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ape
청주 선교교회(예장 합신)(agaape)
한국 블로거

Blog Open 03.26.2013

전체     167923
오늘방문     54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707 명
  최근 방문 블로거 더보기
  달력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라 ( 빌립보서 3:12~14 )
01/12/2020 20:23
조회  146   |  추천   1   |  스크랩   0
IP 1.xx.xx.218

2020112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라

 

말씀: 빌립보서 3:12~14

 

레몽 프엥카레(Raymond Poincare, 1860-1934)는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을 상대로 강력한 프랑스를 이끌었던 프랑스 제 9대 대통령 입니다. 그의 대학교 은사인 라비스 교수가 교육 50주년 기념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레몽 프엥카레 대통령도 축하하려고 기념식에 참석했습니다. 라비스 교수가 답사 하려 단상에 올라갔는데, 갑자기 객석으로 내려와 뒤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대통령이 앞자리 내빈석이 아닌 학생석 맨 뒷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라비스 교수가 대통령을 앞자리에 모시려 하자 그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의 제자입니다. 저는 대통령 자격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 아니라, 선생님의 제자로서 온 것이니, 여기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선생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라비스 교수는 할 수 없이 단상으로 돌아가서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훌륭하고 겸손하신 대통령이 나의 제자라니 꿈만 같습니다. 여러분, 이런 대통령을 모셨으니,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프랑스는 더욱 살기 좋은 나라로 발전하고 부강해 질 것입니다.” 참 겸손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전쟁의 참화 속에서 나라를 단결시켜 국난을 잘 극복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겸손하고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들이 세워 지길 소망해 봅니다.

사람들은 한평생 세 편의 영화를 제작한다고 합니다. 1편은 과거 제2편은 현재 제3편은 미래라는 이름의 영화 입니다. 과거는 이미 제작이 끝나 영화 기록물 기념관에 꽂혀 있습니다. 그 영화 내용은 각자가 잘 알죠. 가슴 아프고 괴로워 눈물 흘릴 수밖에 없는 드라마 같은 내용입니다. 가끔 감사와 감격 기쁨이 넘치는 동화 같은 감동도 있을 수 있고, 평범한 것도 있겠죠? 그러나 이제 영화 제작이 완성되었기에 내용을 고칠 수도, 바꿀 수도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모두 나름대로 과거라는 이름의 영화를 찍으며 여기까지 살아왔습니다. 참 애 많이 쓰셨습니다.

 

현재라는 이름의 영화는 지금 우리 언어와 행동과 삶으로 제작 중입니다. 물론 현재라는 시점을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규명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허락하신 2020년 한 해를 넓은 의미에서 현재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라는 이름의 영화는 아직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머리로 구상만 하고 있을 뿐, 정작 어떻게 제작할 지는 그 자신도 모릅니다.

 

이 세 편의 영화 중 어떤 필름이 가장 중요할까요? 현재라는 이름의 영화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과거와 미래라는 이름의 영화는 부록에 불과하죠. 우리 인생에서 과거는 마치 시효기간이 지난 수표에 불과하며, 미래는 약속어음일 뿐입니다. 이에 반해 현재는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현금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2020년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의 언어와 행동과 삶을 가지고 어떤 내용으로 현재라는 영화를 제작 하시렵니까? 현재를 얼마나 성실하게 사느냐에 따라 인생의 결말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늘은 사도 바울이 생각하는 과거, 현재, 미래를 통하여 교훈과 도전을 받고, 우리 역시 같은 각오와 결심으로 각자 주어진 삶을 살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1. 과거라는 영화

 

바울의 과거는 화려합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난 디아스포라 유대인이지만 정통 유대인답게 난 지 8일 만에 율법대로 할례를 받았습니다. 또 그는 이스라엘 초대 왕을 배출하였던 베냐민지파 출신, 즉 뼈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혈통 상 순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으로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바울이 쓴 과거라는 영화는 세상적으로 나무랄 데 없이 매우 훌륭했습니다.

 

바울 과거 이처럼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 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바울은 그것들을 자신에게 유익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것들을 얻기 위하여 생명을 걸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과거에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어떻게 여긴다고 고백합니까? 자기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3:7절에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오히려 해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 대목에 등장하는 유익이나 는 회계 장부 기록할 때 대차대조표에 등장하는 이익이나 손실 개념입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그 화려했던 경력이 옛날에는 순이익인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로 오히려 심각한 손실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죠? 과거의 모든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는데 방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과거 화려한 이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교하면 아무 쓸데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은 오랜 세월 그것들을 붙잡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것을 넘어 썩은 냄새가 나고, 배설물 밖에 안되는 것들을 붙잡고 살았으니 얼마나 한심하냐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미 제작이 끝난 과거라는 영화 내용을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면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게 지혜죠? 한편으로 과거에 대한 해석과 활용은 현재의 시점에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아픔들을 자기 속에 잔뜩 쌓아두고, 매일 소가 되새김질 하듯 반추하며 그것으로 현재 자신을 계속 들들 볶고 괴롭히면서 살아갑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정말 소중한 보화를 발견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좋든 싫든 붙들고 있던 과거를 내려 놓아야 마땅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과거 이력이나 업적이 아닙니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여 괴로워하거나 자랑해서도 안 됩니다. 이게 바로 과거를 바라보는 사도 바울의 관점이요, 오늘 우리가 가져야할 과거에 대한 관점입니다.

 

2. 현재라는 이름의 영화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바로 현재입니다. 현재는 과거를 해석하는 기준이 되며, 미래의 방향을 잡는 키이기도 합니다.

 

운전 하다 보면 가끔 네비가 엉뚱한 길로 안내 할 때가 있죠? 목적지를 지나칠 때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유턴 하면 사고 나기 십상입니다. 때때로 금지 구역에서 함부로 유턴을 하면 CCTV에 찍혀 범칙금을 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느 곳에서든지 유턴을 허용하십니다. 따라서 잘못 길을 들었다 생각들면 즉시 유턴 해야 합니다. 지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칙금을 부과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즉시 유턴 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인생입니다.

 

이미 2020년도 두주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무엇이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는 알 수 없죠. 그러니 하루하루 우리에게 주어지는 현재가 중요합니다. 현재를 훌륭하게 만들어 가십시다. 그리고 현재를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나님 앞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Present’라는 단어는 현재로 번역 되나 동시에 선물로 번역 되기도 하는 참 의미있는 단어입니다.

 

세상은 종종 과거 이력을 갖고 현재 기회를 박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에게 현재를 선물로 주셔서 미래를 가능성으로 열어 놓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 삶은 어디에 위치하고 있습니까? 더 이상 우리는 지나간 과거에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미래에 대하여 무지갯 빛 소망을 갖는 것도 중요하나 이는 한갓 꿈이지 현실이 아닙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현재라는 선물을 잘 활용해야 합니다. 순간순간마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합니다.

 

13~14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결심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참 위대한 결단이요 신앙 고백입니다. 여기 키 워드가 푯대부름의 상입니다. 왜냐하면 푯대가 무엇이냐에 따라 부름의 상인생의 방향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푯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것이며 그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은 의의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고전 9:24절에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그렇습니다. 마치도 상 받을 그 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인 것처럼 그런 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래야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부르심을 받은 부름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그 청년 바보 의사> 라는 책은 예수님의 흔적을 따라 '참 의사'로 살다 예수님과 같은 나이에 문득 생을 마감한 한 청년의사의 삶과 사랑에 관한 기록입니다. 고려대 의학과를 졸업하고 청년 의사가 된 안수현을 사람들은 '바보'라 불렀습니다. 자기 것을 챙길 줄 모르고 돈과 시간 대부분 남을 위해 썼습니다. 돈이 없는 조선족 할아버지 검사비를 대신 내 주었습니다. 교회 후배, 병원 동료, 환자들, 심지어 환자들 가족 친척 까지 필요한 사람에게 책과 찬양 테이프를 거져 선물했습니다. 밤이면 병실을 돌며 환자들을 붙잡고 조용히 기도해주며 실의에 빠진 암 환자들을 찾아가 말동무가 되어 주었습니다. 2003년 군의관이 되었을 때 유격 훈련 하는 병사들과 함께 행군 하고 어울리던 중 예기치 못한 유행성 출혈열로 갑자기 쓰러진 후 한달만에 200615, 청년 의사 안수현은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서른세 살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그는 짧게 살았으나 남들이 다 행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다 천국에 입성한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별명을 스티그마’ ‘예수님의 흔적이라 부르며 살다 홀연히 주님 앞으로 돌아 갔습니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무려 4,000 여명이 넘는 사람이 빈소를 찾았습니다. 이는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 장례식 후 최대 조문객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들 모두는 다 청년 의사 안수현에게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는 갑작스런 질병으로 죽어가면서 이런 글들을 남겼다. “과연 나는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환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이 내게 환자로 오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도 위로 받아야 할 사람들, 병원에서 도움이 될 길과 하나님 앞에서 자유 할 수 있는 길을 위해 기도하면서 병원에 남는 길을 택했습니다.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기만의 지정곡이 있습니다. 평생 우린 각자 곡을 연주해 나갈 것입니다. 하늘의 천군천사와 허다한 증인들이 그 연주회의 청중이 되어 줄 것입니다. 주님께서 정하신 생의 마지막 날, 최선을 다한 나의 연주가 비로소 마침표를 찍을 때 갈채를 받기에 부끄럼이 없을, 최선을 다한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습니다. 늘 주기만 하던 청년 바보 의사 안수현! 그는 바보가 아니라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다가 우리 곁은 떠난 신앙의 표상이 되었습니다. 날마다의 생활 중에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은 레몽 프엥카레 대통령보다 또 안현수 의사보다 얼마나 더 겸손 하셨으며 얼마나 더 희생적이셨습니까?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낮아지셨습니다. 또 죄인들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피흘리시기 까지 헌신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열락을 뒤로 하고 오직 하나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그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생을 살았습니다. 그의 신앙은 분명하였습니다. 진리의 말씀 앞에 겸손했으며 진리를 전파하기 위해서는 생명도 불사할 만큼 열정적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게 된 부활 신앙과 천국 복음으로 가득 찬 삶을 달려 간 것입니다.

 

우리가 분명한 푯대, 즉 목표를 갖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이루는 실천적인 삶입니다. 연초에 세운 목표를 붙잡고 출발합니다. 한가지라도 잘 실천해서 습관을 형성함으로 현재라는 영화를 아름답게 제작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3. 미래라는 이름의 영화

 

우리 인생에 대한 평가는 과거에 의해 좌우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미래가 이미 결정된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현재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완성되어 끝난 것이 아님을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미래가 어디에 달려 있다고 고백합니까? 12-14절에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여기 아니요아니라아니하고세 번씩 부정합니다. 대신 바울은 무엇을 향하여 달려갑니까? 장차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달려갑니다. 그 상은 곧 자기를 위하여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예비해 놓으신 의의 면류관입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 모두가 현재라는 이름의 영화를 성실하게 제작할 때 미래에 받게 될 상이기도 합니다.

 

옜날에 한국 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를 누르고 8강에 진출했을 때 히딩크 감독은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당시 우리 선수와 국민 모두 생각이 어떠했습니까? “기대 이상으로 목표를 달성하였다, 이만하면 되었다이런 생각으로 샴페인을 터뜨리려 할 때, 자기는 8강으로 만족하지 못한다는 걸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 대표팀은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고 후에 스페인을 꺾고 4강까지 진출 하였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후 우리 나라 사람들의 뇌리속에 각인 된 나는 아직도 배가 고프다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어 버렸죠? 한번 좋은 성적을 거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의미요, 더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싶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미래를 꿈꾸며 현재를 살아가는 자야말로 진정한 챔피언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2020년 이라는 ‘Present’를 정말 의미있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가길 바랍니다. 어떤 이에게는 대입 진학일 수 있고, 어떤이에게는 사업 번창 일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논문 집필일 수 있고 어떤 이에게는 자녀 양육일수 있고, 어떤이에게는 한 영혼을 품고 기도하며 말씀을 가르치는 일 이 될 수 있고 어떤이에게는 그 모든 일을 통하여 사랑의 구주 예수님의 인격을 조금 더 배우며 닮아가는 것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 어떤 난관이나 장애물이 나타나더라도 낙심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 믿음으로 극복 하며 푯대를 향하여 줄기차게 달음질 치시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순간 순간마다 우리의 언어와 행동과 삶과 사역으로 제작해 나가는 영화 내용은 그 자체로 그치는 게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어린 양의 생명책에 낱낱이 기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올 한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 블로그의 인기글

부름의 상을 향해 달려라 ( 빌립보서 3: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