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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으로 가는 길에서 “ ( 요한복음 4: 39-54 )
11/23/201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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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4


                                                      ” 믿음으로 가는 길에서

 

말씀: 요한복음 4: 39-54

 

         우리 인생 최고 행복이 무엇일까요? 내 인생의 고민을 해결해 줄 그 분을 만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난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 이십니다.  본문을 통해 믿고 가는 길에서 배울 바가 무엇입니까? 

 

1. 예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39-42)

 

     예수님을 만난 여인은 동네로 뛰어가 메시아를 만났다 증거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받고 나와 예수님을 만난 뒤 그의 메시아 되심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여기 전도의 세 단계를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 예수님을 알고 믿은 누군가 예수를 소개해 주는 단계입니다. "I found it!" 여인이 기다렸던 그리스도 메시아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녀는 이 기쁨을 혼자 간직할 수 없었습니다. 즉시 동네로 뛰어가 이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수치스러운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죄와 죽음으로 부터 해방시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인의 전도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소문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10: 14절은 말합니다.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예수의 이름를 소개해 주는 전도인이 있을때 구원 역사가 일어납니다. 한 생명이 주께 돌아오려면 예수님을 소개하는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수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예수 이름으로 구원 받는 배후에는 한 사람 전도자 사마리아 여자가 있었습니다.

 

    다음, 예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 예수님과 친밀해지는 단계입니다. '百聞不如一見'이라고 예수님을 직접 만나 말씀을 듣고 영적 기쁨을 내가 체험해야 합니다. 40절에 그 사람들이 함께 있어 주시길 청했는데 예수님이 이틀 함께 유()하여 주셨습니다. 호기심이 관습과 반목을 깼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들은 소문을 직접 확인해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41절은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졌다 기록합니다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을 믿고 죄사함 받는 체험을 해야 구원을 확신하게 되죠? 영생을 맛본 체험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는 역사가 일어 난 것입니다

 

    그리고 순복의 단계입니다. 42절에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救主)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이제 더 이상 사마리아 여자의 소개 때문이 아니죠? 자기들이 직접 친히 듣고 본 경험을 토대로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the Saviour of the world, soter tou kosmou)이심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에게 주님과 교제를 날마다 체험하도록 계 3: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약속해 주셧습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마지막 만찬 먹기를 원하셨습니다. 14:22-23절에 떡과 잔을 먹고 마시도록 예수님의 피로 성만찬을 제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너희가 이를 행하여 기념하라 하셨습니다.

 

    여인은 더 이상 죄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난후 죄 문제를 청산했습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게 해줄 생수를 마셨습니다. 십자가를 붙든 그녀의 삶을 통해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이심이 확증되었습니다. 전도의 마지막 단계는 바로 전도한 대상이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로 믿고 완전히 그분 발 앞에 엎드려 순복하는 단계입니다. 전도의 완성은 그때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2. 고향에서 배척 당하신 예수님 (4345)

 

    사마리아 사역 후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44절에 "친히 증언 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자기 고향에서 오히려 배척 당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높임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1:46절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수 있느냐?’ 말했죠? 이처럼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배경을 잘았죠? 가난한 목수 아들이었는데 갑자기 메시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니 황당했을 것입니다. 3: 21, 3: 31-35, 7: 5절에 보면 친족들조차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동네 사람들이야 예수님을 높이 보지 않았던 게 당연합니다.

 

    생전에 800 여점 그림을 그린 화가가 있었습니다. 화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90)입니다. 그러나 정작 팔린 그림은 그의 사후 단 한점 뿐이었습니다. 고흐도 고국에서 철저히 외면 당한거죠? 고향 땅에 별 볼일 없는 사람이 갑자기 출세하면 옛날만 생각하며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게 세상 인심이죠? 예수님께도 예외없이 적용되었던 것입니다.

 

    막 3: 33-35절에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누가 진정한 예수님의 가족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님 안에서 진정 한 형제 자매로 연합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3. '목수와 왕의 신하' (46-54)

 

    예수님 첫 기적은 갈릴리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입니다. 둘째 표적은 54절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에 들어 가셔서 왕의 신하의 아들의 병을 고쳐 주신 사건입니다. 본문에 '왕의 신하'는 누구일까요? 원어 'basilikos'는 영어로 'nobleman,' 'royal officer,' 왕과 관련된 귀족입니다. 당시 그는 갈릴리 분봉왕(tetrarch)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 신하 중 높은 직책을 가진 이였습니다(14:1; 3:1 ). 그가 목수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목수''귀족,' '목수''왕족,' 신분상에 건널 수 없이 간격이 있죠? 그럼에도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믿음 하나로 그의 아들이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왕의 신하의 어떤 믿음이 이같은 기적을 불러 왔을까요?

 

?   첫째, 자존심을 버렸습니다. 46절에 예수께서 갈릴리 가나에 오셨습니다. 그때 왕의 신하의 아들이 갈릴리 가버나움에서 병들었습니다. 가나와 가버나움 간 거리는 약 20마일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왕의 신하는 이 먼 거리를 와서 예수님께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 부탁했습니다. 왕의 신하는 고관입니다. 목수 예수님과는 신분차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있죠?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랑이 신분 계급 차이나 먼 거리도 뛰어 넘게 했습니다. 아마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거나 수군 댓을 것입니다. 왕의 신하가 어떻게 나사렛 목수에게 도움을 청해? 그러나 왕의 신하는 개의치 않고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목수 앞에 무릎을 꿇고 자존심도 버렸습니다. 오직 주께 도움만 청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려면 자존심 체면 버려야 합니다. 세상 자랑이나 지위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을 의지했습니다. 왕의 신하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혹 자기 아들 병도 고쳐 주지 않을까? 기대를 품고 온 것입니다. 거의 죽게 되었다는 말을 볼 때 왕의 신하의 아들은 중병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주님께 찾아 와 도움을 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께서 뭐라 하십니까?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무슨 기적이나 표적이 일어나야 믿음을 가지는 세태를 꼬집으십니다. 자기 죽어가는 아들을 고쳐 준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표적과 기사만 구하는 세태를 꾸짖었습니다. 그때 왕의 하인 속이 뜨끔했겠죠? 그러나 왕의 신하는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더 의연하고 집요하게 주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49절에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제발 가나에서 가버나움으로 내려 오셔서 죽어 가는 자기 아들을 고쳐 주소서 애원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려면 낙심 말고 매달려야 합니다. 기도, 전도, 금식 무엇을 하든 낙심 말고 기다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당장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서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신앙 생활은 단거리가 아니라 마라톤 경주 죠. 낙심말고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매달릴 때 언젠가 축복의 열매가 맺게 될 것입니다!

 

    셋째, 말씀의 능력을 의지했습니다. 꾸짖으면 낙심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주께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당시 최 고위층 신분으로서 예수님께 나아 온 것만도 대단합니다. 그런데 독설에도 굴함 없이 예수님께 끈질기게 매달리는 신하에게 예수님은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50절에 예수님께서 뭐라 말씀하십니까?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예수님께서 자기 아들이 있는 가버나움 현장에 가지도 않으신 채 "네 아들이 살아 있다" 선언하셨습니다. 불신앙의 사람들이라면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니, 내 아들이 죽어가는 집에 가서 안수 기도를 해주어도 나을까 말까인데, 20마일도 넘는 먼 거리를 어떻게 여기서 말씀하신다 해서 내 아들이 나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신하는 예수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전적으로 주님의 말씀을 의지했던 것이지요.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자기 아들의 병이 나을 줄로 믿고 예수님 곁을 떠나 자기 고향집으로 돌아갔던 것이지요.

 

   그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 났습니까? 51-53절에 "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왕의 신하가 열심히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 었습니다. 길 도중에 기쁜 소식을 전해주러 오는 자기 집 종들을 만났던 것입니다. 종들은 주인의 아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전해주었습니다. 참 놀라운 일이요 신기한 일입니다.

 

    신하가 묻습니다. ‘우리 아들이 낫기 시작한 때가 정확하게 언제쯤 되느냐?’ 그때 어제 일곱시 즉 유대 시간으로 오후 한시에 열기가 떨어지며 병이 나앗다는 것입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자기 아들 병이 낫기 시작한 때는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바로 그 때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 한 마디로 자기 집에 직접 가지 않으시고, 자기 아들의 형편을 직접 보지 않으시고도 얼마든지 병을 고치실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이같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도 어떤 믿음을 가지는가에 따라 하나님은 우리 믿음의 크기만큼 역사하실 것입니다. 이로 왕의 신하는 물론이고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4살 바이올린을 시작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5살 때 영화 아역배역 출연, 평양 음악대학원 모스크바 차이코프스키 대학 음학원 졸업, 김정일 전용악단 단장 겸 악장, 평양 음악대학원 바이올린 교수, 동 유럽 문화 교류센터 바이올린 교수, 동유럽 교환 교수 재직, 세계 음악 콩쿨에서 수차례 입상, 북한 최고 바이올리니스트 가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으로 적발당하면 법적 절차 없이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곳 북한 평양입니다. 할아버지 기도로 바이올린을 시작하여 5살때 음악학원 레슨을 받았는데 집이 버스 종점 부근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할아버지께서 버스 종점 전 정류장에서 내리더래요. 한손엔 바이오린을 잡고 다른 손목은 할아버지가 잡고 한적한 구간을 걸어 가시면서 막 소리내서 기도하시더랍니다. 할아버지는 손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결국 평양에서 추방 당하신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자기의 삶을 이끌었다고 간증합니다.

 

    자기는 북한에서 체계적으로 쇠뇌를 당해 여러번 복음을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십자가 있는 교회를 지나갈때면 자기가 앞장서 동료들에게 저기안에는 배반자들이 숨어 있는 곳이라 선동했습니다. 그런 어느날 외국인 교수가 왜 얼굴색이 안좋으냐? 교회에 한번 가보세요하더랍니다. 그날따라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아서 최초로 할아버지가 기독교 장로였다는 자기 가정 비밀을 말했대요. 그러자 그 교수가 귓속말로 말하더랍니다. ‘이는 하나님 섭리입니다. 교회 꼭 가보세요.’ 그는 비밀리 택시 타고 교회에 갔습니다. 잠시 머믓거렸으나 찬양소리 멜로디가 자기 마음을 편하게 해주어,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이끌려 교회안에 들어갔습니다. 은혜를 받았죠? 그러나 북한에서 체계적으로 쇠뇌 당해서 즉시 의심이 들더랍니다. 한번 우연히 접한 예배가 정말일까? 그래서 두 번 세 번 예배를 사모하여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복음이 가슴에 임하자 미쳐 버리겠더랍니다. 그렇게 눈물 콧물 흘리며 울어본 적이 없었답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8:32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그는 한번도 들어가 본적이 없는 독일의 한 교회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할아버지의 기도는 성공과 명예의 자리가 아닌 하나님의 진리로 저를 이끌었던 것입니다. 감시 통제가 심한 곳에서 두달 반 교회에 출석한 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마침내 북 대사관에 탄로되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그때 교환 교수로 있던 독일에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 드리고 싶어 하나님의 나라 대한민국에 홀홀 단신 찾아 왔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을 때 가슴을 짓누르는 공허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부귀 영화를 누릴수 있는 영광을 버리는 길은 험난한 길이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 하나님 놀라운 은혜로 주님의 나라 대한민국에 와서, 함께 하나님 은혜 나눔은 할아버지 기도 덕분 이라 믿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정사인 작사 작곡 사향가는 당시 인기를 끄는 북한 대중가요 였습니다. 그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고 싶은데 한국에 피아노 반주보가 없어 할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인에 이끌려 매주 북한 복음화와 평화 통일 위해서 기도하는 모임에 갔습니다. 거기 평양 음악대학 박사과정을 마치고 어머니와 탈북해 이화여대 석사과정 마친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반주보를 다 외워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북한 기독교 장로 손자 탈북 음악인 정요한 집사와 북한 순교자 목사님 집안 (장모는 연극배우 지하 교회 교인) 김예나 집사가 하나님 스케줄에 따라 탈북 입국 과정을 거쳐 주안에서 믿음의 가정을 이루게 도우셨습니다. 마침내 혼자였던 그에게 하나님의 꿈을 향해 나갈수 있는 새로운 가족을 주셨습니다.' 나의 나 된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 라 간증합니다. 여러 교회에 연주를 하며 간증하길 김정일이 애지 중지 키운 자기들을 하나님이 한국 땅에 보내 주의 자녀 앞에 강권적으로 세우신 줄 믿는다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남아 있는 지하교회가 다시 자유를 얻도록, 남한에 온 탈북자들이 잘먹고 잘사는 것 보다 예수님 만나 구원받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50절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53절에 "자기와 온 집이 다 믿으니라" 두 번 나오죠? 여기 두 믿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먼저, 50절에 신하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아들의 병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은 것입니다. 이런 믿음도 귀한 것이죠? 그러나 아직 신하를 죄와 죽음에서 구원할 만한 믿음은 되지 못합니다. 반면 53절에 예수님의 신적 권능을 확실하게 체험한 후 자기와 온 집안이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은 예수님을 개인적 구주로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단지 병을 고치는 분으로서가 아니라 자신과 온 집안 식구들을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믿음은 표적이나 기사를 구하는 신앙으로 부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구속론적인 신앙으로 성장해야 합니다. 이런 신앙은 절대적인 믿음과 순종을 의미합니다. 왕의 신하는 예수님 말씀에 겸손히 순종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환자들은 가끔 따스한 햇빛에 자기 온 몸을 내놓은 채 일광욕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 때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태양 빛에 자기 온 몸을 맡긴 채 광선을 쪼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태양 광선이 저절로 체내에 있는 나쁜 균을 죽여 줍니다. 환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자기의 온몸을 태양 광선에 맡긴 채 조용히 기다리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제일의 미덕(美德)이 무엇입니까? 우리도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에 우리 삶 전체를 그대로 의탁하는 일입니다. 왕의 신하의 아들처럼 주님께 굴복하여 그분의 말씀을 온전히 의탁함으로 놀라운 은총을 맛보고 누리는 복된 백성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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