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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성전이신 예수님 ( 요한복음2:13-22 )
12/03/201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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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3일


                                                  참 성전이신 예수님


말씀: 요한복음2:13-22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입성 후 사사 시대 진통을 겪습니다. 그 후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예루살렘에 성전을 준비 하게 하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세웠습니다. 이 예루살렘 성전은 바로 이스라엘 역사의 심장이요 동맥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성전이 무려 세번 세워졌습니다. 바로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헤롯 성전입니다. 그러면 이 성전과 참 성전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Ⅰ.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1. 솔로몬 성전

대하3:1에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왕상6:38b에는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년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 왕상6:1절에 보면 건축 시작은 이스라엘 자손이 출애굽한지 480년만의 일입니다. 모세 시대부터 다윗 시대까지 이스라엘은 480년간 성막 이동식 예배처소에서 예배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동예배의 종결과 함께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정착예배를 드리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태평성대가 된 솔로몬시대 정착된 성전 건축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살며 이방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감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또 출애급 목적처럼 이스라엘 하나님만 섬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2. 스룹바벨 성전

단9:2절에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 하나님은 바벨론 70년 포로생활로 징치했습니다. 세계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바벨론을 역사무대 뒤로 돌리고 페르시아를 등장시켰습니다. 스 1:2절에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임금의 마음을 감동시켜 유대인의 해방령, 환국령, 예루살렘 성전 재건령을 내리게 했습니다. 더욱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빼앗아 왔던 성전기명들을 모두 되돌려 주게 했습니다(스1:7-8). 또한 성전재건에 필요한 금액을 국고에서 보조하도록 했습니다(스6:8). 그러나 성전재건 공사는 대적들의 방해에 직면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 사마리아인으로부터 일어난 방해입니다. 저들은 페르시아 왕에게 귀국한 유대인들이 왕을 대적하기 위해서 성들과 성곽을 쌓고 있다고 거짓고소를 했습니다(스4:1-13). 이 거짓 고소를 위해 강 서편 관리들을 뇌물로 매수했습니다(스4:5). 이 거짓 고소장을 받은 아닥사스다 왕은 성전공사를 중단시켰습니다(스4:23, 24). 그리하여 다리오 왕이 즉위할 때까지 약 15년간 성전재건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또 내적 불신의 방해도 있었습니다. 학개 1:4절에 유대인들은 성전공사가 방해받을 때 하나님의 섭리를 잊고 자기 집 짓고 재물 모으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경제적인 궁핍은 극에 달했습니다(학1:6). 스가랴 4:7a절에 선지자는 성전재건 공사를 방해하는 두요소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했습니다. 이는 귀국한 유대인들 지도자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로 성전 공사가 재개되고 완성될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학개 1:14절에 스가랴와 학개선지자는 성전재건에 대한 영적인 환상과 계시를 받아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 결과 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약 15년간 중단된 성전공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선지자 스가랴와 학개의 격려를 받고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의 영도하에 다시 시작된 성전역사는 참으로 열렬했고(스4:1,2) 스 6:15절에 “다리오왕 제 육년 아달월 삼일에 성전일을 끝내니라” 4년 만에 완공했습니다.

    3. 헤롯성전

마24:2에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했습니다. 예수께서 헤롯성전이 철저히 파괴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스룹바벨 성전 재건 후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 범죄 했습니다. 이 때 세계역사는 페르시아에서 헬라제국으로 옮겨졌습니다(B.C331-167). 권력다툼으로 알렉산더 대왕의 씨족들은 전멸했고 셀레우커스 왕조에서 에피파네스 4세 왕이 나와 수리아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그는 주전 175년에 왕이 된 후 유대인을 2300주야 약 6년 4개월을 괴롭혔습니다. 단 8:11,12 절에 그는 성민의 지도자를 죽이고 매일 드리던 제사를 폐하고 진리를 땅에 던졌습니다. 성소를 헐어버렸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했고 예루살렘 성전기구를 약탈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주력군대를 주둔시키고 할례를 행하거나 안식일을 지키는 자, 토라(율법)를 읽는 자를 사형으로 다스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번제단 위에 주피터 신전을 세우고(B.C.167) 돼지를 잡아 우상에게 예배하게 했습니다. 이로 인해 해방 후 재건된 스룹바벨 성전은 그 본래의 기능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이 상황에서 당시 늙은 제사장 마타디아스와 그의 다섯 아들이 중심이 되어 반 에피파네스 운동 종교적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특별히 셋째아들 마카비(본명: 유다) 주도로 전국적 종교적 항쟁을 확산시켰습니다. 그러던 중 단 8:25절에 안티오코 에피파네스는 원인 모를 천벌로 죽었습니다. 그 결과 마카비 시대 100년간 독립시대가 이루어졌습니다(B.C.167 -63). 저들은 이 시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청결케 했습니다. 신전을 부수고 돼지피를 닦아 냈습니다. 기쁨의 절기를 지켰는데 이것이 ‘수전절’입니다.

유대가 세계열강 틈바구니에 낄때 부터 개방(사대주의)과 보수(수구주의) 극단이 생겼습니다. 세계판도는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로 옮겨와 유대는 헬라주의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때 반 헬라주의 무리를 ‘핫시딤’(경건주의자들)라 불렀습니다. 마카비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이 핫시딤 운동이 맹렬하게 전개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향을 오래 계승할 사람이 없었고 유대는 다시 혼란에 빠졌습니다. 그 후 몇 년 동안 사두개인들과 바리새파로 양분되고 폭동까지 일어났습니다. 이때 B.C.63년 로마 폼페이 장군이 쳐들어와 예루살렘을 정복 하고 많은 제사장들과 만이천명 유대인을 죽였습니다. 로마 실권자 안토니오 옥타비우스는 에돔사람 헤롯을 분봉왕으로 임명했습니다.

헤롯은 주전 37년 예루살렘을 통치했고 예수 탄생시 유대 왕이었습니다(마2:1). 헤롯은 헬라주의 정책을 급진화 하면서도 유대인처럼 행동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 마카비 가문 딸과 결혼했습니다. 헤롯은 B.C.20년 부터 1000명을 건축자로 훈련시켰고 약18000명을 동원해 기존성전을 개축하기 시작해 제 2성전을 웅장한 규모로 복구했습니다. 요1:20절에 보면 예수님 당시 이 성전을 46년째 짓고 있었습니다. 눅21:5절에 헤롯성전은 거대하고 흰 대리석으로 건축되어 그 위용이 대단했습니다. B.C. 959년에 건축된 본래 솔로몬 성전 즉 제1성전과(왕상1:38) B.C. 520년 스룹바벨에 의해 재건된 제2 성전과 구별하기 위해 헤롯 성전을 제3성전이라 부릅니다.


Ⅱ. 참된 성전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21절에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하는 자들을 내쫒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마21:12,13, 막11:15-17,요2:13-16). 주님께서는 16b 절에“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 멀리서 성전까지 와서 제사 드리는 자들은 소나 양을 사야 했고 성전 세겔로 환전 해야 했습니다. 주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 하심으로 성전에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들이 있어야 한다 하셨습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고 그 하나님을 만나는 집입니다.    이사야 56:7과 예레미야 7:11절을 인용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이렇게 전달합니다. “성서에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느냐? 그런데 ”너희는 이 집을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막 11:17). 한탄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18절에 표적을 보여 달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언자들이나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기적이 따른다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홍해를 가르거나’ ‘해와 달이 멈추게 하거나’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쏟아지게 하든지’ 그런 기적을 행해야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증거로 인식했습니다. 지금 예수님에게 표적을 보이라는 유대인들의 요구는 예수님이 성전을 청소하는 행위가 바로 하나님에게서 뿌리를 둔 것인지 아닌지 증명하라고 다그칩니다. 그것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증거라 주장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는 19절에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답했습니다. 그때 유대인들은 ‘46년 동안이나 지은 성전을 3일 만에 짓는다구’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21절에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유대인들과 예수님 사이에 소통이 안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예루살렘 ‘성전 건물’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의 몸이 십자가에 처형당하더라도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그 부활 사건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영적인 연합에 근거합니다. 성부께서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하신 것입니다(골1:19). 구약에 성전은 하나님의 처소로 여겨졌습니다. 이처럼 예수와 하나님은 하나이시므로 예수의 몸이 곧 성전이라는 말입니다.따라서 성전을 허무는 것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삼일 동안에 일으킴은 예수의 육체 부활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보이실 가장 큰 표적은 메시야로서 자신이 가실 십자가와 부활사건입니다.

 

     성전 안에는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존재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성전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자신입니다(요1:14). 예수를 알지도 영접하지도 않는 곳은 성전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성전이 있다면 당연히 헐려야 마땅합니다.

요한계시록21:22에 “성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성전을 볼 수 없는 이유는 주님 자신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이제 예수님이 참 성전이 되셨으므로 예배당이나 교회당은 건물 이지 성전이 아닙니다.


Ⅲ. 성도는 값으로 산 성 전입니다


     고린도전서 6:19,20절에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이제 성도들의 가치가 얼마나 존귀해졌습니까?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런 몸을 성전으로 택하시고 그 안에 머무십니다. 몸을 주신 목적은 주님의 성령이 계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을 감사한 마음 자세로 성전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셨습니다. 행20:28에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 했습니다. 성전 곧 교회(택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 값으로 사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혜택은 사람만 받은 것입니다. 아담 이후 인간과 세상이 다 타락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세상을 지을 수 있지만 자기 아들을 인간의 죄 값의 제물로 내어줌으로 자기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는 성전이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귀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성도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이제 성도도 주님께 감사함으로 은혜를 값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그분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몸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세상이 알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전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성전 된 모습을 세상 만천하에 밝히 드러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몸 안에는 성령님이 내주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참된 성전인 예수를 모시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의 주장을 받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복음과 함께 살아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은 성도의 삶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는 복음을 믿고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와 동행하면서 그를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마28:19-20, 막16:15, 행1:8).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는 선교적 삶이 성전 된 성도의 삶입니다.

우리는 매주 주일 교회 예배당에 나와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또 매일 새벽 기도 수요일 목장모임에 참석하여 성도의 교제를 나눕니다. 그리고 금요일 기도모임서 기도제목을 찾아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주일날 규칙적이고 신실한 예배참석은 우리 신앙에 필수적입니다. 예배에 출석함이 없이는 참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나 스스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서는 교회를 ‘에클레시아’ ‘부름 받은 자들의 모임‘ 이라 부릅니다. 교회는 예수님으로 인해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장소입니다. 이같은 교회가 없이 우리 혼자 여전히 교회일 수는 없습니다. 교회 예배당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요 말씀을 듣고 예배 드리며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나누는 ’아버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한발짝 더나가 우리 자신이 교회가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교회에 다니기만 해서는 안되고 우리가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데’ 초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진정 의로워 지길 원하십니다. 그분은 소비자가 아닌 헌신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일주일에 한번씩 예배당에 나오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분은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힘이 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자리에 앉아 영적인 양식을 먹고 가끔 찬양을 부른다 해서 우리가 영향력 있는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바로 우리가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와보라‘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그들이 아름답고 진정한 삶의 변화를 마주 할수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좋은 제자들은 교회를 함께 합니다. 단순히 회의에 참석 하는 자들이 아닌 동역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주님이 당부하신 선교적 사명 한가지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동역자들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목적으로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가르침의 은사를 통해 교회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함께 배울 수 있습니다. 한영혼을 돌보라는 교회에 주신 목표에 함께 참여하면서 예배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두운 세상에서 여전히 교회는 세상의 힘이면서 서로 연결되어 있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도의 근본적인 사랑과 능력을 드러 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어느때든지 예수님을 사랑하고 교회가 되길 바랍니다. 히브리서 10:24,25 절은 우리가 교회가 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권합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교회의 지체가 된 우리 자신의 몸을 자신의 마음대로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안에 참 성전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복된 삶을 살아 가시길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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