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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돌아오라 ( 호세아 14:1-3 )
08/25/2019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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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825

 

                                                        여호와께 돌아오라

 

말씀:호세아 14:1-3

 

      호세아는 이사야 시대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하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고멜이란 여인과 결혼하도록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의 가정 생활은 하나님에 대하여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을 정확히 극화한 표본이었습니다.

 

     호세아 14장은 이런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그러면죄를 용서해 주시고 받아주시겠다 또 영육간 큰 보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본문을 통해우리가 들어야 할 간절한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입니까?

 

첫째, 탄원을 갖고 돌아오라


     1절에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하나님은 다정하게 부르십니다. ‘이스라엘아!’ 이 이름은 언약과 관련된 이름입니다. 창세기 32-35장에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야곱발꿈치를 잡은 자’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자의 이름입니다. 반면 이스라엘하나님과 더불어 씨름하여 이긴 자’ ‘하나님의 황태자축복된 이름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너희도 이스라엘이지 않느냐? 그러므로 촉구합니다. ’너희도 하나님께 돌아와야 마땅하지 않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아!’라 부르신 것은 여호와께로 돌아오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는 말입니다. 비록 우상숭배에 빠져 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왜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그런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를 할 때 허무합니다. 그 영혼에 진정한 만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간청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모든 선의 근원이십니다.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약 안에서 모든 선의 근원이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올 때 하나님은 모든 은혜로운 언약을 이루어 주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한 후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러졌느니라말합니다. 돌아오지 아니하면 심판이 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멈춤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사악한 길로 치닫던 그 악한 행실을 그쳐야 합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향해 가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또 하나님께 돌아가기 위해 장애물을 뛰어 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돌이키겠다 결심 하면 사단은 즉시 방해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 가로막은 어떤 장애물도 극복하고자 하는 결연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여호와께로우스궤 아드 제호밤인데 여호와께로 완전히라는 뜻입니다. ‘시작만 말고 여호와께 돌아올 때까지 쉬지 말라.’ 죄의 길에서 멈춤만으로는 부족하다. 여호와께로 완전히 돌아와야 한다. 그래야 용서함을 받고 고침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2. 말씀을 갖고 돌아오라

  

  그러면 어떤 방식으로 여호와께로 돌아와야 할까요? 2a절에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너는 말씀을 가지고.” 율법 출23:15, 34:20절에 여호와께 자기를 보일 때에 빈손으로 오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때 말씀을 가지고 돌아오라 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올 때 그 어떤 말씀도 기쁘게 열납 해 주십니다. 탕자의 비유에 탕자는 다 탕진하고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버지께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5:18-19절에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이 말로 아버지 앞에 드렸을 때 그 아버지는 그 아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뜨겁게 영접해 주셨습니다. 아들로서의 모든 권리를 회복 시켜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깨닫고 긍휼을 구하며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위안을 얻습니다. 요일 1:9절에 하나님은 모든 불의에서 깨끗이 씻어주십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내 죄를 깨닫고 말씀에 의지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길 바랍니다.

 

    2b절에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참된 회개가 무엇입니까? 회개에는 어떤 요소가 있어야 합니까? ‘모든 불의를 제거해 달라탄원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우리가 저지른 수많은 불의를 다 제하소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올 때 모든 불의를 제하여 달라 탄원해야 합니다. 탄원에는 자기 죄와 부정한 행동을 시인함이 함축 되어 있습니다.

 

    왜 모든 불의를 제하여 달라 탄원합니까? 우리는 자유 정의 진리가 우뚝 선 나라를 꿈꿉니다. 스포츠에서 룰을 지켜 경기해야죠? 룰을 어기면 비디오 판독을 해서 yellow card red card를 주잖습니까? 최소한 법은 공정하게 집행 되는 나라를 꿈꿉니다. 아모스서 5:24절에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그런데 특권 계층이 공정한 게임을 하지 않고 불의를 저지를 때 우리가 무엇을 탄원해야 할까요?

 

    어떤 특권 권력자는 시험 한번 보지 않고 자기딸을 스팩만으로 고등학교, 환경대학원, 의학 전문 대학원 까지 그냥 쑥 들여 보냈습니다. 2주 인턴 한 고등학생이 쓴 글이 의학 논문 제1 저자로 올랐다는게 말이 됩니까? 어떤 학부모는, 남편이 아이 교육비 마련하려 폭염에도 새벽에도 달리는 배달의 투잡족으로 땀 흘리며 뛰는데, 엄마로서 참 힘빠진다.. 누가 봐도 공정하지 못하다. ‘이게 나라냐?’ 분노와 배신감으로 길거리에 나섰다 합니다.

 

    이런 불의는 비단 남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어떠 합니까? 날이 갈수록 말세의 고통이 심해집니다. 딤후 3:1-4절에 말세에는 자기를 사랑하며 을 사랑하며 쾌락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기 보다 더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교활하게 계속 죄 짓겟다는 마음안에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나요? 성령님께서는 중생한 사람 속에 모든 죄를 똑같이 혐오하는 정직한 영을 부어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돌아오는 사람은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탄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원하는 마음은 모든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닮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돌아오고자 하는 자는 자기 불의를 제하여 달라 하나님께 탄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모든 죄의 죄책과 죄의 통치를 제하소서. 그래서 어떤 죄도 내 속에 군림하지 않게 하소서죄가 초래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심판을 제하소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은 죄가 불쾌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죄를 제거해 달라 간청합니다. 죄를 저지르는 순간 꿀처럼 달콤했는지 몰라도 후에 양심이 각성되면 죄처럼 불쾌하고 쓰디쓴 것이 없습니다. 죄인의 양심이 각성되면 그는 자신의 죄를 생각나게 만드는 모든 것을 다 미워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탄원하는 것입니다. 3:19절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새롭게 되는게 뭘까요? 23:16절에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 하리라오물을 보면 불쾌하죠? 그런데 꽃을 보면 상쾌하죠?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속에 죄가 있으면 불쾌한 겁니다. 회개하고 돌이켜 죄없이함을 받으면 유쾌해 지는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돌이키려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소서’ ‘도말시켜 주소서’ ‘다시는 기억하지 말아 주소서’ ‘가리워 주소서’ ‘책임을 묻지 말아 주소서호소해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가 거듭 죄를 반복 범하는 것은 과거 죄를 즐거운 마음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죄의 자각으로 확실하게 구원의 감동을 받은 경우 그 영혼은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라 절규합니다. 우리가 불의를 제하여 달라 간청하면 죄가 다 저절로 해결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불의를 제거해 달라 간구하면서 더욱 그리스도의 은혜를 힘입어야 합니다. 16장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아사셀의 양으로 우리 모든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모든 이의 죄를 짊어 지시고 광야로 떠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이스라엘이 우선적으로 자기 불의가 제해지길 기도했습니다. 이 사실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죄가 있는 곳에 하나님은 거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오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속 모든 불의가 제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마음 속 모든 불의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불의를 제거해 주실 때 하나님의 다른 은혜가 풍성히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물줄기를 막는 것이 우리 속 불의 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 돌이키는 이스라엘은 제일 먼저 불의를 제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구름이 걷히면 해가 빛을 발하듯 우리 죄가 제거되면 하나님의 은총이 빛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는 우선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탄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오려면 상한 마음으로 나의 불의를 제해 주시도록 탄원해야 합니다. 알고 지은 죄와 모르고 지은 죄 다 용서해 달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겸손히 나아가 나의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 라고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모든 불의를 사함 받고 하나님의 은총을 충만히 누리기를 바랍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라고 탄원한 후에 우리에게 선한 바를 받으소서라고 탄원하라고 합니다. ‘선한 바를 받으소서는 원문에 우리에게 선을 행하소서!’입니다. . 선을 취하소서. 그리고 우리에게 선을 행하소서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의 선하심의 창고에서 선을 꺼내어 우리에게 선을 행하소서. 당신 자신의 선을 우리에게 베푸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모든 불의를 제하소서라는 탄원이 우선합니다. 그 다음 당신의 관대함으로 선을 취하소서. 그리고 우리에게 선을 행하소서라는 탄원이 따라 옵니다.

 

    당신의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완벽하고 완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불의를 다 제하시고 그 후에 선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용서해 주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을 그 자녀들에게 행해 주십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용서로 끝나지 않고 그 위에 선을 행하십니다. 곧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 주셔서 우리가 선을 행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불의를 제하신 후 당신의 은혜의 샘 근원에서 선을 취하셔서 우리에게 선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사함을 구한 후에 우리는 선을 행하소서라고 간청해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 삶에서 찬미의 열매를 갖고 돌아오라

 

    회개에 대한 또 다른 성격이 무엇입니까? 여전히 죄 속에 살며 하나님께로 돌아 온다는 것은 위선 이죠?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이 말씀은 곧 다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겠다는 재 약속입니다. 이스라엘은 말씀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말로 표현함이 없이 우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체결하시는 바로 그 때 우정이 성립하고 하나님은 우리 친구가 됩니다. 개도 주인이 밥 주면 꼬리를 흔들죠? 미천한 피조물도 은혜에 보은할 줄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와 말씀을 갖고 나오도록 가르치신 성령께서는 이제 하나님께 나갈때 찬송의 말도 함께 가지고 가라 명하십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분량대로 돌려 드리라 하시는 것입니다.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호의 해바라기그림에는 열정이 담겨 있죠? 그러나 고흐의 삶과 죽음은 보통 사람들의 삶이나 죽음과 아주 달랐습니다. 그의 인생사 뿐만 아니라 그가 그린 많은 그림들도 회화 역사상 많은 그림들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생존 시 거의 모든 사람들로 부터 외면 당 했습니다. 그가 살아있을 때 팔린 그림은 단 한 점일 정도로 비평가, 대부분의 화가들, 그리고 대중들 모두 고호에게 무관심으로 일관 했습니다. 화가가 미치는 것은 아무도 그를 사랑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슬프시게 하는 것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의 입이 침묵할 때입니다.

 

    땅도 갈고 씨 뿌리면 열매 맺죠. 나무도 과실을 맺고 돌물도 때가 되면 번식합니다. 시편 19:1절은 말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찬송한다그러므로 만물의 영장인 우리 인간도 하나님께 반드시 보답해야 마땅합니다. 은혜 입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답례할 약속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하나님을 가장 크게 감동 시킬 수 있는 게 바로 하나님을 높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3: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113:1절에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것이 창조의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의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 내는데서 시작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서 끝이 납니다.

 

    유대인들은 수송아지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령의 은혜로 새 언약 아래 있는 이스라엘에게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송아지나 황소나 양이나 어린 양을 바치는 율법적인 제사가 아니라 입술의 열매입니다. 즉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십니다. ‘입술의 열매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소리 높여 그를 찬송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 13: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마땅히 드릴 제사는 입술의 열매 곧 찬미의 제사입니다. 그런데 입술의 열매는 반드시 행함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실제 생활 속에서는 정반대로 산다면 위선자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입술의 찬양은 반드시 우리 행실로 증명되어야만 합니다.

 

   3절에 이스라엘은 다시는 앗수르를 의지하지 않겠다. 손으로 만든 것을 신이라 하지 않겠다 합니다. 실제 삶은 어떠합니까?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것만큼 진정한 회개가 없습니다. 우리 모든 삶 속에서 찬미의 제사를 드리는 자가 진정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온 자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사 우리 속 모든 불의를 제하여 주시고, 우리로 선을 행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무엇보다 우리 모든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찬미의 제사를 드리게 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온 맘으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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