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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 계시록 3:14-22 )
10/28/2017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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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9일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말씀: 계시록 3:14-22


         본문은 성령께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중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골4:12-13절에 바울의 동역자 에바브라가 소아시아 골로새 교회 동쪽에 세운 교회로 바울의 많은 관심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그곳은 오늘날 터키로 유명한 관광 명소가 세군데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탄불로 동서양 문물의 교차로이고 카파도기아는 특이한 자연지형으로 산중턱 동굴에 초대 교회가 예배를 드린 곳이며 또 하나는 히에라 폴리스에 있는 파묵칼레입니다. 파묵은 '목화' 칼레는 '성'으로, 파묵칼레는 ‘목화 성’이란 뜻입니다. 겉에서 볼때 마치 흰 목화를 쌓아 놓은 듯하다고 해서 파묵칼레로 불린답니다. 그런데 실제는 목화를 쌓아 놓은 곳이 아닙니다. 그곳은 석회층인데 온천지대에서 뜨거운 물이 흘러 그런 모양이 된 것입니다. 온천지대는 세계 자연 유산, 로마유적은 세계 문화유산에, 동시 등재된 곳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히에라 폴리스 부근 온천 지대에서 흘러온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이 흘러와서 합쳐지는 곳은 뜨뜻 미지근한 물이 흘렀습니다. 이런 지정학적 위치에 처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통해 성령이 오늘 우리들에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1. 세상적 관점으로 말하는 라오디아 교회


    17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어떻게 여겼습니까?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했습니다. 라오디게아는 어떤 도시입니까? 소아시아 교통의 요충지요 모직 공업의 중심지며 금융거래가 활발한 곳이었습니다. 의약 수출과 의학교가 있는 곳으로서 풍요로운 생활을 하는 도시였습니다. 자연스럽게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 어떤 상태입니까?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수치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은 연단된 믿음이 없었고 신령한 세계를 보지 못했고 의로운 행실이 없었습니다 (벧전1:7, 요9:39-41, 고전 3:16, 고후3;3).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좋은 환경 가운데 있으면 신앙적으로는 나태해지기 쉬운 것은 사실입니다.


    육신의 삶이 부요해질 때 영적으로 닥치는 위험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광야를 걷는 이스라엘을 훈련하시며 약속의 땅에 들어갈 때 제일 걱정한 부분이 무엇입니까? 신명기 6: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향하여 네게 주리라 맹세한 땅으로 너를 들어가게 하시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고 ” 당부하셧습니다. 그렇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좋은 환경 가운데 여호와를 잊기 쉬운 것은 영과 육은 상반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환경 아래 있다고 다 나태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애굽 총리가 되어 형들을 열두 조상으로 세운 요셉처럼 더 ‘열정’을 가진 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는 좋은 환경을 신앙적인 열심에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우려했던 대로 이스라엘은 가나안땅 좋은 환경에 들어가자 오히려 영적 나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유한 환경 속에서 오히려 여호와를 잊고 가련하고 벌거벗게 되었습니다.


2.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는 라오디게아 교회


     15~16절에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한 상태라고 하십니다.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는 상태는 어떤 신앙일까요? 19절에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회개도 않고 열심도 내지 않는 상태입니다. 죄를 애통해 하지도 않고 적극적으로 의를 이루는 열심도 없는 상태입니다. ‘차지 않은 것’이란? 스바냐 2:1절에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스바냐 3:5절에 “ 그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 도다 ” 스바냐 당시 예루살렘 주민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선지자들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지도자들은 패역했습니다. 하나님의 책망과 징계를 받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도 그랬습니다. 마태복음 11:21,23절에 “ 화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세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거버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높아 지겠느냐 음부까지 낮아 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회개가 없었습니다. ‘뜨겁지 않는 것’은 어떤 상태일까요? 창18:32절에 “ 아브라함이 또 이르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 거기서 십명을 찾으시면 어찌 하려하시나이까 이르시되 내가 십명으로 말미암아 멸하지 아니하리라”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한 소돔 고모라 성과 같습니다. 또 렘 5:1절에 “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의인 1명이 없어서 멸망한 예루살렘 성 사람들의 상태와 같습니다. 주님은 라오디아교회의 모습을 벌거벗은 수치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신앙을 어떻게 묘사하셨습니까? 마태복음 11:17절에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터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두편으로 갈라서 놀이를 했습니다. 그 놀이는 당시 결혼식과 장례식을 빙자한 놀이였습니다. 한쪽 편에서 결혼식에서 처럼 피리를 불면 다른 편에서는 춤을 추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쪽 편에서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았습니다. 또 장례식에서 처럼 애곡을 했습니다. 마땅히 다른 편에서는 가슴을 치며 호응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애곡을 하는 데도 가슴을 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당시 세대 사람들이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메세지에 대해 무감각하고 대적한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회개없는 신앙에 대해 선포한 심판이 어떠합니까? 마태복음 11:21-24절에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회개 없는 신앙은 하나님 심판의 대상이며 그 자체가 ‘화’ 입니다. 


3.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주님은 라오디아 교회를 향해 회개를 원하십니다. 죄를 원통히 여기고 하나님과 말씀 으로 돌이키라 하십니다. 상한 심령으로 마음을 찢으며 어찌할꼬? 돌이키라 하십니다. (시51:17, 욜2:13, 행2:37, 욘3:5-6). 그런후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기 원하십니다 (롬12:11, 벧전3:13).


    그러면 라오디게아 교회가 회개할 바는 무엇이며 구체적으로 어떤 열심을 내야 할까요? 17절에 ‘ 눈 먼 것’이 나오죠? ‘눈이 멀었다’는 것은 영분별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그런자에게 성령은 무엇을 권하십니까? 18~19절에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먼저,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해야 합니다. 불로 연단한 금은 시련 가운데 연단된 믿음을 상징합니다 (벧전1:7, 4:12, 롬5:3, 욥23:10). 여기 '사서' 란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바로 살려는 열심을 내면 반드시 시련이 찾아 오죠? 그 시련 가운데서 인내 하면 ‘버리고 채우는’ 연단을 통과하게 됩니다. 부패한 성품 시기 질투 다툼 허영 욕심 고집 교만은 버리게 됩니다. 대신 순금같이 정결한 믿음을 채우게 됩니다. 그때 비로서 신앙 인격이 만들어져 갑니다. 그때 비로서 건강한 영혼 영적으로 부요한 자로 빚어 지는 것입니다.


    와이미를 쓴 김춘근 박사는 단돈 2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하루 3시간만 자며 청소부, 점원, 웨이터 등 시체 치우는 일까지 하면서 공부할 때였습니다. 동양인 1세로 누구도 하지 못한 미국 정치학을 공부하고, 108:1이라는 경쟁률을 뚫고 페퍼다인 대학의 조교수가 되었습니다. 4년 만에 최우수 교수상도 받았습니다. 그의 앞길은 보장되어 있었고, 생활은 안정권에 있었습니다. 그 때 좋은 아내를 만나  8살과 2살 된 딸과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 청천벽력 같은 말입니까? 그의 나이 37세때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악성 간경화로 1년 밖에는 살지 못 할 것' 이라는 판정을 내렸습니다. 복수가 차고 호흡이 가빠졌고 죽음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why)?’ Why me? 하나님 왜 하필 납니까? 왜 하필 내가 이 병에 걸려야 됩니까?” 절규했습니다. 수술도 불가능하다는 말에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산으로 갔습니다. 온몸이 아프고 힘이 모두 빠져 나가버렸습니다. 배는 점점 불러서 숨쉬기조차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산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한참 소리 지른 후에 갑자기 그는 성경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시편 118편 5절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라는 말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로가 되지 않았지만 말씀을 곱씹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속에서 '내가 내 피 속의 있는 독소 때문에 육체적으로 죽어가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정 내 영혼 속에 있는 독소 때문에 죽어가는 줄을 너는 모르는구나.'는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순간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신앙이 매우 좋고, 교회를 잘 섬겼던 분이고 좋은 아내 만나 모두 부러워하는 사람이 됐고,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입을 통해 이말이 들린 순간 그간 하나님께 나아갔던 모습이 허상이었고 위선이었고 거짓이었음 발견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진실로 회개했습니다.


   그가 전주고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서울대 입시에 두 번 낙방하고 후기인 경희대에 들어갔습니다. 졸업후 이화여대를 졸업한 여자를 만나 청혼하고 장인될 사람을 만나자 ‘자네는 가진것도 없고 명문대학을 나온게 아니니 내딸을 줄수 없네’라는 거절을 당합니다. 그때 그의 영혼은 깊은 열등감이 내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악착 같이 자기 스스로 그 열등감을 해결하고자 했는데 바로 그 순간 그때 열등감에 치를 떨던 자기 모습이 떠 올라 눈물로 열등감을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붙들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이 그의 마음에 ‘내가 치료 하겠다.’‘내가 치료 하겠다.’는 음성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내려왔습니다. 몸의 치료보다 시급한 것은 영혼의 치유요 신앙의 치유였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긴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더 깊이 묵상하기 시작했으며 형식적인 예배와 삶을 벗어 던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모든 일을 주께 하듯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는 살려주셨고, 간경화는 1년 만에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여러 교회를 다니며 ‘why me?’ 라고 절규하던 질문에 답 해주셨던 예수님 그 기적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영혼의 죽음을 깨닫는 자에게 하나님은 육신의 삶을 영원함으로 채우게 하셨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삶의 현장에서 썩을 것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위하여 일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육신의 시련을 통해서 진정한 회개와 십자가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신 금같은 연단이 된 것입니다.


    20~21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왜 예수님이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립니까? 예수님을 내안에 모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성령으로 우리의 마음 문 앞에 서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 하십니다 (아5:2-4, 고후6:2). 문을 열면 주께서 들어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6:35, 55-58).


   이시간 성령께서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음성에 귀 기울여 봅시다. 오늘 나는 예수님을 문밖에 세워 두고 있지는 않은지요? 먼저 나 자신부터 마음의 문을 열고 문밖에 추워 떨고 계신 예수님을 내 마음의 지성소 안에 모셔 들여야 하겟습니다. ‘사람 중심 주의’ 를 찍어내 버리고 철저히 ‘주님 중심 주의’ 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주님 섬기는데 방해가 된다면 전에 좋던것 까지 다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주제 찬송이 무엇일까요?  ♬♬ 내가 주인삼은 모~든 것 내려 놓고~~ ♬♬ ’ 갈라디아1:10절에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성도는 중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더나가 갈라디아서1: 8절에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다수가 비 진리를 주장하고 나만 홀로 남더라도 생명 걸고 복음을 사수하며 주 예수님 편에 서는 것입니다.

 

    다음,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흰 옷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계시록 19:8절에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 하셧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흰옷은 옳은 행실입니다. 연단한 금이 내적 믿음의 인격을 말한다면, 흰옷은 외적 옳은 행위입니다. 외적 행위에 있어서도 더러운 부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벌거벗은 수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제어해 나가야 합니다 (고전3:15, 계16:15).


   예레미야 7:2절에 “ 너는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이 말을 선포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예배하러 이 문으로 들어가는 유다 사람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백성들이 예배드리러 부지런히 예배당 문으로 들어가고 나옵니다. 우리도 부지런히 예배당 문을 드나들죠?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 하십니다. “3-7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길과 행위를 바르게 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로 이곳에 살게 하리라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 너희가 만일 길과 행위를 참으로 바르게 하여 이웃들 사이에 정의를 행하며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아니하며 무죄한 자의 피를 이곳에서 흘리지 아니하며 다른 신들 뒤를 따라 화를 자초하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이곳에 살게 하리니 곧 너희 조상에게 영원 무궁토록 준 땅에니라” 백성들은 어떤 거짓말을 합니까? “9-10 너희가 도적질하며 살인하며 간음하며 거짓 맹세하며 바알에게 분향하며 너희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따르면서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말하기를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이는 이 모든 가증한 일을 행하려 함이로다” 행동은 죄악으로 치달으면서 예배당 와서 말하길 “우리는 구원을 얻었나이다” 이는 가증스런 모습입니다. 


   그리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해야 합니다. 안약은 요9:6-7절에 “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왕하5:14절에도 “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이로 볼때 안약을 사서 란 순종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만큼 영안이 밝아져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하신 일을 깨닫게 됩니다.


결론


    성령이 오늘 우리에게 들려 주시는 음성이 무엇입니까?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 우리가 뜨듯 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마음의 문을 열고 만왕의 왕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주께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이기는 자에게 주께서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해 주십니다. 주께서 영광, 존귀, 칭찬, 상급, 하나님의 것을 다 누리는 자리에 앉혀 주십니다. 우리 모두 참된 회개와 열심을 내서 이기고 하나님 보좌에 함께 앉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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