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aape
청주 선교교회(예장 합신)(agaape)
한국 블로거

Blog Open 03.26.2013

전체     158894
오늘방문     104
오늘댓글     0
오늘 스크랩     0
친구     709 명
  달력
 
‘은혜 위에 은혜' ( 요한복음 1:14-18 )
09/30/2019 00:47
조회  406   |  추천   2   |  스크랩   0
IP 1.xx.xx.218

2019929

 

                                                                           ‘은혜 위에 은혜'

 

말씀: 요한복음 1:14-18

 

      요한복음 1:14절은 '성육신 기독론'(incarnation christology) 입니다. 여기에 말씀, 육신, 영광, 독생자, 은혜, 진리 등 예수님과 관계된 모든 중요한 용어가 집약되어 있습니다예수님이 누구십니까?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찾아오신 분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위에 무엇이 충만합니까

 

1.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

 

    예수님은 창조주 이십니다. 예수님은 온 세상 질서를 주장하시는 원리로써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 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육신(成肉身) 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희랍인들은 하나님이 육신을 입는 일은 불가능하다 여겼습니다. 영지주의 철학 영향으로 영은 선하나 육체는 악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고체계 하에 살던 희랍인들에게 하나님이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은 불가사의요 신성모독 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영원 속에 계시던 하나님께서 시간과 역사 속 땅에 들어 오셨습니다. 추상적이던 하나님의 말씀이 구체적인 사건이 되셨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오셔서 죄인들 가운데 거하셨지만,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고,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분의 영광을 보기 원한다면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배반한 세상에 긍휼과 자비의 빛으로 오사 구원을 완성 하셧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를 어떻게 증거했습니까? 15b 절에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세례 요한이 6개월 먼저 태어 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예수님의 영광은 누구로부터 오는 영광입니까? 인간이나 세상으로부터 오는 영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독생자만 누릴 수 있는 하늘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5: 41절에 "나는 사람에게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또 요 7: 18에 예수님은 자기를 보내신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한다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마다 주님이 가졌던 똑같은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17:22절에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은 이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서 예수님이 누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 위에 무엇이 충만합니까?

2. 충만한 하나님의 은혜

 

    진리를 따라 심판 받으면 살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따라서 죄 문제를 해결하려면 생명을 댓가로 지불해야 합니다. 피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예수님이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키셨습니다. 이를 저자 요한은 은혜라 선언 합니다.


   우리가 본래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엡 2:1-3절에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은혜 받을 자격이 없는 저주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일방적으로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은혜가 아니죠. 16'은혜 위에 은혜'(grace upon grace)입니다. 은혜란 단어를 두 번 반복한 것은 강조법입니다. 풍성하고도 충만한 은혜가 주 예수님 위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수록 더 신비롭고 위대한 분이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살수록 더 사랑스럽고 존귀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을 생각할수록 진리의 지평은 더 넓어집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끝없이 솟아나는 은혜의 샘물이시요, 쏟아지는 보물의 광맥 이십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값없는 선물은혜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구원 받을 아무 자격도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거저 구원을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고전 15:10b절에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한 시도 살 수 없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 도무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는 그 은혜 때문에 삽니다. 그러므로 주께 구할 것이 은혜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생활을 통하여 은혜를 받고, 무엇을 하든지 순간 순간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은혜받기 위해서 오직 예수님을 바라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안에 '은혜 위에 은혜'가 항상 머무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위에 무엇이 충만합니까

3. 충만한 하나님의 진리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 분이십니다. 이야말로 죄 아래 있는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믿는 모든 자들에게 충만한 은혜를 값없이 주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에 많이 나오는 말이 '진리' 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진리는 한결같습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사실은 진리입니다. 지구가 만들어진 이래 한번도 변함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거짓의 반대입니다. , 사실, 진짜가 진리입니다. 참 진리는 무지를 제하고 밝은 지혜로 안내합니다. 어리석음과 무지는 진리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14: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을 진리라 선포하십니다. 예수님은 태초부터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계시며 온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말씀이시며, 우주 질서를 주장해오신 하나님의 지혜이시며, 하나님의 마음이십니다. 그러므로 태초 이래로부터 한번도 변함이 없으신 분이 우리 주 예수님 이십니다. 만일 예수님께 거짓이 있고, 시간에 따라 변덕이 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께 이를 수 있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만 가질 수 있는 진리를 온 몸으로 체현(體現)하신 진리 그 자체이십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마다 어떤 분별력을 갖게 될까요? 사사기 9:7-15절에 나무 비유가 나옵니다. 하루는 나무들이 기름을 부어 왕을 삼으려고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에게 너는 우리의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때 각 나무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로 가장 좋은 기름으로는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 또 왕 제사장 임직식때 그들 머리에 부어졌으며, 성막 안을 밝히는 등잔 기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모두 다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는 용도로 쓰여졌습니다. 따라서 이 직분 감당하기에도 벅차다하며 거절합니다.

 

    ‘무화나무는 당도가 높고 영양가가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설탕이 귀했던 때 무화과 열매는 음식을 달게 하는 데 썼습니다. 교회안에 세움 받는 이는 주께서 맡겨준 사명 감당함으로 다른이의 필요를 채우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직분을 감당하겠다며 왕되기를 거절했습니다.

 

    ‘포도나무는 포도 열매를 맺죠? 그 열매로 빚은 포도주는 하나님께 전제로 드려지는 제물이었습니다. 또 사람들에게 각종 영양소를 공급하는 음료였습니다. 시편 104:15절은 포도주를 가리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포도나무의 소중한 직분은 왕의 자리와도 바꿀 수 없다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가시나무는 내 그늘에 피하라허세를 부리면서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여기 세 나무는 스스로 왕 되기를 거절한 기드온과 아비멜렉 칼에 목숨을 잃은 그의 형제들이며, 가시나무는 칼을 휘둘러 피를 뿌리고 스스로 왕이 된 아비멜렉을 의미합니다. 가시나무에 남을 유익하게 하는 무슨 열매가 있으며 그늘을 만들 무슨 잎사귀가 있습니까? 그런데도 자기 그늘에 피하라니이 얼마나 새빨간 거짓말이며 사기꾼입니까? 요즘 우리 사회에는 이런 사기꾼이 남을 개혁하겠다며 수많은 사람 가슴을 후벼 파며 상처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빛이요 진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무엇이 빛인지 어둠인지 분별하며 진리와 거짓을 가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진리이신 예수님을 아는 자마다 모든 무지와 거짓, 억압의 사슬로부터 자유를 얻게 됩니다. 8:32절에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진리되신 예수님 거울에 자기의 얼굴을 비추는 자마다 자기 진짜 모습을 확연히 알게 됩니다. 온갖 위선과 가식과 죄로 범벅이 된 자기 진면목을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오직 예수 안에 참 자유와 구원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진리 되신 예수님은 욕심과 죄악이라는 감옥과, 헛된 우상으로 부터 해방 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한결 같지가 않죠? 그러나 예수님은 한결 같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한결 같으신 진리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진리,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그래야 무지로 부터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최고요, 의인이요, 똑똑하다 생각하는 모든 무지와 착각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이란 거울에 내 얼굴와 마음을 한번 비추어 보십시오! 거기에 추한 내 모습이 비춰질 것입니다. 그때 왜 예수님을 통한 은혜와 구원이 절대 필요한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을 보는 사람들마다 누구를 봅니까? 18절에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예수님을 본자마다 하나님을 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품안에 계신 독생자이십니다. 유대인들에게 누군가의 품안에 있다는 사실은 최고의 친밀감과 사랑의 관계를 나타냈습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처럼 누구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극진한 사랑을 의미합니다(11: 12; 13: 6 참조). 그런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그 가슴에 안고 계십니다.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최고의 친밀감과 최고의 사랑으로 하나님 품에 껴안으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하나님을 직접 보면 무엇을 뜻합니까? 33: 20절에 "또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4:12절에 "여호와께서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아무도 하나님을 직접 본 사람이 없습니다. 구약 최고 인물 모세로부터 하나님의 율법이 왔습니다. 그러나 모세도 하나님의 음성만 들었을 뿐 하나님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모세는 여전히 우리와 같은 한 인간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기자는 선언합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예수님을 본 사람들마다 이제 완전한 하나님을 본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보지 못했지만 오직 예수님은 하나님을 직접 보았습니다(6: 46). 예수님은 그 근본이 하나님과 본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면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알려면 예수님의 용서를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알려면 예수님의 지혜를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면 예수님의 마음을 헤아리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곧 예수님이시고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누구를 바라봐야 할까요? 예수님을 바라 보십시오. 그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습니다.

 

   박인선 집사님은 베테랑 간호사 였습니다. 제 한몸 쯤이야 얼마든지 간호할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2003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수술 받고 항암 치료를 6번 받았습니다. 매일 구토하고 밥 냄새까지 역겨웠습니다. 그때 입사 동기 크리스챤 진경이가 찾아와 교회 나갈 것을 권유했습니다. 차차 나아 검진을 받았는데 이상 없다고 해서 복직해 별일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런 어느날 무릎 아래가 시큰 거리고 아파 엑스레이를 찍어 보니 암 세포가 뼈로 전이 된거라 판정을 받았습니다. 이젠 암 말기라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더라도 생명을 보장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또 전이 될수 있으니 뼈를 잘라내 암세포를 다 긁어 내고 사골 고듯 뼈를 열 소독해서 다리 위 아래로 철심을 박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세상 꺼지는 한숨만 나왔습니다. 그냥 눈물만 쏟았습니다. 다시 친구 진경이가 찾아와 아들에게 물려줄 유산은 돈이 아니라 믿음이라고 예수님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친구와 함께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때 목사님이 죄가 있으시냐?’ 다짜고짜 물었습니다. 정직하게 살아온 것 같다고 대답하니 개도 주인을 알고 소도 주인을 아는데 사람만 창조주를 모른다며 교만불신이 죄라 하시며 십자가의 도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무릎을 꿇고 회개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수술이 자꾸 지연되어 불안한 마음에 목사님께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목사님의 뜨거운 기도가 그녀의 마음을 만져 주었습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바라보았습니다. 예수님이 피 흘리신 것이 바로 자기 죄악을 위해 쏟으신 보혈 임이 믿어졌습니다. 수술후 항암 주사를 맞을때도 편안한 단 잠을 잘수 있었습니다. 뼈가 완전히 붙어 완쾌 판정을 받고 걸어 다닐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믿지 않던 남편도 아들과 함께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주 예수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녀에게 찾아온 질병과 고난이 오히려 가정 복음화 지역 복음화 가 되는 축복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구주이신 것을 보는 눈이 열릴 때 우리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모든 근심과 걱정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보는 사람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생을 기쁨으로 드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볼 때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진리가 항상 충만해 질 줄 믿습니다. 날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을 붙드시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아멘.

 

 

 

 

 

 

 


이 블로그의 인기글

‘은혜 위에 은혜' ( 요한복음 1:1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