 명예 같은 것은 소금물과 같고, 신기루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마르고 잡으면 잡을수록 멀리 도망가 버리는 것이어서 ‘영혼의 갈증’만 느끼게 마련입니다. 소유는 행복의 절대 기준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행복의 기준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함으로 입에 말씀을 달고 살며 말씀대로 사는 삶에 있는 것입니다.

의인과 악인의 최후가 각각 어떻게 다릅니까?


Ⅱ.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4-6)


     4-6절은 시편 저자가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대조해 놓고 있습니다. 악인의 길은 절대 형통하지 않습니다. 말씀과 같은 절대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악인의 길은 그때 그때 유익을 좆아 삽니다. 그 결과가 어떠합니까? 4절 “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 악인의 인생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뭔가 열심히 산것 같은데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악인들이 직면하는 문제가 무엇입니까? 5절 “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분, 하늘의 나는 새도 떨어 트린다던 실세 부총리, 또 국정 농단했던 사람들! 최고재벌과 그의 아들! 지금 어디가 있습니까? ‘악인의 삶’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의인이 고난을 받고 악인의 형통 하는 것 같은 현실 때문에 고통을 당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시적인 현상에 불과 합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볼때 의인이 망하고 악인이 형통하는 경우는 결단코 없습니다.


    반면 ‘의인의 삶’은 어떠합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에는 성삼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축복이 따릅니다. 때를 따라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또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여기 ‘마르지 않는다’는 말은 다른 시내가 마르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말라도 복있는 자의 삶은 마르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소망이 끊어지고 절망이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어도 성도는 주의 말씀을 인하여 낙망하거나 넘어지지 아니합니다. 로마서 8:18절에 “생각하건데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도리어 천국에 대한 강한 소망으로 모든 것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런 복에 대하여 예례미야 17:7-8절에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이렇게 복을 받는 것의 결론이 3b절 ‘형통’입니다. 형통은 인간이 원하는 것을 다 받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이란 ‘하나님 뜻에 부합하여 성취되는 것’을 말합니다.

 

    창39:2절에 보면 왕자 같이 살다 애굽에 노예로 끌려간 요셉을 ‘형통하더라’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보디발 아내의 유혹에 ‘여호와께 득죄하지 아니하겠다’고 뿌리치다 투옥되었습니다. 그때 성경은 창39:23절에 ‘형통’이란 말을 썻습니다.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형통은 커녕 불통이죠? 그러나 사도행전 16: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말씀대로 자기 형제들를 기근에서 구원하는데 쓰임받았고 로마서 8:28절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말씀대로 불의한 형제들을 회심시켜 이스라엘 12지파 지도자로 세우는 도구로 귀히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 뜻에 부합하여 성취되었기에 그의 인생을 가리켜 ‘형통’이란 말을 쓴 것입니다.


    반면 악인의 길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멸망’에 이릅니다. 사울이나 유다 가 그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6절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이 의인의 길은 인정하시고 악인의 길은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 ?인정하신다?는 ?아신다, 이해(理解)하신다?는 뜻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성도, 이해해 주시는 성도는 참으로 복 받은 성도입니다.

 

    이상에서 시편 1편 주제는 ‘죄인은 반드시 멸망하지만, 경건하게 사는 자는 반드시 형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들이 형통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부러워 하거나 분노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의인으로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삶을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새해에는 우리 교회 모두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본래 우리 청주 선교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부활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로써 본래 성경 공부를 통한 젊은 대학생들의 영혼 구원을 도와 그리스도를 닮은 제자를 양성하고 ‘땅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 는 우리 주님의 지상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영적 DNA 로 갖고 있습니다.


   이제 주야로 말씀을 입에 달고 살아 감으로써 마음에 태신자를 품고 무너졌던 성경 공부가 소록 소록 회복되며, 또 캠퍼스 제자양성 복된 사명이 회복되고,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한 선교 신앙까지 회복되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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