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ape
청주 선교교회(예장 합신)(agaape)
한국 블로거

Blog Open 03.26.2013

전체     102311
오늘방문     15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674 명
  달력
 
세겹 줄 ( 전도서 4:8-12 )
02/25/2017 23:25
조회  1207   |  추천   1   |  스크랩   1
IP 1.xx.xx.204

2017년 2월 26일


                                                               세겹 줄

말씀: 전도서 4:8-12


         오늘 전도서 4: 8절이 ‘소외된 인간’ 을 다룬 반면 9-12절은 두 세 사람의 동역과 합심의 시너지 효과를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구속나라를 확장해 나가는데' 씌임 받을수

있을까요?  


1. 한 사람(전4:8)


   극단적 개인주의가 가져오는 인생의 허무가 어떠합니까? 전도서 4:8절에 아무도 없이 홀로 있다고 했습니다. 21세기 우리 사회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 무엇이죠? ‘혼술’ ‘혼밥’ 혼자 술마시고 혼자 밥 먹는게 유행입니다. 현대인들의 특징이 오직 자기 자신 외에는 아무도 상관하지 않고 남에게도 간섭 받기도 싫어합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하였습니다. 그에게 도움을 청하는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수고는 끝이 없습니다. 밤 낮 일의 노예가 되어 일에 매달려 자신을 혹사합니다.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눈은 내면의 욕망을 나타내는 외적인 기관입니다. 고독자가 자족을 못 누리고 끊임없이 부에 집착합니다. 요한일서 2:16절 말씀 처럼 ‘안목의 정욕’에 빠져 사는 것입니다. 의식주를 걱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부에 만족 못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의 특징이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 더 가지려는 ‘탐욕’ 이죠? 탐욕의 눈에 빠지면 만족 할만한 부가 아직 그에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잠15:6에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말씀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그에게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도 없습니다. 부모와 부자지간 윤리 도덕도 없습니다. 목적의식이 없습니다. 그의 생활 철학은 ‘아무도 필요 없고 오직 자기만’ 입니다. 그러면서 반문합니다. ‘내가 누구를 위하여 이같이 수고하는가?’ 그는 실로 표류하는 배요 나침반 없이 항해하는 자입니다.


    이어서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그에게 영혼의 즐거움이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는 자기 배만 위하는 자요 땅의 일만 생각하는 죄악입니다(빌3:19,계18:7). 빌1:19절에 “그러므로 저의 마침은 멸망이요” 빌3:19절에 “저의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저의 신은 배” 입니다. 그가 부를 축적하면서도 그 심령에 낙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 주는 것일까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참 기쁨을 누리는 길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노력이나 외적인 상황 여건이 아닙니다. 인간이 참 기쁨을 누릴수 있는 길은 기쁨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잠2: 24, 26).


2. 두 사람(전4:9-12)


    앞에 언급한 한사람에 비해 더 유익한 길이 무엇입니까? 전도서 4:9절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뜻이 맞아 협력하는 두사람이 훨씬 유익한 것입니다. 두 사람의 유익에 대해 성경은 여러 번 언급하고 있습니다. 먼저,창2:18-24절에 ‘독처’ 하는 것 보다 둘이 ‘한몸’ 되는 결혼의 유익성을 말씀하십니다. 또 눅10:1절에 예수께서 전도 목적으로 제자들을 둘 씩 파송한 것도 대표적인 예입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낫다는 것은 ‘아가페’ ‘연합의 원리’입니다. 두 사람은 동반자죠? 전4:10,11절에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 함께 사는 삶이란 무엇입니까? 단지 같은 행로를 걷는다든지 혹은 같은 처소에 동거하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삶의 ‘희로애락’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동고동락’ 하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인생여정에서 언제 동반자가 필요합니까? 삶의 위기 순간입니다.


  10절은 팔레스틴과 같은 거친 사막을 여행할 때 일어나는 일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먼 길을 여행 중에 구덩이에 빠졌을 경우 특히 깜깜한 밤에 이런 일을 당했을 경우 가장 필요한 것이 동료의 도움이죠? 길가다 넘어지면 친구가 붙들어 일으켜줍니다. 혼자 길가는 자는 어려움을 만나도 도와줄 사람이 곁에 없습니다. 결국 화를 면하기 어렵습니다. 궁할 때 친구가 참 친구라는 말이 있죠?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도 그러합니다. 우리가 다급한 일을 만났을 때 우리를 넉넉히 도와줄 협력자가 옆에 있다면 얼마나 든든하겠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내 옆에 그런 친구가 몇이나 있나요?


     또한 팔레스틴 지역은 낮에는 기온이 뜨겁습니다. 그러나 밤에는 기온이 급강하하여 매우 춥습니다. 따라서 야영 시 두 사람이 바싹 붙어서 자면 한결 따뜻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서로 약점을 보강해 주고 위로 해 주는 온정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싱이 전도여행 중 히말라야 산을 경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도중에 얼어 죽어 가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같이 가던 동료가 말했습니다. ‘혼자 가기도 벅찬 산길이니 버려두고 가자’ 며 혼자 앞서 걸어 갔습니다. 그런데 썬다싱은 그 사람을 등에 업고 산을 넘었습니다. 한참 가다 보니 앞서 가던 사람이 길가에 쓸어져 죽어 있었습니다. 반면 썬다씽의 몸에는 땀이 나고 열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열로 인해 썬다싱도 살고 등에 엎혀 죽어가던 사람도 살았습니다. 혼자 살려던 사람은 동사했지만 얼어 죽어가던 사람을 엎고 간 선다싱과 두 사람은 무사히 살아 산을 넘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살전5:14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전4;12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한 사람이 여행 할 때 강도가 덮칠 경우 꼼짝없이 당하고 말죠? 그러나 두 사람이 여행하면 힘을 합해 능히 당해낼 수 있지요? 두세 사람이 힘을 합할 때 승리 했습니다.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 겹줄이란 두 사람에 하나를 더한 수입니다. 어떤 수에 하나를 더하는 식의 표현은 구약시대에 흔히 사용된 표현입니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3’이란 완전수입니다. 그래서 ‘세 겹줄’이란 단결된 힘의 온전함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힘의 연합, 마음의 연합, 신념의 연합, 목적의 연합은 쉽게 끊을 수 없습니다.


   단결된 힘은 오늘날 성도의 교회생활 특히 기도생활에도 필수적입니다. 초대교회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성도에게 가해지는 핍박이라는 위기 앞에서 그들이 일심으로 협력하고 두세사람이 합심해 기도함으로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같이하는 친구가 참 친구라는 말이 있죠? 이처럼 실패와 비방과 유혹과 질병에 걸려 넘어진 위기의 짐을 서로 나누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협력이라 하겠습니다.


3. 예수 안에서 연합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없는 인생이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이성, 영성, 도덕성, 거룩, 참지식, 의는 모두 하나님의 소산물입니다. 다만 사람이 범죄하여 홀로 남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포도나무 뿌리에서 끊어진 가지와 같습니다. 그것은 마치 산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죽은 것입니다. 생명이 없고 성장이 없습니다. 꽃이 없고 열매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은 홀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화목을 위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예수와 연합하는 자는 무익한 노고와 헛됨이 없습니다. 예수와 연합하면 넘어져도 주님이 일으켜 주십니다. 모든 경우의 대적들에게서 승리하게 해주십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모든 성도가 한 몸의 지체로서 상호 결합하는 교회를 통해 연합의 복된 삶을 제시하고 있습니다(고전12:12-31). 인간은 위로할 대상이 전혀 없는 고독한 상황 속에서는 결코 기쁨과 위로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상호간의 교제를 통한 사랑이 없으면 허무할 뿐이라고 성경은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개인주의 특히 이기주의를 싫어하십니다. 다른 사람과 합력하여 일할 것을 요구하고 계십니다(잠17:17,27:17,눅10:1,갈6:2). 성도는 진리에 위배되지 않는 한, 자신의 주장이나 감정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에서 다른 사람을 중시하는 그런 생활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건설과 복음전파라는 거룩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와 성도들은 단합해야 합니다. 서로 동일한 목적 하에 모이고 서로 협력한다면 우리 앞에는 ‘좋은 상’만 준비되어 있을 줄로 압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믿음의 삼겹줄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나가는데 귀하게 씌임 받는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세겹 줄 ( 전도서 4: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