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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하나님의 선물 ( 예배소서 2:1-10 )
11/05/2017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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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5일


                                                구원, 하나님의 선물


말씀: 예배소서 2:1-10


          본문은 타락한 인류를 오직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내가 누구인지?’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깨닫게 도와주시길 빕니다. 그러면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첫째로, 구원 받기전 내 모습을 기억하라(1-3)


            성경은 인간이 어떤 존재라고 말합니까? 1절에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여기 인간의 두 모습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구원 받기 전 내 모습’과 ‘구원 받은 후 내 모습’ 입니다. 먼저 구원의 은혜가 임하기 전 내모습은 자연인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입니다. 허물이란 하나님의 뜻이나 법을 어기는 개인적 탈선 행동입니다. 죄 ‘하마르티아’는 ‘과녁에서 빗나가다’로 인류가 가지는 악함의 총체적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 받기 전 ‘영적으로 죽은자’ 라 말씀하십니다. 영적인 존재가 죽었다는 말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다’ ‘하나님과 단절되었다’ 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죽은자는 하나님을 알지도 못합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도 살 수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생명도 누리지 못합니다.


          2절에 “ 그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과거 우리는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세상 풍조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따랐습니다. 구원받기 전 우리는 ‘허물과 죄’ 가운데서 행하였습니다. 여기 ‘행하여’ 라는 말은 ‘걷다’ ‘살다’ ‘일정한 윤리 기준대로 살아가다’ 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 우리는 하나님께 대적하며 살아갔습니다. 우리가 따른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는 ‘악의 실체’였습니다. 악의 실체가 구체적 인격체처럼 나타나 우리 삶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결국 이런 악의 실체의 노예로 살아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본래 모습 이었습니다.  


        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 이었더니” 한마디로 우리 삶은 하나님 없이 우리가 주인이 되어 사단을 따르던 인생이었습니다. 1,2절에 ‘너희’는 서신의 1차적 대상인 ‘예배소 교인들’ 입니다. 3절에 ‘우리’는 바울을 포함한 ‘유대인들’ 입니다. 이를 통해 율법이 없던 이방인들이나 율법을 지닌 유대인들이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감으로써 다 본질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 고백합니다. 인류 최초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는 ‘죄를 범했다’ 따라서 다 ‘전적 타락’의 존재였습니다. 성도는 구원 받기전 이랬던 ‘내 모습이 어떠함’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둘째로, 구원을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4-7)


           하나님이 이미 죽은 우리를 구원하신 동기가 무엇입니까? 4절에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 이방인과 유대인을 분리하지 않으신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어떻게 크신 긍휼을 베푸셧습니까? 5,6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살리셨나요? “함께”입니다.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함께 앉히시니” 이는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은혜가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에게 주어 졌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았다’ 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신 것 처럼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일으키신 것 처럼 우리를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늘 보좌 우편에 앉히신 것 처럼 우리를 앉히셨습니다.


       세 단어 모두 과거형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미 행하신 구원 사역 처럼 우리를 구원하신 것도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성취한 과거 일과 같다는 말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홀로 십자가를 지고 부활의 능력으로 일어나셨습니다. 그렇지만 신자들이 그 예수님과 연합할 때 이런 놀라운 은혜를 함께 받게 하십니다.


       구원받기 전 우리는 ‘영적으로 죽은자’ 였습니다. 이미 죽었던 상태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외부로부터 ‘힘’을 공급받는 길입니다. 바울은 이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구원한다는 사실을 반복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상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고 장차 다가올 온전한 구원을 미리 맛보아 누리게 하십니다.


      강원도 산간에는 눈이 내렸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철 눈썰매나 스키를 탈 때 하나씩 준비하는게 뭐죠? 장갑입니다. 장갑은 추위로부터 우리를 따스하게 보호해 주죠? 하지만 손에 끼어야만 그 효과를 발휘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완전히 죽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는 마치 ‘빈 장갑’과 같습니다. 빈 장갑에게 아무리 힘을 불어 넣으며 일어나라 명해도 장갑 스스로는 일어날 힘이 없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손을 넣어서 움직여야 장갑이 따라서 움직입니다. 물건을 잡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갑이 발견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스스로 힘으로는 결코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장갑이 움직일 수 있는 길은 살아 있는 사람의 손에 낄때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은 자들이 아무리 스스로 노력한다 해도 죽은자가 스스로 일어날 수는 없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 속에 와서 거룩한 생명을 불어 넣으실 때 비로서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6절에 ‘함께 앉히셨다’는 우리 구원의 확실함을 보여 주는 강력한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구원 받은 후 비록 우리가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모습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미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 앉히셨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완전한 구원의 상태에 들어가 행위까지도 변화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 신분의 변화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이땅에서도 언젠가 완성될 구원을 미리 맛 본다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예수님이 여리고로 들어가실 때 삭개오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는 세리장이요 부자였습니다. 또 키가 작은데 그곳에 모인 사람이 많아서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보려고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전 그는 눈에 보이는 소유나 지위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얻고 보니 사람들은 그를 public sinner ‘공적 죄인’으로 비난하며 온갖 욕을 쏟아 부엇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를 영접해 주시고 “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급히 내려와 즐거워 하며 영접하였습니다. 전에는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며 남의 것을 착취하고 빼앗으면 행복이라 여겼습니다. 그런데도 얻고보니 비참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을 만나자 즐겁고 기뻤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나누어 주면서도 행복을 맛보았습니다. 그래서 뭐라 결단합니까?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을 갚겠나이다” 행복이 뭍어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정해 주셧습니다. 그러면서 ‘인자가 온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우리 모습은 연약하고 초라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늘 보좌 위에 앉은 영광스러운 존재로 보십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거룩한 변화를 요구합니다. 우리 역시 죄속에 살아가는 자신을 바라보며 절망하는 육신의 눈으로 바라 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고귀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새롭게 일어나야 합니다. 늘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일어납시다.


           우리가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셋째로, 은혜로 구원 받은 목적을 기억하라


           8, 9절 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니라”

우리를 선한 도구로 쓰임 받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선물은 대가를 주는 게 아니죠? 하루 종일 일한 후 무언가 받는다면 그것은 삯 입니다. 일 하고 받는 것은 하루 일당이지 선물이 아닙니다. 선물은 아무 조건 없이 받는 것입니다. 바로 은혜 죠?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호의,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우리는 은혜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잘난 것도 없고, 선한 것도 없고, 의로운 것도 없고, 업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값없이 그 분의 긍휼 때문에 부어 주시는 사랑이 바로 은혜입니다. 거저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보혈로 우리에게 용서, 구원 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무엇으로 그런 선물을 받습니까? 바로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이 아무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해도 우리가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불가능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받을 때 구원의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도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자에게 주시는 선물 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주시는 사랑을 받아야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 집니다. 


      이렇게 구원받은 우리 모습을 하나님은 어떻게 빚으십니까? 10a절에 “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여기 ‘만드신 바’ ‘포이에마’는 ‘만들어 진것’, ‘작품’ 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을 ‘하나님의 걸작’ 이라 하십니다. 비록 과거에는 범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된 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새 창조를 살아 가는 우리는 하나님이 친히 빚어 만드신 걸작입니다. 우리 정체성은 분명합니다. 내가 하나님이 친히 빚어 만든 걸작품이라면 마땅히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과거 우리 이력서가 복잡했죠?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입니다. 2절 ‘공중 권세 잡은 자들’ 영향 아래서 노예로 살던 사람들입니다. 3절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우리는 무서운 ‘심판 받을 대상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다시 살려내시고 하늘 보좌 우편에 앉히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존귀한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걸작품으로 만드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0b 절에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자니” 이 작품의 목적은 하나님이 원하는 선한 일을 이루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벤 카슨 이란 흑인 소년이 있었습니다. 8세때 부모가 이혼하고 엄마가 형 curtis 와 세식구가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파출부와 베이비시터로 일하며 두 아들을 혼자서 키웠습니다. 당연히 그의 집은 아주 찢어지게 가난했습니다. 1961년 11살 소년이었던 벤자민 싱글맘 가정에서 자라며 학업 성적도 꼴지를 면하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모든 과목은 다 F 로 낙제 위기에 처했고 아이들을 때려 어머니는 학교에 불려 오기 일수였습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놀리는 대로 벤자민은 항상 ‘나는 바보 천치야 나는 아무것도 잘하는게 없어 ’ 라는 말을 입에 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는 절대로 바보가 아니야 너는 모든 일이든 맘만 먹으면 할수 있어!’ “넌 하나님의 선물이야, 넌 하나님의 존귀한 도구야!” 라는 말로 격려하며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배움이 짧았지만 책장에 책한권을 읽고 감명을 받은후 가난을 대물림할 수 없다며 매일 도서관에 가서 책 2권을 읽고 독후감을 쓰도록 했습니다. 벤은 과학책에 흥미를 느껴 성적이 일취월장 향상되더니 최우수 성적으로 중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흑인 차별이 심했던 사회여서 ‘헤이 니그로“라는 인종차별적인 말에 격분해 홧김에 친구 배를 칼로 찔렀는데 벨트 바클에 칼이 튕겨나와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전도를 받아 회심하고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는 훌륭한 의사가 되어 하나님의 도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마침내 전액 장학금으로 예일대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고 미시간 의대에 진학후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 신경외과 종양학 성형외과 소아과 교수직과 고난이도 수술을 했습니다. 120번 발작을 일으킨 소녀의 뇌수술도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70명의 의료진과 함께 22시간 샴쌍둥이를 모태에서 분리 수술에 성공합니다. 그래서 2008년 조지 부시대통령으로부터 Presidental Medal of Freedom 수여를 받고 세계최고 의사란 극찬을 받습니다. ’Gifted Hands' 란 별명도 얻고 세계적인 명 의사가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구원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죄인이었으며, 하나님의 원수로 살았던 삶은 비참했습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상기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셨고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받은 구원이 확실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나 이제 죄로 얼룩진 옛사람의 옷을 벗고, 거룩함으로 새 사람의 옷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지만 믿음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를 구원으로 초청한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선한 일’을 하며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를 감격할 때 우리가 능히 ‘선한 일’ 도 할수 있습니다. 선물로 구원을 주신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선한 일을 하며 사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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