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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추수 감사 ( 요한복음 4: 1-38 )
11/19/2019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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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7

 

                                                        영혼 추수 감사

 

말씀: 요한복음 4: 1-38

 

       오늘은 추수 감사 예배입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대서양을 석달간 항해한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석달간 때론 뜨거운 태양과 때론 태풍과 맟서며 거친 바다를 항해해 오는 중 절반이 죽었고 절반만 아메리카 땅에 도착했습니다. 청교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그땅에 도착해 생명을 살려주신 주께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또 이제 자유롭게 개신교 신앙을 갖고 예배드릴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했을까요? 교회와 학교를 짓고 한해 농사 지은 후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추수 감사 예배의 시작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한 영혼을 돕고 구원하신 영혼 추수입니다. 이를 통해 참된 감사가 무엇일까요?

 

1. '장벽을 넘어 생수 주심에 감사 (1-9)

 

     예수님 시대 120마일 팔레스타인은 최북단 갈릴리 최남단 유다 가운데 사마리아 지방으로 나뉘져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엔 어떤 반목과 질시가 있었습니까? 왕하 17: 6절에 왓수르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끌고 갔습니다. 또 왕하 17:24절에는 앗수르 왕이 이방인들을 옮겨 사마리아 여러 지역에 두었습니다. 피가 이방과 섞이게 된 거죠? 9절에 순수 혈통을 자랑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4절에 예수님은 당시 관습을 뛰어 넘어 직접 사마리아를 통과하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수가 지역에 도착하셨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거기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48:22절에 야곱이 세상 떠날 때 요셉에게 준 우물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깊어 두레박이 있어야 물을 길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여기에 물 길러 온 사마리아 여자가 있었습니다. 6b절에 유대 시간으로 여섯시 쯤 즉 정오였습니다. 중동은 뜨겁죠? 그래서 이른 아침이나 해진 저녁에 물을 길렀습니다. 왜 이 여자는 대낮에 물 길러 왔을까요? 떳떳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 피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에 소외된 여자가 예수님을 만난겁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이 여자와 장벽을 무너 뜨리리고 대화의 문을 여셨습니까? 7절에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여인은 물을 길으러 왔고 여행 중 예수님은 목이 마르셨습니다. 일상적인 관심으로 예수님은 두사람 사이 공통 화제인 물을 겸손히 달라 청하셧습니다. 이로 민족적 장벽, 남녀 장벽, 신분적 장벽을 뛰어 넘어 대화의 문을 여셧습니다.

 

      철학자 마틴 부버(Martin Buber)"나와 너"(I and Thou)라는 책에서 인간의 만남과 대화에 두 종류가 있다 말했습니다. 먼저 "나와 그것"(I and It)의 만남, 즉 비인격적이고 사물적인 만남이 있습니다. 반면 "나와 당신"(I and Thou)의 만남은 마음과 마음, 인격과 인격이 만나 서로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치고 인격의 변화를 가져오는 살아있는 만남과 대화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사이의 대화를 통하여 바로 "나와 너의 인격적인 만남과 대화" 의 한 전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여인의 답이 무엇입니까? 9절에 "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예수님은 관심을 어디로 돌렸죠? 10절에 "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 living water 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인이 깜짝 놀라 11절에 "주여 여기는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이 생수를 얻겠사옵니까?" 여자는 아직 생수가 무엇인지 모르고 마른 목을 젹셔줄 육신적 물만 생각했습니다. 12절에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더 좋은 물을 주신다니 그렇다면 당신이 오히려 야곱보다 더 크고 위대한 사람입니까?" 반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13,14절에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야곱의 물은 일시적인 갈증만 해소시켜 주고 다시 마셔야 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생의 샘물입니다. 여인은 그런 물이 마시고 싶었습니다. 세상 물은 근본 갈증을 해소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영생수가 있다면 마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5절에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시는 영생수를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는 분이심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갑자기 대화 주제를 어떻게 바꾸십니까? 16절에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는 깜짝 놀라 남편이 없나이다 답했습니다. 18절에 예수님께서 " 너에게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그때 여자는 비로소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바로 알았습니다. 19절에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고백했습니다. 또 말씀하시는 주제가 세상 물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는 한 때 남편 다섯이 있었고 현재 남편이 있지만 그 남편이 참 남편이 아니라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물을 마시고 또 마셨습니다. 그럴수록 갈증만 더 심해졌습니다. 참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신다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화의 주제가 " 마시는 물"에서 "남편" 으로 다시 무엇으로 발전되었습니까?? 20절에 "우리 조상들은 이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어디서 예배 드려야 마땅합니까? 비로서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의 바른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삶에 지쳤고 남편 다섯이 있었지만 만족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예수님은 23,24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정한 예배, 살아있는 예배는 어떤 장소 신분 국적에 달린 것이 아니다. "영과 진리"에 달려 있다. 어떤 외적 조건에 달린게 아니다. 영으로 드리는 예배와 진리에 기초한 예배가 중요하다.'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대화의 조명을 통해 여인은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참 구세주시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며 또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기에 합당한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믿었습니다. 기쁨이 넘쳐 흘렀습니다. 여인은 물동이를 내 버려두고 온 동네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외쳤습니다. 29절에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나는 메시야를 만났다. 간증했습니다. 한발 나가 너희도 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영생수를 마셔라초청한 것입니다.

 

     2001년 데뷔해 김밥’ ‘잘가’ ‘대화가 필요해등 히트곡을 줄줄이 내놓던 톱스타 가수가 있었습니다. ‘김밥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만큼 인기가 치솟았습니다. 그런데 2008년 이후 가요계에서 돌연 자취를 감췄습니다. 가수 자두 이야기입니다. 잘 나가던 때 소속사와 돈 문제, 배신 등 모든 것이 그녀를 내리쳤습니다. 사기를 당하는 등 생활이 엉망이었습니다. 기쁨을 잃고 우울증 증상도 있었습니다. 낙심, 절망 등 어두운 단어가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때 교만한 자아가 산산히 깨졌습니다. 그때 놀랍게도 생수 주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그때 세상 인기에 휘둘렸던 마음을 철저히 회개하고 예수님 한 분을 메시야로 신뢰하며 믿음으로 주님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세상 노래를 부르던 입에서 돌이켜 이제 주께서 주신 은사로 주님을 찬양하며 새 소식반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복된 사모님이 되었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예수님과 대화는 우리에게 참 생명,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줍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채울 수 없는 육적인 허기와 갈증을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채웠습니다. 세상 사랑은 일시적 위로만 줄 뿐입니다. 그러나 영적 생수는 영원토록 목마르지 않는 만족과 기쁨을 주십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하여 예수님과 대화를 나눌때 오늘도 영생과 구원을 충만히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최고 만족스러운 양식'에 감사 (4: 3134)

 

    제자들이 양식을 구해 주께 '드시라' 권하였습니다. 그때 주님이 답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다제자들은 누가 벌써 잡수실 음식을 드렸나?’ 추측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더 어려운 말씀을 하십니다. 34절에 "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주님의 양식이 무엇입니까? 예수님 양식은 예수님을 보내신 이, 즉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순종하는 게 주님 양식입니다. 먹을 양식 없이는 한 시도 살 수 없죠? 이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 않고서 하루도 살 수 없다 밝히신 것입니다.

 

      왜 주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을 양식 삼으셨을까요? 34절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뜻대로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뜻을 행하기 위해 보내심 받았다는 사실입니다(5:36; 17:4; 10:18; 6:38; 8:29).

 

     그러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을 양식 삼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먼저, 마음 속에 평화를 누립니다. 인생이란 배에 육신이라는 선장과 영혼이라는 선장이 싸울 때 평안이 없죠평화는 한 쪽이 다른 쪽에 순종할 때 옵니다. 문제는 영혼이 육신에 져 육신이 왕 노릇할 때 파멸의 길입니다. 육신이 영혼에 굴복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삶에 평화가 찾아 옵니다. 8:6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그러므로 욕심 대로 살려 마시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 보십시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큰 평화와 기쁨이 우리 영혼에 찾아 올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주파수를 하나님께 맞춰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면 승리 합니다. 주님께 순종함을 양식을 삼고 감사하는 백성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다른 사람 수고로 거두는 추수'에 감사 (3538)

 

     양식을 말씀 하신 후 예수님은 대화 주제를 무엇으로 바꾸십니까? 35절에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 할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서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거두는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 하였느니라예수님은 세상을 추수할 밭으로 말씀하십니다. 대화가 끝난 뒤, 이 여인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이 말씀이 나왔죠? 예수님은 이 여인을 영적 추수' 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역 전체가 추수해야 할 영적인 밭으로 이해하셨습니다. 수가 지역 여인 하나가 장차 사마리아에 큰 영적 추수 가져 올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5절에 "넉 달이 지나야 추수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이는 당시 사마리아 땅의 실제적인 추수기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은 농사 절기를 '씨뿌리는 때' 그 후 '겨울철,' '봄철,' 그리고 '추수철,' '여름철,' 그리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로 나누었습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씨 뿌린 다음 추수 때까지 4개월 정도 잡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세상 사람들은 씨뿌리고 열매 거두려면 넉달 정도 기다려야 된다 말하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는 지금 당장 눈을 들어 저 사마리아 들판을 보아라. 이미 곡식이 다 익어서 거둘 때가 되지 않았느냐?" 말씀 하시며 영적 추수가 바로 눈앞에 있다 하십니다.

 

    사마리아 수가 지역은 바위와 돌이 많은 땅입니다. 따라서 황금 물결을 이루는 곡식 보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35절에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외치십니다. 여기 희어져 추수한다는 지금 막 열매 거두기 직전이란 뜻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동네로 들어가 예수님을 증거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 들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무리들을 가리키며 영적 추수 때가 임박했음을 알리신 것입니다.

 

      씨뿌리는 이의 수고가 있었기에 누군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주님이 언급하신 추수 때가 임박했다는 말씀은 영적 추수를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같은 추수 때는 거두는 사람이 품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도 모으게 될 것을 말씀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오는 영적 추수 시기가 되면 당연히 추수를 거둔 사람들이 먼저 하나님께 상급을 받고 영생의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영적 추수 때가 되면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나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 다함께 기쁨에 동참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유대인들은 씨앗을 뿌리는 것은 고통스럽고 힘들다는 생각 했습니다. 오직 열매를 거두는 것만 기쁨과 축복으로 여겼습니다. 126: 56절은 노래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예수님은 이런 관념과 달리 씨를 뿌리는 자도 기쁨으로 씨를 뿌리고, 열매를 거두는 자 역시 기쁨으로 열매를 거둔다 말씀하십니다. 영적 추수는 복음의 씨앗을 뿌리느라 고생한 사람이나 그들의 희생 위에서 열매를 거두는 사람들에게나 다 좋은 일이며 다 기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이 진리를 분명히 말씀하십니까? 37"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우리도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받는다" 는 속담이 있죠?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복음의 씨앗을 열심히 뿌리고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의 수고 덕분에 복음의 열매를 열심히 거두는 이치'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근거 위에 예수님은 38절에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여기서 노력한 사람은 누굴까요? 사마리아 에서 영적 추수를 거둘때, 씨 뿌리느라 수고한 두 사람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이죠? 이들의 노력 때문에 제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수월하게 열매를 거두었을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이야말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신 분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의 씨앗을 뿌리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뿌려 놓은 씨앗 때문에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 활발하게 복음 추수를 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이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돌아 왔습니다. 8장에는 사마리아 전도에 대한 기록이 나오죠?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중 빌립이 많은 회심자를 얻었습니다. 그 후에 예루살렘 사도들과 베드로, 요한 까지도 빌립의 뒤를 이어 복음을 전하였고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왔고 또 성령까지 선물로 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한 사람 수가 지역 여인이 복음의 씨앗을 뿌릴때 그 후 빌립과 사도들이 복음의 열매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씨뿌리는 사람들의 수고와 헌신이 있기에 후에 누군가 풍성하게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씨를 뿌리는 사람이나 열매를 거두는 사람이나 하나님 보시기에 다 귀하고 아름다운 사역자들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교부 터툴리안이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 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영혼 추수를 최고 양식, 최고 감사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도 전도를 나가 씨를 뿌리든, 상담이나 말씀공부로 열매를 거두든, 영혼 추수를 최고의 양식이요 최고의 감사로 여기며 사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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