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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부르고뉴 ( Bourgogne )
10/18/2016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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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프랑스 / Bourgogne, France


“가을의 냄새”


    인연에는 냄새가 있다. 커피 한 잔, 교회 종소리, 덜컹거리는 기차의 창가 자리에서도 그렇다. 지나간 시간이 데려오는 향기. 향기는 가깝고 냄새는 멀다 생각한 것도 그 포도밭 어귀에서였다.  순간순간의 아름다운 향기들이 쌓여 냄새로 기억 된다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기가 깊게 머무는 곳. 당신 앞에 한 번의 가을이 되기 위해 천 번의 가을이 숙성되어 왔던 곳.  이 향기가 또 다른 냄새로 기억되는 어느 날까지, 우리는 각자 이 계절처럼 아름다워지자!


가을, 짐작

    파리에서 차를 찾은 시간은 늦은 저녁이었고 때마침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늦은 카페의 테라스가 잠시 부러웠다. 밝은 웃음이 행복해 보였다.  흐린 날씨는 낯선 길을 방해하지만 잃어버린 방향감각마저 이 도시와 잘 어울린다는 감상에 젖기도 했다.  

 

     겨우 빠져나온 고속도로 인적은 없고 차창 밖은 암흑이었다.  핸들 너머로 눈금이 선명한 야광판은 자정을 알리고 헤드라이트 앞으로 쏟아지던 빗줄기는 밤안개가 되었다. 속도를 줄인 차창으로 청량한 밤공기가 들어 왔고, 내가 맡은 처음 향기처럼 야릇했다. 시각이 어둠에 묻히고 후각만 살아 있던 그때는 시간마저 어둠 뒤로 숨은 듯 나의 갈 길쯤이야 아무렇지 않았다. 이 향기의 근원은 뭘까? 정확한 향기를 느낄 수는 없었지만 그 향기로 인해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비 내리는 날 포도밭을 걸어본 적이 없었고, 어렴풋이 포도밭일 거라 생각했다. 비가 그친 자정의 밤하늘 그리고 그것을 닮은 보석 같은 포도들이 깊은 꿈을 꾸고 있을 거라 상상할 수는 있었다. 이미 지나간 포도 냄새도 아닌 가을 냄새라 생각한다.

 

    부르고뉴 이건 순전히 가을의 냄새지만 커튼이 걷히고 나면 사라질 것을 믿는다.

기억을 부르는 냄새

“가을의 냄새”

    액자 속 그림 같은 풍경이 걸려있다.  “와인이 태어나는 곳은 어디든 다 아름다운 곳” 디종(Dijon)까지 왔음을 안 것은 내비게이션의 역할이 컸으나 무엇보다 아침의 풍경이 그렇다고 말한다. 이제 더 이상 길을 잃고 싶어도 잃을 수 없는 시스템으로 살게 하는 세상이지만 간혹 정확하게 닿았다 하더라도 마음의 지도에서 비켜나가던 때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정확하게 찾아든 때에는 전교 1등이라도 한 기분이 들어 모든 것이 여유롭다.

“가을의 냄새”
“가을의 냄새”

 부르고뉴. 고즈넉하게 펼쳐진 포도밭 너머에서 밀려오는 아침의 공기들. 신선한 아침 하늘을 몰려다니는 작은 새들의 소리. 붉어지기 시작하는 잎들의 안간힘. 사람들은 이런 풍경 속에서 부드러운 얼굴들을 하고 있다. 창문을 열자 전날 밤과도 비슷한 향기들이 몰려다녔다. 그 향기들이 예스럽다. 그래서 아름답다. 현재에 서서 지나간 시간들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의 기쁨. 발코니 아래로 보이는 지붕과 담벼락을 이어주는 오래된 목재들에서도 향기가 날 것만 같고 그 앞을 조용히 지나가는 노인의 굽은 등도 멀리 포도밭의 능선처럼 온화하다. 모든 것이 와인에서 비롯된 듯함은 착각일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포도 한 알처럼 둥글고 탐스럽다. 좁은 골목들을 꺾어질 때마다 다가오는 풍경들을 바라보면 덜 익은 포도처럼 마음에 새콤한 것이 고였다. 이쯤에선 아무리 무례한 사람을 만나도 눈 한번 찡긋하고 가볍게 목례하며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포도밭을 따라 남쪽으로 끝없이 이어지는 이 길의 어느 풍경이라도 같을 것이다. '위대한 와인의 길'이라고 불리는 그랑크뤼 가도(Route des Grand Crus)를 선택하다. 흔한 능선이나 길, 하늘이나 바람 한 조각마저도 아름답다. 특히나 디종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가을의 심장 안쪽 같다.


부드러운 담벼락을 만지며 골목을 걷다가 포도밭이 시작되는 마지막 집의 담 모퉁이에서 문득 걸음을 멈춘다. 눈을 반쯤 감고 보면 그것이 푸른 초원 같기도 하고 하늘로 이어지는 정원 같기도 하다. 가을의 빛을 담은 포도밭은 이미 초록의 단계를 지났지만 여전히 푸르다. 낡은 성 하나가 바다 위에 뜬 섬처럼 지평선에서도 출렁인다.  

“가을의 냄새”

 향기란 그 사람의 좋은 것만을 기억하겠다는 아름다운 의지다. 그러나 냄새란 그 사람과 그 주변의 모든 기억과 시간을 포함하는 이야기다. 너에게 좋은 향기가 난다고 말하는 것보다 너에게 좋은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것이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말처럼 여겨진다.

 

   이 풍경을 고스란히 담았으므로 포도 한 알 한 알과도 같은 정성으로 먼 곳을 생각했구나. 하늘로 길게 이어져 올라가는 포도밭의 풍경 끝에 너도 오래토록 서있었겠구나.  내 어깨너머의 창으로 이곳의 풍경을 상상했구나.

 

   너무 아름답다는 말은 내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무엇이든 하고 싶다는 말은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깊어지는 말이다. 가장 훌륭한 품종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신선한 공기를 만드는 산비탈의 경사각과 그것을 숙성시키는 일조량과 수분을 만드는 아름다운 강이 흘러야 하지. 그러니까 그런 포도밭이 있는 풍경이라면 어디든 아름답지 않겠어? 여행지를 선택할 때 그런 곳을 선택하면 실패 확률은 현저히 낮아지는 거지” 그런 곳에서 매일 아침을 맞이하고 포도밭 비탈을 올라가서 둥글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오후의 산책을 하는 것. 너는 그런 것을 상상했을까?  잠시 이 포도밭의 끝에 함께 서 있었을 것이다. 

가을에게 !!

   인적 드문 골목을 걷는다. 연한 햇볕이 묻은 창가를 보면 하얀 식탁보가 깔린 저녁에..  혼자라도 상관없을 풍경들을 걸으며.. 부르고뉴에서 생산되는 건 단일 품종으로 숙성되는 것이다. 스스로 완벽한 맛을 낸다.  잠시라도 지낼 수 있다면 언제든지 기억할 것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을 수도 있겠다.


“가을의 냄새”



“가을의 냄새”


  이런 곳에서라면. 사랑이나 산다는 것이 절대 홀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지만 그 냄새의 시간들을 기억하고 산다면 그것도 좋겟지. 나는 이곳의 가을이 처음이다. 길게 지평선 너머 하늘로 이어지는 무수한 포도밭.. 그 가을에 내가 생각했던 마음의 일들이 어느 순간에 불쑥 가을의 냄새가 되어 내 맘 가득 출렁이는 시간이 또 오리라.


마음 없는 몸


허공을 향해 목을 빼고

가을하고 불러보면

가슴 속으로 무엇인가 차곡차곡 쌓인다

그러다가

바람 불면 그것이 굴러다닌다

그것을 온종일 쫓아다니다가 해가 진다

목을 움츠리고 돌아온 방안에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가장 멀리 가장 먼저 떠나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다

떠나기 좋은 계절 가을엔

마음이 온데간데없다

가을엔

찾으려 하지 말자

다만,

내 곁에서 떠난 것들을 떠올려

잠시 그 뒤를 따르자

마음 없이 몸으로만 살아야

겨우 가을이다

모든 것을 털고 돌아가는 계절에

의미 없는 몸뚱어리 하나만 남기자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모든 것들이

나 같아서 떠나지 못한다는 말은 말자

“가을의 냄새”

Tip 멋진 길! 부르고뉴

 전 세계를 통틀어 감히 가장 유명한 그랑크뤼 가도(Route des Grand Crus). 누구나 반할만한 목가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파리에 도착한다면 일단 차를 한 대 빌려 74번 국도를 달리자. 그 길 위에 풍경들이 즐비하다. 본 로마네 마을에서 만들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로마네꽁티(Romanee-Conti)가 태어나는 포도밭을 볼 수가 있고, 잘 보존된 옛집들이나 영주들의 성들이 당신의 감성을 충분히 자극할 것이다. 부지런히 달리면 하루 만에 가능한 구간이지만 마을마다 맛이 다른 풍경에 취하다 보면 아마도 당신이 예상했던 시간보다는 몇 배로 느리게 움직여야 후회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숙소는 마을마다 쉽게 발견된다. 이왕이면 영주들의 저택이었던 고성에서 하루라도 지낼 수 있다면 그 집만의  맛을 볼 수 있는 귀한 경험 또한 할 수가 있다. 당신을 풍성하게 할 모든 맛과 풍경과 그보다 많은 것들이 펼쳐져 있는 길. 늦은 가을에 가게 된다면 더욱 아름다울 길. 해마다 11월쯤, 운이 좋다면 그 해의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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