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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에 들어갈 담력 ( 히브리서 10:1-25절 )
02/12/202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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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29

 

                                                            성소에 들어갈 담력

 

말씀: 히브리서 10:1-25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 십자가 부활의 복음과 성령님이 함께 계심을 믿습니다. 이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죄 사함의 확신을 갖고 죽은 행실을 떠나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사람인지라 염려 짜증 절망 두려움으로 믿음이 흔들릴 때도 있죠? 본문을 통해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비밀이 무엇일까요?

 

첫째, 첫 언약 구약 제사 제도의 한계와 '두려움'

  

율법과 제사 제도의 한계가 무엇이죠? 1절에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율법은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림자일 뿐입니다. 따라서 짐승 제사로는 사람을 온전하게 할수 없습니다.

 

제사장들은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매일 양을 잡아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 갔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의 죄는 어떻게 합니까? 레위기 4:3절에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 번 제사장들의 죄와 백성들의 죄를 속하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1b절에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죄를 회개하지 않은채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면 죽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대 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때는 반드시 몸에 줄을 묶고 들어 갔습니다. 제사를 잘 드리고 나면 살아서 발로 걸어 나왔고, 제사를 잘 못드려 죽으면 사람들이 줄을 당겨 지성소에서 대제사장을 끌어 냈던 것입니다. 이는 단지 대 제사장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사건을 경험할 때 그것이 곧 자기 백성 전체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 계명을 받고 내려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나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이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그들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 큰 나라를 다시 만들겠다 하셨습니다(10). 이 말씀은 곧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진멸하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류가 겪는 재앙 앞에서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그분 앞에 나가야 할 이유가 무엇입까? 창세기 19:28절에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 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는 말씀이 나오죠. 동성애에 빠진 소돔과 고모라 성 멸망 광경을 목격하면서 아브라함은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대해 두렵고 떨림 즉 경외심을 가졌습니다. 이처럼 사건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대제사장이 죽어 나올 때 이스라엘 백성들도 과연 하나님은 살아 계시구나깨달았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무차별적 재난을 허락하실까요? 누가복음 13:4-5절에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실로암 망대, 즉 높은 탑이 무너져 열 여덟 명이 죽었습니다. 그들이 죽은 것이 그들 죄가 예루살렘에 거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기 때문입니까? “아니라.” 그들 죄가 더 많기 때문이 아닙니다.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그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입니다. 여기서 주님께서 말씀 하시는 바가 무엇일까요? 그들 죄의 유무를 말씀하기 전에 역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다 말씀하는 것입니다. 재난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재앙이 아니라 아브라함처럼 재앙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그때 경건에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구약 제사제도가 점차 형식적이 되어 갔습니다. 이를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셨습니까? 5, 6절에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번제와 속죄제는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오히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진노하게 했습니다. 따라서 율법과 제사제도, 율법적인 신앙, 형식적인 예배로는 제대로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림자인 구약 제사제도, 그 첫 번째 언약을 폐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이 세우신 두 번째 언약과 담대함

 

하나님이 세우신 두 번째 언약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주신 복음입니다.

 

19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이 말씀에 두려움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죠? 다만 담력이란 말만 등장합니다. 여기 성소에 들어갈 담력은 히브리서 전체 배경이 되는 두려움의 뿌리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깨달을 수 있는 단어입니다.

 

담력을 얻었다전에 구약 성도들은 뭐가 있었다는 말이죠? ‘두려움입니다. 이 두려움은 어떤 두려움 입니까? 바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자의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도는 어떻게 하나님께 나갈 담력을 얻게 되었죠? “예수의 피를 힘입어담력을 얻었습니다. ‘예수의 피를 힘입어는 새 언약 하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담력을 소유하게 되는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담력’ ‘파르레시안’(παρρησιαν) 은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나아갈 수 있는 권리로 양심을 깨끗하게 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킨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전제로 함과 동시에 그리스도의 결정적 인 속죄 사역의 확실성을 보여줍니다(22, 9:9, 14). 구속 행위를 언급할때마다 히브리저자는 예수의 피를 강조합니다(29. 9:12,14 13:12,20) 이는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9:27절은 선언합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결국 인간은 다 죽죠? 그렇다면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은 후 받을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제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우리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죠? 16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놀라운 말씀이죠? 사실 이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하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심으로 가능해졌습니다.

 

승천하시기 전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이 어떤 약속을 하셨죠? 14:16-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하나님이 예수의 피로 죄 사함 받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셔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예언한 말씀 그대로 하나님의 법을 우리의 마음에 두고, 우리의 생각에 기록하여 하나님을 섬기면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17세기 후반 헨리 스쿠걸 목사가 지은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이란 책에 기독교란 인간의 영혼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들어온 것이다라 정의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생명이라는 말로 묘사할 또 다른 이유는, 그것이 마음 안에 거하는 내적인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의 사역은 영혼 속에 거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단순히 선하고, 단정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그 사람 안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속에는 힘, 권능,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를 독특한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 내면에는 하나님의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의 힘은 우리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20절에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예수의 피를 힘입어예수 그리스도께서 희생 제물이 되셔서 친히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재난 배후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이 세상을 운행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죄는 반드시 징벌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이 당해야 할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께 전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속죄 제물로 죽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당한 모든 고난과 죽음을 감당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히 속죄의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신 것입니다. 이 죽음은 인간이 담당해야 했던 심판의 죽음이었습니다. 죄의 결과로 얻은 죽음이었습니다. 이 죽음에 두려움, 단절,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음 앞에서 무엇을 겪으셨습니까? 마태복음 26:38절에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죽음의 상황으로 몰려 가시면서 고통이 엄습해 오는 것 두려움 경험하셨습니다. 또 십자가 죽음앞에서 무엇을 경험하셨습니까? 27:46절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고개를 돌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 부터 단절을 경험하셨습니다. 또 십자가 앞에서 무엇을 경험하셨습니까? 십자가 지시기 전 완전히 탈진하실 때까지 채찍에 맞으셨고, 탈진하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외치셨습니다. 고통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으로 인해 올 수 있는 두려움과 고통, 관계의 단절까지 다 경험하셨습니다. 예수께서 희생 제물이 되셔서 지성소로 들어가시면서 모든 두려움과 단절과 고통을 모두 짊어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죄를 사하셨습니다. 우리가 짊어졌어야 할 죄와 사망의 권세를 예수님께서 친히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우리에게는 죽음의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심판의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죽음 후 찾아올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희생 제물이 되어 주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심판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고통, 두려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의 외면 0을 겪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들에게는 벡보좌 심판의 두려움이 사라진 것입니다.

 

재앙을 볼 때 인간적으로 우리도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세상 종말에 대한 두려움을 갖기도 합니다. 장차 험한 세상에서 우리 자녀들이 어떻게 살까 염려가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염려 두려워 마십시오.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죽음의 두려움과 고통, 공포와 단절을 거둬 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모두 현상적인 것들일 뿐입니다.

 

사실 이런 재앙들은 모두 하나님의 심판의 sign (상징)들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결국 죽고 멸망 당할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은 후 더 이상 그런 죽음들은 우리에게 위협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십자가에서 그 모든 죽음의 세력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험하는 이 세상의 재난들은 그림자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음을 주관하는 역사의 심판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혹 죽음이 덮친다 해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로 죽음의 세력을 이기신 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55-58절에서 바울은 외칩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이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이 말씀 앞에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먼저 죽음의 참혹한 현장을 보면서도 항상 그 이면에 하나님이 계심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재앙이 심판이 아니라 진짜 심판은 그 후에 있음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세상의 예기치 못한 재앙들은 진짜 심판이 아닙니다. 진짜 심판은 그 후에 있습니다. 그 사람이 편안하게 죽었든, 아니면 정말 못쓸 재앙으로 죽었든 상관없이 진짜 심판은 그 다음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믿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담대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담력을 가지고 지성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담대함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 마십시오. 두려움은 성도의 마음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0:19절에 십자가에 죽은 지 삼일만에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세상의 재난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진짜 심판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평강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성도는 믿음, 소망, 사랑으로 사는자


성소로 들어갈 담력을 얻는 자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먼저 22절에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여기서 믿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지성소로 나아갈 담대함을 주셨다는 사실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두려움의 근원은 세상 재앙에 있지 않습니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 이유를 알수 없는 재앙 소식을 들을 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저주나 심판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 심판은 그 후에 있음을 우리는 믿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잊지 말고 붙드십시오.

 

다음 23절에 소망을 굳게 잡으라! 그 말씀 전에 나오는게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하나님께서 신실하사 약속을 변개치 않으십니다. 민수기 23:19절에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소망을 잡을 수 있는 이유는 그분의 신실하심에 있습니다. 아들을 내어 놓으면서도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께서 우리 개개인을 향한 구원의 역사도 다 성취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담대함을 갖습니다. 지성소로 나아가는 담대함, 재난에 담대함을 갖습니다.

 

그리고 24절에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 하라! 세상이 어려우면 인심이 사나워지죠? 내 먹을 것조차 챙기기 어려운 시대가 되면 사람들 마음은 강퍅해지고, 사랑과 선행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재난 소식이 들려오고 성소로 나아가는 두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고, 섬기는 일에 더욱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를 돌보고 힘써 사랑하십시오. 즐거움과 기쁨으로 성도를 권면하며 돌보십시오. 성도는 섬기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경험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언제 종말이 오든지,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든지, 아니면 우리 개인이 종말을 맞든지 언제든지 항상 기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성도의 가장 큰 행복이며 기쁨입니다. 그런 준비가 된 사람만이 진정으로 이 땅에서도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녀 낳는 것도 염려 마십시오. 다음 세대는 어떻게 살까 염려 마십시오.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나라를 가려면 우리는 어차피 한 번은 죽음의 터널을 건너야 합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주님의 나라를 사모하면서 그 날을 기대함으로 오늘을 열심히 기쁨으로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런 은혜가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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