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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호와께 감사하라’ ( 시편 136:1-7, 23-26 )
11/22/201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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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20일


                                                   ‘ 여호와께 감사하라’

말씀: 시편 136:1-7, 23-26


       성경에서 선명한 주제가 담긴 주옥 같은 말씀들을 뽑으라면 어디일까요? 히브리서 11장 믿음장 고린도 전서 13장 사랑장, 고린도 전서 15장 부활장이지요. 오늘 시편 136편은 1절부터 26절까지“감사하라, 감사하라, 감사하라.”감사가 계속 반복되어지고 있습니다.‘하나님께 감사하라’는 유명한 감사장 입니다.

 

      시편 136편은 감사의 시편입니다. 이 감사의 시편을 이스라엘의 3대 명절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때 저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이 시편으로 주님 앞에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 명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상황을 보면 수능이 끝난 고3까지 촛불을 들고 대통령 퇴진과 하야를 외칠 정도로 참담함과 암울함 뿐입니다. 그런데 성도는 왜 여호와께 감사해야 할까요?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노래 하는 시편 136편이 감사하는 네 가지 주제가 무엇입니까?


1. 선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리세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시편 136편 1절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인자하심’이란 히브리 원어에 “헤쎄드”입니다. 헤쎄드는 ‘긍휼’, ‘친절’, 혹은 ‘사랑’ 이란 뜻입니다. 칠십인 역에서는 ‘긍휼’ (엘리오스)로 영역 본에서는 ‘불변의 사랑’, 혹은 ‘계약적 사랑’으로 나옵니다. 개역 성경은 헤쎄드를 ‘인자’ 로 나옵니다. 헤쎄드 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값없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친절과 사랑과 긍휼’을 의미합니다.


     반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는 헤쎄드가 언약관계 때문에 베푸는 ‘변함없는 사랑’ ‘계약적 사랑’(covenantal love)입니다. 헤쎄드는 출애굽기20:6절과 신명기5:10절은 하나님이 자신의 성품을 선언하는 구절입니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다 계약 맥락에서 쓰여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는 그 죄를 삼사 대까지 갚겠지만, 자기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헤쎄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심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영원한 것입니다. 따라서 헤쎄드는 이 영원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따라서 한글 성경에 나오는 ‘인자’는 헤쎄드 ‘사랑’ ‘변함없는 사랑’, ‘끝없는 사랑’을 내포한 사랑입니다. 시편136편은 여호와의 영원한 헤쎄드를 감사하라 명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성전을 봉헌할 때 어떻게 주님을 찬양했죠? 역대하 5장 13절에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선하시며 자비하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갈 때, 능히 악한 세력을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적인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크신 주의 은총을 받았지만 때때로 우리는 주님 품을 떠납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다시 주님께 나오면 예수의 보혈로 우리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그 사랑의 품에 품어 주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 해방시켜주시고, 40년 광야 길을 걸을 때 홍해를 가르시고 반석에서 샘물이 솟게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사 약속의 땅까지 인도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새 사람 된 뒤 천국 갈 때까지 우리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홍해와 같은 절망의 바다를 갈라 주시고 메마른 땅 같은 광야의 세상을 살아갈 때 낮에는 말씀 구름기둥으로, 환난의 밤에는 성령의 불기둥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심 같이 우리 필요를 다 채워주십니다. 이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다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시편 57편 10절에 “무릇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역대하 20장에 모압과 암몬 족속이 연합군을 이끌고 이스라엘을 쳐들어 옵니다. 그때 여호사밧 왕은 모든 백성에게 금식하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니” 여호와께서 너희를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 이 말씀을 들은 여호사밧 왕이 감사했어요. 그래서 전쟁에 나가는데 앞에 성가대가 찬양을 부르며 나가게 했고, 그 뒤 이스라엘 백성이 따라 나갔습니다. 역대하 20장 21절에 군대 앞에서 행진하며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게 하였더니” 하나님을 찬양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적군 가운데 큰 동요가 일어나게 하사 자기들끼리 싸우다 멸망해 버렸어요. 전리품을 수거하는데 만 3일이 걸릴만큼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들이 ‘브라가 골짜기’에 모여 하나님께 감사 찬송을 드렸습니다. 브라가 골짜기는 ‘감사의 골짜기’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려움이나 문제를 만났을 때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절망 중에도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엘르 잡지 편집장 장 도미니크 보비 가 ‘잠수복과 나비’라는 책을 썼어요. 이 책은 후에 ‘잠수정과 나비’ 란 제목으로 상영이 되어 2007년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 2008년도 골든 글로브 최우수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장 도미니크 보비가 어느 날 온 몸이 굳어져 갑니다. ‘폐쇄증후군’이 다가와서 마지막에 가서는 왼쪽 눈 하나밖에 움직일 수가 없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의 언어치료사의 아이디어로 이제 알파벳에 하나 둘 손을 짚으며 눈을 깜빡깜빡 해 가지고 그것으로 그 이제 대화를 소통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바늘 하나하나 부르며 눈을 깜빡하면 그 단어 하나 받아 적고, 또 받아 적고, 또 받아 적고, 1년 3개월 동안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눈만 깜빡일 수밖에 없었어요. 마치 그 바다 깊이 잠수정에 들어가서 물 속에 갇혀있는 사람같이 온몸이 갇혀 있었지만 눈을 하나 깜빡거리면서 무려 1년 3개월 동안 눈을 20만 번 깜빡거려 가지고 13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썼어요. 이 잠수복과 나비라고 하는 책을 완성한 다음 출판이 되기 이틀 전에 세상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의 몸은 완전히 물속에 갇혀있는 잠수복을 입고 갇혀있는 사람 같지만, 그의 영혼은 나비처럼 날라 갔다고 해서 잠수복과 나비인데 머리말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간절한 소원은 고이다 못해 흘러내리는 침을 삼키는 일입니다. 내가 만일 내 힘으로 흘러나오는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침을 삼킬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래요. 한번 침을 삼켜보세요. 그런데 이분은 평생 침을 삼키지 못했어요. 병에 걸린 이후 유일한 소원이 침 한번 삼켜보는 거예요. 그럼 자기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입니까? 침만 삼키는 일만 가능해도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고백했는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받고 누리니 감사할 것 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몸도 주시고 하나님 앞에 기쁨으로 예배드릴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할 거 밖에 없어요. 우리 삶이 감사가 넘치길 축원합니다.


2.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세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36편 5-7절에 “지혜로 하늘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큰 빛들을 지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을 다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어느 하나 빈틈이 없이 완벽하게 우주 만물이 지어졌어요. 무엇보다 창조의 가장 큰 절정은 우리 인간입니다. 우리 인간처럼 신묘막측하게 지어진 피조물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 만물과 우리를 지으신 후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시편 8편 3-4절에,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마태복음 10:30절에,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또 우리 연약함도 아시고 우리를 주의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시편 103편 13-14절에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우리의 체질을 아십니디. 우리 연약함을 아세요. 우리가 상처받고 좌절하는 것도 알고 계세요. 그럼에도 우리를 사랑하셔서 만물의 영장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사오니 이제 이 놀라운 하나님 은혜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면서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창조하며 귀한 주의 역사를 이루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3. 구원의 하나님께 감사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136편 23-24절에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우리의 대적에게서 건지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 기억해주시고 건져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저들이 죄 짓고 타락해 이방 민족에게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수치스러운 일이죠? 하나님 모르는 백성들에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비참한 신세입니까? 그런데 무시당하고 짓밟히고 비천한 가운데에 있던 우리들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건져주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 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 어떠했습니까? 죄 가운데 태어나 죄 가운데 살면서 허랑방탕한 삶을 살았죠? 예수님을 모르고 알콜 마약 도박 게임 중독에 빠지고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절망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에 감사드려야 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시사 하나님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가 사단의 노예 되었다가 이제는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신령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늘 죄와 절망 가운데에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와 대적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가난과 저주에서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질병과 죽음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되는 것입니다.


4. 돌보시는 하나님께 감사


   136편 25절에 “모든 육체에게 먹을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실 뿐 아니라, 먹이시고 입히시고 일생 인도해 주십니다.

시편 145편 15,16절에 “모든 사람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시나이다” 우리 하나님은 돌보시는 하나님,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 26절에 말씀하셨습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먹이고 입히시니 감사하세요. 다윗이 말년에 그의 인생을 돌아보며 이렇게 감사의 고백을 드리고 있습니다. 시편 23편 1~3절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우리 일생이 감사 일생이 되기 바랍니다. 주님이 나의 목자가 되셔서 나를 날마다 은혜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해주시고, 날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의 길로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보혜사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셔서 천국 갈 때 까지 우리 삶을 보호 하시고 함께 하신 은혜를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맹인으로 95세( 1820-1915)를 살며 많은 찬송을 지었던 파니 제인 크로스비가 당시 5불이 없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가 5불이 필요 합니다.’ 아침 내내 기도 해도 아무런 응답이 없어요. 낮이 됐는데도 응답이 없어요. 근데 저녁때 누가 문을 두드립니다. “여기 혹시 파니 제인 크로스비 선생님 살고 계십니까?” “예, 제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예, 제가 선생님 찬송가 때문에 너무나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제가 이곳을 방문했다가 선생님 이곳에 사신다는 얘기를 듣고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잠시 환담을 나눈뒤 나가면서 악수를 하는데 손에다 뭐를 살짝 쥐어주고 나가요. 펴보니 5불짜리가 딱 쥐어진 거예요. 그래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드린 시가 바로 384(통434)장 ‘나의 갈길 다가도록’ 찬송이 되었습니다.


    이재철 목사님의 ‘회복의 목회’ 라는 책에 이런 간증이 나옵니다. 1992년 8월 4일, 전 교인이 교회 수련회를 갔는데 사고로 정민홍이라는 어린 아이가 세상을 떠나게 됐어요. 교회에서 단체로 수련회 갔다가 아이가 죽었으니 얼마나 난감했겠습니까? 모든 수련회가 엉망이 되고 분위기는 가라앉고 그중에 또 비판적인 사람은 어떻게 교회 수련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말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정승기 집사님은 그 아이 장례식을 하는데 다섯 가지 감사를 했어요. “첫번째, 우리 민홍이가 모태에서부터 예수를 믿게 하시고 유아세례를 받게 하신 것을 감사합니다. 두번째, 이 세상의 죄악과 탐욕에 더 오염되기 전에 순결한 영혼으로 하나님이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세번째, 끔찍한 사고가 아닌 말씀을 배우는 자리에서 천국으로 부르심 받은 것을 감사합니다. 네번째, 민홍이가 차지했던 자리가 당장은 공허해 보이고 슬프지만 하나님께서 감당할 시험밖에 주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이 빈자리를 하나님의 은총으로 채워주실 것을 믿음으로 감사합니다. 다섯번째, 사고 후에 교인들이 보여주었던 사랑과 위로에 대해 감사합니다.” 그 다음 주일 부부가 정성껏 교회 꽃을 가지고 강단을 장식하고 흔들리지 않은 믿음의 본을 보였을 때, 온 교인들이 은혜 받고 교회에 큰 하나님의 축복과 부흥이 다가왔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그 가족에 귀한 아들, 딸을 하나씩 더 주셨습니다.


    이 처럼 성도의 감사는 상황에 따른 감사가 아닙니다. 하나님 성품을 아는 자가 하나님께 드리는 절대 감사입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면 감사할 수가 있을까요? 저라도 힘들 것 같아요. 그러나 우리의 감사는 상황에 따른 감사가 아니라 절대 감사입니다. 무조건 감사입니다. 한평생 감사입니다. 우리가 일생동안 그같은 감사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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