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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의 권한 ' ( 요한복음 5:1-29 )
11/30/2019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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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

 

                                                                     ' 아들의 권한 '

말씀: 요한복음 5:1-29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명절에 한 불치병자를 치유해 주셨습니다. 이로 안식일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부여 받은 아들의 권한을 밝히셨습니다. 이 엄청난 주장을 통해 깨닫는바 예수님은 어떤 권한을 가지신 분이십니까?

 

1. 낙오자를 재기 시키는 권한(1-9)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수장절)은 유대인들이 꼭 지키는 국가적 삼대 명절입니다. 명절에 예루살렘에 양문(羊門)(양의 문)이 있었고 그문 옆에 히브리어로 '베데스다'(Bethesda)라는 연못이 있었습니다. '베데스다''자비의 집이란 뜻입니다. 이 연못은 다섯 개 '행각이 있었는데 거기 누가 있었습니까? 3절에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 마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왜 그들이 거기에 있나요? 3b절에 물의 움직임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습니다. 그 이유는 4절에 가끔 천사가 연못에 내려와 못을 휘젓는데 물이 움직일 때 먼저 뛰어드는 사람 어떤 병에 걸렸든지 병이 낫는다는 전설 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 어떤 이가 있었습니까? 5절에 거기에 서른 여덟해 된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6절에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줄 아시고이 말씀을 볼때 그는 중풍병자 였습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의 답이 무엇입니까? 7절에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여기서 베데스다 연못가는 살벌한 경쟁 사회였음을 말해줍니다. 인정사정 없는 선착순의 세계였습니다. 물이 움직일 때 다섯 개 행각 안에 있던 환자들이 먼저 연못에 뛰어 들려 난리법석을 떨었습니다. 왜요? 가장 먼저 뛰어드는 사람이 병고침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상관없이 안면 몰수하고 자기부터 먼저 살고 봐야 했습니다. 그러니 서른여덟해 된 병자를 신경 써줄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 보다 더 약쌉 빠른 날랜 사람들이 늘 선수를 쳤습니다. 누구 하나 그를 번쩍 들어 연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번번이 허탕 쳤습니다. 그는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자였습니다. 오래 병을 앓으며 번번이 선착순에 밀리고 낙오한 사람입니다.

 

    그가 어떻게 재기 할수 있었을까요? 6절에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사람은 서른여덟해 된 병을 앓았습니다. 그간 숱한 좌절을 맛보고 철저히 뒤쳐졌습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누워 있는 그에게 물으셨습니다. ‘낫고자 하는 소원과 열망이 있는가?’ 그뒤 예수께서 그에게 뭐라 명하셨습니까? 8절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 그는 서른여덟해 된 병을 앓으며 재수 좋은 날을 기다렸습니다. 매번 다 무위로 끝났습니다. 세상에 환멸이 들었습니다.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변 얍쌉 빠른 사람들에게 당해도 너무 당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라면 진절머리가 났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명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때 그는 어떤 태도를 취했죠? 예수님에 대한 일말의 믿음이나 기대가 없었다면 코웃음 치며 외면했겠죠? 그런데 9절에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그는 예수님께 믿음을 가지고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 음성을 들었습니다. . 그러자 누워 기다렸던 자리를 걷어차고 그는 벌떡 일어났습니다. 어거스틴은 17세때 동거생활을 할 만큼 방탕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또 당시 이단 마니교에 빠져 살았습니다. 청년이었으나 주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모니카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 갔을 것입니다. 모니카는 아들이 돌아오게 해 달라고, 하나님의 귀한 일군이 되게 해 달라고 하루에도 열두번도 더 눈문을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때 성령께서 역사하사 또한 너의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때가 벌써 되었으니..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빚의 갑옷을 입자13:11,12절 말씀을 어거스틴이 들었습니다. 그때 회심하고 성어거스틴 으로 변화되어 일어 났습니다. 말씀을 앞에 주의 음성을 들을 때 예수님은 어떤 낙오 대열에서 우는 자도 능히 재기시킬 권한이 계신 구세주 이십니다.

 

2. '안식일에도 일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10-18)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서른여덟해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뭐죠?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는 사실입니다. 안식일에 병이 나아서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을 유대인들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시비를 걸었습니다. 10절에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리라" 도대체 안식일에 병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는 것이 왜 문제가 되었을까요? 정통 유대인들이 생명처럼 지키는 율법 중 하나가 바로 안식일 규정입니다. 십계명 중 제 4계명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2:2-3절에 하나님께서 6일간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제 7일 안식일에 편안히 쉬신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안식일 지키는 것에 엄청 신경을 썼습니다. 안식일에 일 하는 것을 무조건 큰 죄로 여겼습니다.

 

31:14-15절에 안식일을 더럽히거나 안식일에 일을 하는 자는 사형까지 당할 수 있었습니다. 15: 32-36절에 안식일에 나무를 하던 어떤 사람이 모세와 아론과 회중 앞에서 심판을 받고 실제 돌로 쳐죽임을 당했습니다. 심지어 외경 마카비서 상 2: 29-41절에는 전쟁때도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전투 하지 않고 쉬었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와 아군이 죽어도 안식일에는 아무 무기도 들지 않고 쉬었습니다.

 

이렇게 안식일을 지켰기에 유대인은 물론 손님, 종들, 심지어 가축까지도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 정해 놓았습니다. 안식일에 일한다는 것 세부 규정만 39가지나 됩니다. 안식일에 바느질 이나 브로치 다는 것도 금했습니다. 심지어 안식일에 의치나 의족, 혹은 의수를 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도 논쟁했습니다. 한마디로 유대인들에게 안식일 준수는 사느냐 죽느냐하는 생존권 문제였기에 상상을 초월하는 엄격한 규정을 가했던 것입니다.

 

? 이런 맥락에서 서른여덟해 된 병자가 병고침 받은 뒤 걸어 다니는 것은 정통 유대인들 입장에서 심각한 문제였죠? 17: 21-22절은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삼가서 안식일에 짐을 지고 예루살렘 문으로 들어오지 말며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지 말며 어떤 일이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함 같이 안식일을 거룩히 할지어다." 또 느 13: 15절은 말씀하십니다. "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안식일에 장사하거나 무엇을 들고 다니는 것을 엄격 금했습니다.

 

안식일이 이처럼 중요한 계명으로 여겼으니 안식일에 고침 받은 병자가 자리를 들고 걸어다니는 것 역시 당연히 시비 거리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붙들어 세우고 왜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거리를 쏘다니냐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11절에 이 때 병자는 핑계를 댔습니다. "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은혜를 받은 후 예수님께 책임을 전가한 것입니다. 12-13절에 그는 아직 자기 병 고쳐 주신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안식일 논쟁을 잘 아셨기에 13절에 예수님은 잠시 현장을 피하셨습니다. 14-15절에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서른여덟해 된 병자를 만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병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충고해 주셨습니다. 이제 병자는 비로소 자기 병 고쳐주신 분이 예수님이신 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를 고친이는 예수라 알렸습니다.

 

    유대인들은 이제 시비의 초점을 병자로 부터 예수님께 옮겼습니다. 16절에 그러므로 안식일에 왜 이러한 일을 행하시느냐?’ 추궁했습니다. 예수님 답이 무엇입니까? 17절에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무슨 의미죠?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은 계속 일하십니다. 창조때만 안식일에 쉬셨지 그후 하나님은 11초도 쉬지 않으시고 지금까지 끊임없이 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굴러갑니까?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습니까? 초대 교회 교부 필로(Philo)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일하시는 것을 중단하지 않으신다. 불의 속성은 계속 타오르는 것이며 얼음의 속성이 계속 서늘해지는 것이듯 하나님의 속성은 계속 일하시는데 있다." 안식일에도 태양은 밝게 빛나고 강물은 흘러가고 지구는 태양을 중심으로 연신 돌아갑니다. 안식일에도 수많은 어린 생명들이 태어나고 또 수많은 목숨들이 떠납니다.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시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안식일에도 일하시듯이 하나님의 아들 되신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부자일체(父子一體) 이십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로 생각할 때 정통 유대인들의 반응이 어떠했냐는 것입니다. 18절에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유대인들은 두 가지 사실로 더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나는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안식일을 예수님께서 어기셨기 때문이며, 또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와 동격으로 놓았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일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3. ' 아들의 세가지 권한 ' (19-29)

 

     안식일에 예수께서 서른여덟해 된 병자를 고친 사건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예수님을 신성모독 죄로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런 유대인들을 향하여 주님은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부여하신 엄청난 권한이 어떠하다 변증하십니까?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일을 그대로 행하시는 권한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요한 복음 주제는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동일성에 대한 주장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친아들로서 하나님을 직접 보셨고, 하나님의 뜻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아시며,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이 세상에서 대신해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부자일체(父子一體) 다 강조하십니다. 예수님은 '지상 위를 걸어다니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이런 까닭에 23b절은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주장하십니다. 대사는 대통령과 정부의 전권을 위임받아 타국에서 일하는 사람이죠? 그러므로 대사를 공경치 않는 사람은 어떤 의미에서 그를 파송한 국가 대통령과 그 나라 시민들을 공경치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관계는 이같은 대사와 본국 정부간의 긴밀한 관계 그 이상의 관계입니다. 단순히 천국 정부의 전권을 하늘의 대통령 되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위임받아 이 땅위에서 일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예수의 모습으로 이 땅위에 오셔서 하나님 아버지의 일을 그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를 신학적으로 'Homoousious' 즉 그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인자'(人子, the Son of Man)로서 이 세상 심판의 권세를 가지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부여받은 최고의 권세는 '종말론적인 심판의 권세'입니다. 26-27절에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 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여기 '인자'는 한 마디로 구약에서 약속하고 있는 약속된 메시아개념입니다. 이 개념이 직접 나타난 곳은 단 7: 114절입니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제국에게 멸망을 당해 포로 생활 할 때 쓰여진 책입니다. 이같이 공포와 박해가 가득찬 시대 속에서 앞으로 일어나게 될 하나님의 심판과, 희망, 회복의 메시지를 계시로서 들은 사람이 바로 다니엘입니다.   특히 단 7: 17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린하고 핍박하는 이방 제국들을 짐승의 형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독수리 날개를 가진 사자가 나타납니다(4). 이 짐승은 바벨론 제국을 상징 합니다. 둘째로, 그 입의 잇사이에 세 갈빗대를 물고 있는 곰이 나타납니다(5). 이 곰은 페르시아 제국을 상징하며 세 갈빗대는 페르시아에 의해서 정복당한 애굽, 시리아, 바벨론 왕국을 가리킵니다. 세 번째 짐승은 등에 새의 날개 넷을 가지고 있고 네 개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표범이 나타납니다(6). 이 표범은 알렉산더 대제가 이끄는 헬라 제국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넷째로 극히 강하고 철 같은 큰 철 이빨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열 개의 뿔을 가지고 있는 가공할만한 괴물 짐승이 나타납니다(7). 이 짐승은 생물계의 그 어떤 짐승과도 비교가 안될 만큼 무서운 세력의 출현을 말합니다. 이는 장차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킬 로마 제국을 상징합니다. 다니엘이 받은 하나님의 계시에는 이같이 이스라엘을 공포와 멸망으로 몰아 넣었고 또 앞으로 몰아 넣게 될 제국들을 모두 짐승으로서 묘사합니다. 도저히 그 어떤 인간미도 찾을 수 없는 비인간적인 세력들입니다. 그런데 장차 이스라엘을 회복하고 모든 제국들의 세력을 꺾게 될 메시아는 '인자,' 즉 인격적인 사람으로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약속된 메시아는 부드럽고 사랑이 넘치는 '인자,' '사람의 아들'이십니다. 인자가 메시아로 나타나서 네 마리 짐승들을 죽이고 새로운 세계를 가져올 것입니다. 요한 복음은 예수님을 바로 이같이 다니엘서에 약속 된바 대로 장차 모든 짐승의 세력을 꺾고 승리하실 인자요 심판주이십니다. 약속된 메시아, 즉 인자 되신 예수님을 믿고 또 예수님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들은 본문 24절 말씀처럼 이미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믿고 선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 예수님을 믿지 않고 악을 행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에 이르게 하실 권한이 있으십니다. 언제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일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납니까? 부활과 심판의 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십니다. 따라서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분이십니다. 32: 39절은 말씀합니다. "이제는 나 곧 내가 그 인줄 알라나 외에는 신이 없도다 나는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 능히 빼앗을 자가 없도다." 또한 삼상 2: 6절 도 증거합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이 두 말씀은 모두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생사(生死)의 전권을 가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십니다. 따라서 사람을 심판할 권세를 가지십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권한이 계십니다. 이처럼 예수님 역시 죽은 자를 무덤에서 끌어내 부활시킬 권능을 가지십니다. 즉 부활의 날 곧 심판의 때가 이르면 25절에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 날에, 곧 심판과 부활의 날에 어떤 약속을 주십니까? 고전 15:51절에 주님 다시 오시는 날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선한 자나 악한 자나 다 똑같이 부활합니다. 그러나 그 방향은 정반대입니다. 29절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이 땅에 살 때 예수 잘 믿고 착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영생의 부활을 얻습니다. 반대로 예수 믿지 않고 악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가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는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신앙 고백 위에 기초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인자시요, 메시아이시요, 심판주시요, 부활주로서 고백하는 신앙 위에 서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가지신 권세를 그대로 가지신 분이십니다. 이는 당시 혁명적 주장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주장 입니다.

 

   예수님의 자기 변증에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어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신성모독의 죄를 저지른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격렬하게 비난하며 결국 십자가에 못박는 불신앙의 무리들이 되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인간 이성으로는 잘 납득이 되지 않지만 믿음으로 겸손하게 받아 들였습니다. 마침내 영생을 선물로 획득했습니다. 우리 앞에도 똑같이 두 가지 길이 놓여 있습니다. 어떤 길을 택하시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된 분으로 인자요 메시야요 심판주로 믿고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 복된 백성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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